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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8화)
Chapter 3 습격(2)


환영미로진(幻影迷路陣).
입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침입을 하면 진법의 영향으로 환영에 빠져서는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되는 진이었다. 한데 그러한 진이 지금은 해체가 되어 있는 상태이니 의선곡으로서는 위기였다.
의원들의 경우는 모두들 무공을 익히고 있으니 괜찮지만 하인이나 하녀, 그리고 공방이나 잡관에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크게 위험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빨리 할아버지께 알려야 해.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기감 능력이 가장 뛰어나시긴 하지만 나보다는 못해. 녀석들이 사백 장 안쪽으로나 다가와야 느끼실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지금 당장 할아버지께 알리고 나는 서둘러 임시로 작은 진법을 하나 만들어서는 의선곡의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켜야 해.’
탁탁탁.
위천희는 뛰었다. 그러면서 창고에서 일을 하고 있는 두 명의 하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나 위천희, 의선곡의 소곡주로서 명한다! 비상사태다! 의선곡에 위기가 찾아왔다! 모든 사람들을 의사청(議事廳)이 있는 곳으로 모이게 한다!”
“예에……?”
당황하는 두 하인.
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예, 알겠습니다.”
“아아, 의사청. 알겠습니다.”
위천희는 열세 살의 어린 소년이지만 의선곡의 소곡주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 신분을 내세우고 하는 명은 의선곡의 고위 관계자들이 아니면 모두 그 자리에서 받아들여야 했다.
의선곡은 곧 태풍이라도 몰아친 듯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둥근달이 떠 있는 늦은 저녁 시간이다.
하루를 서서히 마무리해야 하는 그런 시간에 생전 처음 보는 그런 거대하면서도 괴이하게 생긴 짐승들이 포효를 터트리며 의선곡을 침입했다.
“크아아아아아앙!”
“쿠오오오오!”
살기를 흘리며 내는 포효.
심장 약한 사람들은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는 그런 소리였다.
그리고 힘이 없는 인간들이라면 놈들의 저녁거리로 남았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상사태에 발 빠르게 움직여서는 의사청이 있는 곳으로 모였고 그곳 주위에 임시로 급히 설치된 소환영미로진에 안전히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보호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사들이었다.
삼존과 의선, 그리고 멸마대주와 그의 밑에 있는 30여 명의 멸마대원들.
그들은 미처 소환영미로진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을 보호하며 괴수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특히나 삼존의 경우는 의사청에서 삼십여 장 떨어진 치료관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 치료관에 그들의 손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손녀의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뭐, 이런 괴물들이 다 있어?”
우르르르릉.
권존인 황보장청의 오른손에서 벽력성이 들렸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콰쾅! 콰콰쾅!
거대한 폭음이 벽력성과 동시에 일었다. 일 장(3m)이 훨씬 넘는 커다란 체구를 지닌, 녹색 피부에 이족보행을 하는 다섯 괴물은 권존이 사용한 천왕벽력수(天王霹靂手)에 몸이 폭발해서는 그대로 죽음의 강을 건넜다.
과연 권존다웠다.
그가 왜 삼존의 하나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제기랄! 수비는 내 체질에 맞지 않는데……. 하지만 손녀가 이 안에 있으니 할 수 없어. 여기서 이 괴상한 괴물들을 다 끝장내 버려야 해.”
황보장청은 몸을 크게 움직이고 싶었다.
그가 지닌 무공은 매우 공격적이었고 그런 것은 수비와는 어울리지가 않았다. 성격적으로도 그는 다혈질이다. 나이가 칠십이 넘었지만 그의 기질은 젊었을 때하고 비교해도 전혀 변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이……!”
우르르르릉.
천왕벽력수의 무지막지한 위세가 신경질적인 음성과 함께 다시 한 번 펼쳐졌다.
콰쾅! 콰콰쾅!
비명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몸체가 수백 조각으로 나뉘는 녹색의 괴물들.
하지만 거대 괴물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크아아아아아앙!”
“쿠오오오오!”
그 생긴 모습도 다들 제각각이었다.
2장 5척(7m 50cm) 정도 되는 엄청 커다란 덩치에 특이하게 소의 머리를 하고 있는 괴물부터 그보다 작은, 머리에 뿔이 나 있고 입은 귀에까지 걸린 괴물에다가 무슨 벌레처럼 생긴 괴물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이런 괴물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혐오감을 주는 괴물들이었다.
콰쾅! 서걱! 서걱!
권풍과 도기, 그리고 검기가 번쩍였다.
치료관의 삼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삼존은 가벼운 손속으로 사람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괴물들을 하나 둘씩 빠르게 처치해 나갔다. 처음엔 괴물들의 모습에 강기무공을 사용했지만 별거 없는 괴물들이란 판단이 들자 가벼운 공격으로 놈들의 머리를 부수거나 잘라 버렸다.
한편, 의사청 주위에다가 소환영미로진을 설치해 수백의 의선곡 사람들을 대피시킨 위천희는 잠시 고수들의 무위에 감탄을 하고 있다가 무슨 일인지 곧 다급한 안색을 지었다.
“이런……! 호인이 녀석이 저기에 숨어 있잖아!”
위천희가 바라보고 있는 곳.
그곳은 의사청에서 십오 장 정도 떨어져 있는 접객관이란 곳이었는데 그곳의 왼쪽 끄트머리에는 이상하게도 장독이 하나 놓여 있었다. 문제는 그 장독 안에 꼬맹이 하나가 숨어서는 겁에 질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임호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의선곡의 사 개 당 중 하나인 만약당주의 아들로서 위천희가 아끼는 동생이었다.
“크아아아아앙!”
괴물 하나가 그 근처를 지나며 포효를 터트렸다.
“큰일이네. 밖에서 싸우시는 분들이 구해야 하는데. 하지만 사방에서 달려드는 괴물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호인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어.”
괴물들 중에 일부는 후각이 매우 발달해 있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바람이 알려 주는 사람의 냄새를 찾아서는 그리로 이동을 했는데 다른 괴물들은 그런 후각이 발달한 괴물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장독 안에 숨어 있는 아이는 불행히도 후각이 발달해 있는 괴물들에게 곧 잡힐 듯 보였다.
“어떻게 하지?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위천희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호인을 구할 방도를 찾았다. 밖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없기에 소환영미로진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봐야 했다.
하나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 위천희였다.
‘안 돼! 의원 아저씨들은 무인이 아니야. 비록 무공을 익혀 스스로의 몸은 지킬 수 있다지만 저 괴물들의 틈을 비집고 호인이를 구해 낼 수는 없어.’
의선곡의 의원들은 모두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사파의 흉한들에게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게 신법계열의 무공과 함께 독술(毒術)을 익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호신용일 뿐이었다.
‘내가 해야 해. 내가 녀석을 구하는 수밖에 없어.’
위천희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의선곡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이처럼 듣도 보도 못한 괴물들이 날뛰는 곳으로 이동을 해 왔다. 비록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지만 사고를 쳤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좋아, 내가 자랑하는 것은 진법. 그 진법의 힘으로 녀석을 구한다!’
마음의 결심이 섰다.
위천희는 즉시 품에서 바둑돌 크기의 돌조각을 수십 개 꺼내서는 걸음을 옮겨 소환영미로진에 가까이 붙어 섰다.
이 소환영미로진은 안에서는 바깥을 볼 수가 있지만 밖에서는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앙!”
“키릭! 키리릭!”
이족보행의 거대 괴물과 곤충처럼 생긴 시커먼 괴물은 자신들의 바로 옆에 사람이 서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쳐 갔다.
스윽.
위천희는 허리를 숙였다.
그리곤 소환영미로진의 경문(景門) 부근에다가 즉시 새로운 진법의 축을 만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진법은 환영진으로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환영진의 경우는 소환영미로진과 호환성이 매우 좋고 또한 설치 속도가 매우 빨라 지금 같은 때에 안성맞춤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소환영미로진은 단순한 진법인 환영진에서 발전을 한 것이었다.
툭! 툭! 툭!
작은 돌조각이 대지 위에 놓이자 길이 만들어졌다.
위천희는 극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살피며 환영진의 축을 어디에 놓을지 빠르게 계산해서는 돌조각을 놓았다. 그리고 지금 위천희는 돌조각을 그냥 놓는 것이 아니었다.
진법은 방위가 맞았다고 해서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손바람이라고 하는 장풍을 내쏘기 위해서는 공력이 필요했다. 단전에 진기가 조금이라도 차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진법도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핵심이 되는 힘이 필요했는데 그 힘이 바로 영력이다. 위천희는 돌조각에 상단전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영력을 담아 대지 위에 놓고 있는 것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손놀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빨라졌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두 마리의 괴물이 천천히 접객관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킁킁! 킁킁!”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이 장(6m)에 가까운 네 발 달린 괴물인데 몸은 회색 빛깔에 코는 돼지처럼 들려 있었다.
후각이 특별히 발달한 괴물이었다.
놈들은 접객관 근처에서 사람의 냄새가 미약하게 나자 그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이런, 큰일이다. 놈들이 눈치를 챘어.’
위천희는 다급해졌다.
시간이 없었다. 괴물들의 걸음 속도를 보니 곧 호인이가 숨어 있는 장독대에 도착할 것 같았다.
‘나와 호인이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이제 6장 정도가 남았을 뿐이야. 서둘러야 해. 서두르면 구할 수 있어!’
영규가 타통이 된 위천희의 머리는 이 순간 맹렬히 돌아가며 환영진의 방위를 순식간에 찾아냈다.
툭! 툭! 툭……!
작은 돌조각이 전보다 빠른 속도로 놓여졌다.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 맞춰 후각이 발달한 두 괴물의 걸음 속도도 빨라졌다.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누가 먼저 호인이 숨어 있는 장독대에 도착하느냐 하는 그런 싸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같은 일은 위천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빨리……! 빨리……!’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호인이었다. 그런 녀석을 허무하게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만일 녀석이 잘못되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력을 다해 진법을 설치했다.
하지만…….
“킁킁! 킁킁킁!”
코를 벌렁거리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녀석들.
갑자기 녀석들이 뛰기 시작했다.
쿵쿵쿵!
거친 뜀박질 소리. 아무래도 인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을 한 모양이었다.
“아……. 안 돼에에……!”
크게 소리를 지르는 위천희!
남은 거리는 겨우 여섯 걸음뿐이었다.
그 짧은 거리를 좁히면 되는데……. 뜀박질을 하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할 수 있는 그런 거리인데……. 하지만 그전에 먼저 놈들이 도착할 듯싶었다.
“크아아아아아앙!”
커다란 포효가 사방을 찔렀다.
“아악!”
장독 안에 숨어 있던 호인이 고개를 내밀다 산처럼 커다란 괴물이 들이닥치자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
위천희는 결국 두 눈을 찔끔 감고 말았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그런 끔찍한 광경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한데 이상하다. 갑자기 커다란 뭔가가 넘어지는 듯한 그런 소리가 들렸다.
휘리릭. 쿵! 털썩! 털썩!
“크르릉!”
“끼이잉. 끼이이잉.”
위천희의 귀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뭘까? 어떻게 됐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런 앓는 소리가 다 들려오는 것일까?
감은 두 눈을 조심스레 떠 보았다.
“어어?”
놀란 표정을 짓는 위천희.
그 놀란 얼굴은 곧 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뜻밖에도 변화가 인 것이다. 그것도 나쁜 쪽이 아닌 좋은 쪽으로의 변화!
“하하, 할아버지구나, 할아버지야! 우리 할아버지가 호인이를 구했어!”
의선곡의 곡주인 의선이었다.
지금 위천희가 있는 곳에서 왼쪽 방향으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는 어느새 의선이 나타나서는 위기에 빠진 아이를 구해서는 뒤에 내려놓고 있었다.
“안심해라, 호인아. 내 곁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단다.”
의선이 인자한 눈빛으로 겁에 질린 아이를 달랬다.
임호인은 이제 겨우 9살이지만 의선을 매우 존경하는 그런 어린아이다. 녀석은 곧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