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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3화)
Chapter 1 의선곡에 떨어진 날벼락(3)


“뭐 해? 빨리 돌아가자고. 가서 총관님과 당주님께 알려야 해. 의선곡에 변괴가 일어났다고 말이야.”
소도삼의 재촉에 장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아. 빨리 가자.”
툭, 툭!
들고 있던 청소 도구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뒤, 두 사람은 의선곡의 총관과 재무당주의 처소를 찾아가 일의 심각성을 알렸다.

웅성웅성.
의선곡의 입구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는 떠들고 있다.
백의를 입고 있는 그들은 대부분 의원들이었는데 현재 그들은 의선곡에 벌어진 괴이한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날씨가 덥군. 이곳은 결코 중원이 아니야.”
“맞네. 이곳은 운남의 날씨와도 달라. 아열대 기후가 아닌, 완전한 열대 기후가 아닌가 싶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였다. 날은 아침부터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하더니 오후가 되자 찐득찐득한 날씨로 바뀌었다. 더운 데다가 습도까지 높으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일세. 세상이 한순간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야.”
“과연 어느 누가 믿을 수 있을지…….”
“믿지 못해도 믿어야 하겠지. 지금 이렇게 의선곡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으니 말일세.”
의원들은 지금의 이 같은 일이 어떻게 해서 벌어지게 된 것인지, 또한 어찌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선을 다함께 의선곡의 입구 가장 앞에 서 있는 인물에게로 향했다.
반백의 머리에 인자해 보이는 칠십 대의 노인.
그는 이곳의 곡주이자 당대의 의선인 위현상이었다.
“흐음…….”
위현상은 뒷짐을 진 채, 길이 나 있지 않은 짙은 삼림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심유한 빛을 발했다. 무언가를 탐색하는 그런 눈빛. 잠시 후.
“이제 오는군.”
그의 기감에 일단의 사람들이 포착되었다.
150여 장(4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신법을 펼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일을 그처럼 손쉽게 알 수 있는 걸로 봐서 위현상 그는 단순한 의선이 아니라 무공 쪽으로도 상당한 경지에 이른 그런 고수인 게 틀림이 없어 보였다.
휘이익. 휘이익.
무인들은 신법의 도움으로 곧 장내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흑의에 검은 장포를 두르고 있는, 정파인의 모습 같지가 않고 마치 사파인 같은 그런 패도적인 기운들을 뿜어내는 무인들이었다.
지금은 후덥지근한 오후이지만 그들은 더워 보이는 장포를 그대로 몸에 두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삼십여 명의 무인들 중 나이가 삼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벅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였다.
짙은 눈썹에 한 자루의 검처럼 매섭게 빛나는 두 눈.
거기에 사내의 몸에서는 만인의 심신을 억누르는 그런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하늘의 패왕이 지상으로 강림한 듯이 매우 무시무시해 보이는 사내.
“어떻게 됐느냐?”
위현상의 물음에 무시무시해 보이는 사내가 대답했다.
“확실히 여기는 중원 땅이 아닙니다, 아버님.”
“그래?”
“예, 그렇습니다.”
의선에게 지금 보고를 하고 있는 사내의 이름은 위극혼으로서 그는 위현상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자 현재는 무림맹 최강의 부대라는 멸마대(滅魔隊)의 대주 신분을 지니고 있는 사내였다.
“주변의 이십 리 근방을 샅샅이 돌아다녀 보았지만 인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변의 산천이 제가 보아 오던 중원의 것과는 달라 이곳이 남방의 어느 이름 모를 지역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흐음…….”
위극혼의 말에 의선은 침음성을 흘렸다. 대주가 어떤 단서를 알아 오기를 바랐는데 틀리고 말았다.
과연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기라도 한 듯 그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세상엔 질병의 종류가 참으로 많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고치지 못하는 병을 이곳 의선곡에서는 고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황실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선곡인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엉뚱한 곳에 자리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님. 소자가 내일부터 천자조 대원들과 같이 이곳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위극혼은 의선이 침중한 표정을 짓자 안심시켜 주는 그런 말을 꺼냈다.
“이곳의 토착민들을 만나면 금방입니다. 대원들을 사 개 조로 나누어 사방으로 향하게 하면 며칠 내로 돌아갈 방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으음, 그럴 수 있다면야 좋긴 하겠다만…….”
의선은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들은 며칠 내로 돌아갈 방도를 알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그의 생각에는 힘들어 보였다.
‘이곳의 토착민들을 만난다 해도 한참이 걸려야 돌아갈 수 있을 듯해. 내가 작년에 손자 녀석을 데리고 갔던 운남의 기후도 이렇지는 않았으니. 이곳은 운남보다도 훨씬 남방에 위치한 지역이야. 그리고 여기는…….’
문제는 한 가지뿐만이 아니다.
이곳은 자신들 중원 사람들의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땅일 게다. 당연히 사람들을 만나도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으니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려야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휴우우우…….”
의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구나. 어찌해서, 무슨 이유로 하루아침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가 있는 건지.”
“…….”
위극혼은 지금 하는 의선의 말에 침묵했다.
그는 생각했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의선곡은 오태산의 밑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위극혼 그는 해시(21시∼23시) 말까지 오태산의 정상에서 무공 수련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틀림이 없었다.
한데 단 몇 시진 만에 의선곡이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지역에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늘의 조화였다. 무림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기인이사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기상천외한 일을 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으응? 잠깐!’
무슨 일일까?
위극혼의 두 눈에 갑자기 이채가 띠었다.
‘무림의 기인이사? 그래, 맞아. 그 녀석이야. 그 녀석이라면 혹시 모르는 일이야.’
위극혼의 눈길이 저도 모르게 의선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때마침 의선도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대주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
아무 말 없는 두 사람.
지금 의선과 멸마대주는 마음속으로 서로 뜻을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그건 뜻을 주고받는 게 아닌, 그냥 통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천희를, 천희를 찾아보거라.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게 매우 수상쩍구나.”
“예, 알겠습니다. 아버님.”
현재 의선곡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모두가 하던 일을 접고 밖으로 나와서는 주변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러한 때에 열세 살의 나이로 한창 세상에 호기심을 보일 의선곡의 소곡주가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수상쩍은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곡주는 이곳 의선곡에서 기인이라 불리는 소년이지 않은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이 녀석, 천희가 틀림이 없어. 녀석이 뭔가 조화를 일으킨 게 분명해.’
위극혼은 눈에 불을 켜고는 뒤에 있는 대원들과 함께 빠르게 아들을 찾아 헤맸다.



Chapter 2 진법총람(1)


뭐가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고민을 해 봐도 알 수가 없다.
전에 실험과 뭐가 달랐는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그건 규모가 좀 크다는 것 하나뿐이다. 다른 건 틀린 점이 하나도 없었다. 분명 몇십 번의 실험을 통해 확신을 한 상태인지라 이번에도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는데……. 아니, 아니다. 성공을 하기는 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뿐이다.
문제……. 예상치 못한 그 문제!
그것은 바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의선곡이 원래 있던 자리인, 산서성 북동부에 있는 오태산으로 아무리 해도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과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일까?

툭!
둔탁한 소리가 난다.
석탁의 위로 한 뼘 가까이 되는 서책이 힘없이 놓였는데 그 두꺼운 서책은 모두 두 권이나 되었다.
“아아, 모르겠다, 정말.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잘못한 것은 없어. 그럼 이 일은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야.”
위천희는 실망하는 그런 눈빛을 잔뜩 내보이고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그리곤 고개를 삐딱하게 세운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금 녀석이 있는 이곳은 사방에 안개와 같은 흰 기류가 십 장 반경으로 둘러져 있었다. 하늘도 마찬가지로 안개와 같은 것에 가로막혀 있었는데 그 안개가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어 안쪽은 전혀 어둡지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석탁과 같은 돌로 만든 물품이 보인다.
그것은 책장이었다. 위천희 그가 앉아 있는 곳의 뒤로는 돌로 만든 책장이 있었고 거기엔 천여 권의 서책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책의 절반가량은 의서였고 나머지는 전부 기문둔갑과 같은 좌도방술과 도가의 경전들이었다.
이곳은 그만의 공간이었다.
그가 데리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밀의 공간은 의선곡의 곳곳에 아무도 모르게 설치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괜찮은데 문제는 아버지란 말이야. 내가 한 일을 알게 되면 불호령을 내리실 텐데…….”
아버지를 생각하니 녀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에이, 아버지는 그냥 무림맹에 계속 계시지 휴가철도 아닌데 괜히 오셔 가지고 말이야. 그 애들을 호위하기 위해서 왔다는 게 말이 돼? 삼존 할아버지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 된다고. 분명 아버지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는 괜한 핑계를 대고 오신 걸 거야.”
투덜거려 보지만 그건 위안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마교인들이나 사파인들에게 사신(死神)으로 통하는 아버지.
위천희는 그런 아버지가 매우 자랑스럽지만 지금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모두는 천희 그가 하는 일은 웬만해서는 다 감싸 안아 주는 편이지만 아버지는 항상 엄격하게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변명거리를 만들기는 해야 하는데…….”
일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다. 그러니 이제는 아버지를 비롯한 모두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다. 불행한 일 속에서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어야 했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오는구나. 일이 잘됐으면 크게 웃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그 결과가 이리 되고 말았으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찾아볼 수밖에 없어.”
위천희는 몸을 똑바로 하고는 석탁에 놓인 두꺼운 책자를 바라보았다.
왼쪽에 놓인 서책의 표지에는 진법총람(陣法總攬)이라는 제목과 함께 상권이라, 오른쪽에 있는 서책에는 같은 제목에 하권이라 쓰여 있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나에게 희망으로 다가온, 무림에 전해지는 초상승의 무공 서적보다 더 귀중한 나의 보물. 이번 일은 나를 실망시켰지만 그래도 너는 여전히 나에게 있어 최고의 보물이다. 결과가 비록 좋지 않게 되었어도 말이야.”
스윽. 사락사락.
위천희는 자신이 보물처럼 생각하는 진법총람의 하권을 들어서는 방금 전에 읽어 내려갔던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흐음…….”
사실 그렇게 책을 뒤적거릴 필요는 없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녀석은 진법총람의 상하권을 모두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진법총람뿐만이 아니다. 그의 뒤에 있는 천여 권의 의서들과 기타 서적들도 마찬가지로 전부 외우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암기력이었다.
그리고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위천희 그는 책을 외웠을 뿐만이 아니라 전부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역시 아무리 살펴봐도 선천진법(先天陣法)의 시작인 이동진(移動陣)은 잘못된 부분이 없어. 의선곡이 여기에 이렇게 떨어진 것이 그걸 증명해. 성공은 한 거야. 문제는 이곳이 나의 심상 속에 그려진 그림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동네라는 데 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책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어. 책의 저자도 이런 것은 예상치 못한 거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일은 그저 재수가 없었다는 거지.’
책을 읽으면서 차분히 생각을 이어 나가는 위천희.
녀석은 의선곡의 어른들이 조금이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빠르게 차선책을 강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