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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25화)
5장 격돌(10)


“이렇게 귀한 걸 준비해 주었는데, 짐은 내어 줄 것이 별로 없구려.”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등한 관계의 동맹을 요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조건을 들어 보심은 어떠실는지요.”
“말해 보시오.”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대한제국과 알테인 왕국의 동맹에 있어서 알테인 왕국이 위험에 처하면 대한제국은 그 요청에 답하여 파병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즉 군사적 동맹입니다. 다만 지상의 경우에는 세프니아 왕국이 있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기에, 해군력에 한하여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이는 알테인 왕국의 본토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음을 명확히 밝히는 것입니다.”
마나석이라는 엄청난 진상품을 받고, 바다까지 지켜 준다니 오히려 황당했다.
동맹이라 함은 아쉬운 쪽이 선물을 가져다주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청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한데 이것은 그 반대가 아닌가. 그렇게 의문을 품을 즈음에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알테인 왕국은 본 대한제국과의 독점 무역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독점 무역이라는 말에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 제국이나 되는 나라가 독점 무역을 한다니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해상무역이 가능한 나라로는 울린 왕국과 알테인 왕국, 그리고 타네스 왕국이 가장 인접해 있습니다. 울린의 경우에는 그 행태가 사납고 거만하기 이를 데 없기에 교역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타네스 왕국의 경우는 해군력이 강함을 내세워 행패를 부리니, 이 또한 울린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앞서 제국에 대해 말씀드렸었는데, 제국으로서 인정받고 그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응당 주변 왕국들이 진상을 하며 조공을 바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서로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하여 알테인 왕국이 주변 열강들로부터 절대적으로 모자란 해군력을 임시적으로나마 빌려 드힘으로써 해상의 안녕을 꾀하고, 무역을 통하여 부국강병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본 대한제국의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오. 서로가 공존하여 발전을 꾀한다라? 이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오. 귀하는 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지난 역사가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과거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서로가 싸우며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있습니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합니다. 하나 인류는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 발전의 가능성을 스스로 묶어 버리고, 서로 간의 영달만을 탐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대한제국은 잊혀진 땅에서 타국과의 싸움을 끊고 스스로 발전하는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부나마 양국 함대와의 싸움으로 입증하였다고 사료됩니다.”
“과연! 귀하의 말이 옳소. 한데 이제 와서 다시 세상에 나온 이유가 무엇이오?”
“우리 대한제국은 마도 과학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그 성과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왔습니다만, 그 발전이 가로막혀 더 이상 높은 단계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결과, 단일국가에서 발전을 꾀하는 데에는 그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느끼고 세계로 나아가야 함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 과거사를 돌이켜 보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첫 번째로 고도로 발달된 마도 과학을 두려워한 전 인류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 두 번째로 자국 내에서 그 힘을 남용하여 타국을 핍박하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김상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말을 이었다.
“다행히 두 번째로 거론된 문제는 저희 대한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의 되풀이’에서 문제로 인식하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첫 번째가 심히 문제가 될 것으로 염려하던 중에 알테인 왕국의 왕자님과 공주님이 저희 대한제국 땅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어찌 된 경유로 두 분께서 대한제국 땅으로 들어오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나, 세계를 바라보며 어떻게 발전을 이루어야 할지 고민해 오던 저희로서는 한 가지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알테인 왕국과의 공존이라는 것이고 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전 인류를 공포에 떨게 만들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도 그러한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제국다운 면모로구려. 일국의 황태자로서의 식견도 대단하니, 그런 나라가 본국과 대등한 동맹을 맺고자 한다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소. 알테인 왕국은 대한제국과의 무역을 허하겠소.”
모든 귀족들과 대전 안의 인물들이 일어서 알테인 왕국의 국왕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왕성의 파티장에는 귀족들과 왕족, 그리고 그 자식들이 한가득 몰려들었고, 대한제국의 사신단들은 단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순백의 해군 정복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김상 대령과 그 주변에 있는 두 사람이 주목의 대상이었다.
팔각모에 빨간 명찰, 그리고 확실하게 각이 딱 져 있는 전투복. 걸을 때마다 촤르륵거리는 소리가 양 발목에서 들려오며 해병대원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미 김상 대령은 귀족들 사이에서 순백의 황태자로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인물들은 바로 이글아이 이 상사와 FD 박 상사였다.
일찍이 잊혀진 땅의 개척에서 활약하며 그 능력을 과시하던 두 사람이 일개 사병에서 상사까지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연회장에서 두 사람은 철저하게 김 대령의 호위만을 하고 있었으며 목석과도 같이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너무 딱딱하게 있지 말고, 뭐 좀 들지?”
김 대령의 제안에도 딱 부러지게 거절한 두 사람은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김 대령의 제안도 거부하며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굳어 있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귀족들의 영애라는 이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박 상사는 일찌감치 결혼을 하였고, 이 살만 찐 여성들이 부담되었다.
이 상사 또한 눈 버렸다며 투덜대고는 박 상사와 마찬가지로 마치 사람이 아닌 양 표정을 굳히고 서 있기만 했다. 행여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올까 두려운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때 3왕자가 다가오며 친근함을 나타냈다.
“하하하. 이거 제국의 황태자께서 호위 기사로 인하여 말 걸어 주는 이 한 명 없으니 섭섭하시겠습니다.”
“무슨 말씀을요. 그보단 도저히 해적 선장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너무 어색하군요. 다시 배 탈 일은 없습니까?”
“비밀입니다만, 조만간 다시 뛰쳐나갈 겁니다. 왕성은 도저히 제 성격에 맞질 않아서 말이죠. 저 귀족들의 기름진 살덩이를 보기만 해도 메스꺼워지니, 어쩌겠습니까.”
조용히 말하는 크리브였고, 김 대령은 그저 웃어 보였다.
“응? 아니?! 이게 누굽니까.”
크리브는 박 상사를 알아보았다. 지난날 에이린 공주를 가볍게 제압한 실력을 가진 박 상사였다. 처음 보는 검술이었지만 정말 대단하였고 그만큼 인상 깊게 남아 있던 상대가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응? 아, 박 상사 말입니까?”
크리브는 순간적으로 대한제국의 군 계급 편제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했다.
분명 소드 마스터라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 상사라는 계급이라 했다. 김 대령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낮은 계급이 아닌가!
크리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만한 검술 실력을 지닌 사람이 고작 상사라는 계급이라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상사보다 윗 계급을 떠올려 보던 크리브는 소드 마스터가 판을 치고 그랜드 마스터도 여럿 있는 나라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세계 최강이 아닌가!
단순히 마도 과학 문명만 발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 또한 하나같이 강인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런 크리브의 놀람과는 별개로 에이린 공주가 이들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그때는 제가 졌지만 다시 한 번 겨루었으면 해요.”
오러 블레이드도 쓰지 않은 상대에게 순수하게 검술로 졌다는 사실에 어지간히 화가 난 듯했다.
물론 에이린 공주의 발언은 당당하고 상당히 컸기에 파티장에 있던 여러 사람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왕국 내에서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는 에이린 공주가 타국의 기사에게 대결을 신청하는 모습은 대단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두 명의 해병대원들이 내뿜는 오라 덕분에 접근하고 싶어도 접근을 못 하던 귀족들과 그 영애들이었다. 관심은 두고 있으나 차마 접근을 못 하던 중에 에이린 공주로 인하여 순식간에 모두의 주목을 확실하게 받아 버렸다.
박 상사는 한 발짝 나섰다.
“거절하겠습니다.”
딱 부러지게 말하는 그였고, 에이린 공주는 자존심에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제 와서 도망치겠다는 건가요? 그땐 많이 지치기도 했고, 몸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질 것 같으니까 그런 식으로 거절하는 것 아닌가요?”
“에이린!”
크리브가 놀라 에이린을 진정시켰다. 저 무시무시한 대한제국의 황태자 일행에게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는 것이다. 엉뚱한 분란이 생겨 자칫 대한제국이 돌아서 버리는 사태는 피해야 했다.
“검은 왜 수련합니까?”
그러나 그러한 것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박 상사는 짧게 질문했다.
“그야 나라를 지키고, 심신을 단련시키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이지요.”
크리브가 대신하여 대답했다.
“공주님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치켜뜬 눈으로 노려보는 에이린 공주도 무언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럼 공주님은 틀리셨습니다. 지금 상태의 공주님은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당연히 거센 반발이 있었다.
“무슨 말이 그래요? 이길 수 없다니? 싸워 보지도 않고 이길 수 있다는 말은 무척 거만하게 들리는군요!”
그러나 박 상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검이란 마음을 보여 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입니다. 체력과 당시 상황의 불리함을 핑계로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닦지 않는데, 어떻게 그때보다 더 나은 검술을 구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결투 신청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검술을 과시하기 위한 과시욕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심신을 수련하여 갈고닦아야 할 검술이 보여 주기 위한 검술이라면, 그 결과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주님의 결투 신청을 거절합니다.”
놀라웠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라워했다.
나름 검술에 자신 있어 하는 귀족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강함을 보여 주기 위해 단련하지는 않았던가 하며 과거를 돌이켜 보기도 했다.
그것은 공주라고 다를 바 없었다. 당사자인 공주는 그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르며 천재라고 주변의 찬사를 받아 오던 그녀였다.
사실 남자들도 그녀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오르기 힘든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일침을 가하는 한마디 말이었고, 그 충격은 대단히 컸다.
에이린 공주는 씩씩거리며 물러났고, 박 상사도 다시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제자리에 섰다.
몇몇 귀족들은 구경거리가 없어지자 아쉬워하는 눈치도 보였다.
“조금 답답하군요. 바깥공기라도 쐬러 나갈까요.”
크리브의 안내로 발코니로 나선 이들이었고, 발코니에서 바깥공기를 한껏 들이킨 크리브는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에이린을 저렇게까지 상대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역시 황태자 전하의 호위다우십니다.”
그러나 박 상사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그건 그렇고, 귀족들의 반응을 보셨습니까?”
“예. 두 사람의 대결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더군요.”
“그게 그들의 여흥거리죠. 당사자가 되어 나서지는 않지만, 타인의 싸움을 보며 즐기고 뒤에서 왈가왈부 말만 많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왕궁에 붙어 있지를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자조 섞인 말이었고, 그런 왕자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김 대령이었다.
언젠가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떠나며 남긴 코미디언의 말이 떠올랐다.
“코미디 공부 많이 하고 떠난다.”
얼마나 정치판이 웃기면 코미디언이 그런 말을 했겠는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 아니던가. 권력을 휘어잡고는 웃기지도 않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 대는 정치인이라는 것과.
과거는 그러했지만 미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짐하는 김 대령이었다. 적어도 이곳에 새로이 세워지는 대한제국에서만큼은 ‘절대로’라고.
그렇게 연회가 한창인 도중에 세종대왕함으로부터 무전 연락이 왔다.
울린 제국과 타네스 왕국의 대규모 함대가 알테인 왕국으로 향했다는 내용이었다.
마법사들의 존재로 인하여 중요한 정보는 각 왕국에 신속하게 전달되는 편이었고, 그에 따라 국가의 결정과 행동도 문명 수준에 비하여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마법이라는 것이 대한제국에서 사용하는 무전과 비슷한 것임을 감안하면 무시 못 할 통신수단임에 분명하였다.
그래도 보통은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최소한 며칠에서 길게는 달포가량의 시간은 흐르는 것이 정석이고, 행동에 이르는 데는 준비하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몇 달은 가볍게 지나는 것이 맞다.
하나 이전부터 두 국가의 군함들이 온 바다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던 탓에 준비에 따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예상외로 신속한 대처에 긴급하게 대책 회의가 마련되었다.
물론 연회는 중지되었다.


<『이계의 대한제국』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