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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진법사 유레드 1권(25화)
Chapter 10 폭풍우가 치던 날(2)
그 구덩이로 단도 크기의 번개가 쉴 새 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대부분의 번개가 목표점을 맞추지 못하고 바깥에 새로운 구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키에엑! 재미없어. 진짜 재미없어. 왜 나만 이렇게 재미없는 짓을 해야 하는 거야?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자신도 대련을 하고 싶은데 이렇게 홀로 떨어져 죽어라 주먹만을 내밀고 있으니 짜증이 났다.
자신이 이런 재미없는 수련에서 벗어나려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뇌왕권에서 발생되는 작은 번개를 작은 구덩이에 모두 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백이면 백 모두 성공을 해야지만 다른 애들과 대련도 하고 또 마음껏 놀 수도 있는 것이었다.
―키에엑! 나쁜 대주! 못된 대주! 이건 대주가 틀림없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하는 수작이야.
뇌령은 아무 생각 없이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주먹을 날리니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뇌왕권을 열 번 사용하면 두 번 정도만이 간신히 목표 지점에 맞출 수가 있었다.
쾅! 콰쾅!
“으이구. 저놈 봐라, 저거.”
위천희는 안 되겠는지 걸음을 옮겨 뇌령이 있는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곤 큰 소리로 외쳤다.
“너, 뇌령이, 그게 뭐야? 그딴 식으로 하면 백날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집중을 해야지. 그게 뭐야?”
―키에엑! 대주! 나 재미없어!
“재미없으면 뭐? 너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정확도를 높여야 해. 제아무리 힘이 강하고 빠르면 뭐 해? 맞추지를 못하는데. 너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수련하다가는 조만간 화령이에게 뒤처진다. 나중에 녀석에게 쥐어 터질 수가 있다고!”
―키에엑! 뭐라고? 화령이에게 뒤처진다고?
화들짝 놀라는 뇌령.
대주는 뭐든지 다 아는 사람이었다. 대주가 그리 말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그리될 것이다.
―키에엑! 안 돼! 진짜 안 돼! 내가 왜 화령이에게 쥐어 터져! 그건 절대로 안 돼!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후후후.’
위천희는 속으로 웃었다.
무서울 것 없는 뇌령이는 다른 신령들 중 화령이를 유일한 자신의 맞수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위천희는 방금 그걸 이용해 녀석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럼 아무 소리 말고 열심히 수련해. 너도 알다시피 뇌왕권은 초식에 변화가 없어. 오로지 극쾌와 극강만을 추구할 뿐이란 말이야. 그러니 정확도가 매우 중요한 거야. 한 번 권을 내지를 때마다 온 정신을 모아 하면 오래지 않아 백발백중의 정확도를 보일 수 있을 거다.”
―키에엑. 알았어, 대주! 나 그러면 지금부터는 열심히 수련할게. 집중을 해서 부지런히 수련을 쌓겠어.
“헤헤. 그래, 잘 생각했다.”
뇌령의 얼굴 표정이 진지했다. 까불까불한 기운은 사라지고 섬뜩한 벽력의 기운만이 남았다.
위천희는 뇌령이 하늘 위에서 다시 신중히 뇌왕권의 기수식을 취하자 곧 신형을 돌려 세워서는 처음의 수령과 풍령이 있는 근처로 다가갔다.
저벅저벅.
한결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뇌령은 신령들 중에서도 화령이나 금령과 함께 무력 쪽으로 가장 쓸모가 있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앞으로 열심히 수련을 하겠다고 하니 기뻤다.
“으응?”
무슨 일일까?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위천희였다.
“뭐지? 뭔가가 느껴진 듯한데?”
잠시 더 그렇게 멍하니 서 있던 위천희는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자리에 가부좌로 앉고는 곧바로 오운육기의 법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영기감 능력.
그것은 가만히 있어도 그 힘을 드러내지만 지금처럼 오운육기의 법문을 외우면 그 힘이 더욱 강력해진다. 더 멀리, 더 자세히 세상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위천희는 방금 자신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그것의 잔재를 붙잡고는 바로 추적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서쪽으로부터 느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십 리 밖, 서쪽 해안가야. 그곳에 뭔가가 있어.”
벌떡.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났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진법의 기운들로 인해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곳 서쪽 해안가에서 느껴지는 건 나쁜 게 아닌 좋은 쪽으로의 느낌이었다. 정체되어 있는 것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좋은 것.
“좋아, 가 보자!”
위천희는 곧 소지품을 챙기고는 진내에 있는 이동진을 이용해 단번에 서쪽 해안가로 이동했다.
후득. 후드드득.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졌다.
하지만 언제 또다시 퍼붓듯 내릴지 몰라 위천희는 비를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는 유삼(油衫)과 함께 커다란 방갓을 쓰고는 저 멀리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부르르르.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려 왔다.
절벽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작은 섬 근처에 위천희를 놀랍게 하는 그것이 있었다. 하나가 아닌, 넷!
“배다! 배야……! 커다란 선박 네 척이 이곳 의선도에 폭풍우를 피해서 왔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쁜 일, 그렇다.
지금 위천희의 몸을 떨리게 만들고 있는 그것은 사 년간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배였던 것이다. 마침내 의선도에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하하하하하하! 배다! 사람이 탄 배야!”
위천희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너무 기뻐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하하하, 가야 해. 지금 당장 저기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봐야 해.”
탁탁탁.
서둘러 뛰어갔다. 그러다가 뭘 찾는지 그의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갔다.
“…….”
아무 말 없는 위천희.
생각해 보니 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에서 네 척의 선박이 정박해 있는 곳까지는 적어도 이백오십 장 이상 떨어져 있어 작은 배라도 없으면 도저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거 어떻게 하지?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는 말이야. 저 네 척의 배가 이대로 그냥 떠나 버리면 큰일인데, 이거 어떻게 다가갈 수가 없으니…….”
위천희는 팔짱을 꼈다. 당장 떠날 것 같지는 않으니 저 배에 가까이 다가갈 방법을 차분히 생각해 보았다.
“으음, 어떻게 간담? 작은 뗏목이라도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야. 그게 아니라면 커다란 통나무에 몸을 싣고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가만, 통나무……?”
통나무라는 단어에서 생각이 딱 멈추었다.
그 생각은 곧 깊이 있게 들어갔다.
‘통나무는 목(木)이야. 그리고 그것은 7대 신령 중 목령이 관장하는 힘이지.’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하나의 생각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바로 녀석을 불러 보았다.
“목령아! 당장 나와 봐!”
지이이잉.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곧 위천희가 서 있는 앞의 공간이 잘게 흔들리며 녹색 빛의 발랄한 소녀 신령이 나타났다.
―호호. 저 불렀어요, 대주?
“헤헤, 그래. 이 대주가 불렀다.”
위천희는 목령에게 손가락으로 네 척의 배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대주가 말이지, 저기 작은 섬 근처 네 척의 배가 정박해 있는 곳으로 가야 하거든. 그러니 네가 어떻게 좀 해 봐. 내가 저기에 갈 수 있게 해 보라고.”
―예에? 제가요? 제가 어떻게요?
목령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되물었다.
자신이 지금껏 대주에게 배운 것은 싸우는 법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힘을 집중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힘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면 적을 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지 그런 것만을 배웠다. 한데 그런 싸우는 법만을 배운 자신이 대주를 어떻게 저기로 이동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배우지 않은 것이었다.
위천희는 녀석의 반응에 작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헤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마. 저기 있는 배는 나무로 만든 거야. 대부분의 나무는 물에 뜨는 성질이 있거든. 그러니 네가 어떻게 해 봐. 나를 태울 수 있는 뗏목이나 아니면 통짜로 된 작은 배라도 한번 만들어 봐. 너는 목의 신령이니 할 수 있을 거 아니냐.”
―제가 할 수 있다고요?
“그래. 할 수 있을 거야. 너 자신을 믿어.”
―으응, 이상하네? 과연 될까? 내가 과연 저와 같은 배를 만들 수 있을까?
목령은 대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위천희가 서 있는 곳의 뒤에 있는, 손가락 길이의 작은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뭐냐? 뭘 보는 거야?”
위천희는 목령이 자신의 뒤를 바라보자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 주며 물었다. 그러자 목령이 바로 대답했다.
―거기 있는 나뭇가지에 들어가 보려고요.
스르르르르.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목령은 자신의 몸을 연기처럼 만들어 손가락 길이의 나뭇가지로 들어갔다.
느낌이 좋다. 목령은 싸우는 법밖에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뭇가지에 들어와 보니 대주가 말한 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원래부터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좋아, 한번 해 보자.
바로 힘을 써 보았다.
지이이잉.
그러자 손가락 길이의 작은 나뭇가지가 놀랍게도 녹색의 빛을 살짝 발하더니 빠르게 커져 나갔다.
한 자, 두 자, 석 자…….
나중에는 이 장 크기로까지 커졌고 목령은 그 상태에서 대주가 탈 수 있게 거대 통나무의 윗부분을 크고 깊게 파이게 만들어 보았다.
된다.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곧 완성이 되었다.
“오오! 좋아, 좋아.”
입이 크게 벌어졌다. 위천희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목령을 칭찬했다.
“하하하. 잘했다, 목령아. 내가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일을 네가 드디어 해내는구나. 볼품없는 배이지만 네가 기적과도 같은 일을 만들어 냈어.”
이 장 크기의 통짜로 만들어진 배.
그것은 너무도 쉽게 만들어졌다. 마치 신선들의 도술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위천희는 목령의 숨겨진 능력을 알게 돼 매우 기뻤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게 실제로 가능하자 놀랍기만 했다.
“좋아! 그럼 이제 출발하자!”
첨벙!
통나무배는 미끄러지듯 바다로 들어갔다.
안전했다. 물 위에 뜬 통나무배는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하하하하하!”
크게 웃는 위천희.
이제는 빠르게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데 뜻밖에도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의 웃음은 빠르게 사라졌고 대신 그의 미간 사이에 자리한 주름이 살짝 찌푸려졌다.
“에에…….”
참으로 쉽게 만든 배였다. 하지만 이건 또 어떻게 해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바람을 탈 돛이 없다. 그리고 힘으로 끌고 갈 노도 없다. 아니, 노는 만들면 되겠지만 그것으로는 저 멀리까지 갈 수가 없었다. 파도가 해안가로 강하게 밀려오고 있는데 하나의 노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것이었다.
“이거 어떻게 하지? 으음…….”
위천희는 팔짱을 낀 채 생각을 해 보았고 결국 신령들의 힘이 또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풍령의 힘이면 돼. 이 통나무배의 뒤에서 바람을 불게 하면 금세 저리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녀석보다는 수령이 더 나을 것 같아. 수령은 물을 관장하는 신령. 녀석이 내가 타고 있는 통나무배를 살짝 들고 움직이면 편안하게 갈 수 있을 거야.’
풍령과 수령.
둘 다 배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위천희는 그 두 신령 중 수령을 선택했다.
“수령아! 나와 봐라!”
지이이잉.
목령이 나올 때와 똑같았다. 공간이 흔들리며 그 사이로 예쁜 얼굴의 수령이 나타났다.
―호호호. 기쁘네요, 대주님. 목령만 불러내서 저 살짝 삐치려고 했는데 말이에요.
환하게 웃는 수령.
“헤헤, 그래? 이제 보니 우리 수령이 나를 많이 좋아하는가 보구나. 목령이를 다 질투하고 말이야.”
―호호, 그럼요. 엄마니까, 당연히……. 아니, 아니, 대주님이까 당연히 좋죠.
수령은 엄마라는 단어를 급히 다시 대주라는 말로 고쳐 불렀다. 엄마라 불리는 걸 싫어하는 위천희였다. 남자에게 엄마라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헤헤, 그래그래. 나도 네가 좋다. 그보다 너 이제부터는 목령이 만든 이 통나무배를 저기 네 척의 배가 정박해 있는 곳으로까지 이동시켜 줘. 밑에서부터 약간 들어 올린다는 그런 기분으로 말이야.”
―아아, 그 일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그래. 그러니 어서 물속으로 들어가서 움직여 봐. 설마 못하는 건 아니겠지?”
―호호. 그럼요. 물속에 들어가 그냥 밀어 주면 되는 거잖아요. 이런 거야 아주 쉬운 일이죠.
수령은 대주의 명에 바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수령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대주의 중단전에 있는 삼라조화신령진이 제1의 고향이라면 바다는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호호. 좋았어. 그럼 이제부터 힘을 써 볼까.
수령은 곧 자신의 권능이라 할 수 있는 힘을 쓰기 시작했다. 수령은 물을 지배하는 신령.
먼저 자신의 몸을 통나무배보다 훨씬 크게 만들었다. 그리곤 목령이 들어가 있는 통나무배를 자신의 넓어진 등 위에 올려서는 앞으로 나아갔다.
촤아아아아아아―
빠르다. 매우 빠르다.
수령이 의지를 일으키니 주위의 거친 파도는 얌전해지며 통나무배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하하하. 빠르구나.”
방갓을 들어 올린 위천희의 얼굴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생각할수록 신령들의 힘이 대단한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이었지 않은가. 한데 이렇게 통나무배를 단숨에 만들고 또한 거친 물살을 헤치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이것은 그 어떤 상승무공보다도 훌륭한 능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우르르르릉.
변덕스러운 날씨.
하늘과 바다는 다시 험악하게 바뀌었다.
지금은 폭풍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간.
하지만 위천희,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웃음 또한 막을 수 없었다. 하늘이 제아무리 방해를 한다 해도 이제 그는 곧 의선도의 사람들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을 터였다.
“하하하하. 기다려라. 나 위천희가 간다!”
<『이계진법사 유레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