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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20화)
第七章 고마비(天高馬肥) ― 검에게 부끄럽지 않더냐!(2)
지옥동(地獄洞).
낡은 현판이 바람에 휘날리며 삐걱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름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현판 아래에 깊게 뚫려 있는 동굴에선 스산한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괴이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도저히 동물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동굴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터벅터벅.
무심한 발걸음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천천히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가까워지더니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 밑은 퀭했으며 의복은 이곳저곳이 찢어져 얼마나 심한 고생을 했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내의 눈동자에서는 정광(正光)이 짙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위압감마저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 사내의 이름은 독고천이었다.
독고천은 동굴에 들어간 후 알지 못할 수련을 한 계절 동안 받은 후 동굴에서 나온 상태였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약간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고 어설픈 모습이 남아 있었는데, 수련을 끝낸 후에는 달라져 있었다.
단지 몸[身]만을 수련한 것이 옛 수련이라면, 지옥동에서의 수련은 정신[心] 수련이었다.
괴이한 진법들이 독고천을 괴롭혔으며, 심지어 환각 그리고 환청까지 독고천을 매시간 괴롭혔다.
심지어 자살(自殺) 충동까지 일으키는 진법 속에서 독고천은 한 계절을 버텼다.
그러한 혹독한 정신 수련은 독고천을 심오한 경지로 이끌었고, 독고천의 심신을 굳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잡던 독고천이 순간 몸을 떨었다.
“지옥동이 아니라, 귀신동이었다.”
고독하게 바뀐 외형과는 달리 내형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주책없게 변한 듯했다.
“잘 버텼구나.”
수풀에서 갑작스럽게 노인이 튀어나오며 말을 걸었지만 독고천은 알고 있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입니다, 촌장님.”
“늠름해진 것 같구나.”
촌장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독고천은 가볍게 웃었다.
그 미소는 여인이 보았다면 설렐 정도였다.
비록 꾀죄죄한 모습이 혐오감을 주기 충분했으나, 진주가 진흙 속에 있다 하여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흙을 닦아 내면 진주는 더욱 빛나는 것처럼 독고천도 오히려 남자다움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제가 좀 늠름합니다.”
단지 능글거리는 것이 늘었을 뿐이다.
원래 사람이라는 것이 어떠한 경지를 넘으면 성격이 약간씩 변한다고 알려져 왔다.
그것의 현상이 독고천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는데, 악(惡)의 성격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었다.
“농이 늘었구나.”
촌장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독고천은 어깨를 들썩였다. 촌장이 말을 이었다.
“이제 무림에 나갈 때가 되었구나. 이번 기회에 은거괴동(隱居怪洞)이라는 곳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마.”
촌장이 바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자리를 잡았다.
독고천도 땅에 주저앉아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바위에 앉아 있던 촌장이 눈에서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듯 흘러내리며 입을 열었다.
“오래전 이야기다. 나는 한때 잘나가던 고수였지.”
촌장이 자화자찬하자 독고천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촌장이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독고천에게 시선을 주었다.
독고천은 주위를 훑으며 딴청을 부렸다.
촌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당시에 무서울 것은 없었다. 그 누구도 나를 꺾을 자는 없었다고 자부했지.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다. 친우 놈들과 사부님을 제외하고 나를 이길 자는 없었어. 그때부터가 무료한 시간이었지.”
그 당시를 회상하며 촌장이 입을 달싹였다.
“무공은 늘 기미를 보이지 않고 호각을 겨루었던 친우 놈들도 지쳐 버렸지. 그러던 중에 한 놈이 신선(神仙)이 되겠다고 은거를 해 버린 거야.”
약간은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촌장이 혀로 마른 입술을 핥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게 재미있어 보였지.”
뭐가 그리 웃긴지 촌장이 킬킬거렸다.
“나를 비롯한 친우 놈들은 은거해 버린 놈을 쫓아서 모두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지. 모두 넓고 확 트인 망망대해를 좋아했던 탓이지. 그리고 광동으로 그놈이 갔다는 소식을 들어서 찾고 다녔는데, 높은 수준의 진법을 발견하게 된 거지. 그것이 은거괴동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은거괴동은 촌장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독고천이 놀라며 묻자 촌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전대기인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이지. 은거괴동 겉에 설치되어 있는 허영진도 그분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진정한 고수는 쉽사리 깰 수 있고 동물도 쉽사리 들어올 수 있었고, 은거괴동 내에 있다면 허영진 밖으로 쉽사리 나갈 수 있었지. 물론 그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설치해 놓은 것이 바로 그분이지.”
전대기인의 얼굴을 회상하며 촌장이 털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물론 고수만이 은거를 하라는 법은 없었기에 나와 친우 놈들이 약간 허영진을 손본 덕에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개 생겼지.”
촌장의 말에 독고천의 뇌리 속에 청목 노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전에 청목 선배와 은거괴동 밖에서 수련을 하던 도중에 장소연이라는 소저를 만나게 되고, 그 소저를 업고서 들어가려 했을 때 청목 선배가 바위에 무슨 행동을 하던 것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것이 허영진의 파해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독고천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우리는 나름 고수였기에 허영진을 들어갈 수 있었고 신선이 되겠다며 뛰쳐나간 놈을 발견했지.”
신선이 되겠다며 뛰쳐나간 노인의 모습이 독고천의 뇌리에 스쳤다.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당시 은거괴동에는 그 친우 놈과 전대기인 분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삭막한 곳이었지. 우리는 다시 뭉칠 수 있었고, 전대기인 분의 풍모에 반해서 그 아래로 자진하다시피 들어갔지.”
그리고는 마치 촌장이 전대기인을 흉내 내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깔았다.
“전대기인께서 우리를 모아 놓고 말씀하시길. 은거도 좋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웃으시더군. 그 말을 끝으로 전대기인 분께서는 다음 날 사라지셨다. 우리는 그분이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하셨다고 믿고 있지.”
갑자기 촌장이 한쪽의 산을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곳은 전대기인이 사라진 곳이었다.
“말 그대로 증발해 버리셨으니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전대기인 분의 말을 따라서 은거괴동의 주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은거괴동이 탄생하게 된 비화라고 볼 수 있지. 또 앞으로 더욱 개방할 계획을 부촌장과 준비 중이란다.”
한참을 설명하던 촌장이 목이 아픈지 헛기침을 하며 침을 삼켰다. 그러한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독고천이 나직이 되물었다.
“그런데 만약에 은거괴동에서 나온 이가 은거괴동에 대해서 발설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일은 없다. 은거괴동이란 말 그대로 고향이라고 볼 수 있지. 그러니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을 제재하지 않는 것이고, 만약 그것을 제재한다면 편한 고향이 아닌 하나의 문파로 변질되어 가겠지.”
이미 예상했었다는 질문인 듯 촌장이 가볍게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또한 자신의 고향이 남에게 파손되는 것을 너는 보고 싶더냐?”
촌장의 나직한 말에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으나, 독고천은 재차 촌장에게 물었다.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혹시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독고천의 진지한 물음에 촌장이 독고천을 직시했다. 그리고 탄식을 내뱉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정으로 은거괴동을 위한 질문이로구나. 그럼 내 하나만 물어보자. 네 녀석이 악독한 마음을 지니고 은거괴동에 들어왔다. 그러면 어쩔 것이냐?”
“물론 은거괴동의 고수들을…… 아!”
자신의 생각을 내뱉던 독고천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그랬다.
은거괴동의 고수들을 어찌할 자는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각자 절기를 자랑하는 고수들이 합공을 한다면 그 누가 이길 수 있을지.
‘누가 그분들을 이길지…….’
여러 선배들이 뇌리에 스치자 독고천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독고천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촌장도 마주 웃었다.
독고천도 뒤통수를 벅벅 긁다가 웃음을 지었다.
“하하, 제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그래도 은거괴동의 주민으로서 걱정해 주니 내가 다 고맙구나.”
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촌장은 천천히 바위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나직이 말했다.
“이제 가 보거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독고천이 정중히 말하자 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촌장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다시 안 올 작정이냐?”
“예.”
독고천의 시원스런 대답에 촌장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저도 모르게 시원스럽게 웃었다.
“뭐라……? 하하하.”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웃는 촌장에게 정중히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는 왼손으로 주먹을 감쌌다.
포권지례(抱拳之禮)였다.
그리고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촌장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멀어져 가는 독고천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젊으니 좋구나.’
독고천이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촌장은 몇 번 발을 구르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지옥동의 삐걱거리는 낡은 현판의 소리만이 숲 속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삐걱삐걱―
***
“왼쪽이 기울어졌다.”
바위에 앉아 있던 노인이 하품을 하며 말하자 앞에서 기마 자세를 취하고 있던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심을 옮겼다.
소년의 의복은 이미 땀으로 젖은 지 오래였지만 소년은 힘든 내색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에 노인은 속으로 혀를 찼다.
‘고약한 놈. 역시 한가(瀚家)구나.’
땀을 흘리고 있는 소년은 한원기였다.
자신도 무림에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청목 노인에게 듣고는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꽤나 혹독한 수련이었지만 의외로 잘 따라 주었고, 바위에 앉아 있는 청목 노인에게 몇 번 감탄사를 얻어 내기도 했다.
물론 독하다는 의미의 감탄사였지만.
그리고 시간이 흘러 태양이 중천(中天)에 떴다.
그러나 여전히 한원기의 자세는 굳건했다.
청목 노인은 따스한 햇볕 아래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여름의 온기와 가을의 바람이 섞여 졸음을 유발했던 탓이다.
심지어 입가에서 침까지 흘리며 졸고 있었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졸고 있던 청목 노인이 갑자기 몸을 움찔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히익……!”
신음성과 함께 청목 노인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졸기 시작했다.
고개를 꾸벅이며 다시 몽마에 빠진 청목 노인 뒤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사내가 척 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청목 노인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속 졸 뿐이었다.
청목 노인의 뒤에 서 있는 사내를 보고는 놀란 한원기가 뭐라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사내가 손을 내저으며 손가락으로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내 왔다.
뒤에 서 있던 사내는 졸고 있는 청목 노인의 귓가에 조심히 입을 가져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외쳤다.
“청목 선배!”
“뭐, 뭐야!”
갑작스런 외침과 동시에 청목 노인이 고꾸라졌다.
콰당―
허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킨 청목 노인이 사내를 보고는 화를 내며 외쳤다.
“누구 자다가 졸도하는 꼴을 보고 싶더냐?”
얼마나 놀랐는지 연신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던 청목 노인이 소매로 입가를 쓰윽 하고 닦으며 숨을 고루 쉬었다.
잠시 숨을 고루 쉬며 가슴을 걱정하던 청목 노인이 사내를 올려다보며 외치듯 말했다.
청목 노인을 내려다보는 사내는 장난기 가득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쨌든 오랜만이구나, 천아.”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밀어 청목 노인을 일으켰다.
일어선 청목 노인이 손으로 엉덩이를 털며 물었다.
“벌써 끝난 게냐?”
“예상외로 지옥동 수련은 빨리 끝났습니다. 단지 다른 것을 수련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독고천이 나직이 답하자 청목 노인이 경악에 물든 눈으로 되물었다.
“지옥동의 수련을 빨리 끝냈다고……?”
“예, 그 후에 지옥동 내에서 다른 수련을 했습니다.”
지옥동은 은거괴동 내에서도 악명을 자랑하는 수련 장소였다. 특히 천선우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공할 악명을 자랑할 만했다.
의외로 천선우는 검술뿐만 아니라 진법에도 뛰어났기에 지옥동 수련을 담당하여 만든 것이다. 물론 이포후가 한번 겪은 후 치를 떨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지옥동 수련을 일찍 끝내고 또 다른 수련을 했다니, 청목 노인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 다른 수련이라는 것이 뭐더냐?”
“거창한 수련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단지?”
독고천이 말을 흐리자 청목 노인은 궁금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자 잠시 뜸을 들이던 독고천이 씨익 하고 가볍게 웃었다.
“저만의 수련을 했습니다.”
나직한 말에 청목 노인의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그 말은 자신만의 무공을 수련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즉 다른 이의 무공을 자신의 진리와 접목시켜서 새로운 무공을 만드는 경지를 말했다.
물론 새로 무공을 창조하는 것보다 아래 단계였지만 독고천의 나이에 그 정도 성취라면 천재(天才)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재(技才) 소리를 듣기 충분했다.
“대단하구나. 벌써 그 정도의 경지까지 올랐다니. 그럼 어떤 무공들을 접목시켰느냐?”
“접목 말씀이십니까?”
“그래, 접목 말이다.”
청목 노인이 재차 말하자 독고천이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