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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13화)
第四章 무림전설(武林傳說) ― 네놈의 제자가 천재면 내 제자는 천외천재(天外天才)다(2)


순간 이포후는 움찔거리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고 당하천은 슬금슬금 옆으로 피했다.
한원기의 뒤를 즐겁게 쫓던 독고천의 표정이 바위처럼 굳어 버렸다.
그리고 목각 인형처럼 삐거덕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깔끔한 백의를 차려입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이 독고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독고천의 표정은 구겨진 서신처럼 일그러졌다.
“처, 천선우 선배, 오셨네요?”
원래 천선우는 비무 수련에 간섭하지 않았고, 심신(心身) 단련만을 맡았다.
그러나 그나마 간단한 심신 단련만으로도 독고천은 지옥(地獄)과 지상을 번갈아 경험했다.
천선우가 비무 수련에 간섭하지 않은 이유는 주위 선배들의 만류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간단했다.
‘천선우가 나서면 독고천은 죽는다.’
그런데 그러한 악명을 떨치는 천선우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비무 수련 때문에 온 것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독고천의 머릿속에는 천선우의 대한 악명(惡名)과 천선우를 처음 만났을 때 당했던 일들이 교묘하게 겹쳐졌다.
독고천은 터질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쥐어 잡고는 다가오는 천선우에게 누가 들을세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다가오던 천선우가 걸음을 멈추었다.
후광(後光)이 천선우를 비추자 독고천이 눈을 찡그렸다.
불안한 기운이 독고천을 엄습했다.
두근―
터질 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독고천의 귓가에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울렸다. 잠시 독고천을 거만한 표정으로 흘겨보던 천선우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비무 수련을 도와주러 왔다.”
그리고 독고천의 심장은 떨어졌다.
천선우는 어느새 공터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는 천천히 몸을 풀고 있었다.
이미 정신 줄을 놓쳐 버린 독고천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날고 싶다…….”
독고천은 혼자서 미친 듯이 헤헤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러나 천선우는 개의치 않은 듯 나직이 말했다.
“시작하자.”
천선우의 말에 독고천은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신 줄은 못 찾았는지 허우적거렸다.
독고천이 공터 중앙에 자리를 잡자 천선우가 만족한 듯 목을 풀었다.
우드득―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독고천의 정신을 바짝 하고 말렸다. 독고천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귓구멍을 뒤흔들 정도로 독고천은 긴장하고 있었다.
‘천선우가 나서면 넌 죽어……. 죽어……. 죽어…….’
선배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울리며 독고천의 긴장감을 심화시키고 있었다.
바싹바싹 입술조차 마를 정도였다.
기합이 들어간 독고천의 모습에 천선우가 만족한 듯이 손목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천선우가 땅을 박찼다.
갑작스런 행동에 독고천이 움찔거리며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표홀한 움직임으로 천선우가 독고천의 앞에 턱 하니 섰다. 독고천은 그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독고천은 애써 미소를 지었고, 천선우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독고천의 뇌리를 스치는 선배들의 말이 있었다.
‘천선우가 실망하는 순간 넌 죽어…….’
뭐든지 다 죽는단다. 독고천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천선우의 일그러진 표정은 악귀(惡鬼)와도 같이 변했다.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 정도인가?”
나직하지만 힘이 있고, 냉소가 가득 담긴 말투였다.
독고천은 움찔거리며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천선우가 거칠게 손가락으로 까닥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이 정도란 말인가!”
갑작스런 천선우의 외침에 독고천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며 기겁했다.
천선우는 선천적으로 이기적이었다.
우선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일들은 아예 신경조차 쓰지도 않았으며, 자신과 관련된 인물에 대해 지독히도 신경을 썼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공이었다.
만약 천선우에게 제자가 있었더라면, 이미 그는 이승을 하직했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천선우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배운 자가 못난 것을 참지 못했다.
좋은 말로 하면 끈기와 열정이 있는 스승이었고, 나쁜 말로 하면 제자를 말려 죽이는 스승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에게 꼬리가 잡혀 버린 것이다.
잠시 숨을 고루 쉬던 천선우가 차갑게 말했다.
“시작한다.”
말과 동시에 천선우가 몸을 날렸다.
독고천은 기겁하며 몸을 옆으로 피했으나 기묘한 움직임으로 천선우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독고천의 복부에 천선우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독고천은 신음성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천선우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독고천을 쫓아와 복부에 발을 꽂아 넣었다.
독고천의 허리가 굽혀지며 신음성을 내뱉음과 동시에 뒤로 넘어갔다.
공터의 흙들이 휘날리며 그들을 감쌌다.
공터에 널브러져 있던 독고천은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천선우가 독고천의 어깨를 발로 짓밟았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독고천의 신음성이 공터에 울려 퍼졌다.
“크흑!”
독고천이 어깨를 부여잡으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흙들이 달라붙으며 먼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벌떡 몸을 일으키자마자 주위를 급히 살폈다. 그러나 먼지가 독고천의 시선을 가렸다.
독고천의 주먹을 휘두르며 바람을 만들어 내자 먼지가 걷혔다.
먼지가 걷혀지자마자 천선우는 독고천의 코앞에 와 있었다. 독고천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천선우가 재빠르게 손을 뻗으며 독고천의 멱살을 쥐었다. 그리고 휙 하고 가볍게 독고천을 내던져 버렸다.
허공을 가르며 뒤로 날아가던 독고천에게 천선우가 몸을 날린 후, 허공으로 기묘한 곡선을 그리던 오른발로 독고천의 복부를 내려찍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독고천이 땅에 박히듯 꽂혔다.
콰앙―
먼지가 안개처럼 퍼지며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그들을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장소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당하천은 고개를 내저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설 생각은 없는지 의자에 앉은 채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먼지와 함께 차디찬 침묵이 공터에 흘렀다.
“일어서라.”
천선우가 차갑게 말하자 독고천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몇 대 맞지 않았지만 내기(內氣)가 요동치고 있었다.
재차 느껴지는 천선우의 무위에 독고천이 혀를 내두르며 복부를 쓰다듬었다.
순간 찌릿한 고통과 함께 독고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은 괜찮은 듯 몸을 일으키는 독고천을 보자 천선우의 표정이 약간 달라졌다.
옛날의 독고천이었다면 이미 혼절해 버릴 만한 공격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순간 천선우의 표정에 살짝 미소가 뱄다.
그러나 잠시였을 뿐 무뚝뚝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심지어 냉기가 풀풀 흘러나오는 차가운 표정이었다.
잠시 흙으로 더럽혀진 독고천을 훑던 천선우가 나직이 물었다.
“익힐 병장기는 정했는가?”
독고천이 용문의 제자들과 장소연을 만났을 때 검과 도 중 무엇이 더욱 좋은지 물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기초 수련 후에 본격적으로 배울 무공을 가르치기 위하여 천선우가 독고천에게 준 숙제였다.
다른 것들을 배제하고 검과 도만이 남은 상태에서 독고천은 매우 고심했던 것이다.
순간 독고천이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독고천이 뒤를 돌아보더니 장소연에게 외치듯 물었다.
“왜 검이 좋소?”
멍하니 그들을 쳐다보던 장소연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라고요?”
“왜 검이 좋소?”
그때 독고천이 물어 왔던 질문이다.
이번에 장소연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동안 충분히 고민했으며 만족할 만한 답이 자신에게 나온 상태였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장소연은 검의 효율성 등 많은 것을 생각해 봤지만 자신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자신의 성격과 맞는 답을 찾아냈다.
독고천의 질문에 장소연이 자신 있는 표정을 지은 채 밝게 외쳤다.
“멋있잖아요!”
순간 독고천은 해탈한 고승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장소연은 여전히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은 채 독고천을 직시하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독고천이 정신을 차리며 슬쩍 천선우의 눈치를 보았다.
천선우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장소연을 직시하고 있었고 장소연은 시선을 애써 돌리고 있었다.
“천선우 선배, 검을 익히겠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던 독고천이 나직이 말하자 천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선우의 허리춤에는 두 개의 검집이 매여 있었는데, 천선우가 그중 한 개를 풀더니 독고천에게 휙 하고 던졌다.
“이걸로 검을 익혀라.”
독고천은 손을 내밀어 날아온 검집을 움켜쥐었다.
순간 독고천은 신음성을 내뱉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커헉.”
검집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마치 커다란 바위를 들고 있는 것처럼 묵직했다.
몸을 겨우 일으킨 독고천이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검집을 들어 올렸다. 목에 핏줄까지 서는 것을 보아 무겁긴 무거운 모양이다.
“약간 무겁네요. 하하.”
표정은 전혀 아니올시다였지만 독고천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검집을 허리춤에 맸다.
허리춤에 검집을 맨 순간 독고천의 중심이 옆으로 쏠렸다.
끙끙거리며 옆으로 몸을 움직인 독고천이 천선우를 보며 정중히 말했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검을 꺼내 봐라.”
천선우의 나직한 말에 독고천이 움찔거렸지만 떨리는 손을 억지로 검병에 가져갔다.
독고천은 검병을 움켜쥔 손으로 천천히 검을 꺼냈다. 검집과 공명하며 낮게 깔리는 검명(劍鳴)이 독고천을 소름 돋게 했다.
스르릉―
검을 빼니 독고천의 허리춤이 훨씬 가벼워졌다.
모든 것이 검의 무게였던 것이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억지로 검을 들어 올린 독고천이 검신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절로 탄성을 내질렀다.
“아…….”
사람들이란 보석이라는 것을 좋아한다.
비싼 이유도 있지만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을 원하는 사람의 본능일 수도 있다.
특히 금(金)을 비롯한 보석들은 매우 비싼 값을 자랑했고, 뼈대 있는 가문 집 아녀자들만이 치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분명 검신에는 보석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었고 철검(鐵劍)의 색과 동일했다. 오히려 명검(名劍)이라 불리는 것보다 오히려 조촐한 편이었다.
하지만 독고천은 검신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니, 홀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검신은 독고천의 왼손을 불렀다. 무의식적으로 독고천은 검에 홀린 채 왼손으로 검신을 매만졌다. 순간 날카로운 검신을 무심코 만진 독고천의 왼손이 베이고 말았다.
“앗……!”
손에서 피가 흐르고서야 정신을 차린 듯 독고천이 깜짝 놀라며 검을 떨어뜨렸다.
순간 검이 우는 환청이 독고천의 귓가를 울렸다.
기겁하며 뒤로 물러선 독고천의 왼손에서 피가 떨어져서 땅을 적셨다.
그러나 독고천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놀란 표정으로 검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천선우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갈(喝)!”
강대한 내력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독고천을 일깨웠다.
정신을 차린 독고천이 기겁하며 외쳤다.
“마검(魔劍)입니까?”
독고천은 은거괴동에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익혀 왔다.
그중에 마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주인의 심성을 빼앗으며 피를 원하는 마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독고천의 경악에 물든 눈동자를 직시하면서 천선우가 고개를 내젓더니 입을 열었다.
“검(劍)에서 나온 소리는 너의 외침일 뿐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독고천이 정중하게 답하자 천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마검(魔劍)이라 불리는 검이 있다. 그에 대한 소문은 매우 많지. 마검은 피를 원하고, 주인을 혈귀(血鬼)로 변하게 한다라는 헛소문이 돌아다닐 뿐이지. 호사가들이 말하는 마검의 설명은 약간 미묘하게 틀렸다고 볼 수 있지.”
천선우가 독고천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단지 마검이라 불리는 검이 다른 검보다 약간 더 강할 뿐이고, 마검을 지닌 자는 강한 무공의 소유자겠지. 그러니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할 것이고, 그것이 피를 부르는 마검이라는 헛소문을 만든 것이다. 고로, 내 정의는 다음과 같다. 마검이란 개소리에 불과하다.”
천선우의 설명에 독고천의 눈은 경악에 물들었다.
그러나 천선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신검합일이라고 들어봤느냐?”
신검합일(身劍合一), 몸이 가는 곳이 검이 가는 곳이요, 검이 가는 곳이 몸이 가는 곳이다라는 신묘(神妙)한 경지였다.
극의를 본 자만이 넘볼 수 있는 경지라고 널리 퍼져 있었으며, 절대적인 깨달음이자 경지였다.
독고천이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선우가 입을 열었다.
“검은 말을 하지 못한다. 단지 네놈의 몸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손이 말하는 것을 보았나? 발이 말하는 것을 보았나? 마찬가지다. 검도 몸의 일부로서, 주인이 검의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신검합일의 경지다.”
“그럼 제 현상이 신검합일이라는 경지란 소리이십니까?”
순간 독고천의 눈동자가 경악에 물들었다.
만약 신검합일의 경지란 소리는 자신이 천하의 기재라는 사실과 일맥상통했다.
검을 처음 쥐자마자 신검합일의 경지를 뚫을 정도로 자신의 무공이 올랐다는 소리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