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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24화)
5장 격돌(9)
제국을 왕국으로 격하시킨 것은 둘째치고,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라 정도의 총성이 울렸고 연이어 후작은 풀썩 엎어졌다.
이미 경험을 해 본 크리브는 그나마 담담한 모습이었지만 갑작스런 총성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해도 저 엄청난 소리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후작이 쓰러지자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으나 이미 후작의 심장에는 총알이 박혀 들어 즉사한 뒤였다.
대마법 방어 주문이 새겨진 플레이트 메일에는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고 핏물이 스며 나와 후작의 죽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3서클 마법까지는 완전히 무효화시킨다는 갑옷조차 그냥 꿰뚫어 버리는 위력에 모두가 놀란 상황이었다.
울린 제국의 기사들은 일제히 검을 빼 들었으며 같이 상황 파악을 위해 승선한 타네스 왕국의 기사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어찌 대한제국의 황태자 앞에서 칼을 꺼내 들이민단 말인가.”
그리고 그의 뒤에 20여 명의 해병대원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다.
― 처처척!
“그대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면 너희들이 끌고 온 배들을 모조리 살려 줄 것이며, 그러지 아니하다면 저 배들을 모두 수장하겠다.”
양 국가의 60여 척의 군함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는 발언이었다.
당연히 동의할 이가 누가 있으랴.
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 타타타타탕!
순식간에 총성이 연달아 울렸고 양국의 기사단들은 누구 한 명 힘을 쓰지 못한 채 갑판 위에 나뒹굴어야 했다.
흥건하게 피가 흘러나와 갑판을 적셨다.
죽은 기사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기사들도 있었다.
곳곳에 신음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던 기사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재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굉음이 들려오고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뚫고 들어오거나 꿰뚫어 버리니,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화살도 막아 낸다는 플레이트 메일조차도 간단히 뚫어 버리는 그 위력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당사자들이 이러할진대 알테인 왕국의 병사들은 어떠하랴.
천지가 개벽을 해도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기사단이 순식간에 전멸하자, 두 왕국의 배는 서둘러 접선을 떼고 자국의 함대로 되돌아가려 했다.
김 대령이 손짓하자 20명의 대원들은 일제히 유탄 발사기를 쏘았다.
― 투투투퉁!
―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오며 멀어져 가던 두 배는 그렇게 순식간에 유탄에 의해 산산조각 나며 가라앉았다.
그리고 대기 중이던 철갑선이 서서히 앞으로 전진했다.
다른 열아홉 척의 배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이동하여 두 나라의 함대를 포위하였다.
그 가운데 단 한 척의 배가 맹렬히 돌진하며 타네스 왕국의 배들을 박살 내었다.
엄청난 빠르기.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강력함. 부딪히는 족족 타네스 왕국의 배들은 두 동강이 나거나 박살이 났으며, 어김없이 침몰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다섯 척이 가라앉았다.
놀란 나머지 함선들이 재빨리 넓게 산개하기 시작했으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포위한 열아홉 척의 배들이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바람이 없어 노를 저어 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가 지나자 타네스 왕국의 배는 한 척도 남기지 않고 가라앉아 버렸다.
반면 거리를 두고 있던 울린 제국의 함선들은 자신들의 지휘관이 타고 있던 배가 갑작스럽게 폭발과 함께 가라앉아 버리자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국의 함대답게 금세 진열을 정비하고 마동포를 준비하였다.
제아무리 괴물 같은 이동속도를 가진 배라 하더라도 마동포를 이용하여 공격하면 못 버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소모될 마나석이 아깝기는 하지만 당장 싸워야 했다.
그렇게 울린 제국은 열심히 마동포를 배치하여 발사 준비를 하였고, 대한제국은 마냥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든 상황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이들은 바로 알테인 왕국의 병사들이었고, 그간 알게 모르게 핍박하고 무시하던 타네스 왕국의 전함들이 하나둘 침몰하자 저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들이 직접 침몰시킨 것은 아니지만 동맹국임을 자처하는 대한제국의 함대가 철저하게 박살을 내어 주자 대리 만족에 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울린 제국의 모든 배들이 마동포의 준비를 마쳤고, 타네스 왕국군의 배를 휩쓸어 버린 대한제국의 배로 서서히 접근해 왔다.
근접 해전이라 돛은 오히려 불편하였기에 모든 군함들은 일제히 노를 꺼내어 노를 젓고 있었다.
그렇게 40대 1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이 순간만큼은 알테인 왕국의 병사들도 울린 제국의 마동포의 위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눈앞에서 불타 가라앉을 대한제국의 배에 대해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다.
반면 방금 전까지 엄청난 기동성을 보이며 움직이던 대한제국의 철갑선은 느긋하게 함수를 돌려 울린 제국의 대함대로 향했다. 마치 올 테면 오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울린 제국의 배들은 일제히 노를 저어 다가갔고, 약 5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겨 두고 십여 척의 배가 일제히 선회를 하기 시작했다.
측면에 배치한 마동포를 발사하기에는 사정거리 안으로 접근을 해야 했고 접근 후에는 선회를 하여 마동포를 쏠 수 있도록 해야 했던 것이다.
그 순간 대한제국의 철갑선에서는 K―4의 실전 사격이 실시되었다.
― 투투투투투퉁!
분당 650발이 넘는 발사 속도를 가진 유탄 기관총 두 정이 아주 잠깐, 그야말로 아주 잠깐 유탄들을 쏘아 댔고 결과는 놀라웠다.
― 콰쾅! 쾅! 투화! 쾅! 투화!
물기둥이 치솟고 난 뒤, 울린 제국의 배들의 측면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그동안 마동포는 단 한 발도 쏘지를 못했다.
그렇게 십여 척의 배는 순식간에 박살이 나 가라앉았으며 뒤이은 울린 제국의 배들은 혼비백산하여 급히 선회를 서둘렀다.
그러나 너무나 밀집한 상황인 데다가 각 배들의 노가 엉켜 쉽사리 선회가 되질 않는 상황이었고, 다시 K―4가 불을 뿜었다.
여전히 제자리에서 쫓아갈 생각도 안 하고 착실히 K―4를 쏘아 대는 대한제국이었고, 처음과는 달리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쏘는 모습을 보였다.
배의 숫자는 훨씬 많았지만 울린 제국의 함대는 불과 십여 분 만에 모조리 산산조각 나 버렸다.
심지어 거의 1킬로미터에 가까울 정도로 멀리 도망치던 배도 어김없이 가라앉아 버렸다.
단 한 척으로 60여 척의 군함들을 모조리 수장시켜 버리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대한제국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함과 동시에 울린 제국의 마동포조차 압도하는 화력을 선보이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 * *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히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국가는커녕 사람이 살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던 잊혀진 땅에서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동안의 연결 통로가 막혀 있어 있는지조차 몰랐다 정도면 이해가 되겠지만, 문제는 이 대한제국이라는 나라의 해군이 울린 제국과 타네스 왕국의 대함대를 완전히 박살 내어 버리면서 등장했다는 것에 있었다.
각각 20, 40여 척의 함대를 단 한 척도 남기지 않고 침몰시킨 장본인이 대한제국이다.
기사로 그 이름이 드높던 브라운 슈바이크 후작도 무엇 하나 성과 없이 절명하였고, 그의 휘하에 있던 함대들은 마동포 한 발 쏘지 못한 채 모두 가라앉았다.
그저 소문만이 있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게 박살이 난 배들로부터 건져 올려져 포로가 되어 버린 양국의 병사들이 직접 체험하고 증인이 되었다.
또한 알테인 왕국의 병사들도 직접 두 눈으로 보았기에 이 믿을 수 없는 일대 사건은 사실로 드러났다.
이들이 알테인 왕국에 정박함과 동시에 전 세계는 대한제국이라는 폭풍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하! 대한제국의 사신단이 도착하였습니다!”
알테인 왕국의 수도는 해안가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 해상 교역이 발달한 왕국이었기에 그러했으며, 내륙으로 옮겨 보았자 주변 산맥으로 인하여 그다지 효과를 볼 수 없음이었다.
그렇게 해상 교역을 지향하지만 해양 대군을 형성할 수 없었던 것은 역시 주변 강국의 영향이 컸음이다.
“들라 이르라!”
알테인 국왕이 이르자, 김 대령과 3왕자, 그리고 행방불명되었던 공주까지 함께 들어왔다.
국왕의 입장에서는 집 나간 자식들이 돌아왔음에 무척 기뻤지만, 사신으로 찾아온 이를 홀대할 수는 없어 내색치 않았다.
“잘 오셨소. 귀하가 대한제국의 사신이오? 듣자 하니 왕자와 공주를 보호하고 있었다 하던데 사실이오?”
“예. 제가 대한제국의 사신으로 그 임무를 맡고 있는 황태자 김상이라고 합니다. 알테인 왕국의 왕자님과 공주님이 저희 대한제국에 들어왔기에 국빈으로 대접하고, 이번 일을 기회로 대한제국은 지난 과거의 폐쇄를 끊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려. 고맙소. 한데 듣자 하니 울린 제국과 타네스 왕국의 배들과 충돌이 있었다 하던데…….”
“예. 울린 왕국과 타네스 왕국은 저희 대한제국의 해군 함대 일부로 응징을 내렸으며, 그들의 배를 모조리 수장시켰습니다.”
두 나라의 배들과 충돌할 당시에도 울린 제국을 왕국으로 격하시키는 발언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워낙에 놀라운 일이 눈앞에 펼쳐졌기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알테인 왕국의 모든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울린 제국을 왕국으로 격하시켜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귀족들이 놀라 서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조용하라. 귀하는 어찌 울린 제국을 왕국이라고 말하시오?”
“모름지기 제국이라는 것은 그만한 영토를 가지고 있어야 제국이라 칭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 계시는 모두가 아실 것입니다. 하나, 제국은 그 땅만을 가지고 제국이라 불릴 수 없습니다. 제국이 제국다운 면모를 보이는 것은 주변 왕국들을 감싸고 서로가 공존할 수 있도록 협조를 함으로써 비로소 제국이라 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울린의 경우엔 그 영토는 비록 방대하다고 하나 하는 행태는 저 북방의 부족국가들과 다름이 없으니 어찌 제국이라 칭할 수 있겠습니까.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왕국으로는 칭할 수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제국이라고 칭할 수는 없습니다.”
“하면 귀국은 제국이라 칭할 만하단 말이오?”
“그 증거를 보여 드리고자 오늘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무엇이오?”
“대등한 관계의 동맹을 맺고자 함입니다.”
또다시 실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제국이라고 칭하는 대한제국. 그리고 울린 제국과 타네스 왕국의 대함대를 순식간에 박살 낼 정도의 강력한 해군력을 지닌 이들이 대등한 관계의 동맹을 요구하며 찾아왔다. 놀라지 않는 귀족들이 없었다.
물론 국왕도 내심 놀랐으나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대등한 관계의 동맹이라고 하였는데, 그럼 준비한 것은 무엇이오?”
국왕의 질문에 김 대령의 뒤에 있던 사람이 한 발짝 나섰다.
그의 손에는 작은 목함이 들려 있었고, 그것을 열어 보였다.
“마나석입니다. 60개로 대등한 동맹을 맺기 위한 선물쯤으로 여겨 주시면 됩니다.”
국왕도 그 순간만큼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나석 60개.
그 정도면 울린 제국만큼은 아니라도 주변 왕국을 앞지를 만큼의 보유량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정 마나석이란 말이오?”
“드래곤 하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최상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귀족 중 한 명이 다가서 상자에 들어 있는 마나석을 확인하였다.
“진짜 마나석입니다. 이 정도면 최상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진품 여부까지 확인되자 장내에는 은근히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