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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대한제국 1(21화)
5장 격돌(6)


해적들을 일망타진한 시점에서 해군 사령부로부터 특이 사항이 보고되었다.
해적들 중에 알테인 왕국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저 해적들이 약탈하여 노예로 붙잡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별문제가 없었으나, 해적선장들 중에 한 사람이 알테인 왕국의 왕족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파문이 일었던 것이다.
본명은 크리베르히 데 알테인. 알테인 왕국의 3왕자로 신분을 숨기고 수년 전부터 해적선장으로 해적들 틈에 끼어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수하에 있는 해적들은 모두 알테인 왕국의 기사와 병사 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이번에 잡힌 이들 중에는 알테인 왕국의 공주까지 포함되어 있었기에 일이 복잡해져 버렸다.
크리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3왕자는 일찍이 해적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해적으로 취급해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공주는 달랐다.
정략결혼을 위하여 타 왕국과의 혼담이 오가고 있던 중에 왕성을 탈출하였고 잊혀진 땅의 탐사선에 몰래 숨어들었다가 접선을 시도한 크리브의 배에 옮겨 타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 당돌한 공주는 크리브의 배에 옮겨 타서도 며칠 동안 식량 창고에서 숨어 지냈고, 해적들의 본거지에 다다라서야 발각되었다.
물론 크리브와 그의 부하들이 되돌려 보내려 하였지만, 각 국가들의 군함이 바다를 점령하다시피 다니고 있었고, 그들 중에는 알테인 왕국과는 적대적인 국가도 존재했다.
일단 크리브는 해적이었고, 그의 배는 해적선이었기에 쉽사리 행동할 수 없었고, 작은 보트에 실어 보낸다고 해도 망망대해에서 무사히 알테인 왕국으로 도착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특히 다른 나라의 배에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정치적으로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크리브가 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정기적으로 알테인 왕국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사흘 간격으로 접선을 하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사라졌고, 혼자서도 잘도 숨어드는 이 당돌한 공주는 크리브의 등쌀에 못 이겨 접선 날짜에 맞추어 도망치던 중에 공교롭게도 울리히에게 잡혔던 것이다.
즉 해적들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말이었고, 그것은 사실로 입증이 되었다. 얼마 안 가 십여 척의 배들이 잊혀진 땅으로 접근하고 있음이 포착되었던 것이다.
공주 혼자서 접선을 위해 빠져나가면 당연히 호위가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 당돌한 공주는 혼자서 왕성을 빠져나와 크리브의 배에 숨어드는 데까지 성공한 전적답게 검술도 대단했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검술을 펼칠 정도로 대단한 공주였기에 호위가 붙어 봤자 거꾸로 공주의 발목을 붙잡는 역할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주는 단독으로 빠져나왔으나, 다수의 해적들에게 둘러싸이자 별다른 반항 한 번 못 하고 울리히에게 붙잡혔다.
사실 아무리 소드 익스퍼트라고 해도 흔들리는 조각배 위에서는 그 운신의 폭은 지극히 좁았으며 가진 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해적들은 수영을 못 하는 이가 없었고 물을 방패 삼아 덮쳐 왔기에 결과는 당연했다.
그렇게 보름 동안의 접선이 없던 기간 동안, 알테인 왕국의 배들은 잊혀진 땅으로 가는 뱃길의 바깥에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대한제국 해군이 해적들을 일망타진하고 얼마 안 가서 그들이 접근을 시도해 왔던 것이다.
필시 저들은 자국의 왕자와 공주의 안위가 걱정되어 따라오게 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김상 대령의 신속한 대처로 이런 중요한 사안들은 금방 보고되었으며 초기 청해 함대 사령부, 지금은 대한제국 황실로 바뀐 이곳에서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말이 황실이지 콘크리트와 벽돌을 쌓아 만든 단층 구조의 막사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대규모 인력을 써서 황실을 지을 만큼의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무장을 한 해병대원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었기에, 대한제국 내에서도 가장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이제 우리 대한제국도 국제사회에 발을 디뎌야 할 때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쇄국정책을 이어 왔지만, 불어나는 인구와 각종 식량난, 그리고 여러 가지 생필품에 대해서는 교역을 통하여 공급을 받아야 발전이 가능합니다.”
지난날의 작전참모가 국무 대신으로 임명되어 있었으며,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다.
“제 생각에는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고 생각됩니다. 식량 수급 문제에 있어서도 어군 탐지를 통하여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고, 전라도 일대에서는 경작지를 차츰 넓히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어느 정도 배고프고 힘들지 모르겠지만 얼마 안 가서 자급자족이 가능할 수준에 이릅니다. 오히려 타국과의 외교로 인하여 자국의 약점이 드러나 일제히 공격을 받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도 못 이른 우리나라는 그대로 열강의 먹이가 되고 말 겁니다.”
외무 대신으로 오른 전술참모의 의견이었다.
사실상 식량 수급은 썩 원활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땅의 크기에 비하여 인구가 턱없이 적어 여러모로 많은 불편함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식량의 수급은 소나를 이용하여 어군을 탐지하고 쌍끌이로 잡아 올려 어떻게든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나, 쌍끌이 어선의 폐해는 익히 알고 있었기에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증기기관을 만들어 내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일찌감치 환경 파괴 문제가 거론되어 성립되지 않았다.
그나마 코크스의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양질의 탄소강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고, 그렇게 생산해 낸 철로 단선 철도가 동해안을 따라 태백에서 부산까지 이어졌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기 위하여 국방 마도과학기술 연구소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발명품을 쏟아 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여전히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았다.
도로는 K―2 전차에 도저를 만들어 달아 길을 닦으면서 그나마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장갑차들이 길이 닦일 곳의 나무들에 와이어를 연결하여 뽑아내고, K―2 전차로 도저를 밀어붙이는 형식이었다.
물론 비포장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도로가 매우 신속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각 지방을 연결하는 국도는 아직까지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실정이고, 배를 통하여 수상으로 운송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전라도와 충청도의 광주와 천안에서는 매일같이 5톤 트럭이 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예초기를 공급하여 벌판에 무성히 자라난 잡초들을 걷어 내고, 간간이 눈에 띄는 암석들은 여러 명이 달라붙어 파내는 등의 작업을 하였고, 그 뒤를 5톤 트럭이 지나가면서 흙을 갈아엎는 식으로 경작지 확보를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흙을 갈아엎다 보면 흙에 가려 보이지 않던 암석에 부딪혀 장비가 손상을 입기 일쑤였고, 개간을 하였다 해도 완벽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로의 정비가 뒤이어져야 했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든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기 위하여 공업을 우선 발전시키면서 초고속 성장을 이룩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만큼 생필품의 생산 등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제품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대량생산의 기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미흡한 실정이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의복이 있었으며, 군복의 보급이 완전 제로에 가까운 실정이었다.
그나마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군복에 대해서는 작전 활동에 한하여 착용이 이루어질 정도로 제한되었으며, 3벌씩 보유하고 있던 군복은 단벌이 되어 버렸다. 나머지 두 벌은 일찌감치 작전에 투입되는 새로운 병사들에게 지급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듯 군 내부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 생필품에 대한 공급이 너무 모자란 탓에, 국무 대신은 더 이상의 쇄국정책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외무 대신은 국제사회에 대한제국의 존재를 어필함에 있어서 기반도 다지기 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여러 나라들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 중에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럼 알테인 왕국의 왕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가장 상석에 있지만 여전히 군복을 입은 이는 과거 청해 함대 제독인 김충렬 준장이었다.
지금은 황제가 되었지만 딱히 황제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저 계급장이 위치한 자리에 별이 다섯 개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별도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자국 내 영토에 발을 들이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세종대왕함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크리브 일행의 정체가 밝혀지자 내륙으로 이송하는 것보다는 세종대왕함에 수용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그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자국 내의 좋지 못한 실정을 일부러 밝힐 필요는 없었고, 만약 저들을 국내로 수용했더라면 적어도 수년에서 많게는 수십 년에 걸쳐서 국외로 나가게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때 가장 말단에 있던 김상 대령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대한제국 해군 사령부 소속 대령 김상. 주제넘을지는 모르겠으나 한마디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공적인 자리였고, 그들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책임을 지고 있던 김상 대령이었기에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언권은 없는 그였다. 그저 보고를 하고 질문에 답하면 그만인 것이지만 그는 과감하게 한 발짝 나섰고, 이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군인이긴 하지만 황태자라고 불러도 되는 이가 바로 김상 대령이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다른 대신들도 그의 주제넘는 나섬에도 제지하지 않았다.
“말해 보게.”
국무 대신의 허가가 떨어지자 김상 대령은 설명을 시작했다.
“예.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이렇게 된 바에는 차라리 알테인 왕국과의 동맹을 맺는 것을 건의하는 바입니다.”
“동맹이라니?”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렸다.
김상 대령은 준비해 온 대륙 전도를 펼쳐 보이며 설명을 이었다.
“우선 우리 대한제국은 현재 이 위치에 있으며, 알테인 왕국은 대륙의 남부 끝자락에 위치한 소국입니다. 알테인 왕국의 사람들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알테인 왕국은 북서쪽으로는 타네스 왕국, 북쪽으로는 세프니아 왕국, 그리고 북동쪽으로는 울린 제국에 둘러싸인 입장이며, 세프니아 왕국과는 동맹을 맺어 울린 제국을 경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프니아 왕국은 육군의 능력이 강하며, 타네스 왕국은 해군력이 강한 나라입니다. 울린 제국이 남부의 세 왕국에 섣불리 손을 못 댄 것은, 이들 왕국과의 힘의 균형이 미묘하게 맞추어져 있는 실정이었기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 최근 울린 제국의 해군력이 급등하고, 타네스 왕국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인하여 힘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육군, 해군, 어느 것 하나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지 못한 알테인 왕국은 일찍이 3왕자를 내보내어 해적들을 통합하고, 비밀리에 해군력의 강화를 꾀하였습니다만, 그 해적들이 우리 대한제국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 탓에 그야말로 고립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김상 대령이 말을 이었다.
“당초 해적들은 공식적인 알테인 왕국의 해군이 아니며, 실질적으로 활용하기에도 어려운 점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제국이 울린 제국에서 대규모로 물자와 인력, 그리고 배 들을 마나석을 팔아 빼내 오자, 해적들을 선동하여 우리 대한제국의 영해에 침범을 시도한 것입니다. 각 국가들에 있어서 마나석이라는 자원은 지극히 중요한 자원으로, 전쟁에 있어서도 그 판도를 바꿀 만한 위력을 지닌 것입니다. 현재 대륙 전체의 마나석 보유량을 비교해 보면, 울린 제국이 가장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륙 곳곳에 있는 수십 개의 국가들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김상 대령은 좌중을 둘러보며 대신들의 반응이 괜찮음을 확인했다.
“반면 우리 대한제국은 현재까지의 지질조사 결과 지금과 같은 추세로 마나석을 캐낸다면 앞으로 50년 동안은 채취가 가능한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실제로 재활용이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무한에 가까운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즉, 우리나라는 마나석 자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강대한 국력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나석 40킬로그램만으로도 어지간한 왕국을 사 버릴 정도로 대륙 전체의 마나석에 대한 가치는 지극히 높은 상태입니다. 이만한 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력이 부족하고 생필품이 부족하여 타 왕국에 비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애석하기 짝이 없는 실정입니다만, 우리 해군이 전 세계 최강의 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한다면, 앞서 거론된 우리나라의 실정을 타국에 알리지 않고도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사천리로 설명하는 김상 대령이었고, 일부 대신들은 그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