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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7화)
第六章 지옥노인(地獄老人) ―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냐고요!(2)


지옥동에서의 하루를 독고천은 눈을 뜬 채 지새워야 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옥동 내에도 낮과 밤은 존재했다. 태양이 뜨자 갑작스럽게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잤나?”
노인의 나직한 말에 눈 아래 검정색 기운이 물씬거리던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못 잤습니다.”
“어쨌든 비무를 시작하자.”
갑자기 노인이 독고천을 일으키더니 연무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노인이 갑자기 휘파람을 불렀다.
피이익―
그러자 갑자기 사방천지에서 동물들이 달려왔다. 그리고 연무장을 감쌌다.
그중 몇몇의 동물들이 연무장에 올라왔는데, 그것이 독고천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어제 보았던 토웅을 비롯하여, 독특한 동물들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들과 비무를 해서 이겨라. 참고로 이것들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이기면 나와 대결한다. 수고해라.”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이 뒤로 물러섰다.
독고천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은 손에 쥐어 있지만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때 순진하게만 보였던 토웅이 묵직한 앞발을 휘둘렀다. 갑작스런 공격에 독고천이 흠칫했다.
뒤로 겨우 물러선 독고천의 앞섶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독고천이 멍하니 자신의 앞섶을 훑었다.
피를 보자 열이 받았는지 독고천이 소리 질렀다.
“토끼라고 봐줬더니!”
크어어엉!
그러자 토웅이 울부짖었다. 순간 독고천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어, 어라? 얜 왜 곰으로 울지? 얼굴은 토끼잖아.”
당황한 듯 독고천이 뒤로 물러서자, 갑자기 토웅이 무작정 돌진했다. 토웅이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잠시 뒤로 물러섰던 독고천이 검을 꼭 쥐었다. 강해져야 했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지만, 토웅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자 목표가 독고천의 뇌리에 떠올랐다.
강해져야 한다.
그것이 독고천의 뇌리를 지배하자, 독고천은 무의식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달려오는 토웅의 다리를 베었다.
푸슛―
순간 토웅이 비명을 내지르며 옆으로 쓰러졌다.
크어엉!
피를 흘리는 토웅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러나 독고천은 이를 갈며 검을 휘둘렀다.
“네놈의 묵직한 몸에 걸맞게 행동하란 말이다!”
휘익―
독고천의 검이 토웅의 몸을 관통하자, 토웅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에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않는다는 말이 이거였군.”
그런 식으로 독고천이 계속해서 동물들을 베어 갔다. 서서히 익숙해질 무렵.
동물들이 연무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다 끝난 건가?”
독고천이 홀로 중얼거릴 때, 갑자기 독특한 소리와 함께 노인이 나타났다.
“어떠냐. 좀 신비하게 나타났나?”
“예, 좀 신비했습니다.”
독고천의 대꾸에 노인의 입가가 찢어질 듯했다.
“흠흠, 좋다. 원래 오늘 비무를 하려 했는데 오늘은 첫째 날이니 특별히 봐주도록 하지. 대신 오늘은 자살동(自殺洞)에서의 수련이다.”
노인이 손가락질하며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독고천은 무작정 그 뒤를 쫓았다.
폭포를 지나, 왔던 길을 어느 정도 되돌아가다가 어느 부분에서 오른쪽으로 노인이 꺾었다.
독고천도 노인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러자 독고천을 반기는 현판이 있었다.
자살동(自殺洞).
순간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섬뜩했다.
강자 혹은 짐승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 섬뜩함이었다.
본능 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듯 섬뜩함에 독고천이 몸을 떨었다. 그러자 노인이 킬킬거렸다.
“무서우면 안 들어가도 된다.”
노인이 도발하듯 독고천에게 말했다.
그러자 독고천은 오기가 생겨서 자살동 입구에 다다르며 노인을 뒤 돌아보았다.
“언제 나오면 됩니까?”
“그건 네 녀석에게 달렸다. 잘하면 일찍 나올 것이고, 못하면 늦게 나올 것이고. 어쨌든 입구와 출구는 다르다. 출구로 나오면 다시 초옥에서 보자꾸나.”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또다시 사라져 버렸다. 독고천은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는 자살동으로 들어갔다.
서늘한 바람이 독고천의 귓가에 살랑였다.
순간 독고천의 시야가 검붉게 변했다.
화악―
그리고 독고천은 북적거리는 시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독고천이 휩쓸렸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그 많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고, 독고천 홀로 서 있었다.
휘잉―
썰렁한 바람이 불었다.
독고천은 무작정 걸었다. 돗자리에 있는 물품들만이 상인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지만, 어딜 봐도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독고천은 어떤 사람과 마주쳤다.
붉은 파풍의를 입고 있어서 눈매밖에 보이질 않았지만 꽤나 서글서글한 눈동자가 보기 좋았다.
그자가 물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익숙한 목소리에 독고천이 순간 갸웃거렸다.
“모르겠소. 이곳은 어디요?”
독고천의 대꾸에 그 사내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자가 다가올수록 친숙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독고천의 지척까지 다다른 사내가 조심히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던 파풍의를 내렸다.
사내는 독고천, 자신이었다.
순간 독고천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외쳤다.
“너, 넌?!”
“그래. 난 너다.”
사내가 씨익 웃자, 괴이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쉬익―
“응?”
괴이한 검명에 독고천이 검을 내려다보자, 검이 존재하지 않았다. 거대한 뱀이 독고천의 손에 쥐어진 채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헉!”
독고천이 기겁하며 들고 있던 뱀을 내던졌다. 뱀은 쉭쉭거리며 모습을 감추었다.
사내가 싸늘하게 웃었다.
“왜 그러는가?”
“도대체 넌 누구냐!”
독고천이 울부짖듯 외쳤다.
그러자 사내가 자신의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는 다가와 독고천의 손에 검을 쥐어 주었다.
“이걸로 나를 베라.”
“무슨 소리냐!”
독고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외쳤지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고천이 검을 위로 추켜올렸다. 독고천이 기겁했다.
“뭐, 뭐야!”
그리고 독고천이 들고 있는 검이 무참히 사내를 베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독고천!”
독고천의 휘두르려던 검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사내의 뺨으로부터 한 치 정도 떨어진 위치였다.
독고천이 무심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그곳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당당한 발걸음과 듬직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사내였다. 그는 천선우였다.
“천선우 선배?”
독고천이 확실하지 않다는 듯 중얼거리자, 천선우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하, 하지만 이게 제멋대로…….”
“변명하지 마라! 네놈의 나약한 정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 않더냐! 일어나라, 독고천!”
우렁찬 목소리에 독고천이 흠칫하며 눈을 번쩍 떴다. 썰렁했던 그 마을이 아니었다. 자살동 출구였다.
나타났던 사내와 천선우는 사라져 버렸다.
손에서 느껴져 오는 묵직함에 독고천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내렸는데, 그곳에는 칼날이 번뜩이며 자신의 목젖을 가리키고 있었다.
독고천은 깜짝 놀라며 검을 치웠다.
저도 모르게 칼날을 목젖에 박았더라면, 독고천은 찍 소리도 못한 채 죽을 뻔했던 것이다.
독고천은 새삼스럽게 천선우가 고마워졌다. 천선우 선배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자살했을지도 몰랐다.
자살동의 의미를 깨달은 독고천은 몸을 떨었다.
“이런 곳에 나를 집어넣다니…….”
순간 독고천은 노인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천선우 선배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물론 자살동이 하나의 수련이었다는 점이 그나마 독고천을 자제시켜 주고 있었다.
독고천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특이하게도 냇가가 있었는데 연신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다.
독고천이 냇가를 내려다보았다.
척 보아도 엄청난 냉기를 풀풀 뿌리고 있었다.
독고천이 호기심에 조심스럽게 냇가에 손을 담갔다. 의외로 미지근한 물이었다.
그리고 흥미를 잃은 독고천이 손을 빼려는 순간.
냇가 내에서 조그마한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독고천이 침을 삼키며 냇가를 자세히 내려다보자, 붉은 구슬 같은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독고천 저도 모르게 그것을 주워 든 다음 자신의 눈앞에 댔다. 마치 투명한 보석 같았는데 물렁했다.
왜인지 몰랐지만 그것이 참으로 맛있어 보였다.
마침 허기를 느끼고 있던 독고천이었기에 붉은 구슬을 낼름 먹었다.
꿀꺽―
의외로 아무 맛도 나지 않아 독고천은 내심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그 순간.
화르르―
단전 부분으로부터 타오르는 고통에 독고천이 신음을 내뱉었다.
“커헉!”
엄청난 고통이 불꽃처럼 독고천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미친 듯이 불타오르는 단전은 곧바로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순간 독고천의 뇌리에 냇가가 스쳤다.
냉기를 풍기는 물이었으니, 불꽃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독고천은 배를 부여잡으며 겨우 냇가의 물을 퍼마셨다.
치이이―
미친 듯이 타올랐던 불꽃이 식어 버린 것 같았다. 고통이 사라지자 독고천은 몸을 떨며 탄성을 내뱉었다.
“하아.”
아직도 단전 부근이 얼얼했다. 독고천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단전 부위를 만져 보았다.
괴이하게도 허기가 가신 지 오래였고, 풍만한 기운조차 넘치고 있었다.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에 좋은 약이었나?”
약이라고 인지한 독고천이 납득한 듯 중얼거렸다.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군. 이건 좀 뜨거웠지만.”
풍만한 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독고천의 판단력이 조금 흐려졌다.
평상시의 독고천이었다면 이것이 무엇일지 판단하느라 하루를 보냈을 테지만, 알지 못할 기운이 그를 움직였던 것이다.
독고천의 가벼운 발걸음은 그를 연무장으로 이끌었다. 연무장에 도착하자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꽤 빨리 나왔군?”
“하루도 안 지나서 나왔지 않습니까. 하하.”
독고천이 털털하게 웃으며 답하자 노인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냐? 넌 칠 주야 만에 나왔다.”
칠 주야라는 말에 독고천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한 시진조차 지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칠 주야씩이나 지났다고 들으니 잠시 멍해졌던 탓이다.
“그, 그렇게 오래됐습니까?”
“오래는 아니다. 다른 녀석들에 비하면 빨랐다.”
노인의 말에 독고천의 멍해졌던 정신이 그나마 돌아왔다. 그러자 노인이 연무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한판 붙어 보자꾸나.”
노인이 먼저 연무장에 올라갔고, 독고천이 그 뒤를 쫓았다. 노인이 갑자기 연무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독고천에게 손가락으로 까닥이며 말했다.
“난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한 대라도 나를 맞춘다면 시험 합격이다.”
거만한 노인의 모습에 독고천이 울컥했다.
“검을 써도 됩니까?”
“야, 이놈아! 누구 죽일 일 있냐. 검집만 써.”
노인이 깜짝 놀라며 외치자 독고천이 아쉬워했다.
아쉬워하던 독고천이 재차 입을 열었다.
“하지만 노인장은 환영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검을 쓰면 안 됩니까?”
“야, 인마! 환영이라도 아픈 거는 아파! 검집만 써!”
“알겠습니다.”
독고천이 검을 옆에 내려놓으며, 검집을 들었다.
내려놓은 검을 아쉬운 듯 마지막까지 흘겨보는 독고천의 모습에 순간 노인은 알지 못할 오한을 느꼈다.
‘이, 이놈, 의외로 위험하다.’
“자, 와라.”
애써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노인이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곧바로 독고천이 달려들었다.
“하앗!”
기합성과 함께 독고천이 검집으로 노인을 거칠게 내려찍었다. 그러나 노인이 언제 꺼냈는지 모를 부채로 가볍게 막았다.
까앙―
“너무 느리다.”
노인이 하품하며 말하자 독고천이 내리쳤던 검집을 재차 치켜올린 후 노인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러나 노인이 부채를 옆구리에 낀 채 막았다.
까앙―
“허점을 노려라, 좀.”
옆구리에 박혔던 검집을 들고 독고천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검집을 내던졌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노인은 가볍게 부채로 검집을 튕겨냈다.
“뭐 하냐? 검객이 무기가 없으면 어떡하냐?”
노인이 재차 지루한 듯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런데 순간 노인의 눈동자가 커졌다. 앞에 있었던 독고천이 없어졌던 것이다.
노인이 독고천의 의외성에 눈을 반짝이며 주위를 훑었다. 기습을 대비한 시야 확보였지만 조용했다.
‘호, 이놈이 꽤나 머리를 쓰는군.’
원래 기습이란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큰 효과를 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독고천이 자신을 방심시킨 후 갑자기 튀어나올 거라 생각한 노인이었다.
그리고 한 시진이 흘렀다.
‘이놈 꽤 인내심이 대단하군.’
털털하게 속으로 웃으며 노인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척을 느끼려 노력했다.
그리고 또다시 한 시진이 흘렀다.
‘이 녀석, 정말 대단하다. 기척도 감춘 채 이렇게 오랜 시간을 숨어 있을 수 있다니.’
서서히 노인도 긴장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애송이인 줄만 알았던 놈이 꽤나 고난이도 수법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시 한 시진이 흘렀다.
노인은 서서히 지쳐 갔다. 우선 앉아서 아무 짓도 안 하는 것은 매우 지루했다.
선천적으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노인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또다시 한 시진이 흘렀다.
노인이 열 받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으나, 발걸음을 움직이진 못했다. 노인은 부채로 열 받은 자신의 얼굴에 연신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진이 또다시 흘렀다.
노인이 결국 노성을 토해 내며 움직였다.
“이놈 어디 갔느냐!”
그때였다.
연무장 아래에 엎드려 있던 독고천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하하, 제가 이겼습니다!”
“뭐, 뭐라?!”
노인이 열이 받는지 자신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움직이지 않으셨습니까?”
독고천이 여유롭게 말하자 노인이 신음을 내뱉었다. 독고천은 이걸 노린 것이었다.
기습을 할 줄 알았던 노인의 추측이 뒤통수를 후려 맞은 셈이었다.
“그래, 네놈이 이겼구나. 그런데…….”
노인이 말을 흐리며 독고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갑자기 독고천의 멱살을 쥐어 잡으며 말했다.
“좀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