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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
신령들의 탄생



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1화)
프롤로그


하늘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할 뿐이었다.
나 광진자(狂陣者)의 삶은 그 하늘의 무심함으로 인해 어린 시절을 비참하게 보내야 했다. 사파 최강의 문파라는 혈사방의 흉한들의 손에 가족 모두를 잃고는 홀로 살아남아 고통스러운 일생을 살았다.
나의 분노는 태산을 뒤엎을 정도였고 나의 원한은 하늘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하지만 분하게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혈사방의 놈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초상승의 무공이 필요했는데 내게는 초상승의 무공은 있었지만 그 무공을 익히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단전이 파괴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아아!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내게서 가족을 앗아 가더니 이제는 복수할 힘마저 앗아 가는구나!

나는 절망감에 빠졌다.
하늘이 원망스러웠고 나중엔 그 하늘을 저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복수를 포기하라고 하는 건 나 광진자 보고 죽으라는 소리와 같은 것이었다.
무공을 익힐 수가 없다면 그 무공보다 더 강한 다른 힘을 익히리라 다짐했다. 다행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라 온 천재였고 모처에 있는 가문의 비고(秘庫)에 들어가 그곳에서 무공이 아닌 다른 힘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거기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사파 제일의 문파라는 혈사방.
그곳을 단숨에 무너트릴 수 있는 절대의 힘을 보게 된 것이다.
희망을 보게 되니 힘이 넘쳐흘렀다.
결국 나 광진자는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폐관수련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니, 그것은 수련이 아니라 연구라 해야 옳았다. 절대의 힘은 완전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가능성만을 보여 준 것이기에 내 스스로가 연구를 해 그 힘을 완성시켜야 했다.
십 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십 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래도 연구는 끝을 맺지 못했다. 결국에는 오십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흘러서야 그 연구는 끝을 맺게 되었다.
허탈했다. 절대의 힘을 연구하는 데 무려 오십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으니……. 이제 그 힘을 몸으로 직접 수련해야 하는데 그게 결코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한 번 바깥세상에 나가 보았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오십 년이면 무림의 정세가 많이 바뀌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수련에 앞서 한번 바깥세상의 동태를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 광진자는 바깥에서 또 한 번의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사파 제일의 방파라는 혈사방이 삼십여 년 전 정파의 기습적인 공격에 멸문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아아……! 하늘은 끝까지 나를 희롱하는구나!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어떻게 할 수가 없는 푸르른 하늘.
전신에 힘이 빠졌다. 마음이 공허해졌다. 복수 하나만을 생각하며 수십 년을 외롭게 폐관연구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복수 대상자가 사라지고 말았으니.
나 광진자는 힘없이 다시 가문의 비고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련에 들어갔다.
복수는 비록 하지 못했지만 수십 년을 연구해 만든 이 절대의 힘만큼은 완성을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혹시 잘못된 것은 없는지 직접 익혀 오류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짧지 않은 세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수명은 이제 다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 광진자는 만족스러웠다.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시킨 이 절대의 힘이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나이가 있어 두 번째 단계밖에 이루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궁극의 단계인 다섯 번째 단계가 어떠할지 짐작이 갔다.
나는 죽음에 앞서 이 힘을 남겨 두기로 결심했다.
나의 최고의 유작인 이 힘을 후인 중의 누군가가 익혀 무공을 익힌 무인들보다 더욱 강력한, 이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그런 힘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 주기를 바랐다.
악인이 익히든 선인이 익히든 상관이 없다.
하늘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 그저 무심한 존재일 뿐이니 누가 익혀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내가 걱정스러운 것은 오십 년을 넘게 연구해서 만든 이 힘을 후인 중의 어느 누가 익힐 수 있을지 뿐이다.
상승무공이 재능이 있어야지만 익힐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정리해 만든 이 힘도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지만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걱정이 든다. 후인이 혹시 내가 연구해 완성시킨 이 힘을 거짓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을지……. 그냥 꾸며 낸 이야기라고 치부하지는 않을지…….
특별한 재능을 지녀야지만 익힐 수 있는 절대의 힘.
후인은 믿기를 바란다. 자신이 익히지 못한다고 해서 이 서책에 쓰여 있는 내용이 단순히 꾸며 낸 이야기일 거라 생각하면 아니 될 것이다. 익혀지지가 않으면 자신의 재능을 탓하면 되는 것이다.
믿어라. 믿어야 한다.
믿어야지만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지극한 믿음은 모자란 재능을 채워 줄 수도 있으니 강한 신념으로 익히기를 바란다.
만약 익혀 낼 수만 있다면 그대는 강자가 모래알처럼 많다는 무림에서 하나의 별이 되리라. 아니, 하나의 별이 아닌 이 세상을 굽어보는 하늘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별들을 아우르는 절대무적의 하늘이…….



Chapter 1 의선곡에 떨어진 날벼락(1)


산서성(山西省)의 북동부에는 산세가 험한 오태산(五台山)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산 같지만 사실 이 오태산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곳 오태산엔 중원 천하에서 의술로 명성이 자자한 의선곡(醫仙谷)이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물론 무림인이나 황실의 인물들에게까지 두루 알려져 있는 의선곡. 그곳은 아픈 사람들에게는 진정 하나의 구명줄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불치의 병도 그곳에서는 치료의 가능성이 있었으니.
의선곡은 자연히 성역이 되었다.
황실은 물론 무림의 문파들까지 의선곡이 있는 오태산을 성역으로 정해 누구도 함부로 싸우지 못하게 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의선의 땅.
모든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
한데 오늘 이곳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미시(未時) 중반.
촤아아악. 촤아아아악.
시원한 물소리다.
커다란 우물가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부지런히 물을 긷고 있었다. 그는 장이란 이름의 하인으로 이곳 의선곡에서는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자아, 이건 됐고 그럼 이제는…….”
하나의 물동이가 다 차자 그는 또 다른 물동이를 바로 우물가 앞으로 옮겨 놓았다. 잠시 농땡이를 부려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건만 그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했다.
확실히 그는 이곳 의선곡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촤아악. 촤아아악.
그때 무얼 보게 됐는지 그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갔다.
“으응? 소곡주님이시잖아?”
산책로의 길을 따라 한 소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장이는 그 소년이 오 장 앞으로 다가오자 곧바로 허리를 숙여서는 인사를 했다.
“아이구, 소곡주님! 안녕하세요.”
“으응. 장이구나, 헤헤. 수고가 아주 많네.”
올해 열세 살이 된 소곡주.
소곡주의 이름은 위천희였는데 그 생김새를 말해 보라면 미동(美童)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가 있었다.
귀염성이 다분한 얼굴에 두 눈에는 믿기 힘들게도 혜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흑요석(黑曜石)을 박아 놓기라도 한 듯 위천희의 검은 눈동자는 빛이 났고 그 빛나는 눈은 아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려 주고 있었다.
“헌데 소곡주님은 요즈음 왜 그리 바삐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반 시진 전에는 곡의 입구로 가시는 듯하더니 이제는 반대 방향인 이곳으로 오셨군요.”
“헤헤. 그럴 일이 있어.”
장이의 물음에 위천희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장난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기다려 봐. 내가 아주 깜짝 놀랄 그런 것을 곧 보여 줄 테니까. 장이뿐만이 아니고 의선곡의 모든 사람이 놀랄 일을 말이야.”
“깜짝 놀랄 일이요?”
“헤헤. 그래. 깜짝 놀랄 일이야. 누구나 놀랄 그런 일. 세상 사람 모두가 놀랄 그런 일.”
장이는 소곡주가 말하는 바를 생각해 보았다.
과연 세상 사람 모두가 놀랄 일이란 어떤 것일까?
모른다. 소곡주는 범인과는 다른 기인이었으니 하는 일은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것뿐이다.
지난 이삼 년간 의선곡에서 벌어졌던 일들 중의 큰일은 대부분이 소곡주가 벌여 왔다. 상상을 초월한 믿기 힘든 일들.
소곡주의 나이 이제 열세 살이다. 열세 살이라면 매우 어린 그런 나이이기는 하지만 소곡주는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천재였고 또한 기인(奇人)이었다.
기환소공자(奇幻小公子), 풍운소공자(風雲小公子), 신비소공자(神秘小公子), 신동(神童), 괴동(怪童) 등등.
이 별호들은 모두 소곡주를 이르는 것이었다.
‘으음, 기인이라 할 수 있는 소곡주님. 아무래도 이번에도 어떤 대단한 일을 벌이시려는 모양이구나. 이거 내가 다 기대가 되는걸. 과연 어떤 일을 벌이실지 말이야.’
촤아아아아아.
우물가에 매달려 있는 두레박.
그 두레박에 가득 차 있는 물이 물동이에 쏟아져 들어간다.
장이는 물동이에 물을 채우며 물었다.
“소곡주님이 지금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아니겠지요? 예전에 두 번이나 큰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으응. 안심해. 그때 하고는 달라.”
“그렇습니까?”
“헤헤, 그래. 이번에는 그저 신기한 일이야. 나중에 놀라지나 말라고.”
위천희는 입가에 장난기가 깃든 그런 웃음을 지으며 장이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다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오른손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 대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아, 그리고 이건 비밀이야. 내가 무언가 계획을 짜고 있다는 것은 장이만 알아 둬, 알았지?”
“하하, 예에, 알겠습니다.”
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장이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니까, 내 믿겠어. 모두가 놀래야 하는데 다들 짐작하고 있으면 재미가 없지. 헤헤.”
“걱정 마십시오. 저의 입은 소곡주님이 믿는 바처럼 아주 무거운지라 설혹 마교의 사악한 마두들이 저를 고문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믿음직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사실 장이는 말뿐이 아닌 실제로도 믿음직한 사나이였다.
“좋아. 그럼, 계속 수고해. 나는 이만 가 볼게.”
“예, 알겠습니다.”
위천희는 장이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는 곧 발걸음을 빨리해서는 안식림(安息林)이라는 이름이 붙은 숲 속으로 향했다.
“헤헤헤.”
시간이 지날수록 위천희는 마음이 들떴다.
안식림에서의 일이 끝나면 이제 열흘간에 걸쳐서 했던 일이 거의 다 마무리가 되기 때문이다.
부스럭부스럭.
작은 수풀이 위천희의 발끝에 밟혀 비명을 내지른다.
안식림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산책로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상태라, 위천희는 가고자 하는 곳에 얼마 되지도 않아 곧 도착했다.
꽉 막혀 있는 곳, 안식림의 끝은 높다란 절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까지 선을 그으면 돼.”
위천희는 팔십여 장 높이의 절벽을 한차례 훑어보더니 곧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붉은빛이 은근히 감돌고 있는 한 자(30cm) 길이의 나뭇가지로 모두 십여 개나 되었다.
“대규모로 실험을 하는 것이니까 일반의 물건보다는 이 자단목의 나뭇가지가 훨씬 나아. 이미 몇 번을 실험해 봤으니까 틀림이 없어.”
위천희는 자신했다. 이미 이십여 차례의 실험을 통해 확신을 한 상태인지라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일도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헤헤. 좋아, 그럼 이제…….”
위천희는 풀밭에 가부좌의 자세로 앉았다.
그리곤 두 눈을 감고는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무림인들이 내공수련을 쌓는 것 같은 그런 모습.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위천희는 지금 내공수련을 쌓는 게 아니라 안식림과 절벽이 마주하고 있는 이 지역을 마음의 눈으로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꼭 이 지역만 살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선곡 전체를 살피고 있는 것이라 해야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