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5화)
Chapter 2 진법총람(3)
의선곡에서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인 귀빈관.
그곳에 정파에 속하는 4명의 고수가 함께 자리해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 거예요. 오늘 새벽에 벌인 일이니 누구도 알 수 없었고 또한 네 분의 할아버지들과 아버지도 알 수 없었던 거예요. 제가 한 일은 무공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느끼기가 힘들거든요. 아마 제 생각이기는 한데…….”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장방형의 탁자에는 모두 여섯 개의 찻잔이 놓여져 있었는데 위천희는 가끔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어른들에게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러니 조금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저의 경지가 극령의 단계로 들어서면 충분히…….”
설명은 꽤나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의선곡의 곡주인 의선과 멸마대주인 위극혼은 위천희가 익힌 게 무엇이고 또한 그것이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사전에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세 명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설명은 자질구레한 내용으로까지 이어져야 했다.
잠시 후.
위천희는 설명을 모두 끝마치고는 조용히 기다렸다.
앞에 앉아 있는 다섯 어른들은 각자 두 눈을 감고는 지금까지 아이가 말한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흐음…….”
“허허, 그거 참.”
믿기 힘든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인 걸까?
다들 표정이 기묘했다.
‘정말 이렇게 보니 멋지네?’
위천희는 자신이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의 초고수라는 사람들을 무려 네 명이나 볼 수 있게 되어 기분이 묘했다. 한 분씩은 여러 번 만나 보았지만 이렇게 단체로 한꺼번에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녀석은 먼저 왼쪽에 있는, 얼굴에 두 군데의 칼자국이 나 있는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부터 차례로 살펴보았다.
‘신도문의 전대 문주이자 삼존의 하나인 심현노 할아버지. 이분은 당대 무림에 도법으로 초강자에 이르셨어. 아버지와 같은 도를 익히셔서인지 말수가 적고 또한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시지. 그리고 옆에 앉아 계시는 남궁인 할아버지는 같은 삼존의 한 분으로서 검을 익혀 검존이 되셨어.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로서 느낌은 우리 할아버지와 비슷해.’
도존의 옆에 앉아 있는 남궁인은 신선 같은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백발에 흰 수염이 길게 나 있어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진정 그 느낌이 의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권존이신 황보장청 할아버지. 황보세가의 사람들이 원래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분은 완전 산적같이 보여. 덥수룩한 수염에 부리부리한 두 눈. 대호(大虎)도 권존 할아버지를 보면 멀리 도망을 칠 거야. 틀림없이.’
스윽.
위천희의 시선이 이번엔 가운데에 앉아 있는 권존을 지나쳐 의선에게로 향했다.
‘에에, 우리 할아버지는 강하기는 하지만 무림인이 아니니까 제외를 해야겠지? 남들과 다툰 적이 한 번도 없으니 그 능력을 친우 분들이신 삼존과 비교하기는 좀 그래. 그렇다면 바로 아버지로 넘어가는 게 좋겠구나.’
의선의 오른쪽에 앉아서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는 철혈의 사나이.
‘육왕의 하나인 명왕(冥王). 마교인들에게는 사신으로 통하는 아버지야. 정파인들 사이에서도 아버지는 매우 잔혹하고 손속에 정이 없는 그런 인물로 통하셔.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거지. 마교라는 거대 단체를 상대로 최일선에서 싸워야 하니 손속이 사파인들보다 더할 수밖에 없는 거야. 멸마대의 대원 아저씨들을 봐도 마찬가지야. 그 아저씨들도 아버지처럼 매우 거친 분들이시지. 헤헤. 근데 정말 멋있기는 하다. 정파의 초강자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내 앞에 4명이나 있다니…….’
정말 기분이 좋다.
마음속으로 언제나 동경을 하고 있는 무림의 세계다.
그 무림에서도 누구나 인정을 하는 초고수들을 자신이 무려 4명이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헌데 언제쯤에나 가능하실까?’
위천희는 문득 다른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건 바로 아버지에 관련된 것이었다. 과연 언제 절대강자가 될 수 있을지. 다른 20명의 초고수들을 언제쯤에나 제치고 천하제일인이라는 위대한 권자에 올라설 수 있을지 그것을 생각해 보았다.
‘명왕. 누구나 두려워하는 아버지야. 현재는 정파의 육왕 중에서 수좌의 자리에 있어. 하지만 아직 삼존 할아버지들에게는 그 힘이 미치지 못해. 싸움에 있어서 그 투지만큼은 무림에서 첫손에 꼽을 만큼 대단하지만 무학에 대한 이해의 폭이 아직은 부족해. 그러나 그것도 몇 년 안에 해결이 될 거야.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삼존 할아버지를 비롯해 소림과 무당의 이성(二聖)을 능가하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일황인…….’
위천희가 한창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는 그사이, 귀빈관에 있는 삼존과 의선, 그리고 명왕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궁 늙은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금의 이 일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보느냐?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천희가 자신이 벌인 일이라고 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참으로 구양천일이라고 하는 자가 놀랍기만 하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황보 형.”
검존 남궁인이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감탄 어린 눈빛을 내보였다.
“진법총람이라는 희대의 기서를 저술한 구양천일……. 무림에 그러한 인물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소. 의선곡을 이동진이라는 것으로 이렇게 전혀 다른 위치로 보냈는데, 과연 이 같은 사실을 무림인들이 믿으려 할지 모르겠소.”
무림에는 축지법이라는 게 있다.
무공이 극고의 경지에 이르면 공간을 접어서 이동을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아주 먼 곳도 짧은 시간에 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혼자의 경우다. 지금의 경우처럼 수만 평이 넘는 땅덩어리를 이동시킬 수는 없는 것이었다. 선계에 있다는 신선들이나 가능할까 인간 세상의 그 어떤 기인도 이러한 일은 벌이기 힘들었다.
“구양천일의 별호는 광진자였다고 하네. 스스로가 그렇게 지은 거지.”
검존의 옆에 앉아 있는 의선이 보충 설명에 들어갔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가 저술한 진법총람은 우리 위씨 가문에 120여 년 전부터 전해져 오고 있었지. 하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네. 아니, 몇 명의 의원들이 호기심이 들어 익혀 보기는 했는데 모두가 실패를 했다네. 나도 마찬가지이고. 그것은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지만 익힐 수가 있는 것인지라…….”
특별한 재능.
그것은 정말 특별해야만 했다.
천하는 넓지만 과연 그 같은 특별한 재능을 몇 명이나 가지고 태어났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상단전이 발달해 있어야 했다.
무림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단전이 아니라, 하늘과 통하는 신의 문이 발달해 있어야지만 익힐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재능을 소곡주인 위천희는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났고 의선곡의 사람들이 허무맹랑한 잡서라 부르며 내팽개친 그 기서를 마침내 익힐 수가 있게 되었다.
“자네들한테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천희 저 녀석은 전에 두 번이나 큰 사고를 친 적이 있다네. 바로 진법의 힘을 통해서 말이지.”
“사고? 무슨 사고 말인가?”
검존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였다.
의선은 친우들에게 2년 사이에 벌어진 일 중 가장 큰 것 두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첫 번째는 자네들이 재작년에 내게 물은 그것이네. 이곳 오태산의 절경 중의 하나인 일출봉. 그 일출봉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랬지. 그때 내가 일출봉이 없어진 걸 알고는 깜짝 놀라 자네에게 물은 적이 있었지.”
검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려는지 곁에 있는 권존과 도존의 눈빛도 서서히 호기심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내가 자네들에게 지진이 일어나서 일출봉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천희가 진법을 실험하다가 날려 버린 것이라네. 뇌성벽력과 비바람이 일며 그곳은 빛과 함께 폭발했지. 이곳 의선곡의 사람들과 용화촌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네.”
놀라운 이야기였다.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일출봉이 진법 실험에 의해 날아갔다니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고는 사실 우리 의선곡으로서는 다행스러운 것이었네. 자네들 마교의 전투 부대 중의 하나인 적살부대를 알고 있을 것이네.”
“으음, 알고 있네.”
“그 적살부대의 놈들은 개잡놈들이지. 우리 정파의 수뇌인물들을 암살하기 위해 살수부대로 키워졌다고 하니까. 총인원이 200명이나 되는 녀석들. 내 언젠가는 그놈들을 몽땅 잡아서는 죽이리라 결심했는데 몇 개월 전부터 이상하게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네. 헌데 그것도 설마…….”
권존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앞에 앉아 있는 위천희를 바라보았다.
“헤헤.”
그저 웃을 뿐인 위천희다.
“맞네. 자네 생각대로 그것도 천희가 해결한 거네. 놈들이 7개월 전에 또다시 이곳을 노렸던가 보네. 헌데 천희가 나보다 먼저 어떻게 적살부대의 움직임을 파악해서는 용화촌에서 의선곡에 이르는 널따란 길목에다 참마지옥진(斬魔地獄陣)이란 것을 설치해서는 모두를 황천으로 보냈다네.”
“흐음…….”
“호오, 정말 대단하군.”
의선의 설명에 삼존 모두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위천희를 바라보았다. 작년이라면 위천희의 나이 열두 살이다.
한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 마교의 살수부대인 적살부대원 200명을 한순간에 저승으로 보냈다니……. 어떻게 보자면 매우 살벌하게 느껴지는 아이다. 아니, 살벌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살벌 그 자체인 것이었다.
검존이 위천희에게 물었다.
“천희야.”
“예, 검존 할아버지.”
“너, 혹시 그날 어떤 큰 충격을 받았다거나 그러진 않았느냐? 200여 명의 사람들을 한순간에 황천으로 보냈다면 그건 정말 가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그런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요. 전혀요.”
위천희의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그러자 삼존 모두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했다.
열세 살의 아이가 사람을 200여 명을 죽여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하니 왠지 가슴이 섬뜩해지는 그들이었다.
“적이잖아요, 죽일 놈들이잖아요. 그날 제가 나서지 않았다면 우리 의선곡은 그 옛날 마교에게 당했을 때처럼 큰 수치를 당했을 거예요.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되죠, 절대로요.”
“으음, 그건 그렇긴 하다만…….”
검존이 말끝을 흐렸다.
“척마멸사! 이 말은 멸마대원 아저씨들이 가끔씩 저에게 해 주시던 말씀이에요.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건 선량한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거라고 하셨죠. 악은 지옥으로, 한 사람의 선량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백 명의 악인을 죽일 수 있는 그런 독심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리고 저는…….”
위천희는 삼존 할아버지들의 우려 섞인 눈빛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계속 이어서 말했다. 그것은 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께도 말한 적이 있었다.
척마멸사(斥魔滅邪)!
마를 물리치고 사악한 것을 멸하는 일.
그 일은 손에 자비가 없어야 하고 또한 강인한 정신력으로 해야 했다. 위천희는 비록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그러한 것을 마음 깊숙이 새겨 두고 있었는데, 사실 이 같은 생각들이 자리 잡는 데는 아버지의 부하들인 멸마대원 아저씨들의 영향이 컸다.
잠시 후, 녀석의 말은 모두 끝이 났고 삼존은 위천희의 생각에 동의를 한다는 듯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세 살의 아이가 200여 명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인 일은 큰일이기는 하지만 아이의 심지가 올곧은 듯해 마음이 놓이는 그들이었다. 사실 많이 걱정했었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자라서 나중에 혹시나 수천수만을 죽이는 그런 대살성이 되지 않을지를 말이다.
“허허허. 이제 모두들 안심이 되는가 보군.”
의선은 친우들의 그 같은 반응에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도 7개월 전에는 그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으음, 헌데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한데?”
의선은 삼존에게 그동안 손자가 벌인 일과 진법총람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설명을 해 주다가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이제야 생각났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는 두 눈에 기이한 빛을 띠며 손자에게 바로 물었다.
“천희야?”
“예에, 할아버지.”
“그런데 너는 선천진법에 속하는 이동진을 어떻게 익혔느냐? 그건 익히기가 거의 불가능한 게 아니었더냐.”
“아아, 그거요?”
위천희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별거 아니란 듯이 대답해 주었다.
“그냥 가능하게 되었어요. 정확히는 작년 이맘때쯤부터요.”
“작년에?”
“예, 그래요.”
의선은 미심쩍은 눈을 하였다.
세상일이라고 하는 것 중에 손자의 말처럼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나타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