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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23화)
5장 격돌(8)
한편, 대한제국의 함대도 해상에 나와 있었다.
크리브의 배를 우선 수리하여 앞장세우고, 그 뒤를 20척이나 되는 대한제국의 해군 함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크리브의 배에는 K―4 유탄 기관총 두 정이 실려 있었다.
나머지 배에는 급하게 나무를 깎고 칠을 하여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구분할 수 없는 가짜 유탄 기관총이 설치되어 있었다. 즉 진짜배기는 단 한 척뿐이었다.
크리브는 선수의 양옆으로 설치되어진 유탄 기관총에 대해 어느 정도 위력을 보이는지 설명을 들었지만 겉보기에는 별달리 대단할 것 없어 보였다. 그래서 듣고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철갑을 두른 배를 바다에 띄울 정도의 나라이다. 돛 없이도 항해가 가능한 배를 보유한 나라였고, 단 한 발에 범선을 산산조각 내는 위력을 가진 배도 가진 나라였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배도 보았다. 길이만 무려 200미터에 달하는 그 거대한 배의 존재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고 방금 전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약 30해리 떨어진 지점에 11척의 배가 있고, 그 뒤로 약 5해리의 간격을 두고 60여 척의 배가 따라붙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망망대해에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는 배를 있다고 하니 믿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크리브의 배에는 기존 크리브의 부하들이 모두 승선해 있었다.
일국의 사신으로 받아들여 준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고, 불미스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을 거라 믿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저 괴물 같은 배들이 양옆과 후미에 줄줄이 따라붙어 있는 상황에서 도망치려는 마음이 생길 리가 없었다.
게다가 크리브의 배에는 약 20여 명의 대한제국 군인들이 타고 있었다.
외교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자리해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팔각모에 각이 잘 진 군복을 입고 있었으며 절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걸을 때는 촤라락 하는 소리가 들려와 약간의 공포심마저 들었다. 또 하나같이 양질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능히 잡아낼 정도로 강인한 인상들이었다.
특이하게도 여성도 있었는데, 그 능력이 대단했다. 자신의 부하로 있는 전직 기사를 맨손으로 때려눕혀 버린 것이다.
그뿐인가. 기사들도 한 수 접는다는 자신의 동생인 에이린 공주와 맞상대한 자는 가볍게 에이린 공주를 제압해 낼 정도의 대단한 검술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오러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필시 소드 마스터일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그런 가공할 위력을 지닌 인사들이 저 20여 명 안에 섞여 있었다.
거기다 딕을 순식간에 주저앉게 만들어 버린 권총이라는 녀석도 다들 가지고 있었다.
즉, 아무리 자신의 배이고 자신의 부하들로 가득하다고 하지만,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 배 하나쯤은 아무렇지 않게 제압하고도 남는다는 결론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 딴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현실적인 두려움이 존재하긴 했지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같이 나오는 대한제국의 배들이 다들 돛을 펴고 따라오고 있었다.
“돛 없이도 이동할 수 있는데도 왜 돛을 사용하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처음 대면했던 김 대령이라는 사람이 대답해 주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진 전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지요. 울린 제국이 마동포를 아무 데나 내놓고 선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돛을 펼쳐서 움직이며, 바람이 없거나 역풍이 부는 경우에는 직접 움직입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질 때에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럼 지금과 같은 순풍일 때는 오히려 돛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군요.”
필시 어딘가의 약점을 찾아내려는 듯한 질문임에도 김 대령은 모른 체하며 말했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너무 빨라서 안 쓰는 겁니다. 이 범선이 못 쫓아올 것이 뻔한데 일부러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하에게 수기로 신호를 보내자 가장 후미의 배가 맹렬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돛이 거꾸로 펼쳐질 정도로 급속히 접근한 배는 크리브의 배를 앞질러 일정 거리를 이동했고, 다시 수기신호를 보내자 서서히 멈추어 섰다.
가히 압도적인 속도였다.
돛이 거꾸로 뒤집힐 정도의 가속력을 가진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무엇보다 크리브의 배는 순풍을 타고 최고속을 내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더 컸다.
분명 앞선 말에는 숨기기 위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크리브의 말에 직접 시범을 보여 주는 모습에서 의구심이 들었다.
“동맹국에게 저런 사소한 것까지 비밀로 할 이유가 있습니까? 서로가 신뢰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대등한 동맹의 관계를 가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큼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김 대령이었고, 크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맹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대한제국에서는 어떤 분이 대표로 나오시는 겁니까?”
“이래 보여도 제가 대한제국 황태자라는 신분도 가지고 있어서 제가 대표로 나섭니다.”
그의 말에 크리브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세종대왕함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한 나라를 방문한 객으로 대접을 충분히 받으며 지냈었다. 그 가운데 거수경례를 붙이며 절도 있는 모습을 보이던 사람 중 하나가 김 대령이었다.
알아보니 김 대령은 계급이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긴 하지만 아주 높은 위치는 아니었고, 군대라는 곳이 상명하복인 체제이기에 그에 걸맞게 행동한다 하였다.
한데 황태자라니?
황태자라는 신분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공작의 지위와 맞먹는 위치가 아니던가?
일국의 공작이라 하면 능히 대군을 이끌고 전장을 누빌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공작이 그러할진대 이 대한제국의 황태자라는 사람은 그저 1개 기사단 단장쯤으로밖에 안되어 보였던 것이다.
크리브가 매우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대한제국에는 황제를 제외하고는 신분의 고하가 없고, 황제 앞에 만민이 평등합니다. 황태자라 하여도 다르지 않지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제국이니,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의 목소리가 가장 높으며, 국민이 주인인 땅이 대한제국입니다. 황제는 그러한 국민들의 대표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국민들이 평등하다니, 그야말로 이상적인 국가가 아니던가.
크리브는 일찍이 형제들과 싸우기도 싫었고, 귀족들의 행패와 기득권층의 다툼에 싫증이 나 도망치듯이 왕성을 빠져나왔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귀족들을 싹 쓸어 내 버리고 싶기도 했었다.
“하면 귀족들은 어찌합니까? 한 나라를 다스리려면 백성들을 다스릴 귀족이 반드시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대한제국에서의 귀족은 그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국민이 먹여 살리는 것이 귀족 아닙니까. 귀족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며, 국민이 주는 세금으로 녹을 받으면서 맡은 바 책무를 다합니다. 임기가 끝나면 당연히 그 자리를 후임에게 물려주고 다시 평민과 같은 생활을 합니다. 물론 고생한 만큼의 보답은 있지요. 젊어서 임기가 끝나면 다른 일을 할 여건을 마련해 주며, 늙어서 임기가 끝나면 여생을 편히 지낼 정도의 보상은 해 줍니다.”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았지만 김 대령은 마치 그래 왔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귀족이 선출되니 권력과 재산을 탐하지 못하는 나라였다. 귀족이라는 것도 임기를 마치면 더 이상 귀족이 아니라 하였다.
이 얼마나 완벽한 나라란 말인가. 강력한 황권을 기반으로 모든 백성들이 평등한 생활을 보장받으며 생활하는 나라. 그야말로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크리브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에 문득 에이린 공주가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런 질문입니다만, 황태자 전하께서는 저기 제 동생 에이린 공주를 어찌 보십니까?”
어느덧 극진해진 크리브의 모습이었다. 자신도 일국의 왕자이긴 하지만 제국의 황태자와 비견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자연스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강인한 여성입니다. 그저 여자로 태어나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는 김 대령이었고, 크리브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파수대로부터 전방에 함선이 출현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정확히 열한 척의 함선이 눈에 들어왔고, 이들은 알테인 왕국기를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그보다 후미에 대규모 함대가 존재함을 알려 왔다.
새삼스레 보이지도 않는 바다 위에서 저 많은 배들을 정확하게 알아낸 대한제국이라는 곳이 두려워졌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위치를 파악하고,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침몰시킬 능력을 가진 배가 확인된 것만으로도 두 척이나 있었다.
군사력을 물어보는 것은 동맹국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대단히 조심해야 할 사항이었기에 알아보진 못했지만, 필시 더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의문점인 크라켄에 대해서도 대한제국에서는 확실히 대답해 주었다.
2년 전에 크라켄을 박살 내 버렸다고 말이다.
그 후에 나온 보이지 않는 바다 괴물에 대해서 물어보자 물속을 다니는 배가 있음을 말해 주었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이 국가 기밀 사항이기 때문에 존재 유무만을 알려 주었을 뿐이었지만, 이로써 의문점은 확실히 풀렸다.
열한 척의 알테인 왕국의 배가 서서히 접근해 왔으며 대한제국의 군함들은 크리브의 배를 가장 선두에 내보내고서는 약간 후미에서 정박하였다.
알테인 왕국의 배들은 크리브의 배가 다가옴을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맞이하였고,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였고, 그들의 군사력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이 두 번째였다. 마지막으로 그만한 대국이 알테인 왕국과 동등한 입장의 동맹을 맺어 동맹국으로써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며, 무역을 제안한 것이었다.
사실 크리브도 동맹국이라는 이야기는 일찌감치 들었지만 이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크리브 일행이야 진즉에 대한제국의 강력한 힘을 식견하였기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알테인 왕국의 함대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크리브의 설명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척이 안되는 상황에서, 후미에 있던 타네스 왕국과 울린 제국의 배들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배가 나타나 알테인 왕국과 접선을 한 것은 망망대해에서 뻔히 보였기에 진상을 알기 위해 접근해 오는 것이었다.
“이럴 것이 아니라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군요. 우리 대한제국의 해군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일부나마 직접 보여 드린다면 여러분의 생각도 달라지실 겁니다. 그리고 동맹을 맺게 될 형제 국가를 위협하는 괘씸한 저치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서도 안되겠지요.”
김 대령이 자신 있게 나서며 말하자 후미에 대기 중인 한 척의 배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쩌실 셈입니까?”
“저희 대한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라. 백 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만 못 함이요, 백 번을 보아도 한 번 행함만 못 하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에게 백 번을 말해 본들 한 번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할 듯하고, 그에 따라 직접 행동하여 보여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사이 타네스 왕국과 울린 제국의 군함이 각각 한 척씩 다가와 접선을 시도하였다.
상당수의 인원이 넘어와 갑판에는 각국의 기사들로 순식간에 가득 찼다.
“도대체 저 배들은 무엇이오? 어찌하여 잊혀진 땅에서부터 오는 것이오? 그리고 저들은 누구요?”
당연한 질문이었다. 누구나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이었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타국의 군함 위에 제멋대로 발을 들이고 시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김 대령은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저 꼼짝도 못 하고 저들을 허용하고 마는 자존심도 없고 멍청한 지휘관이 불쌍해 보였다.
크리브도 수년 동안 해적들과 함께 있으면서 철판을 많이 깔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얼굴이 상당히 붉어져 있었다.
“우리는 대한제국의 해군이며, 여기 알테인 왕국의 실종된 공주님을 보호하고 있었고, 알테인 왕국에 돌려보내는 임무를 띠고 이곳에 있다.”
그리고 실제로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공주가 앞에 나타나자 알테인 병사들은 모두가 환호를 질렀으며 두 왕국의 사람들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한제국이라니? 나는 그런 나라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너희들이 잊혀진 땅이라고 부르며 접근하지 않는 그곳에 분명히 우리 대한제국이 있으며, 나는 대한제국의 황태자인 김상이라고 한다.”
“헛소리!”
본인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져 나온 소리였다.
물론 당연한 반응이고 김 대령은 이 정도 반응은 예상하고 있었다.
“일국의 황태자 앞에서 망발을 일삼는 그대는 누구인가?”
“나 울린 제국의 기사 브라운 슈바이크 후작이 너 따위 사기꾼이 하는 말을 믿을 성싶으냐!”
김 대령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일명 썩소가 피어올랐고 간단히 대답했다.
“고작 울린 왕국의 후작 나부랭이가 대한제국의 황태자를 능멸하였으니, 죽어 마땅하다.”
― 탕!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