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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5화)
第五章 호사다마(好事多魔) ― 무림(武林)아, 기다려라(2)
천하신투라는 무림을 뒤집어 놓았던 거물 아래에서 경신술을 비롯한 무공들을 배워 왔으니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고천, 자신도 만만치 않았다.
뛰어난 무위를 자랑하는 청목 선배와 당하천 선배, 이포후 선배, 그리고 천선우 선배가 자신의 뒤를 돌봐 주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천선우 선배의 과거는 범상치 않을 것 같았다.
아직도 수련을 위하여 천선우 선배가 나타나면 당하천 선배와 이포후 선배는 귀신같이 사라지곤 했다.
“그럼 제가 나가서 명성만 쌓으면 됩니까?”
“그래, 그놈의 제자보다 높은 아니, 무림을 쩌렁쩌렁 울리는 명성을 얻어야 한다.”
청목 노인의 눈이 염화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중원(中原)이 좀 넓습니까?”
“그래, 그러니 무림을 쩌렁쩌렁 울리는 명성을 얻으란 소리다!”
염화에 가득 찬 눈동자로 독고천을 직시하며 청목 노인이 강요하듯 말했다.
그러한 청목 노인의 모습에 살짝 기가 죽은 독고천이 조심히 물었다.
“하지만 아직 제 무공으론 무리입니다.”
“알고 있다.”
너무 빠른 긍정에 독고천의 힘이 다 빠질 정도였다.
그런 반응을 눈치챘는지 청목 노인이 갑자기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다.
워낙 낮고 음흉한 웃음이라 독고천에 팔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흐흐, 나한테 너의 무공을 늘릴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독고천이 궁금하다는 듯이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으며 묻자 청목 노인의 눈썹이 까닥거렸다.
염화로 불타던 청목 노인의 눈동자는 능구렁이가 지나다니고 있었고, 입가는 조소에 물들어 있었다.
“수련을 더 하면 된다.”
순간 독고천의 표정은 허무의 극치에 다다라 있었다.
무공을 늘리기 위해서 수련을 더욱 하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상식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러한 말을 진지하게 내뱉는 청목 노인을 보자 독고천이 혀를 내둘렀다.
‘역시 보통 분이 아니다.’
혼자서 중얼거리던 독고천이 허무의 표정을 지으며 청목 노인에게 물었다.
“그게 다입니까?”
워낙 진지한 독고천의 눈빛에 청목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흠흠,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독고천이 애처로운 듯 청목 노인의 시선을 직시하며 급히 되물었다.
그러자 청목 노인이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청목 노인이 알고 있는 방법은 꽤나 안전한 도박에 가까웠다.
성공하면 무공이 급상승하지만 실패하면 제자리도 못할 뿐더러 시간 낭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동쪽으로 가다 보면 한가객잔(瀚家客盞)이 나오지 않느냐.”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청목 노인이 말했다.
“그곳에서 더욱 동쪽으로 가다 보면 작은 냇가와 돌다리가 나온다. 그 돌다리를 건너면 괴이한 오두막집이 너를 반길 것이다. 거, 한번 가 봤지 않느냐. 촌장님 댁 말이다. 가을[秋]에 무림에 보낼 예정이니 그곳에서 버티다 오면 될 것이다. 아무리 해도 못 버틸 것 같으면 그냥 빠져나와도 된다.”
청목 노인의 마지막 말에 독고천에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보통 청목 노인은 강도 높은 수련을 당연시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런데 정녕 못 버티겠으면 나와도 된다니.
말을 떠들며 독고천의 눈치를 보고 있던 청목 노인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굳이 안 가도 된다.”
청목 노인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고 독고천에게 겁을 주기 충분했다.
한참을 독고천의 표정을 훑어보던 청목 노인이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청목 노인은 억지로 터질 법한 웃음을 참고 있었다.
‘킬킬, 역시 이놈은 놀릴 만하다니까.’
몇 번 헛기침을 하던 청목 노인이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청목 노인의 입가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 고심하는 독고천을 지켜보다가 청목 노인이 나직이 말했다.
“그곳에서 수련하면서 무림에 같이 나갈 사람을 생각해 놓으면 좋겠지. 한두 명 정도는 같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남파의 막내 제자라는 자도 저랑 같이 갑니까?”
독고천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청목 노인이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북서쪽으로 보낼 것이고 너는 북동쪽으로 간다.”
“그럼 같이 나갈 사람은 아무나 데려가도 상관없습니까?”
“그건 상관없는데 아마 정해질 수도 있다. 그 한원기 놈도 아직 무림에 나가 보질 못했으니 같이 나가게 될 것이다.”
청목 노인의 설명에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생각났다.
“그럼 장소연 소저도 가능합니까?”
“그 소저는 안 된다. 은거괴동에서 나가기 위해선 적어도 이 년 이상은 있어야 하는 규율이 있지.”
“그런 게 있습니까?”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러자 청목 노인이 깜빡했었다는 듯이 설명했다.
“아, 원래 막내 놈은 이곳에 대해 알 자격이 없다. 그런데 이제 너도 막내에서 벗어났으니 알 자격이 생긴 것이지. 은거괴동의 규율은 얼마 없다. 우선 새로 들어온 신입은 최소한 이 년은 이곳에서 있어야 나갈 수 있다. 흠흠, 어쨌든 간에 네놈이 나의 내기를 이기게 해 줘야 한단 말이지.”
청목 노인이 힘차게 손을 휘저으며 말하자 독고천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내기에 제한 기한은 있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이 년이다.”
이 년이란 말에 독고천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길어 보이지만 한편으론 매우 짧은 기간이다.
자신이 이곳에 온 지 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새처럼 날아들어 온 지가 엊그제 같을 정도로 시간은 매우 빨리 지나갔다.
가을만 지나면 이제 무림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독고천은 서방을 처음 만나는 색시처럼 설레었다. 또한 부푼 꿈이 독고천의 심장을 뛰게 했다.
검 한 자루로 무림을 평정하는 것은 모든 사나이의 꿈이자 목표였다.
그리고 상인으로 살아오면서 무림인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던 독고천이라면 더욱 무림은 낭만으로 다가왔다.
협과 의를 펼치거나 혹은 절대적인 힘으로 무림인들을 굴복시키는 장면이 독고천의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검을 들고 무림을 호령하는 모습이 상상되자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러한 모습에 청목 노인이 순간 위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에게 단전이란 도움도 되지만 한편으론 삶의 위협 요소였다.
단전 속의 내기가 팽창한다면 단전뿐만 아니라 주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그중 가장 위험한 증상이 심마(心魔)였다.
심마란 무림인의 단전 속의 내기를 팽창시키며 혈관을 팽창시켜 결국은 불구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증상이었다.
청목 노인은 그런 무서운 증상을 알고 있었기에, 혼자서 실실 웃는 독고천을 보자 긴장된 눈길로 그를 노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심마(心魔)인가?’
그러나 잠시 후 독고천이 원래 상태로 복귀하자 청목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외로 겁을 주는 놈이었다.
“얼른 가 봐라.”
청목 노인이 정신을 차린 독고천에게 손짓을 하며 서두르듯이 말했다.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꼭 내기에서 이기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순간 청목 노인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핑 하고 돌았다. 보통 내기를 걸어놓으면 원망하게 마련인데 오히려 열심히 하겠다고 하니 청목 노인이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독고천의 이어지는 한 마디로 간단하게 청목 노인의 감동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저한테 넘어오는 것은 있습니까?”
“최대한 노력하마.”
청목 노인의 낮게 깔리는 음성에 걱정스러웠던 독고천의 얼굴이 펴졌다.
“그럼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서히 멀어지는 독고천의 뒷모습을 흘겨보던 청목 노인이 씨익 하고 만족한 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녀석…….”
독고천이 모습을 감추자 청목 노인도 몸을 일으키고는 수풀로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사라진 후 그 자리에서는 폭포가 떨어지며 청량한 소음을 만들 뿐이었다.
촤아아―
***
촤아아―
맑은 냇물이 청량한 소리와 함께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한 냇물 위에 있는 돌다리를 건너고 있는 독고천의 얼굴은 흥분으로 볼이 붉어져 있었다.
이제 무림으로 나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고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고천은 돌다리를 건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촤아아―
맑은 냇물 소리가 독고천의 귓가를 적시자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독고천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망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신음성으로 가득 찬 대지.
엄청난 숫자를 자랑하던 무인들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몸을 웅크린 채 신음성을 터트리고 있었고 고통으로 인한 외침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한 소음 속에서도 발자국 소리가 선명히 울리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흙먼지가 허공에 휘날리며 발자국을 뒤쫓았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던 청의 사내가 멈추었다.
청의 사내의 눈매는 매와도 같이 날카로웠고, 정광이 흘러 넘쳤으며 콧날은 태산과도 같이 오뚝했다.
그는 손아귀에는 매끄러운 검이 들려 있었다.
검신은 마치 청운(淸運)과도 같이 맑았으며 보석같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러한 아름다운 검신도 청의 사내의 외모에는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청의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자 그를 감싸고 있던 여인들이 눈길을 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꺄아아.”
청의 사내는 작은 미소와 함께 주위를 훑다가 쓰러져 있는 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널브러져 있던 자들이 순간 움찔거리며 청의 사내에게서 멀어지려 애썼다.
“미, 미안하오. 이제 충분하지 않소?”
뒤로 물러서던 흑의 청년이 억울한 듯 외쳤다.
흑의 청년의 의복은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으며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깃들고 있었다.
그러나 청의 사내는 그저 고개를 내저으며 들고 있던 검의 끝으로 땅바닥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짐하듯 입을 열었다.
“나는 맹세했소. 감히 나의 행복했던 생활을 짓밟았던 자들을 나의 검을 걸고 처단하리라 말이오.”
청의 사내의 나직한 말에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사내들이 움찔거리며 기겁했다.
심지어 어떤 자는 혼절해 버리는 자도 있었다.
몇몇의 사내들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야, 이놈아! 이제 충분하지 않느냐? 봐 달란 말이다!”
청의 사내가 고개를 돌리며 그 외침의 주인을 직시했다. 그 사내는 압도적인 기운에 침을 삼키며 몸을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그를 지켜보던 청의 사내가 고개를 돌리더니 주위를 훑으며 외치듯 말했다.
“당신들이 먼저 나의 행복을 짓밟았소! 그 누가 온다 해도 나의 서늘한 복수는 막지 못할 것이오!”
나직하게 허공에 울리는 말에 남아 있던 자들이 병장기를 움켜쥐며 울상을 지었다.
저자는 괴물이었다.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생채기 하나 내질 못했으며 저자의 공격은 한 번도 피하질 못했다.
그저 저자의 검에 베어지는 것이 그들의 운명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땅바닥을 가리키던 청의 사내의 검극이 하늘로 치솟았다.
우르릉―
굉음과 함께 청의 사내의 검극으로 벼락이 내리쳤다.
황금빛이 허공을 감싸자 사내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크윽, 뭐지!”
청의 사내의 검에서는 알지 못할 소음과 함께 작은 황금구가 연신 터지고 있었다.
파지직―
그 검을 조용히 올려다보던 청의 사내가 시선을 내렸다. 순간 사내들은 가슴이 덜컥 가라앉았다.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그 어떤 고수가 온 다해도, 아니 심지어 십만 대군이 온 다해도 청의 사내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자들이 절망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릴 때 청의 사내가 검을 비틀며 나직이 외쳤다.
“난 독고천이다!”
외침과 동시에 청의 사내의 검에서 나온 황금빛 기운이 그들을 덮쳤다.
화아악―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치듯 굉음과 함께 황금구가 터졌다.
콰앙―
굉음이 지나간 후 대지에는 혼절해 버린 사내들만이 남아 있었다. 여인들은 주위에서 환호성을 내질렀고 한 치라도 청의 사내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음하하하!”
청의 사내는 광소를 터트리며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주위를 훑어보았다. 이제 복수를 갚았으니 행복한 생활만이 남은 것이다.
그런데 벼락의 폭풍이 지나간 황량한 대지에 꼬마가 홀로 서 있었다. 입가에는 음식물들이 묻어 있었고 옷에는 침이 묻어 있었다.
그러한 가난해 보이는 꼬마가 갑자기 청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엄청난 무위를 자랑하던 청의 사내에게 걸어가는 꼬마를 보며 몇몇 정신을 차리고 있던 사내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꼬마야, 피해!”
그러나 꼬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청의 사내 앞에 떡하니 섰다.
“꼬마야, 무슨 일이더냐?”
청의 사내는 점잖은 미소를 지으며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했다.
그런데 꼬마가 들고 있던 막대기로 청의 사내의 머리를 툭툭하고 치며 나직이 물었다.
“무슨 생각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