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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7화)
Chapter 2 진법총람(5)


그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이 땅에서 몇 년씩이나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들 녀석이 짧으면 삼 년, 길면 십 년이라고 했는데 그는 일 년 안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네가 내일부터는 수고 좀 하거라.”
의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삼존이 이어서 말했다.
“흐흠, 나 황보장청도 내일부터는 열심히 돌아다녀 봐야겠군. 이런 일은 여러 사람이 하는 게 더 빠를 테니 말이야.”
“나 검존도 마찬가지이네.”
“으음, 나도…….”
모두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일었다.
희망 없는 삶은 절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서는 극히 어두운 눈빛들을 띠었지만 마지막에 위천희가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자 힘이 났다.
‘그렇다면 나는 내일부터는 천희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군. 진법총람에 대해서 말이야.’
의선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곤 손자의 일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차분히 생각을 이어 나갔다.



Chapter 3 습격(1)


만절산맥의 절맥증을 타고난 자는 불행히도 상승무공을 익히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내공을 쌓는 장소인 단전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래처럼 밑바탕이 튼튼하지 못한 단전.
그것은 어떤 방법을 써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머리의 뛰어남은 천재라 칭해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내공을 쌓을 수 없으니 위천희는 어쩔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진법총람이라는 이름의 희대의 기서는 절망에 빠진 그에게 희망이 되어 주었다.
일곱 살 때 의선곡의 장서고에서 보게 된 진법총람.
의심하지 않았다.
위천희는 다른 모든 의원들이 허무맹랑한 잡서라 치부한 진법총람을 희망의 빛으로 보고는 일곱 살의 여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익혔다. 그 수련은 작년에 영규가 타통이 되면서부터 더욱 진도가 빨라졌다.
즐거웠다. 진법을 배우고 익히고 수련을 쌓는 게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즐거움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엉뚱한 장소로 이동시킨 의선곡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던 것이다.

휘스스스스.
하늘과 사방 벽면이 새하얀 안개로 가득 차 있는 그런 공간이다. 그 공간 속으로 안개를 헤치며 들어선 인물은 위천희였다.
그는 귀빈관에서 나오자마자 저녁을 배불리 먹고는 곧바로 자신이 의선곡의 곳곳에 설치한 진법의 한 장소에 들어온 것이었다.
“아아, 잘 먹었다.”
올챙이배처럼 툭 하고 튀어나온 배.
위천희는 그런 자신의 배를 몇 번 쓰다듬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수련을 쌓아야겠구나.”
이곳은 진법 수련실, 이보다 수련을 쌓기에 좋은 장소는 없었다.
“빠르면 삼 년 안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빨라야 칠 년. 그것도 내가 부지런히 수련을 쌓는다는 가정 하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3년이란 기간은 어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말한 것이다.
너무 길게 잡으면 위천희 자신에게도 그렇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네 분의 할아버지들에게도 좋지 않았다.
의욕이 사라져 버린다.
여기서 몇 년을 살아야 하는데 의욕이 없으면 나이 든 노인네들의 경우는 오래 못 살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물론 삼존을 비롯한 의선은 보통 사람들이 아닌지라 그런 식으로 일찍 죽을 염려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스윽, 척.
위천희는 진법 수련실의 한가운데 서더니 곧 자리에 가부좌의 자세로 앉았다. 그리곤 호흡을 길게 한번 이끌어 주었다.
“후으읍, 휴우우우.”
마음이 편안해진다.
진법 수련은 무공 수련과 마찬가지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사람은 하루에 수만 가지의 잡념 속에서 보낸다고 하는데 수련은 그런 잡념이 일체 배제가 된 상태에서 해야지만 좋았다. 그리고 길게 이끌어 주는 심호흡은 그런 잡념을 없애는 데 매우 탁월한 것이었다.
“오운육기의 법. 이것은 광진자가 남긴 진법총람에 있어 핵심이 되는 것이야. 무림에서 그나마 알아주는 제갈세가의 기문진법은 광진자가 남긴 진법총람에 비하자면 태양 앞의 반딧불처럼 미약한 수준이라 할 수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오운육기의 법문 때문이지.”
오운육기(五運六氣).
이것은 의학 서적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다.
오운은 단어가 나타내는 뜻 그대로 다섯 가지의 운(運)을, 그리고 육기는 여섯 가지의 기(氣)인데, 오운은 하늘의 기운을, 육기는 땅의 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면 하늘의 기운인 오운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말하는 것이고 땅의 기운인 육기는 풍(風), 화(火), 서(署), 습(濕), 조(燥), 한(寒)을 일컫는다.
내공을 쌓을 수 없는 몸이었던 광진자.
그는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받아들여 하단전이 아닌 신의 문인 상단전을 활성화시켜 영력(靈力)이라고 하는 힘을 얻을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만들게 되었다.
이 오운육기라고 하는 것을 오랜 시간 연구해서는 마침내 하나의 법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가 창안한 선후천진법은 상승무공과 비슷했다.
상승무공을 익힐 때는 초식보다는 내공이 중요했다. 어떤 종류의 내공심법을 어느 수준으로 익히느냐에 따라 외공이라 할 수 있는 초식의 위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광진자는 진법에 있어서 내공이라 할 수 있는 영력을 오운육기의 법을 통해 완성할 수 있었고, 초식이라 할 수 있는 선후천진법은 마침내 그 진실한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어려운 시절을 그처럼 잘 이겨 내고 이렇게 훌륭한 유작을 남겼으니……. 세상엔 간간이 천재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광진자 그는 고금에 없었던 진정한 천재야. 하늘이 내린 진짜 기재인 거지. 하지만…….’
씨익.
위천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생겨난 미소였다.
‘헤헤, 하지만 나도 대단하지. 나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시절을 보냈으니까. 아니, 내가 더 힘들었다고 봐야 하나?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만절산맥으로 지독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마침내 그 고통을 극복하고 이렇게 광진자 그가 남긴 진법총람을 하나하나 나의 힘으로 만들고 있으니 내가 더 대단한 거야. 그가 다가가지 못한 경지에 들어섰으니 말이야. 헤헤, 좋아, 그럼 이제는…….’
두 눈을 감았다.
이곳 진법 수련실은 수련을 하기 위해 만든 장소다.
당연히 잡생각들은 그만 하고 이제는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야 했다.
“후으읍, 휴우우우…….”
다시 한 번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
그리곤 곧바로 조식(調息)에 들어갔다.
이 조식은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다. 외공이 아닌 내공, 그러니까 내기를 움직여서는 특정한 부위에 모으거나 또는 경맥을 따라 운행시켜서는 기혈의 소통을 촉진하는 것을 조식이라 하는데 이것은 진법 수련에도 통용이 되는 것이었다.
‘오운육기의 법…….’
위천희는 조식을 하면서 서서히 마음속으로 영력을 키울 수 있는 오운육기의 법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오운은 하늘의 기운.
먼저 머리의 정수리 부근인 백회혈을 열어서는 하늘의 기운인 목, 화, 토, 금, 수의 오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생식기 부근에 있는 회음혈을 열어서는 땅의 기운인 풍, 화, 서, 습, 조, 한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우우우우우웅.
안개의 막에 둘러져 있는 진법 수련실이 작은 공명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련이라고 하는 것은 집중이다.
한 점의 잡념도 없이 전심전력으로 힘을 써야 하는데 위천희는 평소엔 유들유들하면서도 가벼운 행동들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수련을 할 때에는 사람이 확 바뀌어 버린다.
진중한 성격이 되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집중력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중력은 영력수련에 큰 도움이 되어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영력을 키울 수가 있는 것이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위천희는 도(道)를 갈구하는 한 사람의 구도자가 되어서는 한 시진을 그렇게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서는 수련에 힘썼다. 13살의 아이라 하기에는 정말 놀라운 집중력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었다.
‘으응?’
위천희의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영력수련은 내공수련과는 달라서 수련 중에 딴 생각을 한다 해도 몸에 어떤 큰 문제가 발생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내공수련 중에 충격을 받은 무인들을 보면 대개가 큰 경우에는 주화입마요, 작으면 내상인데 반해 영력수련은 그저 수련이 중단될 뿐인 것이다.
‘뭐지?’
녀석은 수련이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방금 전 자신의 뇌리를 스친 것에 대해 생각을 했다. 아니, 그것은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추적을 하는 것이었다.
절정의 고수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감각이 뛰어나다.
초감각이라 할 수 있는 능력. 무림에서는 그런 능력을 기감이라 하는데 위천희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었다.
무림인의 기감 능력보다 월등한 영기감(靈氣感).
그 영기감 능력으로 의선곡을 살폈다.
숨을 서너 번 내쉴 정도의 짧은 시간이 지나갔다.
별다른 게 포착이 되지 않자 그는 영기감을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였고 결국 방금 전에 느꼈던 그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좋지 않은 느낌의 그 무엇.
“뭐지? 뭔가가 이리로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밖으로 나가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나가서 확인해 보자.”
위천희는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자, 큰일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과 같은 느낌은 예전에도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었던 건데 그건 바로 마교로 인한 것이었다.
7개월 전, 마교의 암살부대라 할 수 있는 적살부대가 자신이 있는 의선곡으로 몰래 침입해 오려 했을 때 지금과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탁탁탁.
빠른 걸음 소리와 함께 진법 수련실은 곧 아무도 없는 그런 황량한 수련실이 되었다.

휘이이이이잉.
한차례 바람이 불어왔다.
시간은 저녁, 하지만 날은 여전히 후덥지근한지라 이렇게 한차례 바람이 불어와 주니 매우 시원했다.
하지만 위천희는 전혀 시원스럽지 못했다.
녀석은 전각군이 줄지어 지어져 있는 의선곡의 동부에서 두 눈을 감고는 진법 수련실에서 느낀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느껴 보기 위해 애를 썼다.
“으응, 소곡주님이시네? 저기서 뭐 하시는 거지?”
“그러게. 눈을 감고 가만히 서 계시는 게 무슨 수련을 쌓고 있는 것인가?”
의선곡에서 잡일을 하는 하인 두 명이었다.
그들은 창고에서 농기구들을 들여놓다가 소곡주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게 대화를 나누었다.
“수련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뭔데?”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주위를 봐 봐. 모기떼가 극성을 부리고 있잖아. 모기가 활개를 치는 이런 곳에서 무슨 수련을 쌓을 수 있겠어.”
“듣고 보니 그렇군.”
왱왱왱.
모기들의 날갯짓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일반의 모기보다 배는 큰 왕모기.
확실히 이런 왕모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장소에서 수련을 쌓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인들이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때, 위천희는 자신의 영기감 속에 느껴지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한데 결코 좋은 쪽으로의 느낌이 아니었다.
‘악의(惡意)야. 그리고 살기(殺氣)야. 수백의 무리가 악의를 품고 이리로 오고 있어. 방향은 북쪽, 거리는 십 리(4km)가 훨씬 넘어.’
휘스스스스.
악의로 가득 찬 기운.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괴이한 놈들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괴이한 것들은 지금 거대한 악의를 품은 채 이곳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위천희의 감겨진 두 눈이 떠졌다.
“큰일이야, 큰일! 의선곡의 외곽에 설치되어 있던 환영미로진은 내가 이동진을 설치하느라 해체가 되어 있는 상태야. 그러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저것들이 이곳으로 닥치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은 크게 당할 수가 있어.”
그랬다. 의선곡은 7개월 전, 마교의 적살부대 침입 사건 이후로 위천희에 의해 보호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