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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22화)
5장 격돌(7)
“그럼 동맹을 맺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해 보게.”
타국과의 교류를 반대하던 외무 대신이 흥미를 보였다.
“우선 국제사회에서 억제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다행히 각 국가들은 아직까지 목재 범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기술력으로 현재 철갑선 40척을 보유한 우리나라에 비하여 함선의 질적인 면에서 절대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또한 마동포를 보유하고 있다는 울린 제국이라고 할지라도 기본은 목재 함선입니다.”
“마동포는 어떤 물건인가?”
“마동포의 제원에 대해 파악된 바로는, 유효사거리 5백 미터에 40밀리 유탄에 필적하는 화력을 내는 것으로 파악되어 있습니다만, 유탄과 같은 폭발로 인한 물리적인 파괴가 아니라 화염구를 이용한 장거리 화염 발사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해군이 보유한 철갑선에는 별다른 피해를 입힐 수 없는 수준입니다. 실제로 마동포에서 발사되는 파이어 볼이라는 마법을 국내 마법사의 시범을 통하여 강철 장갑에 파괴력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순간적으로 장갑의 표면에 고열을 가하는 수준에 그쳐서 실질적인 효용성은 상당히 뒤떨어지는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물론, 육전에서는 그 화염의 범위가 반경 10미터에 이르기에 일반 병사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다른 우위 사항은 없나?”
외무 대신은 김상 대령을 시험하듯 묻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마나 터빈 엔진 등 추진 기관의 유무도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력을 앞세워 그 위력을 국제사회에 떨친다면 최소한 5년에서 10년에 가까운 시기 동안에는 전쟁 억지력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또 우리 대한제국 북쪽의 광대한 영토에는 몬스터라는 완충지대가 존재하여 육전의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있습니다. 즉 바다만 잘 막아 내면 되는 싸움에서 세종대왕함과 율곡 이이함 두 척만으로도 서해안을 지키는 데 있어서 큰 무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레이더의 성능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준입니다. 거기에 해군 함대는 두 개조로 나뉘어 영해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머지 두 개의 함대를 국제사회에 선보여 우리 대한제국의 강대한 해상 국방력을 과시하면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진 울린 제국이라 할지라도 경계를 하고 섣불리 우리나라에 손을 못 댈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진 않지 않나.”
“이렇게 국제사회에 힘의 우위를 보이며 데뷔를 하는 것만으로는 국내에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 기회에 알테인 왕국과의 동맹을 체결하여 알테인 왕국에 한하여 국가 간 교류를 실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알테인 왕국의 북부에 위치한 세프니아 왕국의 경우에는 바다와 인접한 영토가 없어 직접적인 교류가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당장은 교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울린 제국의 경우에는 강국으로서 언젠가는 우리 대한제국에 대한 야욕을 드러낼 것이고, 위협이 될 존재입니다. 타네스 왕국은 강대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울린 제국의 해군력에 타격이 생기면 필시 호랑이가 사라진 산의 여우로 활동할 것입니다. 즉 잠정적인 적국이 될 소지가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반면 알테인 왕국의 경우에는 국가 전체의 국방력이 현저히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을 지닌 나라이며, 국민들의 정서가 침략과는 어울리지 않는 온순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로 상업을 하면서 주요 국가들과 교류하고 있지만, 큰 부를 축적하지 못한 것은 주변 강대국의 압박이 그 원인이므로, 쉽게 우리 대한제국과 동맹을 맺을 만한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긴 설명이 끝나자 대신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운 듯한 모습을 보였고, 최후까지 반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외무 대신도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럼 그 뒤에 알테인 왕국과의 교류는 어떤 식으로 할 셈이지?”
“개인 간의 상거래는 불허하고, 국가 간의 거래만이 허용되며, 과거 해적들이 본거지로 이용하고 있던 델크트 섬을 교역로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델크트 섬의 경우 대륙에서 상당히 동떨어진 위치에 있으며, 근처에 암초가 많아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해적들의 본거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암초와 해류로 인하여 천혜의 요새로 불리는 이곳을 우리 대한제국이 점령하여 알테인 왕국과의 교역처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하면 타국에서 우리 대한제국의 본토에 대한 정찰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교역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상당히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를 한 김 대령이었다.
“김 대령이 그 정도까지 상세하게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할 능력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군. 문제 제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무나 못 하는 것이지. 나는 김 대령 자네를 다시 봤네.”
국무 대신의 칭찬이 쏟아졌고, 여러 대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익한 상사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렇게 상세한 자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저 혼자서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습니다.”
김상 대령은 부하의 공적을 가로채지 않는 참군인이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본성이 발휘되었다.
“이익한 상사라니?”
여러 대신들이 의아해하자 김 대령은 가볍게 덧붙였다.
“이글아이라고, 다들 아시고 계실 겁니다만.”
“아! 그 이글아이? 벌써 상사인가? 2년 만에 일병에서 상사까지 달았으니, 대한민국 부사관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까무러치겠군.”
“사실 그는 시력만 좋은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특히 각국의 정세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마법 및 몬스터에 관련된 방대한 지식과 활용 능력은 군 내에서도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 그렇게 빠른 출세가 가능하겠지. 그럼 이번 알테인 왕국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성과를 보이면 그에게 마땅한 포상이 있어야 할 텐데…….”
“진급 심사에서 이미 합격했습니다만, 이참에 부사관에서 장교로 이적을 시키도록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활용할 방향은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그럼 성과를 지켜보고, 그에게 의견을 물어본 다음에 중위로 임관시킬 수 있도록 하게.”
“예, 알겠습니다.”
김상 대령은 거수경례를 붙이며 물러났다.
이로써 알테인 왕국에 대한 문제는 김상 대령과 이 상사에게 일임되어졌다.
남아 있는 대신들과 황제는 과거 청해 함대 사령부 시절을 잠깐 회상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늙어 가고 있지만, 다행히도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 젊은이들이 저렇게 유능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피붙이 하나 없는 우립니다. 자식을 위해 재산을 모을 필요도 없는 상황인데, 그저 최대한 성공적으로 나라를 세워 후손들에게 남겨 주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임무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미안하외다. 황제 자리에 올라 있는 주제에 아들딸 두 자식 다 데리고 있는 나로서는, 재산을 탐하지 않을 수 없겠소만.”
“각자 알아서 잘들 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 대령의 성품을 보아하니 훗날 황제 자리를 물려준다고 하면 스스로 내팽개치고 민주주의 제도를 일으켜 세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래 주면 더없이 고맙지요. 지금이야 국가 개발을 위한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한 시점이라 어쩔 수 없이 제국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왕정을 택하고 있지만,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절대왕정은 그리 오래 못 가지요. 특히 내 자식들의 후대부터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에, 형제끼리 아옹다옹하는 꼴을 생각하면 차마 잠이 오질 않아요.”
“다 잘될 것입니다. 비록 고향 땅 대한민국에는 돌아갈 수 없지만, 우리의 힘으로 이곳에서 한민족의 얼을 이어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다 잘될 것입니다.”
황제와 대신들은 상하 관계를 떠나서 군인이었고 전우였다.
그렇게 이들은 그들만의 공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독려하며 국가 발전에 힘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 * *
알테인 왕국의 배들이 서서히 대한제국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 숫자는 열한 척으로, 많다면 많을 수 있으나 적다면 적을 수도 있는 숫자였다.
울린 제국의 경우에는 군함만 백여 척 가까이 보유하고 있는 대국이며, 타네스 왕국의 경우에는 해상무역의 발달로 해군력만 따지자면 울린 제국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세프니아 왕국의 육군은 동원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로 저력이 대단한 나라였다.
이러한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알테인 왕국이 왕국으로서 남아 있는 현실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는 미묘한 힘의 균형에 의한 것이었다. 울린 제국이라는 거대한 힘이 버티고 있고, 타네스 왕국과 세프니아 왕국은 서로 간의 주력이 엇갈려 미묘한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타네스 왕국은 지형적 특성상 섬이 많이 분포해 있으며, 실질적으로 타네스 왕국을 점령하려면 이 섬들을 모두 점령해야 했다.
즉 해군력이 절대적으로 밀리는 세프니아 왕국으로서는 대륙의 영토로는 해안가에 위치한 타네스 왕국을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다. 전쟁 시에는 필시 수시로 바닷가를 공격하게 될 것이고, 일일이 막아 내다 보면 울린 제국의 위협이 부담스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 왕국은 서로 간에 공격을 하는 일 없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반면 알테인 왕국의 경우에는 두 나라가 군침을 흘릴 만도 하지만, 이 또한 울린 제국이 있기에 섣부른 공격을 못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알테인 왕국의 특징으로는 산맥에 둘러싸여 침공이 어렵다는 점도 한몫했으며 울린 제국과 국경을 마주 대고 있다는 점도 있었다. 또 해상을 통하여 침공하려 들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린 제국의 함대와 마주쳐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육로로 힘들게 침공하려 들면 상대적으로 지리적인 요건으로 방비하기가 까다로운 세프니아 왕국의 본토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세 왕국과 제국의 힘의 균형이 미묘하게 유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년 전부터 타네스 왕국이 해군력을 착실히 키우면서 은근슬쩍 주변 두 왕국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심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남아 있는 두 왕국의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타네스 왕국이 빠진다 하더라도 세프니아 왕국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내륙에 위치하였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저 강대한 울린 제국의 육군만 저지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알테인 왕국을 버려두자니 울린 제국의 힘이 너무 강대하여 혼자서는 막기가 버거운 실정이었기에 동맹을 유지하고는 있었다.
그러던 중 틸트항의 괴 사건이 벌어졌고, 대규모의 상선들이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울린 제국의 입장에서는 마동포에 쓰일 마나석을 대량으로 확보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마나석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다른 왕국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울린 제국의 배가 온 바다를 들쑤시며 다녔고, 타네스 왕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프니아 왕국은 해상에서 발휘할 만한 힘이 없는 관계로 그저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중간에 끼어 있는 알테인 왕국은 조심조심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우방인 세프니아 왕국은 이럴 때 전혀 도움이 안되고 있었으니 숨죽이는 수 말고는 달리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해적들을 모아 잊혀진 땅으로 마나석을 찾으러 가겠다는 3왕자의 밀서가 알테인 국왕에게 도착하였고, 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배를 한 척 내보내어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은밀하게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동시에 난리가 났다. 세프니아 왕국이 자꾸만 차갑게 대하자 외교를 돈독히 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공주가 실종되어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나중에야 조사단의 배에 몰래 숨어들어 3왕자가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공주의 실종을 빌미로 해상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타네스 왕국의 입장에서는 알테인 왕국이 나서는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자국으로 보내기 위한 공주가 실종되었는데 어떻게 두 손 놓고 있겠느냐며 협조까지 요청하면서 바다로 나서는 알테인 왕국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알테인 왕국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함대 열한 척이 나섰고, 그 뒤에는 타네스 왕국의 20여 척의 대함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울린 제국은 두 왕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군함 40척을 내보내어 그 위력을 과시하면서 뒤따르는 타네스 왕국을 은연중에 위협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따라붙어 있는 상황에서 실종된 공주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슬금슬금 잊혀진 땅으로 향하는 알테인 왕국이었다.
뒤에는 도합 60척의 배가 따라붙어 있지만 타네스 왕국과 울린 제국은 서로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3왕자가 능력을 발휘하여 해적들을 잘 이끌고, 마나석을 이용하여 저 두 함대가 서로 간에 공격을 하여 힘을 잃게 만든다면, 해적선들과 힘을 합쳐 저들을 훨씬 웃도는 병력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울린 제국의 마동포의 존재가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게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마동포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기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방책은 일찌감치 마련되어 있었다. 갑판에 물을 뿌려 불이 잘 붙지 않게끔 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비책이었다. 그것은 두 왕국 군 모두가 잘 알고 숙지하고 있는 사항이었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저 두 나라를 서로 싸우게 하여 소모되게끔 만들려면, 마나석을 타네스 왕국의 손에 들어가도록 손을 써야 했다. 필시 마나석을 빼앗기 위해 울린 제국이 일전을 벌이게 될 것이고, 그것을 기회로 삼아야 했다.
이 모든 계획의 성사 여부는 3왕자에게 달려 있었다. 해적들을 성공적으로 규합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하고, 마나석을 확보해야 한다는 부수적인 조건이 딸려 있어야지 시행 가능한 계획이었다.
그나마 첫 번째 경우에는 해적들을 몽땅 이끌고 잊혀진 땅으로 향했다는 정보를 통하여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수색을 한답시고 대기하던 중에 3왕자로부터의 연락이 끊겼다.
일찍이 3왕자는 잠시간 연락이 끊길 수도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따라오라고 일러두었었고, 어느 정도의 사태는 예상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비록 왕세자가 아닌 3왕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하는 그 마음과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뛰어나기에 스스로 왕실을 박차고 나와 자신을 따르는 일부 기사들과 함께 해적들을 통합하겠노라며 선언한 3왕자였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피를 강요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왕실에 붙잡혀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3왕자가 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일을 벌이고 있었고, 알테인 왕국으로서는 크나큰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이해득실과 책략이 난무하는 가운데, 알테인 왕국은 조금씩 잊혀진 땅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