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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6화)
Chapter 2 진법총람(4)
그는 작년 이맘때쯤을 생각해 보았다. 그때 손자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가.
‘그래. 그때 나는 손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녀석을 데리고 운남으로 갔었어. 운남의 마수곡이라는 곳에서만 서식하는 약초를 캐기 위해서 말이지. 시간이 없어 몸이 불편한 손자를 할 수 없이 그곳까지 데려갔고 결국 그곳에서 손자의 병을 완치시킬 수가 있었지.’
하늘은 세상에 천재를 내려 보낼 때 치료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병을 함께 안긴다고 했다.
만절산맥(萬絶散脈).
삼음절맥, 구음절맥, 삼양절맥, 구양절맥, 태양절맥…….
세상에는 몇 가지의 절맥증이 있지만 이 만절산맥만큼 지독한 절맥증은 없었다.
태어난 후, 햇수로 오 년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불치의 병.
일반의 가정 같았으면 손도 쓰지 못하고 자식을 하늘로 보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위천희의 집안은 다행히 의선곡이었다.
의선곡의 곡주는 의선이었고 그는 손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갖은 방면으로 노력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생사금침대법(生死金針大法)이라는 천고의 기공침술을 세 번에 걸쳐 시술을 해 마침내 불치의 병이라는 만절산맥을 고칠 수가 있게 되었다.
다섯 살 봄에 한 번, 여덟 살 여름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년 열두 살 때 운남의 마수곡에서 시술을 했었다.
‘손자의 말을 들어 보자면 작년 그곳 운남에서 뭔가 변화가 있었던 거야. 진법총람에 쓰여 있기로 후천진법을 넘어서 선천진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걸 타통시켜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아무래도 손자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해야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막 그가 손자에게 질문을 하려는 그때,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위천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헤헤, 사실 저 그때 그게 타통이 되었어요.”
“…….”
아무 말 없는 의선.
그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그, 그럼 영규가 타통이 된 것이냐?”
“헤헤, 예. 그래요, 할아버지.”
위천희는 할아버지께 자신 있게 대답을 했고 삼존을 비롯한 명왕은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그게 뭐지? 영규가 뭐야?”
“처음 들어 보는 건데? 무공상에 있는 임독양맥과 비슷한 개념의 것인가?”
영규타통(靈竅打通)!
이것은 사실 무림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낯선 단어일 것이다. 아니, 무림인들뿐만이 아니고 인체에 해박한 의원들도 거의 모를 것이다.
영규는 한마디로 영적인 것을 말했다.
사람의 인체 중, 머리의 이마 부근인 인당(印堂)이 활성화가 되어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여 지적 능력을 초인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고 또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힘. 그것은 상단전과 연관이 있었다.
위현상은 의선으로서 영규에 대해 나름대로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인간의 힘으로 타통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로서는 영규를 타통해야만 선천진법을 익힐 수가 있다는 진법총람을 이론으로서만 존재하는 기서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의선!”
“아버님! 영규라고 하는 게 무엇인지요.”
모두들 궁금해 하는 눈빛들이었다.
“흐음, 영규타통. 이것은 무공상의 임독양맥을 타통하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상단전의…….”
의선은 삼존과 자식인 명왕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영규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걸 타통하게 되면 사람이 어떤 능력을 지니게 되는지도 물론 얘기했다. 그리고 의선의 말을 다 들은 그들은 곧 놀란 눈을 한 채 위천희를 바라보게 되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즐거움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대단하구나. 영규를 타통하기만 하면 가히 천재를 능가하는 그런 기재가 될 수 있다니…….”
“한 번 본 것은 잊지를 않고 또한 사물의 이치를 손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이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무공을 비롯한 모든 학문을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빠르게 익힐 수 있다는 말이 되겠구나. 네가 왜 의선곡에서 신비소공자나 기환소공자라고 불리는지 이제야 알겠다.”
삼존은 의선과는 친우 사이인지라 의선곡에 자주 들러 그의 손자인 위천희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생각한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들은 오늘에야 비로소 아이의 능력이 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초절함을 알 수가 있었다. 열두 살에 200여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독심에는 어쩌면 영규타통이라는 천고의 기연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력이 강하니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헤헤, 그게 뭐 대단한 건가요?”
“그럼, 대단하다마다.”
“맞다. 그건 대단한 거란다.”
삼존 중 권존과 검존이 계속해서 칭찬의 말을 하자 위천희는 입가에 웃음기를 만들며 별거 아니란 듯이 말했다.
“헤헤, 아니에요. 그냥 머리만 전에 보다 더 좋아진 것이니 그렇게 저를 대단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위천희였다. 영규타통은 선천진법을 익히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후천진법도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진법총람에서 진정으로 대단한 것은 선천진법이었다.
위천희는 생각했다.
‘정말 그때는 운이 좋았어. 영규라고 하는 것은 몇십 년을 수련해도 타통하기가 힘든 것이니 말이야. 생사금침대법이 아니었으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을 거야.’
생사금침대법은 소생술(甦生術)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몸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깨워 죽어 가는 몸을 살리는 것이 생사금침대법인데 이것은 정신적인 면에도 영향을 끼쳤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절산맥을 치료하기 위해 세 번째로 생사금침대법을 시술받은 그날, 위천희는 자신의 정신이 확장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진법에 있는 오운육기의 법문을 외워서는 마침내 영규타통의 경지에 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도존 심현노가 위천희에게 말을 걸었다.
“흐흠, 영규타통이라……. 대단하기는 하다. 아니, 그건 엄청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쯤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의 말이 끝을 맺자 귀빈관에는 순간 싸한 기운이 흘렀다.
그렇다. 지금은 다른 이야기는 하등 소용이 없었다. 고향인 중원으로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위천희의 입가에 매달린 웃음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대신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그런 표정이 녀석의 얼굴에 담겨졌다.
“에에, 그건 정말 제가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분명 새벽에 이동진을 발동시킬 때는 작년에 한 번 가 보았던 운남의 그곳으로 도착지점을 설정하고 발동시켰었는데 말이에요.”
그건 정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원래 이동진은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장소로만 이동이 가능한 것이었다.
심상 속에 새겨진 곳은 분명 운남이었다.
정확히는 위천희 자신이 치료차 찾아간 운남의 마수곡이었고 이동진은 그곳으로 이동을 했다. 한데 위천희가 새벽에 보니 이곳은 마수곡과 매우 흡사한 그런 지역일 뿐이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동진이 뭔가 착각을 해서는 엉뚱한 곳으로 이동해 왔다는 얘기였다.
“죄송한 얘기지만 별자리가 달라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별자리를 살펴보니 전혀 낯선 별자리가 새벽하늘에 떠 있었어요. 그렇다는 건 여기는 운남이 아니라 전혀 다른 그런 지역이란 것을 알 수가 있는 거죠.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삼존 할아버지들도 느끼고는 계실 거예요.”
“…….”
“…….”
위천희를 제외한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대기의 기운. 모두 초절정의 경지에 든 고수분들이시니 이 대기의 기운이 중원보다도 농도가 훨씬 짙다는 것을 알고 계실 거예요. 제가 느끼기에는 다섯 배 이상인 것 같은데, 이걸 다르게 해석하면 이곳은 중원과는 까마득히 먼 그런 곳이란 걸 알 수 있어요. 생소한 별자리에 농도 짙은 대기의 기운. 걸어서 가면 언제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거죠.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 재수 없으면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지요.”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 말.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실내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침잠해졌다. 싸한 기운은 더욱 싸해졌다.
의선과 삼존, 그리고 무림맹의 멸마대주인 명왕.
그들은 중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리를 오래 비워 두어서는 안 되었다.
의선의 경우는 황실에서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일 년에 한두 차례는 황궁에 들러 그곳에 있는 황실의 중요 인물들을 진맥하고는 한다.
그리고 명왕은 무림맹에서 마교를 상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멸마대의 수장이다. 그런 그가 자리를 오래 비워 두면 둘수록 그것은 그만큼 무림맹의 전력이 약화가 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래도 가족이라 괜찮은데, 삼존 할아버지들에게는 정말 미안해. 그냥 며칠 정도 더 있다가 삼존 할아버지들이 떠나시면 그때 실험을 할 걸 그랬어.’
삼존은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은 며칠 전에 손녀들의 일로 의선곡에 왔다. 마교의 흉계에 의해 그들이 가장 아끼는 손녀들이 극독에 중독이 되었는데 삼존은 그 극독을 해독하기 위해 이곳 의선곡에 오게 된 것이었다.
원래는 멸마대주가 대원들 일부와 같이 이곳에 손녀들을 호위한 채 오는 걸로 했지만 그들은 친우인 의선도 만날 겸 겸사겸사해서 함께 길을 나섰다.
“헤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위천희는 실내의 공기가 급속도록 싸해지자 재빨리 희망이 될 만한 그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의 진법 경지가 지금보다 더 오르면 돌아갈 수 있어요. 원래는 지금 당장에라도 돌아갈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이유는 이곳의 기운이 중원과는 너무 달라서이니까 말이에요. 그러니 힘내세요.”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위극혼이 아들이 돌아갈 수 있다고 하자 희망을 갖고 물었다.
위천희는 아버지의 물음에 손가락을 펴며 대답했다.
“헤헤, 빠르면 삼 년, 늦으면 십 년 정도에요.”
“그렇게나 오래 걸린단 말이냐?”
“에이, 아버지도 참. 아예 돌아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백 배 천 배 낫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도 나름대로 이곳의 사람들을 만나 보면 이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 있을 테고, 그럼 어쩌면 좀 더 빨리 돌아갈 수도 있죠. 물론 그 사람들이 중원 땅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야겠지만 말이에요.”
“늦어도 십 년 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말은 확실한 것이냐, 천희야?”
이번엔 의선의 질문이었다.
그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자리가 생소하다는 손자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별자리는 같아야 했다. 그게 다르면 이곳은 중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천축이나 서역의 다른 지역과도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혹시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드는 그였다.
“헤헤, 예에. 십 년 안으로는 확실히 돌아갈 수 있어요. 지금 저는 진법의 경지에 있어 소령의 단계인데, 그 위인 극령의 경지에 이르면 충분히 돌아갈 수 있어요. 대기의 기운이 지금보다 농도가 더 짙더라도 말이지요.”
위천희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두에게 말했다.
“에이, 너무 그렇게들 풀 죽은 듯한 표정 짓지 마세요. 어차피 이리됐잖아요. 저의 잘못이 크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미 물은 엎질러졌는데 말이에요. 우리 힘을 내요.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는 앞날을 생각하기로 해요. 마음을 편히 한 채로요.”
“…….”
“…….”
삼존은 위천희의 그 같은 말에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하는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찰 뿐이었다. 척마멸사를 외칠 때는 아이가 아이로 보이지 않고 정파의 강인한 무사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또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옆에 있는 의선이나 명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자이자 아들인 위천희가 너무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열세 살의 아이인데 하는 행동은 수백 년 묵은 여우같았다.
“헤헤. 왜들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가 묻어 있나요?”
위천희는 어른들이 모두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자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물었다.
씨익.
녀석의 왼쪽 입 꼬리가 하늘로 들리며 웃음기가 만들어졌다. 어쩜 사람이 저리 유들유들할 수가 있는 것일까?
사고를 쳐도 보통 큰 사고를 친 게 아닌데…….
하지만 그래도 크게 밉지는 않았다. 왜 밉지 않은지는 모르겠다. 아까 전에 척마멸사를 외쳤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냥 녀석이 웃으며 마음을 편히 하자고 하니 답답한 마음이 약간은 해소가 되었다.
끼이익.
실내의 문이 열렸다.
위천희는 시간이 되자 안에 있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 문밖으로 나갔다. 이제 실내에는 삼존과 의선, 그리고 멸마대주가 남아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을 하게 되었다.
“제가 내일부터는 대원들과 같이 주변을 알아보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곳의 사람들을 만나 돌아갈 방도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위극혼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