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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21화)
第七章 고마비(天高馬肥) ― 검에게 부끄럽지 않더냐!(3)


그리고 눈동자를 빛내며 설명했다.
“접목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옥동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펼치는 수련이었습니다.”
“사실이더냐?”
조심스러운 청목 노인의 물음에 독고천이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목 노인은 작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천재였다.
자신이 이옹 놈을 기죽이기 위해 했던 말이 씨가 되어서, 새싹이 되더니 꽃으로 활짝 폈다.
그것도 진화(眞花)가.
순간 청목 노인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졸고 있었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긴장은 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무림인의 습관이자 숙명이었다.
그런데 독고천이 지척까지 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칠보권왕이라 불리며 사천을 호령했던 그 자신이.
‘이, 이놈 물건이구나.’
이 정도까지로 발전할 줄 몰랐다. 처음에 단순 어수룩한 놈인 줄만 알았는데 천고의 기재였다.
노력까지 하니 금상첨화였다.
말년에 금 덩어리를 통째로 얻은 것만 같은 기분에 청목 노인의 입이 절로 찢어졌다.
“그, 그럼 무엇을 펼치는 수련을 했느냐?”
청목 노인이 한층 호기심을 지닌 채 묻자 독고천이 검병에 손을 가져 가더니 검을 뽑았다.
군더더기 없는 모습에 청목 노인이 절로 감탄사를 내뿜었다.
만약 청목 노인, 자신이 그 검에 베어질 운명이라 할지라도 감탄사를 내뱉었을 것만 같았다.
스르릉―
검명이 울리며 숲 속을 적셨다.
기마 자세를 취하던 한원기는 어느새 자세를 푼 채 독고천을 직시하고 있었다.
검을 뽑은 후 검신을 훑던 독고천이 나직이 말했다.
“굳이 이름을 짓자면……. 환검(幻劍)이라 합니다.”
환검이라는 말에 순간 청목 노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러 사방에서 날아와 상대방의 약점을 꿰뚫는 환검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비록 뛰어난 검술이지만 약점은 많았다.
그렇기에 청목 노인은 절로 기대감이 삭아 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독고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세를 취했다.
묵직한 기운이 독고천에게서 흘러나왔다.
청목 노인과 한원기는 침을 삼키며 그를 직시했다. 검을 살며시 허공으로 올렸던 독고천이 검을 수직으로 내리며 검무(劍舞)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청목 노인과 한원기의 눈은 독고천의 검에 고정되었다.
허공을 수직으로 내리찍던 검이 기묘한 각도로 치켜 올라가더니 횡(橫)으로 그어졌다.
휘이익―
검이 허공을 갈랐고, 청목 노인은 바다를 보았다.
휘이익―
검이 다시 허공을 갈랐고, 한원기는 하늘을 보았다.
파앗―
횡으로 그어지던 검이 갑작스럽게 허공을 꿰뚫자, 청목 노인과 한원기의 시야에 높디높은 태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웅장함을 자랑하던 태산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며 청목 노인과 한원기를 덮쳐 왔다.
우르르―
한원기는 태산이 무너지자 기겁하며 급히 신형을 뒤로 날렸다.
“헉!”
그와 동시에 그들을 짓누르려던 태산은 없어졌고, 공터에 서 있던 한원기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공터 그대로였다.
그러나 분명 한원기는 태산을 보았고, 바다와 하늘을 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원기처럼 뒤로 뛰쳐나가진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던 땀을 닦던 청목 노인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환검이라는 것이, 환상(幻相)을 말했던 것인가……?”
청목 노인이 허탈한 듯 중얼거리자 검을 거둔 독고천이 나직이 말했다.
“지옥동에 있던 환영진을 파악하고, 그것을 그대로 검으로 실현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하.”
뒤통수를 긁으며 해맑은 표정을 지니고 있는 독고천이었다. 그 모습에 청목 노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천재라는 것이 존재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물론 환검이라는 것을 보는 순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워낙 뛰어난 독고천의 성취에 놀란 나머지 놓치고 말았다.
어쨌든 독고천의 검술은 대단했다.
순전히 검 한 자루로 생동감 있는 진법을 펼치다니 말이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무공을 익혔었나?”
청목 노인의 조심스런 질문에 독고천이 고개를 단호히 내저었다.
그럴수록 청목 노인의 탄식은 더욱 길어졌다.
아무리 절정고수들이 힘을 합쳐서 가르친다 하지만 독고천의 경우는 너무 빨랐다.
그들의 진정한 절기조차 보여 주지 않았고 단지 수련에 수련을 반복시켰을 뿐인데 독고천은 일정 경지까지 다다랐다.
“무슨 특별한 마음가짐이라도 있었나?”
잠시 탄식을 내뱉던 청목 노인이 묻자 독고천의 뇌리 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흑살문(黑殺門), 단지 그 단어만이 독고천의 뇌리 속에 선명히 박힌 채 염화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저 노력했습니다.”
독고천이 이를 악문 채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청목 노인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골똘히 고민하던 청목 노인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독고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참, 그 이옹 놈의 제자는 아직 수련을 마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일정이 미뤄졌다.”
“그 제자란 자를 볼 수 있습니까?”
“볼 수 없다. 심지어 그 제자란 녀석도 네놈의 이름조차 모를 것이다. 그것은 그나마 공정한 내기를 위하여 만든 규칙이지.”
청목 노인이 설명하자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보였다.
만약 이름을 안다면 그 사람을 찾아가게 될 것이고, 직접적이나 간접적이나 관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는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만큼 단점도 넘쳐 나겠지만 말이다.
“그럼 언제 무림으로 나가게 됩니까?”
“자세히는 모르겠다. 그놈의 제자가 나와야 하니까.”
청목 노인이 투덜거리자 독고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한원기는 다시 기마 자세를 취한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독고천은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려 했지만 고개를 내저으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땀을 흘리는 한원기의 표정에서 단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지 못할 호승심도 들었다.
예전에는 한 번도 이겨 보질 못했지만 지금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무럭무럭 생겨났다.
자신은 수련이라는 고된 시련을 겪었고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아직 자신의 온전한 실력을 몰랐지만, 최소한 자신의 손에서 꿈틀거리는 힘이 약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안 했다.
또한 청목 노인도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놀라고 있었다. 흥분으로 격동 거리던 독고천의 가슴이 웅얼거리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외쳤다.
‘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선배들의 표정을 보라. 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선배들의 얼굴을 보라.’
심지어 수련을 하고 있는 한원기의 눈빛에서도 호승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독고천은 뿌듯했다.
한낱 삼류문파라는 흑살문에게서 핍박 받아 오며 심지어 장원과 어머니마저 빼앗겼던 자신의 과거 모습을, 현재 검을 들고 전대고수를 놀라게 하는 자신의 모습이 뒤덮었다.
그러자 독고천의 입가는 무의식적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자만이라는 이름의 미소였다.
“수련을 끝냈나?”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독고천은 몰래 무언가를 먹다가 들킨 아이처럼 놀랐다.
“처, 천선우 선배……?”
독고천이 중얼거리듯 말하며 뒤돌아 보자 어느새 천선우가 깔끔한 백의를 차려입은 채 서 있었다.
여전히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은 그대로였고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집도 그대로였다.
또한 차디찬 얼음이 들어가 있을 법한 눈동자도 그대로였다.
“지옥동 수련은 끝냈나?”
“예, 끝냈습니다.”
“어땠나?”
천선우가 나직이 묻자 독고천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옥동의 수련은 예상보다 일찍 끝내고, 저만의 수련을 했습니다.”
독고천이 슬쩍 천선우를 쳐다보자 천선우는 계속하라는 듯 표정으로 그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독고천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환검이라는 것을 완성했습니다.”
“지옥동에서 무엇을 배웠나?”
“심신(心身)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목숨의 중요성도 배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환검은 무슨 소리인가?”
독고천의 대답에 천선우가 궁금하다는 듯이, 그러나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어찌 사람의 표정이 저런 표정을 지어 낼 수 있는지 독고천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독고천이 급히 말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말과 동시에 독고천이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스르릉―
맑은 검명과 함께 독고천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배여 있었다.
아마 천선우 선배도 자신의 새로운 무공을 보고 놀라워할 것이다.
또한 청목 선배처럼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놀라워하겠지라는 생각이 독고천의 뇌리를 스쳤다.
평상시에 자신을 괴롭히다시피 수련을 시키던 천선우 선배가 놀란다는 상상을 하니 저절로 검병을 움켜쥔 손에 힘이 갔다.
꽈악―
검병으로부터 가죽 소리가 들리며 독고천의 손아귀에 달라붙었다.
그러자 묵직한 기운이 독고천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검을 살며시 허공으로 올렸던 독고천이 검을 수직으로 내리며 또다시 검무(劍舞)를 시작했다.
검이 횡자로 허공을 그었다.
그 순간 넘실거리는 파도가 천선우, 청목 노인 그리고 한원기를 덮쳤다.
엄청난 생동감에 청목 노인과 한원기는 절로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천선우는 묵묵히 자신을 덮쳐오는 파도를 직시했다.
그러한 천선우의 담담한 모습에 청목 노인의 뇌리에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청목 노인은 천선우를 직시하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한원기는 그저 넘실거리는 파도에 대항하지 못한 채 신형을 뒤로 날릴 뿐이었다.
천선우의 담담한 모습에 독고천이 살짝 미소를 짓고는 검을 재차 휘둘렀다.
‘이 정도로 무너지면 천선우 선배가 아니시죠.’
엄청난 속도의 쾌검이 허공을 꿰뚫자 구름조차 터지는 환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크기의 대호(大虎)가 천선우를 덮쳤다. 대호의 집채만 한 발은 당장이라도 천선우의 몸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천선우는 조용히 대호를 직시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검지를 살짝 펴놓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쨍그랑―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천선우를 덮쳐 오던 대호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넘실거리던 파도도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 중심에는 독고천이 검을 든 채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도, 도대체……?”
독고천이 허망한 듯 중얼거리자 천선우가 다가왔다. 지척에 다다르자 천선우가 거침없이 독고천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얼마나 셌는지 독고천이 허공에서 두어 번을 돌더니 바닥에 널브러졌다.
몸을 겨우 일으킨 독고천의 입술은 터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왜, 왜 때리십니까?”
놀란 독고천이 급히 물었다.
수련을 할 당시에도 한 번도 때린 적이 없던 천선우였기에 더욱 놀랐는지 몰랐다.
독고천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천선우의 차가운 눈동자는 더욱 깊숙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것이 검술이더냐?”
묵직한 말에 독고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천선우의 차디찬 눈을 직시한 채 입을 악다물 뿐이었다. 잠시 화가 난 듯 뜸을 들이던 천선우가 무거워 보이는 입을 열었다.
“그것이 검술이냐고 물었다.”
“예.”
입을 다물고 있던 독고천이 소매로 피를 닦으며 나직이 답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그러자 천선우가 경멸하듯 입가를 올리며 비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며 따지듯 되물었다.
“검술이라고……? 그따위가 검술이라고 지금 지껄인 거냐?”
“그럼 그것이 검술이 아니고 뭡니까?”
독고천이 울컥하며 묻자 천선우가 다가왔다.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다가온 천선우가 살벌하게 말했다.
“그건 사술(邪術)일 뿐이다.”
“어, 어째서 그것이 사술입니까. 전 분명히 검술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천선우가 갑자기 주먹으로 옆에 있던 바위를 강하게 후려쳤다.
콰앙―
굉음과 함께 바위가 움푹 파이며 돌 조각들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독고천은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움푹 파인 바위에서 주먹을 거둔 천선우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분명 내가 말했을 텐데, 검을 몸으로 생각하라고……. 안 그랬나?”
“하, 하셨습니다.”
갑자기 천선우가 열이 받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내가 이런 놈을 가르치고 있었다니…….”
한숨을 내쉬는 천선우 앞에서 독고천은 꼬리를 내린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숨을 몰아쉬던 천선우가 입을 열었다.
“넌 검신을 상중하로 나누어 놓고 진법의 매개체와 똑같이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생각을 펼칠 수 있게 해 놓았지. 맞나?”
“그, 그렇습니다.”
자신이 고생하며 깨달았던 것을 한순간에 파악을 해 버리는 천선우 앞에 독고천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