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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4화)
Chapter 2 진법총람(2)
‘으음, 돌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내 능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구나. 진법 실력을 키워야 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걸어서 가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몰라. 아니, 어쩌면 걸어서는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어. 여기는 중원과는 전혀 다른 그런 대륙일 확률이 높으니까.’
사락사락.
점점 빠르게 넘어간다.
위천희는 희대의 기서인 진법총람을 의미 없이 넘겨 읽으며 의선곡의 사람들에게 전해 줄 말을 정리해 나갔다. 정확히는 자신이 덜 혼이 날 그런 말을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먼저 아버지의 불호령을 막아야 하는데…….’
아버지! 먼저 아버지의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휘이이이잉.
시원한 바람이 서쪽 하늘에서부터 불어와 후덥지근한 날씨를 조금이나마 식혀 주고 있다.
하지만 무림맹의 멸마대주인 위극혼은 전혀 시원스럽지가 못했다. 날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찾아야 할 녀석이 좀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신경이 예민해졌다.
눈앞에 있는 천자조 제1조장인 모가 위에게 물었다.
“아직도 찾지 못했나?”
“어렵습니다. 이곳 의선곡뿐만 아니라 근처 밖에까지 나가 찾아봤지만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대주님.”
모가위는 1조에 속한 열다섯의 대원들과 함께 두 시진 넘게 의선곡의 곳곳을 뒤졌다. 하나같이 뛰어난 기감을 자랑하는 대원들이지만 대주의 아들이자 의선곡의 소곡주인 위천희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무림맹의 멸마대원들이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곳 의선곡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나서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모가위의 옆에 서 있는 천자조 제2조장인 곡상문이 말문을 열었다.
“대주님. 제가 알고 있기로 소곡주는 기문진법의 대가라 들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대가가 아닌 고금에 없었던 진정한 대가라고 말이지요. 당연히 저희 같은 일반의 무부들로서는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소곡주가 몸을 숨기려 마음먹었다면 말이지요.”
“흐음.”
위극혼은 곡상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녀석은 어리긴 하지만 기인이다. 무인들이나 일반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의선곡의 변괴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짐작이 되는 녀석을 반드시 찾아 혼을 내 주고 또한 지금의 사태를 해결해야 했다.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대주님. 소곡주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상문이의 말대로 기다려 보기로 하지요.”
두 조장이 기다리자고 했다.
위극혼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은 그의 성격상 맞지 않는 일이었고 또한 지금의 사태는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무림맹의 멸마대주란 자리는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위천희! 내 이 녀석을 찾기만 하면 이번엔 단단히 혼을 내서 앞으로는…….”
무슨 일일까? 위극혼은 말을 하다 말고는 갑자기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그가 서 있는 이곳은 의선곡의 중부에 있는 광장이었는데 지금 전각들이 들어선 동부에서 누군가가 신법을 펼쳐 이리로 오고 있었다.
휘이익.
우아한 몸짓이다. 한 마리의 제비가 나는 듯한 그런 신법.
그것은 비연신법(飛燕身法)이라 해서 무림에서는 절정의 신법으로 통했다.
“천희를 찾았나요?”
비연신법을 펼쳐 날아온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
그녀는 화운영이라는 이름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그런 얼굴이지만 초승달 같은 아미에 촉촉해 보이는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그런 힘이 담겨 있었다.
위극혼의 만인을 압도하는 살벌한 눈빛도 여인의 앞에 이르자 다소 부드러워짐을 알 수 있었다.
“아니오, 부인. 녀석이 하늘로 솟구쳤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좀체 찾을 수가 없소.”
“그래요?”
“그렇소. 아무래도 천희 이 녀석이 사고를 치고는 몸을 내뺀 모양이오.”
화운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단정 짓지 마세요. 지금의 이 일이 꼭 천희가 했다는 그런 보장은 없잖아요.”
“아니오, 틀림없소.”
위극혼은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녀석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일 수 있겠소. 내 이번에 천희를 잡으면 단단히 혼을 내 줄 생각이오. 너무 오냐오냐 키웠더니 녀석이 버릇없이 자란 것 같소. 이번에 내가 녀석을 혼내면 부인은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시오. 물론 아버님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오.”
“…….”
화운영은 남편이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자 잠시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화가 조금 풀린 듯하자 곧 다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만일 그렇다면 천희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위극혼.
“그게 무슨 소리요?”
“무림에서 진법이란 학문을 이론이 아닌, 실생활에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어요. 무림세가인 제갈세가에서나 그나마 진법을 조금 다루기는 하지만 그건 초보적인 단계에요.”
“…….”
“그러나 천희는 달라요. 상공도 알다시피 천희는 기문진법의 대가예요. 제갈세가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이지요. 어쩌면 천희는 이곳 어딘가에서 화가 단단히 나 있는 상공을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요.”
“녀석이 나를 말이오?”
위극혼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래요. 성공께서 화를 풀어야지만 나올 거예요. 물론 아이가 여기 근처에 있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지요.”
“흐음…….”
위극혼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시선을 돌려 의원들이 연무장으로 쓰는 광장을 살폈다.
그는 고수다. 그것도 일반의 고수가 아닌 정도 무림에 존재하는 열두 명의 초고수 중 하나인지라 내공을 운용해 기감(氣感)을 펼치니 광장이 피부에 닿을 듯 자세히 느껴졌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곳엔 지금 멸마대 대원들과 아내인 화운영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엔 없는 것 같은데…….’
위극혼은 기감을 좀 더 넓게 발휘해 의선곡의 중부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나 여전히 느껴지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아들을 찾는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특이점을 찾을 수가 없구려.”
“그렇게 해서는 찾을 수가 없어요.”
화운영이 고개를 가로젓는 남편에게 말했다.
“천희가 사용하는 기문진법은 상공께서 무림맹에 가 있는 그사이에 더 발전했어요.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 년 전부터 아이의 능력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해 지척이 아니라면 찾지를 못하게 된 거지요. 아버님도 오 장 안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야 진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 당신이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으음, 아버님이 그럴 정도라면…….”
위극혼은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의선인 위현상.
그는 무림인이 아닌 일반의 의원이지만 그 지닌 바 능력은 초절정 고수들에 못지않은 대단한 능력자였다. 무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기감 능력은 훨씬 뛰어나니 그가 찾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으음.”
위극혼은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낀 채 어떻게 하면 아들 녀석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화운영이 결국 한마디를 했다.
“용서하겠다고 하세요.”
“…….”
위극혼의 시선이 아내에게로 향했다.
“여기서 큰 소리로 화를 내지 않겠다고 하세요. 상공이 용서를 하겠다고 하면 천희는 나타날 거예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는 아내.
그럴 것 같았다. 왠지 아내의 말대로 하면 녀석이 나타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녀석을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방금 전까지 그는 이번에 아들 녀석을 잡으면 단단히 혼을 내 주겠다는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던가.
“말을 꺼내기가 힘들면 제가 대신 해 볼게요.”
화운영은 남편이 뜸을 들이자 자신이 직접 말하기로 결심했다.
“천희야! 아버지가 용서하신단다! 그만 나오렴.”
“아니, 부인……!”
위극혼은 아내가 자신의 동의 없이 용서하겠다는 말을 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까지 그는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화운영은 계속해서 남편의 이름을 팔아 아들을 찾았다.
“뭐 하니, 천희야? 너 지금 안 나오면 아버지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러니 어서 나와!”
그러자 어디에선가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죠? 지금 나가면 용서하시는 거예요?”
위극혼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말소리가 들려오는 서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말소리가 들려온 이십여 장 앞에는 그저 커다란 고목나무가 한 그루 서 있을 뿐이었다.
화운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어서 나오렴. 틀림없이 아버지가 용서하신다고 했으니 안심하거라.”
안심하라는 그 말.
결정적이었다.
흔들흔들.
순간, 고목나무의 주위가 흔들리며 비어 있는 허공에서 놀랍게도 사람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기괴한 광경이다. 마치 대낮에 귀신을 보는 듯했다.
몸통 없이 사람의 얼굴만이 허공에 둥실 떠 있으니 진정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상한데요?”
“뭐가 말이니?”
미심쩍어 하는 얼굴.
위천희는 자신이 소구궁환상진(小九宮幻想陣)이라 이름을 붙인 곳의 바깥으로 얼굴만을 내민 채 아버지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위극혼은 지금 무서운 눈빛으로 아들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으로는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는 그였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아들 녀석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기문진법의 대가라는 아들이 정말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상하잖아요.”
“뭐가 자꾸 이상하다고 그래?”
위천희는 엄마의 물음에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주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저를 노려보고 계시잖아요.”
“아아, 그거.”
화운영은 별거 아니란 듯이 대답해 주었다.
“지금 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으셔서 그런 거야. 날씨가 조금 덥잖니. 분명 이 엄마한테 네가 한 일을 용서한다고 했으니 안심하려무나.”
“그래요?”
“그래.”
위천희는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대답을 하자 다시 시선을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
여전히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다.
자신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위천희는 생각했다.
‘분명 나한테 많이 화가 나 있는 눈빛이야. 하긴 내가 한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니까 화가 단단히 나실 만도 한 거지. 하지만 엄마가 하는 말에 딴소리를 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된 거야. 잔소리는 조금 있을 수 있겠지만 벌을 주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안심이 되었다. 비록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약속의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하는 말을 묵인했으니 된 것이다.
묵인은 약속과 같은 것. 아버지는 신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니 믿을 수 있었다.
“좋아요. 그럼 이제 나갈게요.”
“그래, 어서 나오렴.”
부드러운 엄마의 음성.
잠시 후, 위천희는 소구궁환상진에서 나왔다.
그리곤 곧바로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잡혀 의선곡의 귀빈관(貴賓館)으로 가야 했다.
“아얏! 아버지! 그렇게 세게 잡으시면 어떻게 해요?”
“잔말 말고 따라오너라!”
“어어! 이건 약속과 다른데?”
“뭐가 약속과 다르다고 그래? 너는 어떻게 된 녀석이 이 아비가 그렇게…….”
물론 가는 동안 약간의 잔소리는 들어야 했다. 불 같은 잔소리지만 그래도 그것은 충분히 견딜 수가 있기에 위천희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
정파와 사파, 또는 정도와 마도.
이 단어들은 주로 무림에서 쓰이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 무림이라고 하는 세계에는 범인들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그런 엄청난 고수들이 즐비해 있다.
강기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절정의 고수들.
그러한 고수들 중에서도 강기(|氣)를 압축해 강환(|丸)을 사용할 수 있는 고수를 특별히 초절정의 고수라고 불렀는데 무림에는 그러한 고수가 모두 19명이 있었다.
정파에 12명, 그리고 사파에 7명이다.
일황(一皇), 이성(二聖), 삼존(三尊), 육왕(六王).
이들 12명이 정파에 속하는 초강자들이다.
구파일방으로 대변되는 열 개의 단체와 무림세가인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의 수많은 문파들.
정파에 속하는 이들은 한없이 많았지만 진정한 강자는 이렇게 단 12명인 것이었다. 한데 이 12명의 절대강자들 중 놀랍게도 4명이 지금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