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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10화)
Chapter 4 소혼진(1)
의선곡의 사람들 중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장이다.
항상 새벽 일찍 일어나 다른 하인들과 같이 청소를 하는 그는 오늘 늦잠을 잤다. 어제 저녁에 벌어진,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든 그 무섭고도 끔찍한 일로 새벽에 잠이 들어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항상 일찍 일어나던 사람이 늦게 일어났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들 한 시진 정도씩 늦게 일어났고 의선곡의 곡주인 의선은 아침도 거른 채 바삐 움직였다.
사 개 당의 당주들과 같이 괴물들의 사체가 가득한 의사청 주위를 돌았다. 그리곤 그 쓰러진 괴물들의 정체를 파악해 나갔다.
“흐음…….”
진득한 피 냄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 피 냄새는 당연히 괴물들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신기한 것은 피의 색깔이 붉은색이 아닌, 녹색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특이하군요, 곡주님.”
“맞습니다, 어떻게 생명체의 피가 녹색을 이루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당의 당주인 임고위와 침구당의 당주인 조상천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상식선과 너무도 다른 것이라 호기심이 일었다.
의선은 의료용 소도(小刀)를 꺼내서는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길이가 2장이 넘는 녹색 괴물의 배를 갈랐다.
사각.
튼튼하면서도 질긴 녹색 가죽이 쉽게 잘려 나갔다.
녀석의 모든 것을 알아봐야 했다. 소화기관을 비롯해 호흡기관, 골격에다가 뇌의 구조가 어떠한지 하나하나 살펴보는 의선이었다.
그때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는 멸마대원들이 하인들과 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거기! 그 황소를 이리로 가지고 와.”
음메에에.
튼실한 황소의 울음소리.
“예에, 알겠습니다.”
“수레도 좀 더 가지고 오고. 오늘 중으로 이것들을 모두 치워야 해.”
“예에, 걱정 마십시오.”
현재 이곳 의사청의 주위 백 장 안쪽으로는 수백의 괴물들이 쓰러져 있었다. 날씨는 후덥지근한 열대 기후이니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이곳은 시체 썩는 냄새로 진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서둘러 치워야 했다.
괴물들의 크기는 작은 놈이 팔 척(2m 40cm) 크기이고 큰놈은 삼 장(9m) 가까이 되었다. 하인들이 수레에 담아 끌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멸마대원들은 놈들을 분해했다.
검과 도가 하늘로 들렸다가 곧장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쉬이익! 서걱! 서걱!
쉽게 잘려 나갔다. 병기에 내력을 약간 주입해 쾌속으로 휘두르니 괴물들은 하인들이 수레에 담기에 알맞은 크기로 잘려 나갔다.
“자아, 이놈들을 가지고 가.”
잠시 후, 축사에 있던 황소 20여 마리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음메에에.
“가자. 누렁아, 힘을 내자!”
오늘 중으로 이곳에 있는 괴물들을 모두 치울 생각을 가진 멸마대원들이었다. 원래는 힘든 일이지만 이곳엔 자신들 30여 명의 멸마대원들이 있었고 또한 의선곡의 하인들은 부지런한지라 충분히 가능했다.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이 시각.
의선곡의 소곡주인 위천희도 바삐 움직였다.
한 시진을 쉬지 않고 돌아다녀서인지 녀석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아이구, 힘들다.”
위천희는 나이 든 노인네처럼 허리를 두들기며 의사청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곳곳에 있는 괴물들의 사체를 보니 어제 의선곡은 진정 위기일발의 그런 상황을 맞이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조금만 늦게 괴물들의 동태를 파악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다.
“벌써 다 끝냈느냐?”
의선이 괴물의 사체를 검시하다가 손자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예, 겨우 다 복구했네요, 할아버지. 하루 내내 해야 할 일을 두 시진 만에 끝냈더니 아주 피곤해 죽겠어요.”
“그렇겠지.”
의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선곡을 보호하고 있던 환영미로진. 네가 그걸 7개월 전에 처음 설치했을 때는 3일이 걸렸으니 말이다. 헌데 내가 생각한 시간보다도 훨씬 빨리 복구했구나.”
처음 설치했을 때는 3일이었다. 한데 복구하는 데는 두 시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의선은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위천희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힘든 가운데서도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헤헤. 그건 진법을 이루는 핵심 축들이 절반이나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그래도 원래대로라면 하루 종일 일해야 나머지 절반을 복구시킬 수가 있는데 다행히 제 진법 실력이 전에 보다 상승해 서둘러 하니 이렇게 두 시진 만에 끝낼 수 있게 되었네요.”
“그랬구나. 네가 실력이 늘었기에 가능한 거였어.”
의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자가 지닌 재주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듯하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실력이 는다는 것은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단축이 된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런데 신기하네요, 할아버지.”
“뭐가 말이냐?”
위천희는 손가락으로 할아버지가 부검하고 있던 괴물의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피가 녹색이에요. 붉은색이 아닌 녹색이라니……. 너무 이상해요.”
녹색의 피를 흘리고 있는 괴물.
이런 것은 그 어디서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위천희는 의선곡에 있는 장서고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곳에 있는, 무림의 신기한 기물들을 적어 놓는 괴이지나 영물들을 수록한 신수록을 읽어 봤었지만 피가 녹색인 괴물은 그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흐음…….”
의선은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괴물의 피를 검지에 묻히더니 짧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 피를 분석해 보니 독기(毒氣)가 스며 있구나.”
“독기요?”
“그래. 그리 강한 독은 아니지만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해가 되는 좋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녹색의 피에는 특이하게 사기(邪氣)도 담겨 있단다.”
“…….”
“미약하기는 하지만 사기를 품은 피. 이것은 다시 말해 이 녹색의 피를 지닌 괴물들이 정상적인 녀석들이 아니라 사악한 생물체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단다.”
푸스스스스.
순간 의선의 오른손이 새하얗게 변했다.
옥수(玉手)보다 깨끗한 그 손은 검지에 묻은 녹색의 피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아아……! 조화성수다!’
위천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할아버지를 의선으로 있게 해 준 조화성수. 저 조화성수로 인해 나는 만절산맥의 고통에서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던 거야.’
조화성수(調和聖手).
이것은 다른 말로 만약신수(萬藥神手)라고도 하는 것으로 의선이 자랑하는 생사금침대법과 함께 그의 이름을 드높이는 절기였다. 누군가를 죽이는 무공이 아닌 살리는 의공(醫功).
수만 가지 약초의 기운들을 흡수해 궁극에는 죽은 자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살릴 수 있다는 성스러운 손이 그 조화성수인 것이다.
“흐음…….”
의선은 녹색 괴물의 피를 분석하고는 곧 그 안에 담겨 있는 활(活)의 기운을 흡수한 뒤, 나머지 독의 기운과 사의 기운을 몸 밖으로 내보냈다.
“이곳은……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 적당치가 않은 곳이구나. 일반의 사람들이 이런 곳에 산다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야. 이런 사악한 생물체들이 더 있다면 말이지.”
“예에, 그렇겠네요.”
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 봐야겠어요. 오늘 밤 녹색피를 가진 괴물들이 또다시 몰려온다면 이곳은 할아버지 말씀대로 매우 위험한 그런 동네일 거예요.”
과연 이곳은 어디인 것일까?
모두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가슴에 돌이라도 얹어진 듯 답답해졌다. 난생처음으로 보는 괴물들이다.
듣도 보도 못한 사악한 생명체들이 서식하고 있는 이곳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인가? 아니, 과연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한 것일까? 이 땅에서 자신들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는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것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듯싶었다.
늦은 저녁.
결국 이곳은, 의선곡이 이동되어진 이 땅은, 인간에게 매우 위험한 그런 곳임이 확인이 되었다.
“크아아아아아앙!
“키릭! 키리릭!”
어제보다는 덜하지만 다시 이백여 마리의 괴물들이 의선곡이 있는 이곳에 나타났다. 다행인 것은 의선곡은 오전에 곡을 감싸고 있던 환영미로진이 복구가 돼 괴물들은 입구로만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입구는 열려 있지만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아! 죽어랏! 죽엇!”
“놈들을 모두 죽여!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쉬이익! 서걱! 서걱!
검기와 도기가 달빛 아래 섬전처럼 지나간다. 그러면 꼭 한 마리씩의 괴물들이 녹색의 피를 흘리며 쓰러져 나갔다.
멸마대원들이 의선곡의 밖으로 나가 거대 괴물들을 가볍게 처치하고 있는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앙!”
“쿠오오오오오!”
크게 포효를 터트리는 괴물들.
하지만 왠지 겁에 질린 듯한 그런 모습들이다.
“으하하하하하! 죽어라, 이 개자식들아!”
그것은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무섭고도 끔찍스러운 거대 육식동물들이 평범하게 생긴 작은 육식동물에 덤벼들다가 그대로 잡아먹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범하게 생긴 육식동물 중에는 사나운 맹수가 한 마리 있었다.
쿠웅!
후드드드득.
땅거죽이 뒤집혔다. 발바닥의 용천혈로 내력을 집중한 뒤에 강하게 바닥을 한 번 구르니 대지가 굉음과 함께 크게 흔들렸다.
진각(震脚)이었다.
“건들지 마라! 내가 다 죽인다! 여기에 온 겁 없는 강아지들은 나 권존이 싸그리 죽일 것이다!”
우르르르릉.
권존인 황보장청의 오른손에서 눈부신 벽력이 폭발해 정면에서부터 다가오는 곤충처럼 생긴 괴물들에게로 날아갔다.
콰쾅! 콰콰쾅!
단 한 번의 공격에 여섯 마리의 괴물이 쓰러졌다.
황보장청은 어제의 한을 풀었다.
손녀를 지키느라 제대로 싸우지 못한 한을 지금 마음껏 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양손에서는 벽력이 무수히 생성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콰쾅! 콰콰콰콰콰쾅!
“크에에에엑!”
“크아앙!”
피떡이 되어 날아가는 괴물들.
“죽어랏! 너희들은 그저 나의 천왕벽력수에 잿더미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녀석들은 순한 양일 뿐이었다.
길을 가다 한 마리의 사나운 늑대를 만나서는 그의 먹이로 전락하고 만 불쌍한 양들일 뿐이었다.
“허허, 황보 형이 오늘 아주 신이 난 모양이군.”
검존 남궁인이 황보장청의 활극에 한마디를 했다. 그러자 곁에 있는 도존 심현노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나잇값을 못해. 아해들 앞에서 저게 뭐 하는 짓인지.”
“허허, 나는 보기 좋은데 자네는 왜 그러는가. 우리 젊었을 적이 생각나지 않는가.”
검존과 도존은 권존의 행동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의선곡의 입구에는 어제와는 다르게 몇 명의 사람들만이 모여 있었다. 제일 앞에는 검존과 도존, 그리고 의선이 함께 있었고 그 뒤쪽에는 의선곡의 네 명의 당주와 그리고 한쪽에 멸마대주의 식구가 있었다.
멸마대주는 왼쪽에 위천희를 세워 두고는 그의 아내인 화운영과 함께 심각한 눈으로 밖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 왜 아내를 데려왔는지 의아스러울 법도 하지만 그건 화운영이 일반의 여인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화운영은 고수다. 그것도 보통의 고수가 아닌 강기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절정의 고수인 것이다.
“천희야.”
“예, 엄마.”
화운영이 밖의 괴물들을 보고 나서는 아들을 불렀다.
“너, 내일부터는 시간을 아껴라.”
“…….”
“엄마는 이런 곳에서 살기 싫구나. 저런 괴물들이 날뛰는 곳에서 최소 삼 년 이상을 산다는 게 너무도 끔찍해. 그러니 너는 내일부터 무조건 수련을 쌓아. 극령의 경지에 들면 돌아갈 수 있다며?”
“맞아요. 극령의 경지에 들면 돌아갈 수 있어요.”
“그래. 그러니 너는 그 경지에 이를 때까지는 다른 모든 건 신경을 끊고 오직 수련에만 힘써. 그리고 상공.”
이번엔 남편을 부르는 화운영이었다.
“말하시오, 부인.”
“상공께서도 노력해 주세요.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말이에요. 저는 정말 이곳이 끔찍하네요. 벌써부터 고향이 그리워져요.”
이제 이틀을 보냈는데 고향이 그립단다.
위극혼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소, 부인. 내 최대한 빨리 이곳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소. 내일부터 바로 말이오.”
원래 그는 오늘부터 이곳을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의사청 주위에 쓰러져 있는 괴물의 사체들을 치우느라 하루를 꼬박 소비하게 되어 할 수 없이 내일부터 돌아다녀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