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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11화)
Chapter 4 소혼진(2)
위극혼은 잠시 바깥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곧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천희야.”
“예, 아버지.”
“너 내일부터는 저녁 시간이 되면 이곳 의선곡을 완전히 봉쇄해 버려라. 여기 입구를 열지 말고 전부 막아 버려. 괴물들이 아예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해.”
“아아……!”
위천희는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했다.
괴물들은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일까?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그 냄새를 지우면 되는 것이다.
진법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체의 감각기관을 속이는 것.
공간의 기운을 꼬이게 해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진법인데 위천희가 사용하는 진법은 그 환영의 기운이 극강해 생각 없이 본능적인 행동만을 하는 벌레들도 환영 속에 빠지게 할 수 있었다.
“예, 알겠어요, 아버지. 놈들은 야행성 같으니까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이곳을 봉쇄해 버릴게요. 그럼 아마 저 괴물들은 이 근처에까지 왔다가 다시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갈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저도…….”
말끝을 흐리는 위천희.
뭔가를 생각하는 듯 표정이 진지했다.
그리곤 잠시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으응, 그리고 저도 아버지처럼 내일부터는 이곳에 대해 알아볼게요.”
“그게 무슨 소리냐?”
“천희야, 그게 무슨 말이니? 설마 저 위험한 바깥으로 나가겠다는 거야?”
위극혼과 화운영이 놀라서는 동시에 물었다.
이곳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것은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이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헤헤, 안심하세요, 엄마.”
위천희는 화운영이 불안한 기색을 띠자 바로 말했다.
“제가 왜 밖으로 나가겠어요, 위험하게 말이에요. 저는 여기서, 이곳 의선곡에서 알아볼 거예요.”
“…….”
“…….”
아무 말 없는 두 사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아들 녀석은 아주 멀리 있는 곳이라도 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천리안(千里眼)의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모른다. 가르쳐 주지 않으니 모를 수밖에.
위천희는 부모님께 자신이 어떻게 이곳을 알아보겠다는 건지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나중에, 이곳에 대해 알게 되면 그때 자세히 말해 주겠다는 걸로 모든 대답을 마쳤다.
‘알 수 있을 거야. 생각해 보니 내게는 그게 있었어. 바로 선천진법이 말이야.’
“헤헤헤.”
위천희는 웃었다.
내일이 기다려졌다. 내일 해 보면 이곳이 어디에 붙어 있는 땅인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
오운육기의 법은 무공의 핵심인 내공심법처럼 진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력을 키워 주는 법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다음과 같은 5단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1단계, 연혼(練魂) 혼을 단련한다.
제2단계, 심혼(深魂) 혼의 힘이 깊어진다.
제3단계, 소령(小靈) 작은 영을 얻다.
제4단계, 극령(極靈) 영이 극에 이른다.
제5단계, 진령(眞靈) 참된 영을 얻다.
이렇게 연혼을 시작으로 해서 진령에 이르는 오운육기의 법을 광진자는 두 번째 단계인 심혼까지밖에 수련하지 못했다. 그것은 평생을 연구만 하다가 뒤늦게 수련을 했기에 그렇게 두 번째 단계에만 이른 것이다.
한데 위천희는 열두 살에 세 번째 단계인 소령의 단계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이 소령이라고 하는 것은 영규가 타통이 되어야지만 이를 수가 있는 경지인지라 오운육기의 법에 있어서 가장 큰 벽이라 할 수 있었다.
기연이었다.
생사금침대법의 힘과 아이의 노력, 그리고 하늘의 시기가 맞아떨어져 그처럼 어린 나이에 세 번째 단계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 번째 단계인 소령의 경지부터는 선천진법을 익히고 또한 설치할 수 있게 된다.
광진자는 진법에 있어 초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을 후천진법과 선천진법으로 나누어 창안을 했는데 위천희가 의선곡을 이동시킨 이동진은 그 선천진법에 있어 첫 번째의 것이었다.
그럼 선천진법의 두 번째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위천희가 북부에 있는 안식림 주위에다가 설치하고 있는 진법이었다. 이른 새벽, 그는 의선곡에서 가장 부지런한 장이를 제치고 그렇게 일찍부터 진법을 설치하느라 힘을 빼고 있었다.
툭! 툭! 툭!
돌조각이 아닌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나뭇조각이 천천히 바닥에 꽂혔다. 자단목은 영력의 힘을 강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어 소령의 단계에 든 지 오래되지 않은 위천희는 선천진법을 설치할 때는 꼭 자단목으로 만든 나뭇조각을 이용했다.
물론 현재로써도 선천진법을 설치할 때 아무 사물을 이용해도 충분히 진법의 축을 이루게 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하자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아, 정말 힘들다.”
시간은 이제 아침을 넘어서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전하는 태양은 동녘 하늘에 떠오른 지 이미 오래였고 거기다 두 시진을 넘게 노동을 하니 위천희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가끔씩 이마에 난 땀을 훔치며 부지런히 진법을 설치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이것만 마저 꽂으면 소혼진은 완성이야.”
마지막 하나 남은 나뭇조각.
신중히 해야 했다. 위천희는 정신을 집중해 영력이라고 하는 힘을 나뭇조각에 싣고는 눈에 보이는, 마음의 눈에 보이는 그곳에 천천히 꽂았다.
지이잉. 지이이잉.
공간에 작은 진동음이 들렸다.
완성이었다. 처음으로 설치해 본 소혼진이었지만 위천희는 자신이 완벽히 진법을 설치했음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안식림의 숲과 저 멀리에 있던 절벽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가 앉아 있는 주위 삼 장 밖으로 검은 기류가 회전을 하며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휘류류류류류.
마치 지저세계에 들어선 듯 위천희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곳은 양(陽)의 기운이 아닌 음(陰)의 기운이 가득 들어찬 세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기운을 위축시키는 그런 음침한 세계.
소혼진(召魂陣).
이것은 이름 그대로 혼을 부르는 진이다.
죽은 자나 영적인 어떠한 존재들을 현세에 불러들이는 것으로 이것은 고대에 전해지던 소혼술법을 광진자가 진법으로 구현시킨 것이었다.
“흐흠, 기분은 별로지만 그래도 완성이 되었으니 다행이야. 실패를 했으면 또 몇 날 며칠을 고민할 뻔했잖아.”
뭐든 되겠다 싶은 것은 한 번에 되는 게 좋다.
이론은 완벽한데 그게 실전에서 잘되지 않으면 그것만큼 머리를 쥐어뜯게 하는 것도 없었다.
“좋아, 그럼 이제는 바로 시작해 보자. 이 땅에 살고 있을 지박령이나 어떤 영적인 것을 불러내 보는 거야. 녀석들에게 물어보면 의선곡이 이동해 온 이곳이 어떤 곳인지 단번에 알 수가 있을 거야.”
그렇다. 위천희가 선천진법의 두 번째 진인 소혼진을 이른 새벽부터 설치한 이유는 이곳이 어디인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함인 것이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어떤 영적인 존재들에게 물어보면 밖에 나가 돌아다닐 필요 없이 이곳이 어디인지 단숨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스윽, 척.
위천희는 즉시 자리에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서는 두 눈을 감았다.
“후으읍, 휴우우우.”
언제나처럼 먼저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편안히 했다.
선천진법에 속하는 진법들은 후천진법에 비해 영력의 소모가 극심하다. 당연히 마음을 다듬고 진법을 설치하느라 소모가 된 영력을 벌충해야 했다.
내공이라고 하는 것은 무한한 게 아니다.
한번 사용했으면 다시 심법을 운행해 내공을 쌓아야 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진법에 있어 영력도 사용했으면 채워 넣어야 한다.
위천희는 이각(30분) 정도 오운육기의 법문을 외워 소모가 된 영력을 다시 채워 넣었다. 그리곤 곧바로 소혼진을 설치한 목적에 맞는 행동을 했다.
“이 땅에 살고 있을 지박령은 나 위천희의 부름에 응답하라! 너의 모습을 이 자리에 드러내라―!”
후화아아아악.
순간, 강력한 염파(念波)가 검은 기류에 감싸져 있는 소혼진을 강타했다. 염파의 기운 때문인지 그 검은 기류는 잠깐 출렁거려야 했다.
위천희는 마음속으로 염파를 내쏜 후, 잠시 기다렸다.
혼을 부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진법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부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름을 알아야 한다. 참된 이름을 알면 혼을 부르는 일은 좀 더 쉬워진다. 물론 참된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또 무조건적으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조건들이 맞아야 했다.
이미 환생을 했다거나 아니면 불가나 도가에서 전해져 오는 어떤 해탈이나 우화등선 같은 것을 했다면 그 존재는 불러낼 수가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소혼진의 안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아무 말 없는 위천희.
곧 감은 두 눈을 뜨고는 소혼진이 펼쳐진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뭐야? 아무도 없네?”
실패다.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위천희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에이, 왜 실패한 거지? 이름이 문제인 건가? 그래도 지박령이라고 하면 웬만하면 다 통할 텐데 이상하네?”
지박령이라고 하는 것은 한 지역에 원한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묶여 있는 혼령이나 어떤 영적인 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어느 지역을 가나 다 있게 마련이다.
위천희가 지박령이라는 이름으로 소혼진을 발동시킨 이유는 그 이름이 가장 보편적이었기에 행한 것이었는데 그게 실패를 하니 녀석은 난감하기만 했다.
“이거 어떻게 하지? 답답하네. 소혼진은 완벽히 설치되었어. 그러니 분명 뭔가를 소환시킬 수는 있을 텐데 말이야.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니 이거 참.”
정말 답답했다.
팔짱을 낀 채 고민을 해 보았다.
지박령으로 실패를 했으니 이제는 좀 더 그럴싸한, 좀 더 보편적인 그런 이름을 내세워 혼령이나 영적인 존재를 불러내야 했다. 두 번째는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땅에 머물고 있을 영적인 존재. 그렇다면 토지신(土地神)이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면…….’
몇 가지 괜찮은 이름들이 떠올랐다.
지박령에 못지않은 보편적인 이름들.
‘으음, 그래. 정백(精魄)도 괜찮고 신령(神靈)도 괜찮아. 아니면 정령(精靈)도 괜찮은 단어야.’
정백, 신령, 정령…….
이것들은 모두 같은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그런 산천초목에는 영적인 기운들이 모여서 신령스러운 존재들이 탄생한다.
산신령이 그렇고 토지신이 그렇다. 무당이 굿을 하는 오래된 나무에도 마찬가지로 정백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 게 가장 좋은 것일까?
위천희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반드시 성공을 하고 싶었다.
자신이 앉아 있는, 이 땅에 잠들어 있을 영적인 존재. 그리고 그 존재를 깨울 수 있는, 그 존재를 현세에 불러들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이름.
‘아무래도 이게 낫겠어. 땅의 신령……! 이 신령이라는 단어가 가장 나은 것 같아.’
마음의 결심이 내려졌다.
세상을 이루는 근원 요소라 할 수 있는 신령. 이 신령이란 이름으로 하면 소혼진이 제대로 작동할 것 같았다.
‘좋아, 바로 해 보자. 이번엔 영력을 극한으로 쏟아 부어 보는 거야. 그리고 이번엔 약간 두루뭉술하게 부르는 거야.’
위천희는 즉시 두 눈을 감았다.
“후으읍, 휴우우우…….”
시작은 언제나 깊은 호흡이다.
잠깐 조식을 통해서 호흡을 고른 후, 그는 방금 전에 했던 것처럼 마음속으로 강력한 염파를 소혼진에 내쏘았다.
“이 땅을 관장하는 신령스러운 존재여! 나 위천희의 부름을 받아 이 자리에 그 모습을 드러내라―!”
후화아아아아악.
출렁! 출렁! 출렁……!
소혼진을 감싸고 있는 검은 기류가 위천희의 강력한 염파에 흔들거렸다. 마치 거친 파도에 휩쓸리기라도 하듯 쉬지 않고 흔들거렸다.
그리고 변화가 생겼다.
이름을 신령스러운 존재라고 두루뭉술하게 불렀는 데도 불구하고 마침내 위천희가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는 곳의 바로 앞 땅바닥에서 무언가가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영기감이라고 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눈으로 보는 것보다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스멀스멀.
땅속을 뚫고 나오는 그것.
갈색의 거품처럼 보이는 그것은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 거품은 서서히 형체를 갖추더니 곧이어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턱턱.
아기처럼 작은 두 손이 대지를 짚었다. 하지만 신령으로 여겨지는 그것은 밖으로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