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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2화)
Chapter 1 의선곡에 떨어진 날벼락(2)
믿기 힘든 일이다. 열세 살의 아이가 의선곡 전체를 마음의 눈으로 살펴보다니……. 지금 녀석이 하고 있는 일은 무림에서도 초절정 이상의 고수들에게나 가능했다.
일각(15분)의 시간이 흐른 후, 녀석의 감겨져 있던 두 눈은 떠졌다.
“헤헤, 맞구나.”
뭐가 맞았다는 것일까? 녀석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걸음을 옮겨서는 절벽의 왼쪽으로 다가가 큰 바위가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위천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차례 보고는 다시 자신이 서 있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헤헤.”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맺혔다.
스윽.
손에 들려 있는 붉은 빛깔의 나뭇가지가 서서히 밑으로 향하더니 곧 부드러운 흙바닥 위에 놓여졌다. 아니, 그건 놓이는 게 아니라 바닥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원래부터 하나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붉은 나뭇가지는 손가락 길이만큼만 남겨 놓고는 전신을 바닥 속으로 스스로 집어넣더니 곧 안개에 휩싸이기라도 한 듯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부스럭.
위천희는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에 한 것처럼 근처를 돌며 똑같이 붉은 빛깔의 나뭇가지를 바닥 속으로 깊게 박히게 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녀석은 볼 수 있는 듯했다.
바닥에 나뭇가지를 꽂는 일은 아홉 번째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더 이상은 필요 없었다. 이제는 다 된 것이었다.
“아자자자자―!”
위천희는 두 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려서는 힘차게 기지개를 폈다. 시원한 가을의 날씨인데도 그의 얼굴은 한여름이기라도 한 듯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별거 아닌 듯이 보였던 방금 전의 일이 꽤나 심력을 소모시킨 모양이었다.
“헤헤. 이제는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일은 이제 모두 끝이 났다.
준비는 완벽히 끝냈으니 이제는 발동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발동을 시키는 그 시간은 의선곡의 사람들이 모두 꿈나라로 가는 축시(丑時)가 제격이었다.
“좋아, 좋아. 이제는 돌아가자.”
위천희는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부엉부엉.
찌르륵. 찌르르륵.
밤새와 풀벌레가 왕성히 활동을 하고 있는 새벽의 시간이이다.
의선곡의 동부에는 수십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고 중부에는 제법 큰 광장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 전각이 있는 동부에서 누군가가 이 광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 척(1m 50cm)이 안 되는 작은 키의 소년.
그는 위천희였다.
녀석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는 조심스럽게 광장에 누가 있는지를 살폈다.
“좋아, 아무도 없구나.”
달빛이 구름에 가려진 어두운 새벽이지만 위천희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인 초감각 덕택에 확신할 수 있었다.
저벅저벅.
걸음이 빨라졌다.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되자 녀석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고 잠시 후에 그는 연무장으로도 쓰이는 광장의 중앙에 가 서게 되었다. 그리곤 바로 자리에 가부좌의 자세로 앉았다.
찌르륵. 찌르르륵.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후으읍. 휴우우우…….”
위천희는 심호흡을 길게 한번 내쉬었다.
왠지 마음이 들떴다.
찌르륵, 찌르르륵.
원래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차분히 해 주는 그런 효능이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지가 못했다. 열흘 넘게 해 오던 일을 이제 마무리하는 그런 시점인지라 가슴이 두근거리며 계속해서 들떴다.
“휴우우우, 중요한 순간이니 마음을 가다듬어야 해.”
심호흡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안정되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구름 사이에 가려져 있던 둥근 보름달이 지금은 밖으로 나와 있었다. 마치 지금부터는 위천희가 하려는 일을 자세히 보려는 듯이 보름달은 구름을 헤치고 은근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되겠지?”
구름을 이겨 낸 달에게 질문을 해 본다.
하지만 달은 그저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결국 그 대답은 스스로가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 될 거야. 이미 몇십 번을 성공시켰으니 이번에도 틀림없이 될 거야.”
확신의 대답이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흐음,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더 이상 미적거릴 이유는 없었다. 위천희는 즉시 품속에서 붉은빛을 내는 나뭇가지를 하나 꺼내들었다. 여러 개가 아닌 단 하나. 그 하나면 충분했다.
스윽.
붉은 빛깔의 나뭇가지는 곧 위천희가 앉아 있는 곳의 바로 앞, 대지 속으로 꽂혀져 들어갔다.
두근두근.
안정이 된 가슴이 다시 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놀랄 그런 일을 이제 자신이 한다고 생각하니 기대감이라고 하는 게 전신을 휩쓸었다. 이것은 의선곡의 역사에 길이 남을 그런 일이 될 것이다.
지이이잉.
허공에서 갑자기 진동음이 들려왔다.
이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일까?
“좋아. 시작이구나.”
위천희는 즉시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곤 특이한 호흡법을 행하며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떠올렸다.
심상(心想) 속에 그려지는 그것은 하나의 풍경이었다.
흐릿한 풍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해졌는데 그 풍경은 이곳처럼 가을 날씨가 아닌 후덥지근한 날씨를 보이는 곳으로 곳곳에는 하늘을 가리는 활엽수가 보였다. 마치 밀림을 보는 것 같은 그런 장소.
우우우우우우웅.
심상 속에 그려진 그림이 또렷해지자 위천희가 앉아 있는 곳의 주변 공간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만 갔다.
원래 이런 변화는 없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몇 차례의 실험을 보자면 이런 공간의 떨림은 짧게 한 번으로 끝이 났었다. 지금처럼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었다.
‘으응? 좀 이상한데?’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드는 위천희.
스스로에게 납득의 말을 해 봤다.
‘아니야. 이상할 거 없어. 아무래도 이건 대규모로 하는 실험이라서 그런 걸 거야. 지금까지는 사물의 한 가지만을 가지고 실험을 했었으니 말이야. 괜찮아. 성공할 수 있어.’
위천희는 강한 의지로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고는 계속해서 하던 일을 밀고 나갔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건 객관적으로 봐도 실패할 일이 없는 것이었다.
우우우우웅.
불안스레 떨리던 공간은 곧 멈추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시작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공간이 이지러진다. 그리고 이지러진 공간은 위천희가 있는 광장뿐만이 아니고 수만 평이 넘는 의선곡 전체를 뒤엎었다.
밤새와 풀벌레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조용하기만 했다. 지금은 새벽의 시간.
의선곡의 사람들은 모두 편안한 밤을 보내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단지 몇 명의 절대고수들만이 잠자리가 왠지 불편하다고만 여길 뿐이었는데 그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며 억지로 계속해서 잠을 청했다.
그들 절대의 고수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 광장으로 왔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고 말았다.
잠시 후, 의선곡은 환한 빛에 휩싸여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후화아아아아악.
***
인시(3시∼5시) 말이다.
아직까지는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끼이익.
대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밖으로 나왔다.
듬직한 체구에 마의를 걸치고 있는 그는 의선곡에서 제일 부지런한 장이였다. 그의 뒤로는 곧 또 다른 사내들이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같이 가요, 장이 형!”
“뭘 그렇게 꾸물거려. 빨리 나와.”
그들은 모두 손에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장이는 삼십여 명의 하인들 중에서도 최고참인지라 그들의 지역을 할당해 주었다.
“너하고 너는 여기를 맡아. 춘동이 너는 저 녀석들을 데리고 연무장을 맡고. 그리고 호상이하고 왕대구는…….”
의선곡의 시작은 청소다.
삼십여 명의 하인들은 장이가 지정해 주는 장소로 빗자루를 들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장이는 동갑내기 친구인 소도삼과 같이 의선곡의 입구로 가서는 바람에 흩날린 낙엽들을 부지런히 치우기 시작했다.
슥슥슥. 슥슥슥.
능숙했다. 이십여 년을 넘게 해 온 일이라서 그런지 장이와 소도삼의 빗자루 질은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날은 아직까지 어두웠지만 두 사내의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고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장이야. 너도 이제 장가를 가야지.”
소도삼의 말에 장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생각 없어.”
“뭐가 생각이 없냐? 네 나이도 이제 서른이야. 애가 벌써 서넛은 있어야 하는 그런 나이라고.”
소도삼은 친구가 빨리 혼인을 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경우는 스물하나에 혼인을 해서는 지금은 애가 둘이나 되었다.
“인연이 안 닿는 걸 어떻게 해?”
“인연은 무슨?”
소도삼은 장이가 괜한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혼인을 약속했던 여자가 근방의 돈 많은 노인네에게 시집을 가 버려 그 일로 여자에 대한 불신이 생겨서는 아직까지도 혼인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혼인이라고 하는 것은 다 때가 있는 거야. 더 늦기 전에 용화촌에 자주 들락거려. 만약 네가 힘들다면 내가 다리를 놓아 줄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저번에 보니 용화촌에 참한 아가씨들이 많이 보이더라.”
“으음, 알았어. 내 생각해 볼게.”
“생각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올해 안으로 장가를 간다고 생각을 해.”
소도삼은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나이에 장가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옆에서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보다 쉽게 갈 수가 있는 것이었다.
슥슥슥. 스슥슥.
장이와 소도삼은 잡다한 얘기를 나누며 부지런히 낙엽들을 한쪽으로 치웠다. 그러다가 그 두 사람 중 장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새벽하늘을 바라봤다.
“이상한데?”
“뭐가?”
장이는 자신의 얼굴을 한번 매만져 보고는 그 손을 친구에게 내밀며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점을 설명해 주었다.
“날씨가 이상하잖아. 지금은 가을이야. 그러니 새벽 시간이면 조금 쌀쌀해야 하잖아. 헌데 이렇게 잠깐 일을 하는데 내 얼굴에 땀이 묻어나고 있어.”
“으응? 그러네? 그러고 보니 내 얼굴에도 땀이 나잖아.”
소도삼은 친구처럼 자신의 이마에도 땀이 흐름을 알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이상했다. 머릿속으로 이상함을 깨닫자 주변의 공기가 쌀쌀한 게 아니라 조금은 후덥지근함을 알 수 있었다.
“뭐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상해. 이건 마치, 마치 여름 장마철의 새벽 날씨 같아.”
두 사람은 이상한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날은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기 때문에 사물을 보는 것은 좀 전보다 쉬웠다. 그들은 발걸음을 옮겨 의선곡의 밖으로 나가보았다. 두 사람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어스름한 새벽의 시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보여야 할 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으응? 이봐, 장이! 뭔가 이상한데?”
“그, 그래!”
두 사람의 눈이 커다랗게 부릅떠졌다.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듯 그들의 입가는 잘게 떨리기 시작했고 그들의 시선은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없어! 없어졌어! 쌍룡봉과 구첨봉이 보이지 않아.”
“맞아.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보여야 할 게 보이지 않고 주위는 온통 거대한 삼림으로 가득 차 있어.”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의선곡의 입구에 나오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이지 않다니…….
의선곡은 원래 오태산에 자리 잡고 있기에 주위는 당연히 수풀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수풀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닌, 밀림에 오기라도 한 듯 거대한 활엽수들이 주위를 빼곡히 감싸고 있었다.
“크, 큰일이야. 빨리, 빨리 안에 연락을 넣어야 해.”
소도삼의 말에 장이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이 순간 단 한 사람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만난, 의선곡의 소곡주인 위천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서, 설마 지금의 이 일이…….’
그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