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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 1권(25화)
제8장 노인과의 승부(2)
지금의 행동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아니 황보근.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팽도운을 방패삼아 지나갈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조금 걱정이 많긴 많았다. 혼자서 강시를 상대하는 것이 조금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죽기 살기로 노인만을 노리면 된다는 생각과 빙고은이 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런 생각이 있었을 뿐이었다. 강시가 그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노인의 종소리에 자신이 지나친 강시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오히려 강시들이 폭주를 하며 자신을 따라오지 않자 황보근은 더욱더 속도를 내었다.
‘속전속결!’
황보근이 다가오자 강시가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빠르다!’
지금까지의 강시도 빨랐지만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시는 더욱더 빨랐다. 그런 둘이 만났다. 둘은 만나기가 무섭게 서로 빠른 권격이 주고받기 시작했다. 짐승처럼 심장을 노리고 달려드는 강시와는 달랐다. 권격 한 방 한 방이 황보근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게 될 때마다 작은 상처가 생겨났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강시의 권격에는 권풍이 실려 있었다.
‘강해진다!’
처음에는 약했지만 이제는 가면 갈수록 더욱더 권풍의 위력이 강해졌다. 마치 점차점차 자신의 능력을 깨달아 가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황보근은 다급해졌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황보근은 다시 달려들었다. 자신 역시 이자를 상대로 시간을 끌어야 했다. 그렇게 마지막 수인 빙고은이 도착했다.
― 부탁하겠소, 빙 소저.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차가운 한기가 느껴지는 빙고은은 조용히 황보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둘이 동시에 출수했다. 황보근의 주먹에도 팽도운과 비슷한 기운이 생겨났다.
―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소.
쾅.
후웅.
강시와 황보근의 일격이 마주쳤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바람이 몰아쳤다.
‘응?’
황보근이 보기에 강시의 무공은 어딘지 모르게 본 적이 있는 무공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빙고은을 위해서 시간을 끌어야 했다.
빙고은은 조금 떨어진 상태로 강시와 황보근을 지나갔다.
슈우우우.
강시의 주먹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먹으로 모여드는 바람이 내는 소리였다.
‘저, 저건!’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쯤이지만 확실히 기억하는 무공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 무공이 향하고 있는 곳이 바로 빙고은이라는 점이었다.
“빙 소저, 위험하오!”
쿠아아아앙.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황보근이 달려들어 강시의 공격을 막으려 하였지만 조금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멍하니 그의 기술을 보고 있던 것이 실책이었다. 그런 황보근의 눈에는 빙고은이 거대한 바람에 휩쓸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 자식!”
잠시 멈추었던 발을 다시 놀리기 시작했다.
쾅.
강한 반동이 느껴졌다. 거대한 속도에 힘입어 가한 공격이 강시의 손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막힌 것이었다. 그것도 단지 한 손에 말이다.
“크아아압!”
황보근은 더욱더 내공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밀어 넣어도 강시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강시는 마치 자신 따위는 귀찮은 벌레 같다고 생각한 것인지 시선도 빙고은이 있던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강시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황보근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 황보근을 슬쩍 바라보았다.
“왜, 왜 당신이!”
황보근 자신이 알던 인물이다. 거만하게 자랄 만한 자신을 완벽하게 바꾼 인물이었다.
“왜에! 당신이!!”
황보근이 마치 이성의 끈을 놓은 것처럼 상대방을 몰아쳤다.
콰앙쾅쾅.
“컥.”
피를 토해 내면서도 황보근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물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았다. 비록 황보세가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같은 무의 길을 걷는 자 중 자신들과 같이 권각술로 심신을 단련하는 인간으로서 황보근이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자신과 같이 좋은 세가 같은 곳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 일개 낭인일 뿐인 그가 존경스러웠다. 그 강함이 부러웠고, 그런 강함이 있음에도 거만하지 않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런 그가 지금은 죽지도 그렇다고 살지도 않은 형태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퍽.
“크헉.”
강시의 주먹이 황보근의 복부를 강타하였다.
***
팽도운은 절망에 빠졌다. 유일한 희망으로 밀어 넣었던 황보근이 뒤로 밀려 나온 것이었다.
결국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팽도운은 자신의 싸움에서 눈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런 팽도운의 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강시의 무공에 당해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빙고은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런 빙고은도 곧 더욱더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강시가 빙고은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빙고은은 다친 것인지 왼팔이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축 처져 있었다.
‘다, 다른 강시들과는 달라…….’
빙고은도 걱정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강시의 움직임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무엇인지 모르게 다른 강시들과는 달랐다. 그런 강시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팽도운은 곧 다른 강시와 다른 점을 알게 되었다. 움직임이 뻣뻣한 다른 강시와는 달리 상당히 유연한 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른 강시들과 가장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무, 무공을 사용해?”
틀림없었다. 보법부터 권법이 전부 무공이었다. 그것도 삼류무공이 아닌 상당히 상위무공이었다.
딸랑.
갑작스럽게 방울이 울렸다. 그러자 강시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팽도운 일행을 가운데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당필중 등의 네 명이 있던 곳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강하게 공격하는 강시의 공격에 한곳으로 몰린 것이었다. 그러고는 둥글게 팽도운 일행을 둘러싸고는 공격해 오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곳에는 무공을 사용하는 강시에게 당하여 힘겹게 자신의 검에 의지해 겨우 서 있는 빙고은도 있었다.
“이런이런, 성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나왔는데 조금 상처가 생겼구만.”
팽도운의 힘으로 인해 조금 찌그러진 강시의 팔을 보며 노인은 혀를 찼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말투로 보아하니 자신의 자식이 다쳤을 때나 지을 법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랬던 노인의 표정이 곧 바뀌었다고 믿을 만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만큼 좋은 재.료.를 얻었으니 괜찮겠지.”
노인의 눈이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커헉.”
팽도운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순간에 이렇게 밀린 것이었다. 아직 싸울 힘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충분히 남아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보다는 한 모금의 피를 토해 낸 황보근을 먼저 걱정했다.
“이보게 근이 괜찮은가?”
“도, 독고랑(獨孤狼) 마령……풍!”
팽도운의 걱정은 들어오지도 않는지 황보근은 자신이 상대한 강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제법 큰 문파에 속해 있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인물의 이름을 말하며 정신을 놓았다.
“근이! 이보게 근이!”
팽도운은 그런 황보근을 흔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
“오, 오라버니.”
남궁연청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미치도록 두려웠다. 강시라는 것이 실존하는 것부터 자신들이 이제는 죽게 생겼다는 것까지 말이다.
“오호∼ 능력은 별로지만 얼굴은 반반하니 주군께서 좋아하시겠군.”
어둠과 옷으로 가리고 있던 노인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얼굴이 화상을 입은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반대쪽인 오른쪽의 귀는 무엇에인가 잘렸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아쉽구나. 내가 남자로서의 능력을 잃지 않았다면 내 것이 되었을 것인데. 클클클.”
여성들의 앞에서 할 만한 말은 아니지만 정말로 아쉽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노인의 모습에 제갈문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시, 시체 제, 제조사 구편수!”
“클클클. 이런 설마 이렇게 어린 아해들 중 노부를 아는 아이가 있을 줄이야.”
마치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조금 놀라는 듯 한 표정을 짓는 구편수였다.
“부, 분명 죽었다고.”
“미안하구나, 죽고 싶었지만 아직 죽을 수 없었는지 이렇게 살아 있구나.”
“무슨 말이야. 제갈문!”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이들 중 팽도운이 답답했는지 결국 소리쳤다.
“약 20년 전쯤에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본신의 무공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저자는 무공보다 그가 사용하는 강시들이 대단했다고 봤습니다. 검강이 아니고서는 상대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지만 분명히 무림맹에 의해서 죽었다고 나왔는데!”
“미친, 그럼 이 노인네는 귀신이란 말이야?”
믿기지는 않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제야 자신들이 호랑이 입속에서 호랑이와 싸우자고 싸움을 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죽었다는 인물이 왜 살아 있는 거지?”
“클클클. 노부도 그것 때문에 놀랐지. 주군께서 살려 주었는데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아서 말이야. 알고 보니 정파의 놈들이 두려워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름 조용히 귀여운 나의 아이들만 만들며 살았는데 말이지, 너무 답답해서 그만 강호에 나와 버렸지 뭔가. 클클클.”
“그 주군이라는 자가 누구입니까.”
제갈문이 날카로운 눈으로 구편수에게 물었다.
“클클클. 이제 죽을 놈들이니 내 특별히 알려 주마! 라는 말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지?”
“…….”
구편수의 놀림에 제갈문은 입을 다물었다.
“과거에도 한번 당해 본 적이 있어서 말이지. 그건 그렇고 너의 이름을 알고 싶구나.”
“과분하게도 천변지룡이란 별호를 받은 제갈문이라 합니다.”
적에게 과분할 정도로 예의를 차리는 제갈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동이 너무나 진지했기에 팽도운은 끼어들지 않고 들끓는 내공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작은 희망이라도 기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구나. 제갈세가의 아이였군. 그건 그렇고 거기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쁜 처자는 빙공을 익힌 것 같구나.”
황보근보다 심하게 마령풍에게 당해 상당히 힘겨워 보이는 빙고은을 재미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편수였다. 그런 구편수의 시선에 빙고은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 빙공을 익히고 있는 자들은 아직 강시로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너는 참으로 좋은 소재가 되겠어. 클클.”
듣기 거북한 웃음소리를 연신 흘리는 구편수의 모습에 팽도운들은 절망했다. 방법이 없었다.
“다른 누군가의 힘을 기대지 말거라. 여기 있는 이 강시는 아무리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하여도 상대하기가 힘든 강시이니 말이다.”
고통에 대한 공포를 모르는 것뿐만이 아닌 강시로서는 믿기지 않을 유연함을 갖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살아생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무공까지 사용하는 강시인 독고랑 마령풍의 어깨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툭툭 건들며 말하는 노인의 눈에는 자신이 만든 강시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운이 좋았지. 이 아이를 만난 것도.”
마치 과거의 즐거운 추억을 생각해 내듯 조금 징그러운 얼굴로 나름 행복한 표정을 짓는 구편수였다.
“그만두시죠, 영감님.”
“클클클.”
한참 과거의 생각에 빠져들 뻔하던 구편수의 뒤에서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그는 백은이었다.
“혀, 형님!”
무공을 전혀 모르는, 아니 조금은 할 줄 알지만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일반인과 다름없는 그였기에 더욱더 팽도운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백은을 이런 곳에 끼어들게 한 것이 미안했다. 자신들이 끌고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빙궁으로 향하고 있을 인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데리고 온 것이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도 했다. 백은이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가 도망을 쳐서 지금 이 사정을 세가나 무림맹 등에 알려 주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팽도운의 기대를 철저하게 짓밟듯 백은이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도망가지 않고 있었구나. 물론 도망가도록 지켜보지는 않았겠지만.”
그러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백은이 숨어 있던 것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구편수였다. 그러며 자신의 입장을 은근슬쩍 밝혔다. 아직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나오면 안 되었기에 일찍이 숨어 있던 백은을 처리하긴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이들이 먼저였기에 방치해 두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귀찮지 않게 도망치지도 않고 이렇게 나와 준 것이었다.
“흠…… 미안하지만 자네는 그냥 죽어 줘야겠구만.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일반인을 강시로 만드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재료에 비해 그다지 좋은 성능의 강시가 나오지 않기에 구편수는 백은을 강시로 만들 생각 따위는 없었다.
“저도 쉽게 죽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을 놓아주지 않으면 이것을 던지겠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는 백은의 손에는 당필중이 주었던 암탄구가 들려 있었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