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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13화)
Chapter 5 신령스러운 존재들(2)
―이름이요, 이름! 어서 이름을 지어 주세요.
아기 신령이 위천희의 하의를 강하게 붙잡고는 보챘다.
“헤헤, 알았다.”
이름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그 시간, 수많은 이름들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그중 땅의 신령에게 맞겠다 싶은 그런 이름이 하나 선택되어졌다. 그 이름을 위천희는 바로 아기 신령에게 전해 주었다.
“너는 토령(土靈)이다. 흙에서 태어났으니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토령이야.”
―아아, 토령……!
부르르르.
몸을 잘게 떠는 아기 신령.
녀석은 위천희가 자신을 토령이라고 부르자 갑자기 힘이 급상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안에서 무언가가 밖으로 터져 나가는 듯한 그런 느낌.
화아아아아악.
순간 환한 빛이 일었다.
빛은 아기 신령과 같은 갈색이었고 그것은 눈부시게 퍼져 나가 소혼진을 가득 메우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꿈이라도 꾼 듯한 모습이다.
“…….”
멀뚱한 표정의 위천희.
슥슥슥.
오른손으로 양 눈을 몇 번 비벼 보더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녀석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변해 있었다. 아기 신령은 더 이상 아기가 아니었다.
토령은 자신과 비슷한 열세 살 정도의 소년으로 커져서는 눈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녀석은 위천희 자신과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계란형의 얼굴에 눈, 코, 입 등이 모두 똑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녀석이 갈색 빛깔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신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일반의 사람들은 볼 수가 없었다.
오직 영규가 타통이 되어 영안(靈眼)을 소유하게 된 위천희만이 볼 수가 있는 것이었다.
“뭐야, 너? 기분 나쁘게 왜 내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별로인가요, 대주님?
아기 신령에서 소년 신령이 된 토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은 대주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위천희와 똑같은 모습을 했던 모양이다.
“당연하지. 너 빨리 다른 모습으로 변해.”
―으응, 그건 좀 힘든데…….
“왜? 왜 힘든데?”
―저는 대주님의 모습밖에 보지 못해서 다른 형상으로는 변하지 못해요.
토령은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신령들과는 달랐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이제 막 새로 태어났다. 아기가 무얼 알겠는가.
이제부터 세상을 보고 또 듣고 해서 많은 지식을 쌓아 가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해 알아 가야 하는 것이다.
“이거 참…….”
위천희는 토령의 말에 팔짱을 끼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은 없었다. 아기와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에게 뭘 더 바라겠는가. 일단은 녀석에게 다른 사물의 모습을 보여 주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지금 당장 녀석과 같이 밖으로 나가 축사에 있는 소나 돼지, 아니면 멍멍이를 보여 주는 게 좋을 듯했다. 녀석을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게 하거나 그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어 그들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해야 했다.
“할 수 없군.”
위천희는 토령을 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는 나가자, 토령아. 나가서 이 대주가 세상 구경을 시켜 주마.”
신형을 돌려 세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소혼진은 그대로 남겨 두기로 했다.
이 소혼진은 앞으로도 몇 번을 더 사용해야 했다.
‘내일 아침 일찍 또 다른 신령들을 불러내 보자. 토령이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바보 신령 말고 좀 제대로 된 그런 신령을 불러내 보는 거야.’
오늘은 실패한 것이다.
소혼진은 성공했지만 소혼진을 만든 목적은 실패했으니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뭐 해? 빨리 따라 나와.”
위천희는 토령이 미적거리며 서 있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토령이 약간 불안해 하는 그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상해요, 대주님!
“뭐가? 뭐가 이상한데?”
―느낌이 좋지 않아요. 이대로 그냥 밖으로 나가면 큰일 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것은 본능이었다.
토령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와 같은 녀석이었지만 이름을 가지게 된 그 순간부터 힘이 더 강해지고 또한 본능적인 감각이 더욱 향상되게 되었다.
불길했다. 검은 기류에 감싸져 있는 소혼진을 벗어나면 자신에게 어떤 해가 닥칠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서 나와!”
위천희는 오른손에 영력의 힘을 담아서는 토령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토령이 괜히 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가끔 가다 보면 그런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엄마 품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
그리고 집 안에만 있으려는 아이들.
공포증이라고 해야 할지, 밖으로 나가면 괜히 큰일이 있을 거라고 믿는 그런 것.
“빨리 나가자. 밖으로 나가면 내가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여 줄게.”
―아, 안 되는데……!
억지로 끌려 나가는 토령.
나가기 싫었지만 대주가 손을 붙잡고 소혼진을 벗어나니 자신도 따라서 검은 기류를 뚫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아악!
비명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뭐, 뭐야?”
위천희는 자신의 정신 속으로 토령의 비명이 들려오자 크게 놀라서는 재빨리 뒤를 보게 되었다.
―으윽, 대, 대주님……!
영안에 비친 토령.
녀석은 원래 갈색의 빛을 띠고 있었지만 소혼진의 안쪽과 바깥쪽의 경계에 걸쳐진 지금은 그 빛을 많이 잃고 연한 갈색을 지니게 되었다.
치지지직.
불길에 타들어 가고 있다.
―제…… 제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그런 모습.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 토령이란 이름의 신령은 다시는 소환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야아, 아……. 안 되겠다! 어서! 어서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크게 놀란 위천희는 결국 발길을 돌려 소혼진의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
의선곡이 이 낯설고도 괴이한 곳에 떨어진 지도 벌써 3개월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멸마대주이자 무림에서는 육왕의 하나인 명왕으로 불리는 위극혼. 그는 부하 대원들과 함께 자신들이 떨어진 이 땅을 조사했다.
사람을 찾아야 했다.
이곳이 어디에 붙어 있는 땅인지를 알아야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그들은 네 개 조로 나누어 사람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섬이었다. 무인도였다.
의선곡이 이동해 온 이곳은 중원의 남단에 있는 해남도의 세 배 정도 되는 거대 섬이었다.
모두들 실망의 표정들을 감추지 않았다.
배를 만들어 떠날 수는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잘못하다가는 바다에서 길을 잃어 영영 육지를 밟아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제 기댈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의선곡에 재앙을 일으킨 장본인인 위천희가 의선곡을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최소 삼 년이다. 그리고 재수가 없으면 십 년을 내내 이곳에서 보내야만 했다.
달그락, 달그락.
밥그릇에 숟가락이 거칠게 들락거린다.
화운영은 아들의 식사 예절이 너무 형편없음을 깨닫고는 한 소리를 했다.
“천희야! 식사를 할 때는 얌전히 먹어야지 그게 뭐니?”
“우물우물. 맛있는 걸 어떻게 해요? 엄마가 해 주는 요리는 뭐든 다 맛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된단 말이에요. 최고로 맛있는 요리로 사람을 정신없이 먹게 만드니 이것은 다 엄마 책임이에요.”
아부가 물이 올랐다.
“호호, 녀석도 참.”
최고의 요리라는 말로 칭찬을 하니 화운영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기분 좋은 말을 하는데 거기다 초를 쳐서 그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현재 이곳 식탁에는 두 사람의 모습만이 보였다.
화운영과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 위천희.
지금 시간은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그런 시각인지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천희는 지금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식사하는 시간이 항상 일정하지만 위천희는 달라서 그런 것이다. 수련을 쌓아야 했다.
진법 수련은 한 번 시작하면 언제쯤 끝이 날지 위천희 본인도 알 수 없는지라 한 번의 수련이 끝나면 이렇게 주방이 있는 식탁으로 와서는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들게 되는 것이었다.
“우물우물, 아버지는 언제쯤에 돌아오신다고 했죠?”
“이제 이틀이 지났으니 앞으로 엿새 정도만 있으면 돌아오실 거야.”
“오래도 걸리시네요. 이제는 알아볼 것도 없을 듯한데 말이에요. 이곳이 섬이고 또 사람이 살지 않는 그런 곳이란 걸 이제는 모두 다 알게 되었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화운영은 아들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말대로 이제 이곳에 대해 더 이상 알아볼 것은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데 더 이상 돌아다녀 본들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너, 할아버지가 시키신 그 일은 잘하고 있는 거지? 한 달 전에 시키신 그 일 말이다.”
“우물우물. 의선곡의 땅을 넓히는 거요?”
“그래, 그거.”
“예, 부지런히 하고 있어요. 조만간 농사를 지을 땅을 대규모로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잘됐구나.”
“뭐, 그렇죠.”
위천희는 그런 일은 별거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헌데 조금 걱정이 드는구나. 네가 하는 수련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말이다. 진법을 대규모로 설치하는 일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그런 일이지 않니?”
“예에, 괜찮아요. 오전에만 하니까 말이에요. 그리고 환영미로진을 설치하는 것은 이제 경지에 이르러 예전보다 훨씬 빨리 설치할 수가 있어요. 거기다 그렇게 진법을 설치하는 일은 수련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무림인이 초식을 펼치는 게 수련인 것처럼 말이에요.”
위천희는 현재 이곳 의선곡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달 전, 의선은 위천희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의선곡을 감싸고 있는 진을 확장시킬 것을 명했다. 창고에 쌓여 있던 곡식이 다 떨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의선곡은 원래 자급자족을 하던 곳인지라 오태산이 있는 곳의 근처에는 널따란 농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농지를 제외한 의선곡만이 이동해 오게 되었으니 주식이라 할 수 있는 벼농사를 이곳에서 다시 지어야 했다.
종자는 창고에 가득하니 농지만 있다면 금세 다시 곡식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주변은 온통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괴물들로 가득하니 안전히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진의 보호를 받아야 했고 결국 환영미로진을 넓히는 수밖에 없었다.
‘소환영미로진을 의선곡에 있는 원래의 환영미로진에 계속해서 이어 붙이면 그건 나중에 대환영미로진이 되지. 그걸 한 삼 년 정도 매일 시행하면 이 섬의 20분지 1 정도는 진법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야.’
의선이 손자에게 진법을 설치하라고 할 때는 농사지을 수 있는 땅 크기만을 원한 것이었다.
하지만 위천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곳 섬에 꽤나 오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최대한 땅을 넓혀 마음껏 돌아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 한 그릇 더 주세요.”
가득했던 하얀 쌀밥이 벌써 다 비워졌다.
“그래그래. 일을 하고 또 수련을 쌓으려면 많이 먹어야겠지.”
화운영은 아들의 밥그릇을 들고는 실내의 밖으로 나가 솥에 조금 남아 있던 쌀밥을 가득 채워서는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탁.
“자아, 여기 있다.”
한창 클 나이다. 몸이 좋지 않았을 때는 많이 먹을 수 없었던 위천희였지만 몸이 완쾌된 이후로는 또래 아이들보다 배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화운영은 언제나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만절산맥이라는 몹쓸 병으로 위태위태했던 아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이렇게 잘 먹고 잘 커 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체할라.”
“우물우물, 헤헤.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제 입은 엄마의 요리에 완전히 길들여져 있으니 말이에요.”
“호호호. 녀석도 참.”
두 모자는 그렇게 다정한 한때를 보냈다.
***
휘류류류류류.
검은 기류가 넘실거리고 있는 이곳.
위천희는 방원 삼십 장으로 넓혀진 거대 소혼진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찬 말을 꺼냈다.
“아아!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