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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8화)
第六章 지옥노인(地獄老人) ―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냐고요!(3)
“험험, 어쨌든 넌 시험에 통과했다.”
노인이 뒷짐을 지고는 짐짓 모른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독고천은 시퍼런 눈을 부여잡고는 외쳤다.
“그래도 사람을 무작정 패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아, 몰라. 억울하면 천선우한테 따지던지.”
“천선우 선배를 아십니까?”
“그 녀석이 콧물 흘리던 꼬마 때부터 내가 손수 똥도 치웠지.”
별로 진실성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노인의 말에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떤 관계이십니까?”
“그냥 같은 문파에 속해 있었다.”
노인이 나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런데 노인장께서는 실제 인물이 맞으십니까?”
독고천이 궁금하다는 듯이 노인을 툭툭 건드리며 실체를 확인했다. 그러자 노인이 독고천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입을 열었다.
“건방진 녀석. 우선 난 이미 죽은 지 오래다. 단지 천선우 놈의 진법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중이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독고천이 급히 되묻자 노인이 말을 이었다.
“난 죽은 몸이다. 하지만 우리 문파에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진법이 있지. 검뿐만 아니라 진법이 뛰어난 문파가 우리 문파다. 그런 제자들 중 천선우는 진법에도 뛰어났고, 진법으로 나를 살려 놓은 것이지.”
“그, 그럼 진짜 몸은?”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물론 사실대로 말하자면 죽지는 않았지만, 겨우 살아가는 몸에 불과하지. 나야 그 몸의 정신이고 말이다.”
아리송한 말에 독고천이 잠시 머리를 쥐어 싸더니 고심하는 듯했다.
그리고 한참을 있어서야 이해가 됐는지 독고천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괴이한 동물들은 뭡니까?”
“혼자 살면 적적해서 몇 개 만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계견의 등을 매만지며 노인이 털털하게 말했다. 독고천과 계견이 눈이 마주치자, 계견이 한번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움찔거렸다.
독고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독고천이 노인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수련은 끝난 겁니까?”
“아니, 지옥동은 일정 기간이 지나야만 다시 문이 열린다. 그러니 그동안 수련이나 해라.”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계견의 등에 타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뒷모습을 지켜보던 독고천이 미소 지었다.
알지 못할 자상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노인이 사라지자 독고천은 연무장 주위를 돌아다니며 저번에 용이 튀어나왔던 폭포 주위를 얼쩡거렸다.
겉에서만 폭포 아래를 내려 봤을 뿐인데, 독고천은 아찔함을 느꼈다.
“정말 깊군.”
당장이라도 용이 다시 튀어나와서 독고천을 물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푸아아아―
굉음과 함께 용이 재차 폭포 아래에서 솟구쳤다.
이번에도 독고천은 놀라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런데 솟구친 용의 이빨에 독고천의 상의가 걸려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뛰쳐나온 용과 독고천의 눈이 마주쳤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용이 재차 폭포 아래로 들어가자 위로 솟구친 독고천이 소리 질렀다.
“으아악!”
그렇게 독고천은 용의 이빨에 걸려 물가로 빨려 들어갔다. 용이 모습을 감추자 물가가 출렁거렸다.
첨벙―
물소리만이 비어 있는 연무장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
“으윽.”
독고천이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는 칙칙한 동굴 속이었다. 아직도 물가가 출렁이는 것을 보아 그곳에서 용이 헤엄치고 있는 듯했다.
독고천의 상의는 찢겨 있었다. 독고천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상의를 가다듬고는 위를 올려 보았다.
위를 올려 보자 폭포수로 보이는 것들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빛이 흘러나왔다.
“저기서 떨어진 건가.”
독고천의 중얼거림과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공명했다.
똑똑―
동굴 위에서 연신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독고천이 발걸음을 옮겼다.
빛이 흘러나오는 방향으로 독고천은 걸어 나갔다. 걸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뭐지?”
독고천이 철문을 두들겼다.
퉁퉁―
묵직한 저음이 울려 퍼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고천이 호기심 삼아 철문을 만지작거렸다.
철문의 중심 부분에 손잡이가 있었는데, 독고천이 그것을 밀었다. 그러자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익―
철문이 열리고 강한 빛이 독고천의 눈을 찔렀다. 급히 독고천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에 익숙해진 독고천이 천천히 손을 내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괴이한 모양의 동상들이 서 있었다.
동상들은 사람 모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독고천이 동상들을 매만지며 훑어보고 있을 때 갑자기 동상이 움찔거렸다.
그러한 현상에 독고천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뭐야?”
투둑―
모든 동상들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독고천은 조용히 뒤로 물러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묵직한 검병을 움켜쥔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움찔거렸던 동상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상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중앙에 서 있던 독고천을 둘러쌌다. 독고천이 중얼거렸다.
“진법인가?”
동상들의 눈이 연신 번쩍거렸다. 날카로운 섬광 같은 눈빛에 독고천이 침을 삼켰다.
순간 동상들이 위로 치솟았다.
독고천은 침착하게 검을 옆으로 슬쩍 뺐다.
공중에 치솟았던 동상들이 독고천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독고천은 곧바로 옆으로 슬쩍 피했다.
그러자 제일 근처에 있던 동상이 오른발을 휘둘렀다. 독고천은 곧바로 슬쩍 검을 치켜올렸다.
까앙―
느껴져 오는 묵직한 진동에 독고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단순한 흙이 아니었다. 마치 쇳덩어리 같았다.
동상들의 정체를 알자, 검병을 쥐고 있던 독고천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묘한 일이 발생했다.
철검의 검면을 위주로 울렁거리는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담뱃대에서 나오는 연기 같았다.
색은 옅은 청색이었는데 검면을 둘러쌓고 있었다. 마치 보호라도 하듯이.
독고천도 자신의 검에 생긴 현상을 보고 놀랐다.
“뭐, 뭐야?”
놀라며 독고천이 손아귀의 힘을 풀자, 울렁거리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고천이 침을 삼키며 재차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독고천은 기를 흘린다는 기분으로 집중하며 검을 쥐었다.
그제야 울렁거리는 기운이 다시 검면을 감쌌다.
그 순간, 앞에 서 있던 동상이 독고천에게 갑자기 돌진했다. 독고천은 가볍게 검으로 막아섰다. 그러자.
뎅강―
아까만 해도 단단했던 동상이 절반으로 무참히 갈라졌다. 동상이 반으로 동강 나자 독고천이 자신의 검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엄청난데?”
하지만 검은 연신 독고천의 단전에서 내공을 빼앗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양이어서, 독고천이 감당 못할 지경이었다.
결국 독고천은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기를 차단했다. 울렁거리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이것이 그……?”
독고천의 뇌리에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검종기기종검(劍從氣氣從劍), 줄여서 검기(劍氣).
검은 기를 좇고, 기는 검을 좇는다는 경지였다.
검기라는 뛰어난 경지를 얻기 위해선 많은 것이 일치해야 했다.
우선 뛰어나고 순수한 내공을 지니고 있어야 했으며, 검에 대한 집착과 검에 대한 애정이 넘쳐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일정한 조건을 맞추었을 때 검은 기를 받고, 기는 검을 받는 검기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동상들과 독고천을 둘러쌓고 있는 기묘한 진법이 그 조건을 최적화시켜 주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기연(奇緣)이었다.
하지만 검기는 엄청난 내공과 정신력을 요구했다. 웬만한 고수가 아닌 이상은 검기를 일각조차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기에 무림인들은 검기보다는 보통 검술로써 대결에서의 승패를 결정짓곤 했다.
물론 검기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고수라면, 상대방이 뛰어난 검술을 지녔다 할지라도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상대방의 검은 박살 나 버릴 정도였다.
동상 중 하나가 부서지자마자 동상들이 곧바로 독고천에게 달려들었다.
독고천은 가볍게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동상들이 으르렁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독고천이 동상들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공격 수법이 너무 단순한데…….”
그랬다. 동상들은 마치 인형같이 한곳을 노리고, 못 맞추면 다시 다른 곳을 노리는 방식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치 일정한 기운들이 독고천 자신을 감쌌을 때 동상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순간 독고천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진법이다!’
진법만이 독고천의 위치를 확인하여, 동상들에게 알려 줄 수 있었다.
덤벼오는 동상들을 뒤로 하고 독고천은 연신 주위를 뛰어다녔다.
독고천의 예상이 맞았다. 철문을 중심으로 삼각편대로 작은 기둥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접근하자, 동상들은 더욱 날뛰었다. 독고천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 끝났다.”
거침없이 독고천은 기둥 한 개를 부숴 버렸다. 그러자 동상들 중 일부분이 저절로 무너졌다.
우르르―
곧바로 독고천이 반대편의 기둥을 발로 박살 냈다. 그러자 동상들의 절반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 기둥 앞에 선 독고천이 씨익 웃었다. 그러자 착각이었을까. 동상들이 움찔거리는 듯했다.
그러나 독고천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쿠웅―
검으로 기둥을 베어 버리자 남아 있던 동상들조차 흙으로 무너져 내렸다.
흙으로 화해 버린 동상들 위에 독고천이 섰다.
“하하, 나의 승리다.”
쓰러진 동상들을 보자 독고천은 우쭐했다.
독고천은 항상 은거괴동에서 선배들에게 괴롭힘만 받았다. 그러다 자신의 무공으로 괴이한 적들을 무너뜨리자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에 장소연을 구해 줄 때 빼고는 거의 쓴 적이 없었던 무공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또한 검기라는 경지를 얻었으니 우쭐할 만했다.
그리고 승리의 도취에 취해 있던 독고천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나가지……?”
***
“멍청한 놈.”
노인이 윽박지르자, 독고천이 움찔했다. 잠시 씩씩거리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어찌 빠질 곳이 없어서, 잠룡호(潛龍湖)에 빠지냐. 그것도 잠룡의 이빨에 상의가 걸려서?”
“그래도 용은 용이지 않습니까.”
“그 잠룡 녀석은 힘도 없다. 네 녀석 주먹질 한 방이면 징징 울 녀석이란 말이야.”
노인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자, 독고천이 침울해했다. 잠룡호에 빠진 독고천은 나올 방법을 생각지 못하여 노인을 연신 불렀었다.
하지만 노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독고천은 별의별 욕을 다했고, 결국 열 받은 노인이 독고천을 건져 내었던 것이다.
노인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말했다.
“그런데, 뭐? 심통이 자라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꿰뚫을 영감이라고?”
“하하, 그건 노인장이 워낙 나타나질 않으셔서…….”
독고천이 뒤통수를 긁으며 헤헤 웃었다. 결국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래, 거기서 뭐 했냐?”
“이상한 동상들과 싸웠고 검기를 깨달았습니다.”
“검기는 개나 소나 다 깨닫지.”
독고천의 자랑스러운 말에 노인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맞는 말이긴 했다.
검기라는 경지를 깨닫기는 다른 전설적인 경지에 비해 의외로 쉬웠다. 그것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 검기였다.
퉁명스러운 노인의 말에 독고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노인장은 검기를 깨달으셨습니까?”
“그거 깨달은 지 몇 십 년 됐다.”
“좋겠습니다. 깨달은 지 몇 십 년 되셔서.”
독고천이 빈정거리자 노인이 킬킬거렸다. 킬킬거리던 노인이 살살 독고천을 구슬렸다.
“이놈, 삐쳤구나. 화 풀어라.”
독고천이 아무 말 없이 있다가 헛기침을 했다. 헛기침을 하던 독고천이 나직이 물었다.
“그런데 지옥동의 문은 언제 열립니까?”
“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수련이나 하라니까?”
노인의 말에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노인이 이를 씨익 내밀고는 말했다.
“그럼 난 또 사라진다.”
휘잉―
바람처럼 노인이 재차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독고천이 자신의 검을 쥐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며 검을 뽑아 들었다. 독고천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검에서 기운이 넘실거렸다.
막대한 기운이 빠져나가자 독고천은 급히 기운을 거두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독고천이 검을 내려 보았다.
분명 검기는 뛰어나고 날카로운 효과를 자랑했지만 많은 내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검기를 쓸 때마다 괴이한 기분이 들었다.
독고천, 자신의 단전 중심 부분이 뭉쳐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마치 부동하듯이.
원래 기는 시전자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기는 달랐다.
마치 독고천을 거부하듯 멈춰 있었다.
독고천이 갑자기 가부좌를 틀고는 눈을 감았다.
두근두근―
단전으로부터 기의 움직임이 느껴져 왔다. 독고천은 천천히 그 뭉쳐 있는 기를 움직였다.
‘아, 설마 이건…….’
그랬다. 독고천이 자살동 출구에서 먹었던 붉은 구슬과 물의 기운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기로 바뀌었나?’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리며 독고천은 뭉친 기를 풀기 시작했다. 마치 실타래를 풀 듯 천천히 그렇게 꾸준하게 뭉친 기를 풀어 나갔다.
그리고 두 시진이 흘러서야 독고천이 눈을 떴다.
눈을 뜬 독고천의 눈가에서는 알지 못할 정대한 기운이 물씬 흘러나왔다. 마치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독고천은 땅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용히 칼날을 세웠다.
그의 검이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일각이 흘러서야 독고천은 숨을 헐떡이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철컥―
검집 소리와 동시에 주위에 있는 멀쩡했던 바위들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쿠웅―
멀쩡했던 바위들이 깔끔한 단면으로 동강나 버렸다. 검을 거두고 주위를 돌아다니며 바위들을 훑어보던 독고천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대단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