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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
음공 1권(1화)
프롤로그(1)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지만 달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숲 속을 가로지르는 많은 인형들이 있다.
절대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한 민첩한 움직임과 자신의 신체에 비해 한없이 가는 나뭇가지를 밟고 이동하는 모습은 가히 놀란 만한 일이었다. 그들은 곧 멈추어 섰다.
검은 야행복을 입은 그들의 수장이 갑작스럽게 멈추어 서며 자신을 따라오는 부하들에게 수신호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멈추어 선 그들의 시선이 전부 한 곳에 모였다.
달빛이 잘 들지 않는 숲 속에서 유일하게 한 줄기의 달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그런 달빛을 받으며 어둡지만 밝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한 인물에게로 말이다.
“달빛은 마음에 들지만 당신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청년의 말을 들은 흑의인 수장은 길게 생각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움직이는 것은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수장의 손이 작게 움직이자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모든 흑의인들이 단 하나의 적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청년은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앞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모여드는 살기로 인해 일반인들이라면 숨이 끊어졌을 것이지만 청년은 달랐다.
청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적들의 공격은 없다는 것같이 부드럽게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었다. 분명 적들은 청년을 노리며 수없이 많은 암기까지 날리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디리링.
그런 살벌한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게 팽팽한 선이 튕겨지는 듯한 작은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연주의 시작이었다.
연주가 울리는 동안 적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연주의 시간은 길지가 않았다.
청년은 몸을 돌렸다. 분명 자신의 뒤에는 단지 자신들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이려는 자들이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방금 전까지의 일이었다.
돌아선 청년의 뒤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조용히 어두운 숲 속을 조금이라도 밝혀 주기 위한 달빛만이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
[오늘 오후 9시경 김병석 위원께서 교통사고로 인하여…….]
어둡고 어두운 방 안에 두 쌍의 눈동자와 TV 한 대가 빛을 내고 있었다.
“역시 확실한데? 사일런스.”
작은 사장용 책상에 짧은 두 다리를 올려놓고 있는 뚱뚱한 인물의 입에서 듣기로는 상당히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은 그의 앞에 있던 얼굴을 검은 복면으로 가리고 있는 한 인물이었다.
“이걸로 의뢰는 끝이다.”
TV 방송상으로는 교통사고라 말을 하고 있으나 시민들을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두 인물은 알고 있었다.
처음 사용해 보는 스나이퍼 총이었지만 사일런스라 불린 인물이 확실하게 김병석을 처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평소의 너답지 않은 방법이지 않았나? 천하의 사일런스 님께서 총 같은 것을 사용하다니 말이야. 흐흐흐.”
그의 말대로 평소 사일런스가 행하던 방법과는 상당히 다른 방법이었다.
사일런스가 상대방을 처리하는 방법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역시 다른 부하들에게 들어 봤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현장에 가서 확인까지 해 봤지만 도저히 사일런스가 상대방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지켜본 사일런스의 방식은 상대방과 단순히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짧은 대화가 끝나면 상대방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 어떤 작은 상처도 발견되지 않고, 죽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방법은 더욱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일을 처리해 오던 사일런스였기에 이번 일은 상당히 소란스러운 방식이라 느끼기에 충분했다.
물론 교통사고로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였으나 지금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갑작스런 변화가 조금은 걱정되기도 하는 뚱보였다.
뚱보의 감이 무언가가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뚱보는 그냥 그러려니 하였다. 평소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런 느낌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일런스의 앞에만 있으면 언제나 느끼는 감각과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너에게 말해 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돼지, 앞으로 의뢰를 받지 않겠다.”
“흐음?”
시끄럽게 떠들던 TV를 끄려 하던 돼지는 몸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퉁퉁한 손가락을 엮어 깍지를 끼며 그 위에 둥글넙적한 얼굴을 올려놓았다. 그러며 자신의 앞에 있는 사일런스의 미동도 없는 두 눈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이런 일을 한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맑은 눈이었다.
“아쉽네. 너 같은 인재는 찾기가 힘든, 아니 솔직히 찾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뛰어난 암살자인데…… 이거 아까워서 어찌하나?”
사일런스의 눈에서 절대적으로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본 것일까?
돼지는 생각보다 쉽게 사일런스를 포기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포기가 아니었다.
“아쉽지만 잘 가라고? 후후.”
알아들었다는 듯한 돼지의 말에 사일런스는 뒤돌아서 작고 밀폐된 방을 나가려 하였다. 하지만 그 뒤로 들려온 말에 사일런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응? 뭐 해!”
문손잡이에 손을 올린 사일런스의 행동을 지켜보던 돼지는 갑작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쯤 되면 항상 나타나는 이들이 있어야 했는데 아무도 돼지의 말에 반응하지 않은 것이었다.
돼지는 사일런스를 포기함과 동시에 버린 것이었다. 솔직히 사일런스가 이미 문 앞까지 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보이지 않게 방 안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는 다른 이들은 이미 이런 짓을 여러 번 해 보았기에 돼지의 적은 말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역시 네 녀석이었군. 돼지.”
문손잡이를 놓은 사일런스는 뒤돌아 차가운 눈으로 돼지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의뢰를 받지 않겠다던 때의 고요한 눈과는 전혀 다른 그 어떤 것이라도 빨아들일 증오에 가득 찬 눈동자였다.
“무슨?”
갑작스런 사일런스의 변화에 살짝 몸을 떠는 돼지였다.
돼지도 전장에서 구르고 구른 살수였다. 그렇기에 자신과 사일런스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슬쩍 발뺌을 하려고 하였지만 살짝 찔린 것이 있는지 볼 살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이 하려고 한 행동이 사일런스에게 걸려서만은 아니었다.
사일런스!
그가 자신에게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돼지가 보아 온 사일런스는 목표에게조차 살기를 내뿜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살수로서는 절대로 보이지 말아야 할 표정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었다.
“왜 상대방에게 살기를 뿜지 않는 거지?”
“단지 제거 명령을 받았을 뿐. 나에게는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사일런스의 살기에 과거에 아주 스쳐 지나가듯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말이 떠오르자 돼지는 아마도 처음으로 사일런스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상대방이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눈치챈 건가?’
자신이 이 바닥을 뜨려고 하는 사일런스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고 당하기 전에 먼저 노리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네 녀석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뻔히 드러나는군.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나는 내 자신이 방금 그 상황에서 죽는 것은 상관없다. 아니 없었어야 했다.”
돼지는 사일런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빠져나갈지에 대해 생각하기 바빴다.
돼지는 사일런스가 알게 모르게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물론 손으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는 돼지였다.
돼지의 손에는 조금이나마 자신의 두려움을 떨쳐 줄 돼지가 전성기 때 사용하던 단검이 들려 있었다.
오랜만에 쥐어 보기에 느낌이 조금 어색했지만 조금씩 자신의 손에 익숙해지는 느낌에 왠지 모르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눈앞에 있는 사일런스는 두려운 존재가 아닌 단순히 자신의 사냥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조금씩 다가오는 사일런스가 완전히 자신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돼지의 특기는 누가 봐도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을 만한 빠른 민첩성이었다.
생김새와는 전혀 다르게 나름 민첩하다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돼지가 그들보다 민첩하다고 느낄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방을 처리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의뢰를 완수하자 어느덧 그런 민첩함이 돼지의 최고 기술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을 상대하는 상대방들은 그를 보면 전혀 민첩할 거란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돼지의 기술은 함정까지 파져 있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돼지였다. 자신 역시 사일런스를 잘 모르지만 사일런스는 단순히 자신을 의뢰를 전달해 주는 중간 역할자로만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3발작만 더!’
돼지는 자신과 사일런스의 거리를 측정하며 사일런스가 완전하게 자신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럼 뭐가 문제이기에 천하의 사일런스가 나 같은 인간에게 살기를 내뿜는 것일까?”
살짝 조롱하는 듯한 돼지의 말투는 처음과는 다르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그렇게 사일런스는 조금씩 돼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