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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23화)
第八章 철검지주(鐵劍之主) ― 가서 무림 좀 뒤흔들고 와라(2)


워낙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기에 독고천은 간질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간지러운 듯 독고천이 연신 꼼지락거렸다.
그러자 천선우가 매서운 눈길로 독고천을 노려보자 독고천은 움찔거리더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딴청을 부렸다.
잠시간 독고천의 혈을 살펴보던 천선우가 손을 떼자 독고천이 절박하게 물었다.
“……저 괜찮은 겁니까?”
“그래, 네가 쌓기 시작한 기운 전에 쌓여 있던 하나의 기운이 있다. 그것에 아마 지옥초의 성분이 들어 있는 듯싶다.”
천선우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설명하자 독고천의 뇌리 속에 한원기가 스쳤다.
그랬다. 맨 처음 한원기와 만났을 당시 탄지공이라는 것을 펼치기 전, 한원기가 자신의 내공을 손수 독고천에게 주입시켜 주었던 것이다.
독고천은 두 손을 마주 잡고 행복하게 외쳤다.
“한원기 선배, 사랑합니다!”
“보통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지 않나?”
천선우가 독고천의 외침에 나직이 말하자 독고천이 뒤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한원기 선배에게 감사하다는 소리입니다.”
헤벌쭉거리며 웃는 독고천을 직시하던 천선우가 상관 안 한다는 듯이 말했다.
“한원기가 그 기운을 나누어 주었나 보군. 그 녀석은 걸어 다니는 내단이라 볼 수 있지.”
“정말 한원기 선배한테 감사할 따름입니다.”
독고천이 잠시 말을 끊으며 천선우를 직시했다.
천선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독고천은 알지 못할 압도감을 느꼈다.
단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지형을 훑어보는 천선우였는데 하나의 태산같이 묵직해 보였다.
또한 날이 선 검의 날처럼 날카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저것이 진정한 검객의 길…….’
검집을 움켜쥔 독고천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독고천이 나직이 묻자 천선우가 독고천의 눈을 직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림이란 의(義)와 협(俠)이 넘침과 동시에 사(邪)와 마(魔)가 넘치는 곳이다. 어디로 속할지는 너 자신이 선택하겠지만 신중히 선택하길 바란다.”
진중한 천선우의 조언에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조심히 물었다.
“선배님은 어디에 속하셨습니까?”
독고천의 물음에 천선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난 그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아니, 모든 곳에 속해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아리송한 천선우의 말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세한 대답을 원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천선우가 단호히 말을 이었다.
“무림에서는 가까이 있는 자를 조심해라.”
“선배님의 말씀,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후에 독고천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독고천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막상 무림(武林)이라는 곳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들고 긴장감도 들었다.
그러나 겨우 무거운 몸을 움직이며 터벅터벅 걸어 나갈 무렵, 뒤에서 선명한 외침이 들려왔다.
“몸조심해라.”
순간 독고천이 울컥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뻔했다. 독고천의 뇌리에는 천선우와의 고된 수련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죽을 뻔했던 적도 많았고, 천선우의 싸늘한 반응에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냈고 독고천은 지금 이곳에 서 있는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선배님도 몸조심하십시오!”
독고천은 자신의 글썽거리는 눈이 보일세라 뒤로 돌아보지도 않은 채 천선우의 시야에서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걸어가던 독고천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던 천선우는 발걸음을 돌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의 선택이 옳았기를 바란다. 철검(鐵劍).”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수만이 텅 빈 공터의 흙바닥을 적실뿐이었다.
촤아아―

***

불안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청목 노인이 걸어오는 독고천을 보자 반색했다.
“잘되었구나.”
독고천의 허리춤에서 덜컥거리는 검집을 보면서 청목 노인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 고집불통에다 독불장군인 천선우가 쉽사리 검집을 넘겨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탓이다.
“잘되었습니다.”
다가오던 독고천이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하자 청목 노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뭇가지를 줍더니 입맞춤을 하는 시늉을 했다.
“이걸로 성공한 게냐?”
“뭐…… 비슷합니다.”
아니라고 단호하게 끊을 수는 없었기에 독고천이 얼버무리자, 청목 노인이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후후후. 역시 천선우, 그 녀석도 어쩔 수 없구먼. 연륜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지.”
연신 나뭇가지를 만지작거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청목 노인을 보며 독고천은 애써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청목 노인이 생각났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툭 치더니 입을 열었다.
“참, 이옹 놈의 제자가 드디어 나왔다고 하더구나. 이제 무림에 나갈 시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갑자기 청목 노인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를 잡자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말을 흐렸던 청목 노인이 자신의 손가락 중 검지를 펴며 헛기침을 몇 번하더니 말을 이었다.
“험험, 내기를 잊지 말거라.”
어색한 청목 노인의 말에 불구하고 독고천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 몫, 잊지 마십시오.”
“그, 그래…….”
오히려 주제를 꺼낸 청목 노인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순간 느껴져 오는 인기척에 청목 노인과 독고천이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한원기가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한원기를 보자마자 청목 노인과 독고천은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뭐, 뭐지?”
한원기의 의복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깔끔한 청의였는데 상의에는 용(龍) 문양이 정면에 박혀 있었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하의로 호(虎)의 문양이 박혀 있었는데 마치 용호상박(龍虎相搏)을 보듯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또한 용과 호의 문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짝거리는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범상치 않아 보였다.
한원기의 머리에는 붉은색의 영웅건이 씌어져 있었고 허리춤에는 보석으로 치장된 검집이 매달려 있었다.
한마디로 귀공자였다.
“그, 그게 다 뭐냐?”
청목 노인이 손으로 눈을 슬며시 가린 채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한원기가 나직이 답했다.
“아버지께서 제가 무림에 나가신다는 것을 듣고 구해 주셨습니다.”
한원기가 입을 열자 치아에서 하얗고 밝은 빛이 쏟아졌다. 청목 노인과 독고천은 하얀빛에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손으로 빛을 가리며 한원기를 직시하던 독고천이 나직이 말했다.
“멋지십니다.”
“역시 그런가?”
평상시의 한원기가 아니었다.
약간 상기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의복을 둘러보고 있는 한원기는 평상시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원기는 무림에 나간다며 들뜬 상태였다.
또한 그의 아버지 한중석은 팔불출이었다. 아들이라면 사정을 못 쓰는 그런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들이 어디 가서 꿇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화려한 의복과 검을 선물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도 부족하다며 영웅건을 씌워 준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한원기는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에 청목 노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기야, 조금 화려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렇습니까?”
순간 한원기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은 청목 노인의 착각이 아니었다.
청목 노인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아니다! 특히 그, 그 영웅건이 멋지구나!”
“역시 그렇습니까?”
다시 한원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평상시 같았다면 뭐라 잔소리를 했을 청목 노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쉽지 않았다.
무뚝뚝하여 몇 번 장난을 쳤을 정도에도 이렇게까지 심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던 한원기였기에 청목 노인이 적잖게 당황했기 때문이다.
밝은 표정의 한원기를 지켜보던 청목 노인이 안타까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팔불출 한중석이 결국…… 사고 쳤구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던 청목 노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이대로 원기를 무림에 내보낼 순 없다.’
“한원기.”
갑자기 청목 노인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한원기를 불렀다. 그러자 자신의 의복을 정돈하던 한원기가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솔직히 말해 보자. 넌 무림에 놀러 가는 것이냐?”
청목 노인이 나직이 대놓고 묻자 한원기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원기의 대답에 청목 노인이 신랄하게 외치듯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헤벌쭉한 표정은 무엇이더냐? 한 번의 실수가 생사(生死)로 갈라지는 무림으로 나가려는 녀석이 화려한 의복 때문에 그저 좋다는 것이냐?”
청목 노인의 신랄한 말에 한원기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청목 노인은 역시 연륜의 힘이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만, 정도가 지나쳤구나. 너의 선택을 지켜보겠다.”
그 말을 끝으로 청목 노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바위에 걸터앉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을까.
청목 노인이 슬며시 눈을 뜨자 어느새 한원기는 화려한 의복을 벗은 채였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한원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 다시 드리고 오겠습니다.”
“그래, 얼른 갔다 오너라.”
청목 노인이 내심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 진중하게 말했다. 의복을 들고서 모습을 감추자 독고천이 대단하다는 눈길로 청목 노인을 직시했다.
“대단하십니다.”
“이게 연륜의 힘이라는 것이다.”
만족한 듯 청목 노인이 자신의 콧잔등을 매만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한원기가 되돌아왔다.
평범한 청의였으나 여전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원기가 자신의 청의를 매만지며 애써 변명하듯 말했다.
“아버지께서 이거라도 입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는 상관없다. 멋지구나.”
청목 노인이 여유롭게 말하자 청의를 매만지던 한원기의 표정이 밝아졌다.
밀고 당기기가 제대로 먹힌 탓이다.
채찍만 주어서는 말은 달리지 않고 오히려 반항을 할 수도 있다. 가끔 당근이라는 묘수를 써야 말을 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무림에 나가는 것입니까?”
어느새 옆에 서 있던 독고천이 뺨이 상기된 채 묻자 청목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중하게 말했다.
“그래, 무림초출(武林初出)이다.”
무림이란 말에 독고천의 손에 절로 힘이 가해졌다. 밝은 표정이었던 한원기도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런 분위기에 말을 꺼냈던 청목 노인이 뒤통수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네.”
잠시 중얼거리던 청목 노인이 갑자기 독고천에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툭 하고 내리쳤다.
그리고 한원기에게도 마찬가지로 다가가 어깨를 내리쳤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독고천과 한원기가 청목 노인을 지켜보자, 청목 노인이 웃으며 외치듯 말했다.
“가서 무림 좀 뒤흔들고 와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예.”
독고천과 한원기가 다짐하듯 외치자 청목 노인은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자, 출발!”
그렇게 독고천과 한원기 그리고 청목 노인은 은거괴동의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알지 못할 긴장감이 그들을 덮쳤기 때문일까.
입구가 가까워질수록 독고천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한원기는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어느새 유려한 필체로 은거괴동이 적혀 있는 바위에 일행은 도착했다.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마치 손이라도 흔들어 주며 화답하는 것 같았다.
“몸조심하고……. 굳이 기한을 따지자면 이 년이다. 물론 그 후에 들어와도 상관없다.”
청목 노인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설명했다.
노인의 특유한 걸걸한 목소리가 바람에 휘날려 독고천과 한원기의 귓가를 적셨다.
잠시 뜸을 들이던 청목 노인이 뒤통수를 긁으며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분위기를 잡는 것은 맞지 않는구나. 잘 갔다 와라!”
그리고 독고천과 한원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려 했다.
그런데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소리와 함께 은거괴동의 주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식칼을 든 채 진소화와 함께 나온 이포후, 누구한테 맞았는지 눈에 시퍼런 멍이 든 당하천, 그리고 한원기를 직시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한중석까지.
“잘 다녀와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정이 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독고천은 감정에 복받쳐서 손을 흔들었고, 한원기도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손을 흔들던 독고천과 한원기는 입구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은거괴동의 주민들 중 이포후가 중얼거렸다.
“또 한 명의 제자를 그곳과의 내기를 위해서 보내는구나. 마치 자식을 보내는 것 같군. 녀석, 잘하려나?”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진소화가 앙칼지게 말했다.
“당신이나 잘해.”
“맞아. 너나 잘해라.”
옆에 있던 당하천이 거들자 진소화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당하천을 노려보았다.
“그 멍은 또 어디서 얻으셨나요?”
“그, 그게 흠흠…….”
헛기침을 하며 당하천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이포후는 킬킬거리며 웃기에 바빴다.
한중석은 연신 한원기가 걱정되는지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습에 킬킬거리던 이포후가 나직이 외쳤다.
“자자, 오늘 저희 푸줏간으로 놀러 오십쇼. 거하게 합시다.”
진소화도 고개를 끄덕였고, 당하천과 청목 노인은 환호성을, 안절부절못하던 한중석도 표정을 풀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간직한 채 마을로 돌아갔다.
수풀 속에서는 백의를 차려입고 있던 중년인이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채 홀로 서 있었는데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없어진 숲 속에는 침묵이 찾아왔고, 새소리만이 고즈넉하게 울릴 뿐이었다.
짹짹―
날씨는 맑았으나, 유난히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