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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4화)
第四章 무림전설(武林傳說) ― 네놈의 제자가 천재면 내 제자는 천외천재(天外天才)다(3)
그러나 천선우가 거칠게 고개를 내저으며 독고천의 망상을 깨부쉈다.
“명검(名劍)을 처음 쥐는 놈들에게 자주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경쾌하고도 신랄한 천선우의 답변에 독고천은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천선우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을 내뱉었다.
“이제 수련은 그것으로 한다. 항상 그것을 지참해 오도록.”
그 말을 끝으로 천선우가 미풍(微風)처럼 사라졌다.
만약 지나가던 무림인이 보았다면 기겁할 모습이었지만, 독고천은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에 떨어진 검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흙으로 더럽혀진 검을 독고천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여전히 무거운 무게에 혀를 내둘렀지만 힘겹게 검을 들었다.
그러자 검신에 쌓여 있던 흙들이 부드럽게 땅으로 떨어졌다.
사르르―
흙들이 떨어지자 검신에 검은색으로 선명히 새겨져 있는 글자가 독고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철검(鐵劍).
명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여전히 허리춤에 묵직하여 중심 잡기가 힘들었지만 독고천이 미소를 지으며 장소연과 한원기, 그리고 당하천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당하천은 어깨를 빳빳하게 치켜세우며 선배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고, 장소연은 여전히 한원기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한원기는 장소연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독고천에게 나직이 말했다.
“시작하지.”
그랬다. 한원기는 아직 잊어버리지 않았다. 자신과 독고천의 수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힘겹게 몸을 움직이고 있던 독고천의 인상은 순식간에 벌레 씹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밝은 햇살과 따스한 바람만이 독고천을 앞날을 걱정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시작하시죠.”
그리고 따스한 봄이 지나갔다.
***
공터 위에 사내가 서 있었다.
듬직하면서도 날렵해 보이는 몸집을 지니고 있었다.
짙은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강렬한 눈빛이 그의 내공의 깊이를 짐작하게 해 주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단도가 들려 있었는데 범상치 않아 보였다. 묵색의 단도였는데 무광(無光)이었으며 칙칙했다.
그러나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을 그대로 단도에 올려놓으면 두 조각으로 베어질 것 같은 날카로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단도를 움켜쥔 사내가 갑자기 몸을 날렸다.
표홀한 움직임은 한 마리의 제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날렵했다.
한번 허공으로 뛰어올랐던 사내가 공중제비를 돌더니 가볍게 착지하고는 다시 몸을 날렸다.
사내가 허공에서 몸을 여러 번 틀며 기묘한 각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사내가 땅에 착지했는데 흙먼지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가 만족한 듯 몇 번 발을 동동 구르더니 앞으로 뛰어가며 들고 있던 단도를 힘껏 던졌다.
쉬이익―
매서운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단도가 거목에 박혔다.
팍―
거목의 중심에 박힌 단도의 도병이 살짝 흔들렸다.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던 사내가 거목으로 다가가더니 단도를 뽑아내었다.
그러자 거목의 중심이 갈라지더니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러나 사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단도를 갈무리했다.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슬쩍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사내가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오늘은 몸이 무겁군.”
그러한 사내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두 명의 노인이 있었다.
“푸하하, 우리 막내 제자의 성취가 어떤가?”
이마를 중심으로 왼쪽 눈매에 검상이 선명한 노인이 만족한 듯 박장대소하며 먼저 물었다.
노인의 반대편에는 백의를 말끔히 차려입고 있는 노인이 있었는데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조소였다.
“오 년 동안 천하신투(天下神偸)에게 배웠으니 그 정도도 못하면 섭섭하지.”
천하신투(天下神偸) 이옹(李邕), 한때 천하를 뒤집어 놓았던 전설적인 도둑의 명호였다. 구파일방 중 수위를 다투는 화산파(華山派)의 신물을 훔친 적이 있어서 한때 무림공적(武林共敵)으로 쫓기던 인물이었다.
백의 노인이 조소를 가득 담은 채 비웃자, 이옹이 거만한 눈빛으로 백의 노인을 흘기며 물었다.
“그럼 청목(淸木), 네놈의 막내 제자는 어떠냐? 그 독고 머시기라는 놈 말이다.”
은거괴동(隱居怪洞)을 크게 나누자면 두 개의 파가 있었다.
우선 촌장을 중심으로 한 남파(南派)와 부촌장을 중심으로 한 북파(北派)가 있었다.
서로 같은 처지였지만 역시 무림인의 호승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의 성질이었다.
대놓고 다투진 않았지만 서로 티격태격하며 꾸준히 살아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림처럼 한쪽이 정(正)이고 한쪽이 사(邪)라며 다투는 일은 전무했다.
그저 작은 자존심 싸움에 불과했다.
또한 두 개의 파로 갈라져 있었지만 서로 간의 출입은 자유였으며 서로를 대놓고 헐뜯는 일은 없었다.
예를 들자면 한 마을에 똑같은 객잔이 들어서 서로 손님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투는 것과 같은 종류였다.
촌장과 부촌장은 가만히 있는 편이었지만, 그들 아래에 있는 그것도 직속에 속해 있는 자들이 항상 쓸데없는 일로 다투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수그러든 상태였지만 남파의 청목 노인과 북파의 이옹 노인은 여전했다.
“독고천을 말하는 거냐? 그놈이야 여전하다. 천재(天才)다. 그것도 네놈의 제자는 발끝조차 쫓아오질 못할 천재.”
“아이고, 네놈의 제자가 천재면 내 제자는 천외천재(天外天才)다.”
이옹 노인이 거침없이 말하자 청목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바짝 하고 들이대었다.
그러자 이옹 노인도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청목 노인을 직시했다.
그러자 청목 노인이 이를 갈더니 뒤로 물러서며 앉았다.
“흥, 그래 봤자 도둑놈밖에 더 되겠나.”
청목 노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내뱉자 이옹 노인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노인들의 유치한 말싸움이 계속될 무렵, 옆에서 그들의 싸움을 구경하던 중년인이 지나가던 투로 말했다.
“그럼 서로 겨루어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중년인의 흐르는 말에 두 노인이 눈을 번쩍이며 중년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두 노인이 동시에 중년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겨루면 좋을까?”
두 노인의 열화 같은 반응에 중년인이 잠시 뜸을 들이며 생각했다. 겨루는 것은 많은 종류가 있다.
비무와 내공 등 많은 것이 무림인들의 겨룸에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중년인은 그런 시시한 것은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그들의 대결을 구경하며 심심함을 타파하고 싶었다. 잠시 고심하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명성(名聲)으로 겨루는 것은 어떻습니까?”
“명성……?!”
두 노인이 동시에 외치고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한 모습에 중년인이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한숨을 내쉬던 중년인이 두 노인의 열화가 가득 찬 눈동자를 보고는 말을 꺼냈다.
“두 제자를 무림으로 나가게 하여 명성을 얻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 연도에는 마침 그곳과 경쟁하는 그 일도 있지 않습니까?”
중년인이 말을 이해한 듯 두 노인은 침을 삼켰다. 잠시 뜸을 들이던 중년인이 눈썹을 까닥이며 흥미롭게 말했다.
“명성으로 두 제자를 비교하는 것이죠.”
그러자 이옹 노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복잡한 방법이지. 명성의 우위는 각 지역마다 다르다네. 자신의 본 활동지에서 특별히 유명할 뿐이고 다른 지역에서는 그저 이름만 날릴 정도이지. 자네도 알지 않나?”
그랬다. 중원(中原)은 넓다. 그렇기에 사천에서 이름 좀 날리고 있는 고수라 할지라도 절강에선 무명(無名)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옹 노인의 발언에 청목 노인이 비꼬았다.
“자네야 그랬겠지. 하지만 모든 무림인이 나의 이름을 알고 있을걸.”
청목 노인의 말엔 오류가 있었다.
이옹 노인은 중원을 쩌렁쩌렁 울리던 신투였다.
그 누구도 붙잡지 못했다고 알려진 전설의 신투인 것이다.
그만큼 명성을 지닌 자들은 보통 자존심이 강했다. 이옹 노인도 마찬가지였는지 울컥하며 외쳤다.
“그깟 칠보권왕(七步拳王)? 사천 외에서는 들어 보지도 못했다.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한다!”
이옹 노인이 찬성하자 청목 노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표했다.
그러자 중년인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더니 붓으로 무언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작성한 서신의 내용은 내기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우선 증인은 중년인이 하기로 했으며 평가는 무림의 호사가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물론 그들의 인맥으로 알고 있는 영향력 있는 호사가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청목 노인과 이옹 노인은 시원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서신에다 작성하고는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때 공터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흑의 사내와 폭포 아래서 천선우와 생사를 다투는 수련을 하던 독고천은 서로 귓구멍을 후비며 동시에 중얼거렸다.
“누가 내 욕하나?”
第五章 호사다마(好事多魔) ― 무림(武林)아, 기다려라(1)
폭포 아래 두 명의 사내가 대치하고 있었다.
한 명의 사내는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다른 사내는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사내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혀로 입술을 핥으며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움켜쥐었다.
꽈악―
검을 움켜쥔 독고천이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며 독고천이 검으로 천선우의 복부를 찔렀다.
그 순간 천선우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고천은 침착하게 주위를 훑어보며 집중했다.
그리고 땅을 가볍게 스치고 있는 검을 들어 올리며 옆으로 휘둘렀다.
천선우는 약간 놀라는 표정과 함께 보법을 밟으며 뒤로 몸을 피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천선우의 보법에 독고천이 혀를 내둘렀다.
그때였다.
잠시 긴장을 놓았을 뿐인데 천선우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며 발로 독고천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러나 독고천은 여유롭게 검신을 비스듬히 세우며 천선우의 발을 막더니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허공조차 때리는 거친 소음에 천선우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화려한 보법에 혀를 내두를 만도 하지만 독고천은 곧바로 천선우의 뒤를 쫓으며 검을 휘둘렀다.
후웅―
묵직한 저음이 울리며 허공을 갈랐다.
천선우는 공중에서 또다시 공중을 밟으며 검을 피한 후 뒤로 착지했다.
착지한 천선우의 소매는 검에 의해 약간 뜯겨져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소매를 내려다보는 천선우의 표정은 만족스러웠다.
“많이 늘었다.”
엄청난 칭찬이었다.
천선우의 말에서 무언가 늘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장강(長江)이 빗물에 흘러넘치는 것에 준할 만큼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천선우가 칭찬을 하자 독고천의 입가는 찢어질 정도로 환해졌다.
잠시 하늘의 태양을 비스듬히 올려다보던 천선우가 팔로 얼굴을 가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벌써 말입니까?”
독고천이 아쉽다는 듯이 말하자 천선우가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독고천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서 청목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천선우는 귀신같은 경신술로 모습을 감추었고, 독고천은 근처 바위에 앉아서 땀을 소매로 닦아 내렸다. 어느새 다가온 청목 노인이 다짜고짜 독고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림(武林)에 나가거라.”
“뭐라고 하셨습니까?”
수련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아서 쉬고 있던 독고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는 청목 노인이 약간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말했다.
“당장 무림에 나가서 명성 좀 쌓으라는 소리다.”
“왜 그래야 합니까?”
독고천이 나직이 묻자 청목 노인이 뒤통수를 긁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사실을 말할 사람은 거의 없다. 누가 자신을 내기의 목적으로 걸었다는데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청목 노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너를 두고 내기를 걸었거든.”
청목 노인의 말에 독고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를 내기에 거셨다고 하셨습니까?”
약간 화내는 말투에 청목 노인이 손을 내저으며 독고천을 안심시켰다.
“아니, 그리 큰 내기는 아니고……. 단지 무림에 나가서 명성을 쌓으면 된다.”
무림에서 명성을 쌓는 것이야 당연히 무림 초출자로서 해야 할 일이다. 독고천도 무림 초출을 망상하면서 혼자서 헤벌쭉하고 웃을 때가 많았다.
초출하여 무림을 어지럽히는 마두(魔頭)의 목을 베어, 진정한 협객(俠客)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이 독고천의 머릿속에는 항상 굴러다니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공포의 마두가 되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험악한 자들을 수하로 부리는 망상까지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거야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누구와 어떤 내기를 하셨습니까?”
“아, 그거야 간단하지. 북쪽에 있는 이옹 놈 알지?”
은거괴동에 있는 북파와 남파 얘기는 많이 들었던 독고천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부촌장 아래 직속에 있는 이옹 노인을 모를 리가 없었다.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청목 노인의 표정이 밝아지며 말했다.
“그 녀석하고 내기를 걸었지. 그놈이 글쎄 자신의 막내 제자가 우리 막내 제자보다 월등하다며 자찬을 하더군. 또 우리 막내 제자가 멍청이에 불과하다는 거야.”
순간 자신의 거짓말에 뜨끔했지만 청목 노인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독고천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물론 자신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지만, 대놓고 비하를 당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또 북파의 막내라면 들은 적이 있었다. 경신술과 신법의 달인이며 비도술의 달인이라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