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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9화)
Chapter 3 습격(3)


“예에……. 아, 알겠습니다, 의선 할아버지. 저는 꼼짝도 않고 여기에 있을게요.”
“허허, 그래, 그래.”
의선은 푸근한 느낌의 미소를 한번 짓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몇 마리의 새로운 괴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앙!”
“키리릭. 키리리릭!”
모두들 사람 냄새를 맡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녀석들은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 보이는 노인을 맛있는 먹이라 생각하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의선을 사냥하기 쉬운 상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흐음, 누군가와 다투는 것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짐승을 넘어 마물이 된 것들이라면 사정이 다르니 이제부터는 전력으로 힘을 써야겠구나.”
의선은 왼손은 뒷짐을 지고 오른손은 앞으로 내민 채 괴물들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새하얀 백의를 입고 그렇게 한쪽 손을 내밀고 있으니 진정 신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위현상 그는 별호인 의선에 걸맞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한편, 위천희는 의선을 보자마자 품속에서 다시 돌조각들을 꺼내 들었다.
“좋아, 할아버지를 돕자.”
툭! 툭! 툭!
위천희는 할아버지가 마음 편히 싸울 수 있게 환영진을 마저 구축하기 시작했다. 사방에 괴물들이 있는데 아무 힘없는 아이를 뒤에 세워 두고 싸운다는 것은 의선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위천희와 호인과의 거리는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서둘러 진을 구축하니 곧 호인이 있는 곳까지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야야! 빨리 들어와!”
빈 공간에서 손이 불쑥하고 튀어나왔다.
“어어……!”
짧게 놀란 음성을 내뱉은 호인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곧바로 그 손의 주인에게 붙잡혀서는 환영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으응?’
의선은 기감이 뛰어난 사람.
그는 호인이 갑자기 자신의 기감 속에서 사라지자 크게 놀라서는 재빨리 고개를 뒤로 돌렸다.
“…….”
아무 말 없는 의선.
이상한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라도 한 듯 연기처럼 사라져 있는 것이다. 너무도 기이한 일에 의선은 기감을 한번 극도로 발휘해 보았다. 그러자 미세한, 그리고 익숙한 뭔가가 바로 느껴졌다.
“그렇군. 여기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구나. 근처에 천희가 있는 것이야.”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편안한 마음은 누군가를 보게 되자 더더욱 편안해졌다. 익숙한 녀석의 얼굴이 허공중에 갑자기 붕 하고 떠오른 것이다.
혜지의 빛이 가득한 검은 눈동자.
“헤헤, 할아버지! 호인이는 제가 구했어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마음 놓고 싸우세요.”
위천희는 할아버지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귀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허허허, 그래. 내 이제부터는 마음 편히 싸우마.”
의선은 손자의 귀여운 모습에 너털웃음을 한번 짓고는 곧바로 신형을 돌려 세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들을 가벼운 손짓으로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앙!”
“쿠오오오오!”
휘리릭. 쿵! 털썩! 털썩!
대지가 크게 울렸다. 정말이지 신기한 모습이었다.
의선은 다양한 형태의 거대 괴물들을 너무도 손쉽게 쓰러트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쓰러트릴 수가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이리 난리를 치는 것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의선은 괴물들에게 호통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내민 오른손을 휘돌렸다.
위이이이이잉.
손의 주위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기(勁氣)가 일었다.
그러자 앞에서 달려들고 있는 사마귀처럼 생긴 녹색의 괴물이 그 경기에 휩쓸려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과 충돌을 하게 되었다.
쿵! 털썩.
게거품을 물며 정신을 잃는 사마귀 괴물.
봐도 봐도 신기한 모습이었다.
녀석들은 의선이 내밀고 있는 작디작은 오른손 하나에 번번이 가로막혀서는 바닥으로 꼬꾸라져야 했다.
쿵! 쿵쿵! 털썩! 털썩!
“우와아아!”
위천희는 호인과 함께 할아버지가 괴물들을 쓰러트리는 모습을 환영진의 안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우와, 역시 의선 할아버지는 대단해!”
방금 전까지도 겁에 질려 있었던 호인은 감탄사를 연발할 뿐이었다. 그에 반해 위천희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나름대로 할아버지가 지닌 무력을 생각해 보았다.
‘제룡의선수로구나. 역시 언제나 봐도 멋진 절기야. 할아버지가 지닌 절기 중, 제룡의선수는 독술과 함께 적을 제압하는 가장 뛰어난 것이라 할 수 있지.’
제룡의선수(制龍醫仙手).
이것은 금나수(擒拏手)의 일종으로 상대를 격살하기보다는 제압하기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공방을 하게 되는 경우 이 제룡의선수는 최강의 위력을 자랑하게 된다.
‘삼존 할아버지들이나 아버지도 조금 어려울 거야. 가까이에서 싸울 때는 말이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강기무공으로 상대를 해야 해.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살상력이 강한 독술이 있어. 그리고 유운의선보(流雲醫仙步)도 있으니 충분히 그분들을 상대할 수가 있을 거야. 물론 그분들의 무공은 살기가 짙으니 생사를 결하는 그런 싸움을 하게 되면 할아버지로서는 필패야.’
지금 위천희는 할아버지를 무인으로서 평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의선은 무인이 아닌 의원이기 때문이다. 의원은 무(武)가 아닌 의(醫)로서 평가해야 마땅하다.
‘뭐, 그래도 대단하기는 한 거야. 무공상의 경지로 보자면 할아버지도 어차피 삼존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초절정의 경지에 든 그런 무인이니까 말이야.’
쿵! 털썩!
“와아아아, 또, 또 쓰러트리셨어.”
호인은 계속해서 감탄성만을 내뱉고 있었다.
위천희는 이제는 그만 호인을 소환영미로진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녀석을 찾느라 걱정을 하고 있을 부모를 생각하면 지금도 늦은 것이다.

“이 녀석, 호인아!”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만나는 장면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다 뭉클거리게 만든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 헤어져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엄마……!”
호인이 힘찬 걸음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만약당의 당주인 임고위와 그의 아내인 소미령이 두 팔을 벌리고는 호인을 끌어안았다.
“호인이 너,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니? 이 엄마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다행이다, 다행이야.”
세 가족은 서로를 부둥켜안고는 하늘에 감사를 했다.
위천희는 기분 좋은 얼굴을 한 채 임고위에게 말했다.
“헤헤, 당주 아저씨! 호인이는 계속 저와 있었어요. 다른 곳에서 무사 아저씨들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으니 녀석을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아아, 그렇습니까, 소곡주님?”
“예, 그래요.”
호인이 위험에 처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좋게 잘되었는데 괜한 말로 그들의 마음을 어지럽힐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약당주 가족은 곧 소곡주인 위천희에게 짧게 인사를 하고는 의사청의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 상봉의 기쁨을 누리는 데에는 시끄러운 바깥보다는 안이 나았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나는 다른 곳의 싸움을 구경해 볼까.”
위천희는 걸음을 옮겼다.
소환영미로진의 진법이 펼쳐져 있는 곳의 외곽으로는 의선곡의 사람들 대부분 나와서 아직까지 싸움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엔 듣도 보도 못한 괴물들의 출현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그들이지만 지금은 놀라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놀라운 마음이란 당연히 밖에서 싸우고 있는 무사들로 인한 것이었다.
삼존은 말할 것도 없고 무림맹 최강의 부대라는 멸마대의 위용에 할 말을 잃은 그들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앙!”
“죽어랏! 이 개자식들아!”
“조져 버려! 놈들을 이리 유인해 와!”
쉬이익. 서걱!
검날이 빗살처럼 지나가자 괴물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죽어 나갔다. 지금은 저녁 시간이다. 하지만 밤하늘엔 지금 둥근 보름달이 떠 있어 구경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우리 천자1조가 2조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전력으로 처치해!”
천자1조장인 모가위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자 이십 장 밖에서 싸우고 있던 천자2조장인 곡상문이 자신의 밑에 있는 애들을 닦달했다.
“무조건 이긴다! 천자1조보다 우리가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알겠수다, 조장!”
“죽여랏! 죽여 버렷―!”
쉬이익. 슈아아아악.
장내에는 곧 살벌한 기운을 띤 검기와 도기가 사방으로 날아다니게 되었다.
“크아아아아아앙!”
“쿠오오오오!”
인간의 냄새를 맡고 아주 멀리서부터 달려온 거대 괴물들은 비명만을 내지른 채 빠르게 쓰러져 갔다. 이곳에서 최상위의 포식자로 군림을 하고 있던 녀석들이지만 여기 이 자리에서만큼은 달랐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녀석들은 지옥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었다.
“으하하하, 죽여! 죽여 버렷!”
“모두 죽인다! 단번에 쳐 죽인다!”
악귀들이었다. 30여 명의 멸마대원들은 사람이 아니라 지옥의 야차였다.
“오오, 정말 멋지네. 최고야, 최고! 역시 무림맹 최강의 전투 부대다워.”
위천희는 두 눈을 반짝이며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이들 멸마대가 왜 무림의 최강 부대 중 하나인지 피부 깊숙이 느껴졌다.
“크카카카! 죽여! 죽여 버려!”
정파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멸마대원들은 사파인보다 더욱 흉폭하고 잔인해 보였다.
사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현재 무림맹은 마교와 이십 년 전쟁에 있었는데 그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는 정도보다는 패도로써 싸워야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가 있었다.
전쟁은 예의로써 하는 게 아니다.
무조건 이겨야 했다. 승자가 모든 걸 가질 수 있으니 정파의 연합체인 무림맹은 마교를 상대함에 있어 매우 거친 사람들을 필요로 했고, 결국 명왕인 위극혼에게 부탁을 해 최강의 부대인 멸마대를 만들었다.
“듣기로 멸마대는 모두 세 개조로 나누어져 있다고 했어. 지금 이곳에 있는 천자조와 그리고 무림맹에 있을 지자조와 인자조, 그렇게 세 개조야. 이거 아쉬운데? 모두 다 이 자리에 있었으면 더 볼 만했을 텐데 말이야.”
“크아아아아아앙!”
“키릭! 키리릭!”
시간이 흐를수록 괴물들의 비명성은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든 녀석들은 무림의 악귀들에게 한 녀석도 남김없이 지옥으로 가고 있었다.
천자1조는 유성검법을 익혔다.
그리고 천자2조는 낙뢰도법을 익혔다.
경쟁이 붙은 그들은 일격필살의 수법으로 웬만하면 한 번에 더 많은 괴물들을 죽이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괴물들의 급소를 모른다.
심장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사혈(死穴)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걸 모르니 그들 멸마대원들은 괴물들의 뇌나 목을 검기나 도기를 사용해서 갈라 버렸다.
서걱! 서걱!
“죽어랏, 이 새끼들아!”
“눈이 하나인 괴물은 내가 죽인다!”
악귀들의 무자비한 칼질.
“크에엑!”
목이 절반만 날아간 녹색 괴물이 주둥이로 피분수를 내뿜으며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
갑자기 위천희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녀석은 멸마대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았다.
전율이 일 정도로 멋있는 모습, 부러웠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자신도 저렇게 손에 검이나 도를 쥐고는 밖으로 나가 마음껏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과도 같은 일.
앞으로 자신이 나이가 더 들어 어른이 되어도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날개를 잃은 새라고 해야 할까? 싹을 틔워야 할 기름진 밭이 메마른 사막과도 같으니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것은 슬픈 일. 하지만…….
‘천희야! 부러워하지 말자. 안 되는 일은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자. 너도 절대강자가 될 수 있어. 광진자가 말했잖아. 진법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하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해 보았다.
멸마대원들의 위용에 감탄만 하고 있기에는 위천희가 가진 재주 역시 무척 뛰어나다. 그 재주를 갈고 닦으면 머지않아 세상을 굽어보는 절대강자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