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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6화)
第五章 호사다마(好事多魔) ― 무림(武林)아, 기다려라(3)


“헉!”
망상을 즐기며 히죽거리던 독고천이 놀라며 눈을 번쩍하고 떴다.
어느새 독고천의 눈앞에 있는 촌장이 들고 있던 막대기로 독고천의 머리를 툭툭 치며 독고천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리 히죽거리냐?”
어느새 나타난 촌장이 나직이 묻자 독고천이 헛기침을 하며 뒤통수를 벅벅 하고 긁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청목에게 들었다. 무림에 나간다고 하더구나.”
촌장의 나직한 말에 돌다리를 건너며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촌장이 만족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림에 나간 후에 명성도 쌓고 싶겠지.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독고천이 솔직하게 답하자 촌장이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그럼 높은 명성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느냐?”
명성을 쌓으려면 강해야 했고, 강해지려면 수련이 정석이다. 하지만 독고천은 모른다는 의미로 고개를 내젓고는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청목 선배야 수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고, 가끔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지만 이 분은 촌장인 것이다.
은근히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는 독고천을 직시하던 촌장이 나직이 말했다.
“수련을 더 하면 된다.”
지쳤다. 독고천은 말 그대로 지쳐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수련이란 정석이었다.
은거괴동의 여러 고수들은 많은 노력과 수련을 통하여 그들의 무공의 성취를 이루었고, 명성을 얻었다.
그들로서는 수련이 정답인 것이다.
독고천도 수련을 거듭해 왔다. 특히 복수심을 노력으로 승화시킨 독고천의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했다.
원래 복수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자는 그대로 복수를 실천하는 자들도 있고, 속으로 삭히며 울분을 토하는 자들도 있다.
독고천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미칠 듯이 화가 나서 단신으로 흑살문을 찾아가 보기도 했고, 쫓기기도 했다.
그러다 은거괴동에 들어왔고, 촌장과의 상담 아닌 상담을 통해서 복수심을 수련에 대한 집중력으로 승화시켰다.
그렇기에 더욱 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었고, 그의 자질을 더욱 돋보이게 했던 것이다.
단지 지금은 뜨거운 불꽃을 억지로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준비는 되었느냐?”
촌장이 나직이 묻자 독고천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러한 모습에 촌장이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뒷짐을 지고는 앞장섰다.
독고천은 그 뒤를 쫓았고 촌장은 서서히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울창한 숲 속에서 고즈넉한 새소리만이 울리니 기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참을 들어가서야 촌장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독고천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지옥동(地獄洞).
군데군데 흠이 나 있고 녹슨 현판을 보자 독고천은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이름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우선 이름부터가 사람의 무언가를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녹슨 현판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지만 고풍스런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또한 땅바닥에는 진흙이 굳어 발자국들이 많이 있었는데 들어간 발자국은 꽤 있어 보였지만 나온 발자국은 없어 보였다.
현판에서 살기(殺氣)라도 나오는지 그것을 올려다보던 독고천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독고천은 미소를 지으며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긴장되느냐?”
촌장이 나직이 묻자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긴장이 안 되면 거짓말일 겁니다.”
“자기암시라고 들어 보았느냐?”
촌장의 질문에 독고천이 고개를 내젓자 촌장이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내의 한계가 오십이라 해 보자. 그런데 그날따라 날씨도 좋고, 아내와 자식도 아양 떨고 기분도 좋다. 그럼 그 사내의 한계는 칠십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기암시와 비슷한 것인데, 자신을 믿어야만 한계를 넘을 수 있단다. 지금 흘리는 땀이 훗날 흘릴지도 모를 피를 줄일 수 있단다.”
촌장의 엄숙한 설명에 독고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독고천이 준비가 된 듯 보이자 촌장이 옆으로 더욱 비켜서며 손으로 지옥동의 입구를 가리켰다.
“들어가라.”
“그냥 들어가면 됩니까?”
동굴의 입구를 가리키며 독고천이 되묻자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픈 표정을 짓고는 중얼거렸다.
“부디 살아 돌아오너라.”
“예……?!”
무심코 들어가려던 독고천이 움찔거리며 외치듯 되묻자 촌장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농(弄)이다. 가을[秋]에 보자꾸나. 그곳에 있다 보면 나올 시간은 절로 알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촌장은 모습을 감추었다.
결국 독고천은 홀로 남은 채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현판에 써 있는 지옥동이란 선명한 글자에 독고천이 침을 한번 삼켰다.
꿀꺽―
잠시 현판을 뚫어져라 올려 보던 독고천이 낮게, 그러나 자신 있게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떼었다.
“무림(武林)아, 기다려라.”
그 말을 끝으로 동굴 안으로 독고천은 모습을 감추었다.
흙에 찍힌 선명한 발자국과 고즈넉하게 울리는 새소리만이 숲 속을 메울 뿐이었다.



第六章 지옥노인(地獄老人) ―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냐고요!(1)


지옥동 안에 들어간 독고천은 신음을 내뱉었다.
뜨거운 공기가 연신 독고천의 목구멍을 괴롭혔다.
독고천은 애써 기를 몰아쉬며 뜨거운 공기를 몰아냈다. 어느 정도 뜨거운 공기에 적응되자 독고천은 걷기 시작했다. 무작정 걸었다.
지옥동의 끝을 보기 위해서 독고천은 옅은 빛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걸어갔다.
순간 독고천의 착각이었을까.
독고천의 시야에 붉은 빛이 스쳐 지나갔다.
순간 독고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단순한 강자라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테지만, 순간 스쳐 지나간 것은 강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슬쩍 독고천이 자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고는 곁눈질했다. 그리고 그 붉은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독고천은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귀, 귀신!”
그러자 붉은 무언가가 나직이 대꾸했다.
“누가 귀신이야?”
순간 놀랐던 독고천이 붉은 무언가에 시선을 집중하며 안력을 올렸다. 귀신인 줄 알았던 붉은 무언가의 정체는 적의를 입고 있는 노인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독고천이 물었다.
“누구십니까?”
“내가 누구냐는 중요치 않다.”
노인의 단호한 말에 독고천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천의 빠른 포기에 노인이 헛기침을 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내 정체가 궁금할 텐데…….”
노인이 중얼거리며 독고천의 주위를 돌았다. 그러자 독고천이 뒤통수를 긁으며 난처한 듯 말했다.
“저, 누구십니까?”
“험험, 그렇게 내 정체를 알고 싶더냐?”
빙글빙글 독고천의 주위를 돌던 노인이 눈을 빛내며 독고천을 직시했다. 부담스러운 눈길에 독고천이 괜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굳이 안 알려 주셔도 됩니다.”
“이놈아! 내 정체가 궁금하지 않더냐?”
노인이 역정을 내며 외치자,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못하다는 듯 말했다.
“궁금합니다.”
“흠흠, 진작 그럴 것이지. 노부는 말 그대로 환영(幻影)이다.”
환영이라는 말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의미입니까?”
“노부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란 소리다.”
노인의 말에 독고천이 눈을 부라렸다.
“귀신!”
독고천의 외침에 노인이 독고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귀신 아니라니까.”
뒤통수를 쓰다듬던 독고천이 황당한 듯 말했다.
“환영인데 어떻게 제 뒤통수를 치셨습니까?”
“난 환영이되 환영이 아니다.”
노인의 아리송한 말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런데 이곳은 뭐 하는 곳입니까?”
“지옥동은 수련을 하는 곳이지.”
“주로 어떤 수련을 합니까?”
“보통 정신 위주의 수련을 하지. 신체만 건강하면 뭐 하나. 정신이 약하면 말짱 도루묵인 셈이지.”
노인이 연신 산만하게 주위를 돌아다녔다. 잠시 고심하던 독고천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입구(入口)라고 현판이 박혀 있었다.
“그럼 저곳에 들어가면 시작할 수 있는 겁니까?”
“벌써 가게?”
“당연합니다. 전 얼른 강해져야 합니다.”
순간 독고천과 노인의 눈이 마주쳤다. 독고천의 안광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노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검지와 엄지로 독고천의 눈을 찔렀다.
“크헉!”
갑작스런 기습에 독고천이 비명을 질렀다.
기척조차 없었다. 독고천은 수련을 통하여 꽤나 강해졌다고 자부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눈을 부여잡고 있는 독고천을 보던 노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겨우 그 정도로 강함을 논하다니, 어리석구나.”
“그래서 강해지려는 것입니다!”
재차 독고천이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노인이 재차 독고천의 눈을 찔렀다.
“크헉!”
피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피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독고천에게 노인이 킬킬거리며 입을 열었다.
“좋다. 다짐은 좋군. 하지만 아직 그 정도로 강함을 논하기엔 멀었다. 따라와라.”
노인이 뒷짐을 지고는 입구라고 쓰여 있는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눈을 부여잡던 독고천이 소리 지르며 그 뒤를 쫓았다.
독고천과 노인이 사라진 후.
주위에서 알지 못할 기운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 기운이 합쳐져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개였다. 아니, 머리는 개였으나 다리는 돼지였다.
괴이한 개가 독고천과 노인이 들어간 곳을 유심히 노려보다가 몇 번 짖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멍꿀멍꿀.

***

“저, 저건 뭡니까?”
독고천이 냇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자 노인이 한번 힐끗 고개를 돌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척 보면 모르나. 뱀이잖나.”
“아, 아니 뱀인 것은 아는데…….”
독고천이 말을 흐리며 냇가를 흘겼다. 냇가에서는 뱀이 머리를 들고 쉭쉭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뱀의 머리통은 독고천 몸통만 했다.
독고천은 노인의 뒤를 쫓으며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엄청난 크기의 뱀부터 시작해서 특이한 동물들이 엄청 많았다.
특히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백호(白虎)였다. 백호의 용맹한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꼬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는 소의 머리가 있었다.
음매.
어흥.
백호는 고깃덩어리를 뜯고 있었고, 소는 우물거리며 짚단을 먹고 있었다. 엄청난 부조화였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고개를 내흔들며 독고천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노인은 익숙한 듯 백호와 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노인은 백호와 소를 보면서 만족한 듯 말했다.
“그래, 많이 먹어라.”
“저 동물의 이름이 뭡니까?”
독고천이 백호를 지나치며 노인에게 묻자, 노인이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호우(虎牛)다.”
호랑이와 소. 간단하지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도대체 저런 동물들이 어떻게 이곳에 사는 겁니까? 아니 저 동물들이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궁금한 게 너무 많은 나머지 독고천이 말까지 더듬어가며 외치듯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무심히 답했다.
“모르겠다.”
“아…….”
노인의 대답은 순식간에 독고천을 공황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독고천은 연신 노인의 뒤를 쫓았다. 노인답지 않게 걸음이 매우 빨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같았다. 희한하게 생겼던 동물들이 서서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초옥이 독고천과 노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노인이 초옥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오늘부터 이곳에서 산다. 그리고 내가 매일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너와 비무를 할 것이며, 이곳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럼.”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독고천이 초옥을 들어가기 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초옥을 중심으로 큰 폭포와 연무장이 있었다.
연무장은 바닥에서 빛이 날 정도로 깔끔했으며, 폭포는 빠지면 당장이라도 익사할 것만 같이 깊었다.
독고천이 초옥 앞에 있던 나무 의자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갑자기 인기척이 들려왔다.
부스럭―
순간 의자에 앉아 있던 독고천이 벌떡 일어났다. 알고 보니 동물들이었다.
머리는 닭이지만 다리가 개였다. 계견(鷄犬)이었다.
꼬꼬.
다행히 소리는 닭소리 그대로였다.
그나마 닭은 독고천에게 친숙했다. 상인 생활을 해 오면서 시작했던 것이 닭 장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닭은 익숙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독고천이 닭을 후려쳤다.
“오지 마!”
꼬꼬댁.
계견이 울부짖으며 옆으로 도망갔다.
독고천은 주위를 훑었다.
동물들이 자신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대한 동물들도 있었지만, 독고천에게 해는 주지 않을 듯싶었다.
하지만 쿵쿵거리며 발자국을 내는 거대한 동물들은 솔직히 신경이 쓰였다.
특히 얼굴은 순한 토끼였지만, 몸은 곰인 토웅(兎熊)이.
평상시라면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테지만 묵직한 앞발로 당근을 들고 있는 토웅의 모습은 웅장하다 못해 장엄했다.
고개를 내젓던 독고천이 폭포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꽤나 깊어 보였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독고천은 물가에 손을 담그며 세수를 하려 했다.
그런데.
푸아아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물가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치솟기 시작했다.
독고천은 경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무언가가 물가 위로 솟구쳤다.
그것은 용(龍)이었다.
물가로 나왔던 용이 매서운 눈길로 독고천을 노려보더니 물가로 다시 들어갔다.
푸아아아―
물가의 물들이 거칠게 튀기며 독고천의 소매를 비롯한 옷들을 적셨다. 뒤로 나자빠져 있던 독고천이 숨을 헐떡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도, 도대체 여긴 뭐 하는 곳이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