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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12화)
Chapter 4 소혼진(3)


―끄으응.
앓는 소리가, 아니 앓는 마음의 소리가 위천희의 정신 속을 울렸다. 이상한 생각에 감은 두 눈을 떠보았다. 그러자 눈, 코, 입 없이 그저 형체만을 간신히 이룬 작은 존재가 대지 위로 오르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끄으응. 끄으으응.
안쓰러웠다. 아기 신령은 정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양손을 부들거리며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있는 신령.
위천희는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며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녀석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 아기 신령에게 마음으로 뜻을 보냈다.
‘힘내! 할 수 있어! 내가 도울게! 내가 도우면 좀 더 수월히 나올 수 있을 거야!’
영력을 끌어올렸다. 영적인 존재에게는 물리적인 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그가 지닌 힘이라 할 수 있는 영력을 눈앞에 있는 아기 신령에게 보내 영양분으로 삼게 하였다. 그러자 아기 신령이 좀 전보다는 수월하게 대지 속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양손과 얼굴만 내보였지만 이제는 가슴께까지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끄으응! 어, 엄마! 어, 엄마……!
아기 신령이 위천희를 보며 엄마라고 불렀다.
그러자 위천희는 자신이 진짜 엄마가 되기라도 한 양 이상한 기분에 빠져 들게 되었다.
“으윽!”
갑자기 고통이 느껴졌다.
이것은 어떤 고통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산모가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하늘이 노래지는 그런 진통을 느낀다고 한다. 위천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고통을 겪었다. 아기 신령에게 전해 주는 영력이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이 빠져나가 고통이 일고 있는 것이었다.
―끄으응! 끄으으응!
‘힘내! 할 수 있어! 내가…… 내가 힘이 돼 줄게―!’
아기 신령과 위천희는 함께 힘을 냈다.
아기 신령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애를 썼고 위천희는 그런 아기 신령에게 영력을 보내 줌으로써 좀 더 수월히 나올 수 있게 했다.
“으윽!”
다시 고통이 일었다. 영력의 소모가 너무 극심해지자 위천희는 급히 오른손에 영력을 집중시켰다.
‘아기 신령아! 내 손을 잡아!’
위천희는 손을 내밀었다.
영적인 존재에게는 물리적인 힘이 소용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위천희가 내민 오른손은 그냥 손이 아니라 영력의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스윽, 척.
아기 신령의 양손이 그의 영력이 깃든 오른손을 붙잡았다.
위천희는 이때다 싶어 끌어올렸다.
하지만 단번에 되지는 않았다. 대지의 기운이 아기 신령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끄으응! 끄으으응!
“이야아아아앗!”
위천희는 악을 썼다.
상단전에 남아 있는 영력 모두를 오른손에 담아 아기 신령을 끌어 올렸고 마침내 대지의 기운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기 신령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기 신령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앙!
커다란 울음소리. 그것은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새로운 생명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고귀한 광경인 것이다.

***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이다.
정확히는 무의 공간이 아니라 회색의 기류가 가득 차 있는, 왠지 음침한 기분이 들게 하는 공간이었는데 지금 이 음침한 회색의 공간에 오래간만에 변화가 일려고 했다.
휘류류류류류.
공간을 떠돌던 회색의 기류들이 갑자기 큰 움직임을 보이며 무언가에 경배를 하는 그런 느낌을 표출했다.
들뜬 느낌? 아니면 환희의 느낌이라고 할까?
녀석들은 한곳을 향해 빠르게 모여들었다.
회색 공간의 중심부.
고오오오오오오.
갑자기 그 공간의 중심부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일며 회색 기류들을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무언가가 눈을 떴다.
형체는 없었다.
그것은 단지 정신적으로만 눈을 떴을 뿐이었다.
“뭐지?”
회색 존재는 눈을 뜨자마자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깨운 그 무엇, 방금 전 자신의 뇌리를 스치며 가슴을 서늘하게 한 그것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 느낌은 다시 오지 않았다.
“이상하군. 분명히 뭔가가 나를 깨운 것 같은데……. 그것도 좋지 않게 말이야.”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왜 느낌이 좋지 않은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가슴이 조금 답답해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자 회색 존재는 다시 눈을 감았다.
“으음, 언젠가는 알 수가 있겠지.”
회색 존재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있었다.
대단히 중요한 일인지라 스치듯 지나간 불길한 느낌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이제는 돌아가 봐야겠군.”
회색 존재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곳 회색 공간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지 강렬한 기운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휘류류류류류.
잠시 후, 회색 존재는 사라졌고 그를 경배하던 회색 기류들은 처음처럼 자유분방하게 공간을 떠돌며 이곳을 음침스러운 그런 공간으로 바꾸었다.



Chapter 5 신령스러운 존재들(1)


우우우우우웅.
검은 기류가 사방을 감싸고 있는 소혼진의 안이다.
신령을 불러내느라 영력을 거의 다 소진하여 파김치가 되어 버린 위천희는 즉시 오운육기의 법문을 외웠다.
너무 지쳐 그냥 잠들고 싶었지만 아기 신령에게 이곳이 어디인지 물어보기 위해 피곤한 몸을 억지로 달리며 영력을 빠르게 벌충했다.
한 시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휴우우우, 이제 다 됐구나.”
오운육기의 법을 수차례 행공한 위천희는 감은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자 그 눈에서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였다.
마치 내공이 극에 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헤헤, 이제야 살 것 같네.”
입가에 미소가 매달렸다. 전신에 활력이 샘솟듯 흐르고 있었는데 위천희는 그냥 잠들지 않고 이렇게 오운육기의 법문을 외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건드렸다.
툭툭.
“…….”
이상한 느낌에 그의 고개가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아기 신령이 보였다.
녀석은 위천희의 다리 사이에 앉아서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달려 있지 않은 아기 신령이지만 위천희는 녀석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녕, 땅의 신령아! 나는 위천희야. 너를 소환한 아주 훌륭하고도 멋진…… 으음, 그래. 진법사야, 진법사.”
즉석에서 만든 진법사라는 칭호.
마음에 들었다. 위천희는 갈색 빛을 띠고 있는 아기 신령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정신 속으로 아기 신령의 뜻이 들려왔다.
―어, 엄마……!
“엥?”
위천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엄마라는 단어. 방금 전 땅속에 있었을 때도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던 아기 신령이다. 하지만 그때는 녀석이 자신의 이름을 몰라 그리 부른 것이라 생각했었다.
“야아!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여기서 엄마를 찾으면 어떻게 해. 그리고 신령이 무슨 엄마 타령이야?”
―엄마, 엄마! 엄마가 맞아요.
아기 신령은 위천희를 계속해서 엄마라고 불렀다.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위천희.
아무래도 자신이 정신적으로 좀 모자란 그런 신령을 소환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자신이 땅의 신령을 소환한 그 목적을 이제 실행에 옮겨야 했다.
“야아, 하여간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뭐, 그건 됐고. 너는 이제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
아기 신령은 조용히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너는 땅의 신령이니까 이곳이 어디인지 잘 알 거 아니야? 말해 봐. 이곳이 중원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지 나는 너무도 궁금해.”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 것인가.
위천희는 두 눈을 반짝이며 아기 신령이 보내올 뜻을 기다렸다. 내심 바라기로는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그런 곳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몰라요.
“…….”
아무 말도 못하는 위천희.
이것은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땅의 신령이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다니? 이게 과연 말이 되는 것일까? 설마 자신이 정말 많이 모자란 그런 땅의 신령을 소환한 것은 아닐까?
바로 또다시 물어보았다.
“뭘 몰라, 인마! 땅의 신령이 자기가 사는 동네를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어디야? 빨리 사실대로 대답해!”
―우웅,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엄마.
위천희의 양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게, 정말! 너, 나랑 장난해? 빨리 대답해!”
―저, 정말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에요.
아기 신령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계속해서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그러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위천희였다.
그는 생각했다.
‘뭐야? 왜 모르는 거야? 아무것도 모른다니, 이게 말이 돼? 이거 그렇다면 혹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의심이 들었다. 그 의심을 확인해 보았다.
“너 이름이 뭐야? 설마 자기 이름도 뭔지 모르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결정적인 질문이었다.
과연 이 아기 신령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지, 그리고 안다면 그 진실 된 이름은 무엇일지 기대가 됐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몰라요. 아니, 없어요. 엄마가 이름을 지어 주세요.
“…….”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이름이 없단다. 자신보고 이름을 지어 달란다.
결국 위천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와 같은 그런 신령을 소환하고 만 것이었다.

잠시 후.
멍해 있던 위천희는 정신을 차렸다.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 속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신령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 주는 게 좋을지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엄마, 엄마……!
아기 신령은 위천희의 하의를 붙잡고는 계속해서 그를 엄마라고 부르며 놀고 있었다.
“하아, 참! 이 아기 신령은 왜 자꾸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거야? 아빠라면 몰라도 사내인 나에게 엄마라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따끔하게 자신이 누구라는 걸 알려 주고 거기에 녀석의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야아, 땅의 신령아!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마. 다른 이름으로 불러.”
―으응? 다른 이름이요?
“그래. 내 이름은 위천희야. 그리고 너는 앞으로 나를 엄마가 아닌 대주라고 불러. 알았지?”
아기 신령은 대주라 부르라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라는 단어가 좋았다. 그리고 녀석은 위천희를 보자마자 그가 엄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는데 그 엄마가 자신에게 앞으로는 대주라 부르라고 하니 의아해졌다.
‘대주라……! 정말 듣기 좋은 단어야. 무림맹 최강의 부대라는 멸마대. 그리고 그 멸마대의 대주인 우리 아버지. 헤헤, 나도 새로운 부대인 멸사대의 대주가 되어 보는 거야. 여기 있는 신령을 대원으로 해서 말이야.’
멸사대(滅邪隊).
이것은 위천희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밤에 꿈나라로 가기 전, 나름대로 상상을 해서 만들어 본 부대였다. 그는 멸마대의 대주인 아버지가 내심 부러웠는데 자신도 그런 부대와 유사한 부대를 만들어 그곳의 대주가 되어 활극을 펼치는 그런 꿈들을 꾸었었다.
“왜 아무 대답도 안 해? 앞으로 나를 부를 땐 대주라고 불러. 그렇지 않으면 너한테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을 거야.”
―어어? 제 이름이요? 저한테 이름을 주실 건가요?
“그래. 그러니 어서 대주라고 해 봐, 어서!”
―아……. 알았어요. 엄마, 아니, 대, 대주님!
아기 신령은 떠듬거리며 급히 위천희를 대주란 이름으로 불렀다.
녀석에게는 이름이 필요했다. 이름이 꼭 있어야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엄마에게서 이름을 받아야지만 자신이 완전해질 수 있을 듯싶었다. 지금의 자신은 막 태어난 힘없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헤헤. 좋아, 좋아. 진즉에 그럴 것이지 말이야. 엄마보다 대주란 말이 얼마나 듣기 좋냐. 헤헤헤.”
위천희는 아기 신령이 드디어 자신을 엄마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 기분이 좋은지 크게 웃음을 지었다. 엄마란 이름은 사실 별거 아니었지만 녀석이 자꾸 엄마라고 하니까 자신의 성별이 왠지 남자가 아닌 여자인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