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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9화)
第六章 지옥노인(地獄老人) ―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냐고요!(4)


그 후로 독고천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노인이 와도 무시할 정도로 미친 듯이 휘둘렀다.
처음에는 느리게 검을 휘둘렀다.
지켜보는 노인조차 하품을 할 정도였다.
그 후로는 평범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나마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독고천을 격려할 정도였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을 때, 노인은 그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성장이다.’
독고천이 들어왔을 때는 검객의 분위기가 흐르긴 했지만 아직 애송이였다. 검만 휘두를지 알았지 진정한 검에 대해서는 모르는 애송이였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 깨달음을 얻고 만 것이다.
거기다 독고천은 검으로 무언가를 항상 시도했다.
처음에 보았을 때 노인은 이죽거리며 독고천을 놀렸지만, 서서히 갈수록 노인의 입은 다물어졌다.
목검을 만들어 검면을 세 조각으로 나눌 때는 노인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었다.
‘결국 미쳤구나. 안타까운 녀석.’
그러나 지금 노인은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세 조각으로 그린 목검에서 푸른 바다가 그려지고 있었다.
촤아아―
넘실거리는 파도가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다.
검으로 만들어진 환상이었지만 마치 진짜 같았다.
그러나 경악했던 노인도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진법은 진법일 뿐이었다.
검으로 만든 진법이 대단해 보일지는 몰라도 오히려 검술에 방해만 되는 것이었다. 또한 진정한 고수 앞에선 오히려 약점이 드러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독고천은 그것을 모르는지 검으로 진법을 만드는 것에 남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서서히 남아 있던 시간은 흘러갔다.

***

“이제 슬슬 나갈 시간이 되었구나.”
바위에 걸터앉아 계견과 놀던 노인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검을 휘두르던 독고천이 뒤를 돌아보았다.
듬직해졌다.
창백하던 피부가 어느 정도 적당히 탔고, 우락부락한 근육은 아니지만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검을 쥔 손은 흉터투성이였다.
“그럼 이제 나가는 겁니까?”
“아직은 아니지. 마지막으로 대결이나 해 볼까?”
노인이 킬킬거리며 연무장으로 올라섰다. 그러자 독고천도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에 올랐다.
순간 갑자기 노인이 손을 올렸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동물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노인과 독고천의 시선이 마주치자 노인이 웃었다.
“쳐라!”
노인의 외침과 동시에 동물들이 모두 독고천에게 덤벼들었다.
쿠왕―
동물들이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마구 달려왔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동물들 눈빛에 숨어 있는 광기에 뒷걸음질 쳤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독고천은 오히려 검을 비스듬히 들었다.
그러자 동물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동물들의 표정에 겁이 스며 있었다.
동물들은 모두 독고천의 뒤를 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태산만한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치 덤벼들면 먹어 버리겠다는 듯이 파도가 뒤에 서 있었던 탓에 동물들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동물들이 멈칫거리자 보다 못한 노인이 역정을 내며 외쳤다.
“이놈들아! 환상일 뿐이다!”
노인의 재촉에 동물들이 신음을 내뱉으며 독고천에게 마지못해 덤벼들었다.
그 순간 독고천 뒤에 멈춰 있던 파도가 동물들을 덮쳤다. 파도가 크게 넘실거렸다.
촤아아―
모든 동물들이 미친 듯이 파도로부터 도망쳤다.
어느새 연무장은 노인과 독고천만이 남아 있었다.
노인이 탄성을 내질렀다.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저 녀석들에게는 잘 먹히는구나. 좋다, 시험 합격이다.”
노인의 웃음과 함께 독고천이 검을 거뒀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인 가을이 찾아왔다.



第七章 고마비(天高馬肥) ― 검에게 부끄럽지 않더냐!(1)


“상공, 이것 좀 보세요. 예쁘죠?”
한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홍의를 입고 있는 여인이 가락지를 흔들며 물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백의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그래.”
“에이, 상공, 더 자세히 보세요.”
홍의 여인이 더욱 백의 소년과의 거리를 밀착시키며 다가왔다.
다른 사내였다면 가슴이 설렐 정도로 아름다웠고 묘한 매력이 있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백의 소년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쁘군. 그런데 왜 나를 계속 상공이라 부르는 거냐?”
보통 상공이란 칭호는 아녀자가 배필을 부르는 호칭이다. 그들은 거의 남매 수준으로 나이 차가 심해 보였는데 홍의 여인이 성숙해 보였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백의 소년이 홍의 여인보다 여덟 살이 많았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홍의 여인이 아양을 부렸다.
“호칭이 무슨 상관이에요. 한원기 님은 제 상공이랍니다.”
한원기라 불린 백의 소년은 이해를 했는지, 혹은 못했는지 모를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이 홍의 여인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홍의 여인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런데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는 자가 있었다. 건물 밖에 서 있던 청의 중년인이 손을 내저으며 투덜거렸다.
“훠이, 저리 가라. 왜 꼭 우리 푸줏간에서 그러냐? 장사 안 되면 책임질래?”
청의 중년인이 식칼로 위협하듯 손을 내젓자 홍의 여인이 기겁하며 한원기에게 달라붙었다.
“상공, 무서워요. 웬 괴인이 저를 괴롭히려 들어요!”
“컥, 누가 괴인이야? 난 너의 선배란 말이다.”
청의 중년인이 뒷목을 부여잡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따졌다. 그러나 홍의 여인은 들은 척도 안 하며 한원기에게 바싹 달라붙을 뿐이었다. 한원기는 그저 이포후에게 고개를 까닥이며 나직이 말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이포후 선배님.”
한원기의 사과에 이포후라 불린 청의 중년인이 헛기침을 하며 식칼을 거두었다.
“오늘만 봐준다. 아, 진짜 돌겠네.”
이포후가 짜증나는 듯이 뒷목을 부여잡고, 홍의 여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갑자기 건물 안에서 여인이 문을 벌컥 하고 거칠게 열며 나왔다.
“여보, 일 안 해?”
이포후의 아내이자 절정의 검객인 진소화(陳蘇華)였다. 진소화가 나오자 이포후가 굽실거리며 달라붙더니, 홍의 여인을 가리키며 애처롭게 말했다.
“여보야, 또 쟤가 나 괴롭히네.”
진소화가 이마에 손을 얹으며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소연, 또 너냐?”
“오랜만에 뵈어요, 진소화 선배.”
소연이라 불린 홍의 여인이 다소곳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진소화 뒤에서 숨어 있던 이포후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저 가증스러운…….”
진소화가 슬쩍 이포후를 뒤돌아보더니 장소연에게 시선을 돌리며 따졌다.
“우리 남편은 여자에게 약하단 말이야. 괴롭히지 말라니까?”
“이포후 아저씨가 상공과의 시간을 방해했단 말이에요.”
장소연이 한원기의 팔짱을 끼며 말하자 진소화가 고개를 내저었다.
“원기의 표정은 전혀 아니올시다구나. 다시 한 번만 우리 남편 건드리면…… 그냥 안 넘어가.”
진소화가 살기 가득한 표정으로 진중하게 말하자 장소연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장소연이 침울한 모습을 보이자 진소화 뒤에 숨어 있던 이포후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장소연은 처세술에 강했다. 천선우 같은 선배를 만나면 깍듯이 대하고, 이포후같이 만만한 선배를 만나면 이리저리 놀리는 것이다.
좋은 말로 하면 파악 능력이 뛰어난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성격이 못된 것이다.
진소화는 마지막으로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장소연을 흘겨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에 서 있던 이포후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장소연을 훑으며 나직이 말했다.
“여보 말 들었지?”
장소연이 울컥하며 뭐라 하려 했으나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한 모습에 이포후는 콧날을 세운 채 건물 안으로 쏙 하고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의기양양한 승자(勝者), 이포후는 이상하게도 사내로서의 패배감을 짙게 맛보고 있었다.
‘크흑, 뭐지 이 패배감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이포후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장소연이 표정을 풀며 한원기에게 달라붙으며 아양을 떨었다.
“상공.”
그러자 뜻밖에도 한원기가 약간 팔을 비틀며 장소연을 물러서게 했다. 장소연이 놀란 표정으로 한원기를 보자 한원기가 나직이 답했다.
“그만 붙어라. 무겁다.”
순간 장소연이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은 채 한원기를 쳐다보았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장소연의 눈동자는 뭇 사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원기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번에 확실히 말하겠다. 난 상공이 아니다.”
순간 장소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뭇 사내라면 당황할 만도 했지만 한원기는 그저 장소연을 직시할 뿐이었다. 그러자 눈물을 흘리던 장소연이 애처로웠으나, 약간은 감정이 상한 투로 말했다.
“정말 너무하네요. 제 마음을 몰라주시는 건가요?”
“외양(外樣)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자를 싫어한다.”
냉정한 말을 내뱉고 한원기는 이포후가 들어간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홀로 남겨진 장소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흙먼지가 허공에 휘날리며 그녀를 감쌌다.
“도, 도대체 내 어디가 못났기에…….”
그녀는 자신을 몰라주는 한원기가 미웠다. 순간적인 사랑의 감정은 순식간에 분노로 화하기도 한다.
그것이 외양만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의 한계였으며, 내양을 볼 줄 모르는 자들의 한계였다.
장소연은 건물을 뚫어져라 직시하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이를 가는 것도 잠시, 장소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한동안 당하고만 살았던 자신의 성격이 못나게 바뀌어 버렸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서서히 절망에 빠질수록 자신은 비관적이 되어 갔다.
문파를 빼앗기고,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조차 문파를 배신해 버린 상황을 겪은 장소연으로서는 이곳까지 버틴 것도 용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지 못한 것 같아 씁쓸하게 장소연은 웃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못나게 변했지……?’
혼자 나직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장소연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내렸다.
왜인지 모르게 동떨어져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용문에서부터 쫓겨 나와서 우연히 독고천이라는 사내에게 도움을 받고, 심지어 은거괴동이라는 은거기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스며들었다.
일 년의 사 분지 일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겉도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 혼자서 멍하니 문파에 대한 상상을 해 보지만, 곧바로 고개를 내저은 적도 많았다.
문파의 원수인 용문에게 비굴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혹은 문파의 현판이 박살 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지는 장소연, 그 자신도 몰랐다.
장소연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몸을 일으키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산했고, 짙은 수풀 냄새가 장소연의 코끝을 간질여 왔다.
쪼르르―
장소연의 귓가에 작은 냇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소연은 저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냇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푸른 냇물이 시원하게 흐르며 장소연의 가슴을 뚫어 주고 있었다. 장소연이 살짝 손바닥을 냇가에 담그자, 냇물들이 조심스럽게 고였다.
그리고 장소연은 손바닥으로 세차게 물을 얼굴에 뿌렸다.
촤아아―
상쾌한 기분이 장소연의 씁쓸한 미소를 지워 버렸다. 물기가 가시지 않은 채 장소연은 멍하니 냇가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자신의 눈매가 이렇게 날카롭게 되어 있었을까.
언제부터 자신의 입가가 이렇게 못나게 바뀌었을까.
순간 장소연은 애처롭다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분노가 강해졌다.
아무리 자신이 어리다 하지만 변명할 수 없었다.
분명 한원기도 자신을 위하여 한 말일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비관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 버렸으니 졸지에 자신만 바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무언가 억울했다.
좋은 말로 자신을 설득시켜 주었다면 자신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장소연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장소연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미쳤던 수련으로 인해서 굳은살들이 박혀 있었다.
‘그런 때가 있었지.’
화목한 문파와 친절한 사형들. 그리고 위엄 있는 아버지 아래서 미친 듯이 수련을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장면과 함께 문파의 현판이 박살 나며,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자신의 아버지가 허리를 굽히는 장면이 들어왔다. 비굴한 웃음과 함께.
그랬다. 무림은 힘이었다.
그것이 무림의 법이자 상식이었다.
장소연은 자신의 허리춤을 살폈다.
점창의 신물이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장소연은 깊은숨을 몰아쉬며 검병을 움켜쥐었다.
‘힘…….’
검병을 움켜쥔 장소연의 손목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장소연이 몸을 일으켜 무작정 숲 속으로 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에 놀란 새들이 푸드득거리며 하늘로 치솟았다. 장소연은 비장한 표정과 함께 숲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냇가의 냇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고즈넉하게 숲 속을 채울 뿐이었다.
쪼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