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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22화)
第七章 고마비(天高馬肥) ― 검에게 부끄럽지 않더냐!(4)


그러나 천선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왜 그딴 짓을 하냐고 물은 것이다. 물론 창의성은 좋았다. 진법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어서 검에게 접목시킨 점은 좋았다. 하지만 그건 검이 아니다.”
독고천은 입을 닫은 채 천선우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입을 닫았던 천선우가 갑자기 자신의 검을 뽑았다.
스르릉―
날카로운 검명이 울리자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천선우는 자신의 검신을 살펴보더니 독고천의 눈앞에 가져갔다.
독고천은 움찔거리며 침을 삼켰지만 애써 제자리를 지켰다.
검을 들고 있던 천선우가 나직이 물었다.
“검(劍)의 주인으로서, 검에게 창피하지 않느냐?”
독고천이 묵묵히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자 천선우가 우렁차게 외치듯 물었다.
“검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놈이 검으로 진법을 펼치다니……. 검에게 부끄럽지 않더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독고천은 그저 시선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독고천을 내려 보던 천선우가 독고천의 허리춤에 매여 있던 검집을 빼앗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독고천이 움찔거렸지만 천선우의 차가운 눈동자에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독고천의 철검(鐵劍)을 들고 있던 천선우가 숨을 고루 쉬며 천천히 곱씹듯 말했다.
“검에게 사과할 자세가 되었을 때 나를 찾아와라.”
그 말을 끝으로 천선우는 모습을 감추었다.
독고천은 멍하니 천선우가 사라진 곳을 직시할 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옆에 서 있던 청목 노인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나도 잡아내질 못했는데 천선우가 잡아냈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도 얼얼한 뺨을 만지던 독고천이 나직이 물었다. 그러자 청목 노인이 바위에 주저앉더니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이제 늙었나 보군. 처음에 눈치챘던 단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놀라며 뒷걸음질이라니…….”
“어떤 단점이 있었습니까?”
묻는 독고천의 모습은 다급했다.
한시라도 자신의 단점을 알려 달라며 울부짖는 것만 같았다. 그러자 바위에 걸터앉은 청목 노인이 엉덩이를 부대끼더니 말을 이었다.
“검이라는 것 자체가 진법의 매개체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우선 매개체는 진법을 펼칠 때 최대한 숨겨 놓는 것이 정석인데 네 녀석의 환술에 적나라하게 매개체가 보여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랬다.
천선우에게 나타났던 대호(大虎)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배에는 작은 점들이 선명히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진법의 생문(生門)이자 진법을 파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었다. 독고천은 그저 자만에 물들어 그러한 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환검은 힘없이 무너진 것이었다.
진정한 대결에서 그런 단점은 생사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것이다.
만약 천선우에게 펼쳐 보지 않고 이대로 무림으로 나가 진정한 고수를 만나서 환검을 썼다면, 곧바로 목이 떨어질 만큼 위험했던 단점인 것이다.
분명 청목 노인도 무시 못할 고수였다.
하지만 그의 낙천적인 성격이 치밀함을 떨어뜨렸고, 한번 잘못 판단하자 청목 노인은 계속해서 착각했던 것이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며 복잡한 생각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독고천이 청목 노인에게 급히 물었다.
“검을 찾아올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글쎄다. 천선우는 한 번 실망한 놈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을 아직 못 봤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찾아오라니 기회가 있다는 뜻이겠지.”
청목 노인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자 독고천의 표정이 약간은 펴졌으나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자신의 자만으로 검마저 뺏겨 버리고, 천선우 선배로부터 버림까지 당한 것 같아 기분이 착잡했다.
“검에게 사과할 자세가 되었을 때는 무슨 의미입니까?”
독고천이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 묻자, 청목 노인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양손으로 독고천의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
짜악―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정신이 번쩍 든 독고천에게 청목 노인이 웃음을 머금고는 시원스레 말했다.
“네놈답지 않구나. 표정부터 펴라. 사내자식이 꽁해 있기는……. 천선우가 꼭 옳지는 않다. 그 녀석 곁에 있으면 다른 생각은 못하는 것이 장점이지만, 새로운 길을 걷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물론 그 장점이 단점을 가볍게 상쇄할 정도지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청목 노인을 쳐다본 독고천이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청목 노인은 만족했는지 다시 바위에 걸터앉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천선우는 검(劍)을 사랑한다. 그것도 거의 미친놈 수준이지. 너에게 준 검도 네 녀석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준거다. 내가 권(拳)을 쓰다 보니 검에 대해서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래서 어쩌다 검을 하찮게 보는 발언을 했었지. 천선우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 같더냐?”
청목 노인이 과거가 생각나는지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독고천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팔을 무의식적으로 쓰다듬던 청목 노인이 팔소매를 거두었다.
팔소매에는 심각할 정도로 깊은 검상이 나 있었다.
“그때 그놈이 정중하게 청해 온 것이다. 권과 검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지 대결을 하자고 말이야. 난 그 당시에 애송이의 정신 상태를 고쳐 주려 했었지. 그런데…….”
“그런데……?”
독고천이 긴장되는지 혀로 마른 입술을 핥으며 재촉했다. 청목 노인이 진저리가 나는지 천천히 소매를 내리며 말했다.
“그놈은 살기(殺氣)를 내뿜었다. 그리고 살검(殺劍)을 펼쳤지. 단 일 초식에 팔이 날아갈 뻔했다. 물론 지나가던 촌장님 덕분에 겨우 팔은 건졌지만 졸지에 팔이 날아갈 뻔했지.”
“정녕…… 천선우 선배가 그랬습니까?”
독고천이 침을 삼키며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청목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랬다니까……. 그 후로는 천선우를 건드리는 놈은 없었지. 정체도 모른다. 단지 어떤 단체의 수장이었고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말이다.”
“그럼 다른 선배 중에 천선우 선배를 이기시는 분은 없습니까?”
“촌장님 말씀은 듣는 편인데 거의 독불장군이지. 십 년 전이었나? 한 제자가 그 녀석의 수련을 견디지 못하고 천선우가 지급해 주었던 검을 내던졌다가 죽을 뻔했지.”
청목 노인이 그때를 회상하며 진저리를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조금만 더 따졌다면 어깨 위에 있던 머리가 절로 떨어질 것이었다. 침을 삼키며 애써 긴장을 풀고 있던 독고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천선우 선배의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말 그대로다. 검에게 사과할 자세가 되어라. 즉 검을 사랑하란 소리지.”
“예를 들면……?”
독고천이 절실하게 묻자 청목 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바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들었다.
나뭇가지를 든 청목 노인의 표정은 비장했다.
청목 노인이 나뭇가지를 들고 있던 손을 옆으로 기울이자 나뭇가지가 청목 노인의 얼굴 앞에 멈추었다.
워낙 진지한 모습에 독고천이 마른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직시했다.
갑자기 청목 노인이 입술을 쭉 하고 내밀며 나뭇가지에 입술을 마주쳤다.
쪽―
나뭇가지에 입을 맞춘 청목 노인이 진중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렇게.”
그렇게 독고천은 득도(得道)했다.



第八章 철검지주(鐵劍之主) ― 가서 무림 좀 뒤흔들고 와라(1)


촤아아―
시원스럽게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는 폭포 아래 독고천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그 앞 커다란 바위에는 천선우가 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독고천을 내려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천선우가 나직이 묻자 독고천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상황이었지만 천선우는 무심했고 독고천은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검객(劍客)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독고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반말이었다.
다른 선배였다면 당장이라도 울컥하며 성을 냈을 테지만 천선우는 나직이 되물었다.
“누구한테 말하는 건가?”
“제 검에게 말하는 중입니다.”
천선우의 안광이 빛을 발했다가 금세 사라졌다.
독고천은 침을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너를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할망정 사술 따위나 휘두르며 자만에 빠졌으니 정말 미안하다. 정말 너의 주인으로서 창피하다. 만약 나를 용서해 줄 수 있다면 나를 용서해 다오.”
독고천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독고천을 내려다보던 천선우가 바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바위에서 내려온 천선우가 무릎을 꿇고 있는 독고천 앞에 섰다.
그리고 자신의 허리춤에 매여 있던 검집을 풀어서 독고천 옆으로 던졌다.
풀썩―
수풀 사이로 떨어진 검집이 빛을 발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천선우가 나직이 말했다.
“깨달음이 빠른 놈이군.”
그 말에 독고천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 올리더니 급히 되물었다.
“요,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내가 왜 용서를 하나.”
천선우가 되묻자 독고천이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옆에 떨어진 검집을 주워 들고는 진하게 입맞춤을 했다.
쪼옥―
“고맙다!”
검집을 끌어안고서 좋아하는 독고천을 지그시 내려 보던 천선우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옥동에서 무슨 일이 있지 않았나?”
“예를 들면 어떤 일 말씀이십니까?”
독고천이 고개를 들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천선우가 입을 열었다.
“예를 들어 운기조식을 할 때 서(暑)의 기운을 느꼈다던가, 혹은 한(寒)의 기운을 느꼈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운기조식(運氣調息), 몸속에 있는 단전의 기운을 운행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법으로서, 시전자의 내공을 증진시키거나 혹은 내상을 치료하는 데 필수적인 방법이다.
운기조식을 취하던 도중 공격을 당하면 매우 치명적이라 알려져 있으며, 운기조식 중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호법이라는 것을 서 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보통 일정 경지에 든 고수들은 운기조식 중 기운의 변화가 심하거나, 혹은 몸 밖으로 일정한 기운이 흘러나오는데 그것으로 무림인들의 경지를 파악하곤 했다.
“아……! 그 자살동(自殺洞)이라는 곳을 벗어난 후에 운기조식을 했는데 뜨거운 기운을 몇 번 느꼈습니다.”
독고천이 탄식을 내뱉으며 말하자 천선우가 다시 되물었다.
“그 자살동 근처에 있던 냇가의 물을 마셨나?”
“아, 미지근한 물 말씀이십니까? 보기에는 차가워 보였는데 미지근했습니다. 처음에는 목이 마르지 않아 마시진 않았습니다.”
독고천이 그 당시가 생각나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천선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까는 관심이 없던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호기심이 약간이나마 얼굴에 나타난 상태였던 것이다.
“그곳에 있던 화어란(火魚卵)은?”
“화어란, 그게 뭡니까?”
독고천이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선우가 설명했다.
“약간은 붉은색의 알인데 아마 움직일 거다.”
“아아, 뭔지 궁금해서 하나만 먹어 봤는데 단전이 터질 것 같아서 며칠 고생했습니다. 어찌나 뜨겁던지……. 그래서 물도 같이 마셨습니다. 그러니 그나마 가라앉더군요.”
진저리가 나는지 독고천이 혀를 내둘렀다. 그러한 모습을 직시하던 천선우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독고천은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천선우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후 천선우가 생각이 정리된 듯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우선 냇가의 물은 빙정수(氷淨水)라는 것이다. 북해(北海) 지역에서 어쩌다 발견되는 신비한 물이다.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절대 온도는 변하지 않는 것이 빙정수다. 그리고 그곳에 손을 넣기만 해도 바로 얼어붙을 정도로 한기(寒氣)가 매섭다.”
“그, 그게 전설의 빙정수였습니까? 하지만 미지근했습니다만?”
독고천이 전혀 몰랐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천선우가 그럴 수 있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화어라는 물고기가 있다. 그것은 성질이 급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워낙 화어 자체가 열을 내뿜기에 어지간한 물에서는 살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나직이 말하던 천선우가 재차 입을 열었다.
“빙정수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 화어라는 존재다. 빙정수의 온도와 화어 자체의 온도를 맞추어 가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네가 그런 화어의 알을 먹은 것이다. 심지어 빙정수조차 말이다.”
천선우가 심각하다는 표정을 짓자 독고천이 움찔거렸다.
“아, 안 좋은 겁니까?”
독고천의 모습에 천선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화어와 빙정수는 희대의 영물로 알려져 왔다. 내가 지인에게 얻어 온 것이다. 그런데 화어와 빙정수는 희대의 영물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만약 복용자가 지옥초(地獄草)라는 것을 먹지 않으면 그대로 즉사해 버리는 무서운 단점이 있다. 그런데 네놈이 죽지 않는 것을 보니 신기하군.”
심각한 이야기였고 독고천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천선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자세히 천선우의 이야기를 듣던 독고천은 목을 부여잡으며 절박하게 물었다.
“그, 그럼 저 죽는 겁니까?”
“모르겠다.”
천선우가 고개를 내젓더니 독고천을 손수 일으켰다. 그리고는 독고천의 손목의 맥을 짚더니 조용히 말했다.
“조용히 운기조식하듯 집중해라.”
말과 동시에 천선우의 손에서부터 따스한 기운이 독고천의 손목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