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참마도 1권 (25화)
타앙.
간신히 구양운의 조가 벽면 위에 있는 다른 기관 장치에 틀어박혔다.
구양운의 시선이 아래를 향하니 방금 전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는 수십 개의 검들이 꽂혀 있었다.
“후우.”
구양운은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쪽 어깨는 여전히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고지가 눈앞에 보인다는 것이다.
구양운은 온 힘을 다해 얼마 남지 않은 동굴의 벽을 타고 올라섰다.
드디어 구양운의 발이 평평한 땅에 닿았다.
이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구양운은 땅바닥에 몸을 뉘어 버렸다.
“하아, 하아.”
구양운의 가쁜 숨소리에 따라 그의 가슴팍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차례 땀이 식는 느낌이 들 때쯤 구양운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시 구양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따스한 햇살까지 비춰 주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구양운은 알고 있었다.
가장 쉽게 보였으나 지금 넘어야 할 관문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동굴 안에서 해가 이렇게 또렷이 보일 수는 없었다.
이것은 모두 환각이기 때문이다.
바로 진법(陣法)이다.
구양운은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삭(索)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쪽 끄트머리는 자신의 발에다가 묶고 다른 한쪽은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에 묶었다.
조금이라도 눈의 현혹을 막고 가는 방향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생각해 낸 수였다.
이 진은 구궁팔괘(九宮八卦)와 오행(五行)을 접목하여 만들어진 아주 난해한 진이었다. 이 안에는 여덟 개의 진문(陣門)이 존재하며 생(生)문과 사(死)문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구양운은 미동하지 않은 채 잠시 서 있었다.
오래 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암영대 전원이 투입되어 천마총에 들어왔을 때 이곳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네 명이었다.
처음에는 이 진법을 파훼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모두의 생각을 굳혔을 때 침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때 생각했던 방법은 틀렸다.
그 사실은 자신만이 살아남았을 때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구양운의 눈동자는 정면을 향했다.
터벅터벅.
구양운의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보보(步步)가 지금까지완 사뭇 달랐다.
십 보(十步).
정확히 십 보를 걷고 구양운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봤다.
분명히 앞만 보고 걸었을 뿐인데 밧줄은 자신의 오른편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이 앞에서 네 명의 동료 중 한 명을 잃었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딛는다면 거대한 함정이 구양운을 덮칠 것이다.
이곳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 중 가장 확실한 건 머리 위에 떠오른 태양뿐이었다. 하지만 저 태양조차도 진법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저것을 통해 진법 안에서 만들어진 시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시간에 따라 여덟 개의 진문이 변화를 하고 생문 역시 뒤바뀐다.
구양운은 다시 자신의 발에 묶어 둔 밧줄을 보았다.
오른편으로 향해 있는 밧줄을 따라 정면이라 생각했던 길을 버리고 방향을 바꿨다.
이번엔 긴 시간을 들여 한참을 걸었다.
오행의 기운을 바탕으로 서로 번갈아가며 변화를 부려 막힌 곳이 없는 공간같이 보였지만 미로나 다름이 없었다.
우르릉 카강.
어느샌가 구양운의 머리 위로는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실제가 아니라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구양운의 온몸은 삽시간에 젖어 들어갔다.
구양운이 기다리던 기후 변화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구양운은 자신의 발에 묶여진 밧줄을 다시 바라봤다.
이제는 자신의 발과 함께 묶였던 밧줄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하지만 구양운은 이것조차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부러 삭을 만들 때 이 전체 줄의 길이를 고작 십 장 정도를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은 지금 어딘가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다.
구양운의 눈빛은 어두웠다. 이렇게 날씨의 변화가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한 명의 동료조차 잃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암영대주 교단생과 자신 오직 둘뿐이었다.
구양운은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저것을 따른다면 현재는 축시(丑時:오전 1∼3시)다.
구양운은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꿨다.
생문은 단 한 곳뿐이다.
구양운이 방향을 바꾸자 갑자기 주변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입으로 들이 내쉬는 숨이 하얗게 입김으로 변해서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비를 맞고 날씨가 추워지니 잇몸이 딱딱 부딪칠 정도로 버티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구양운의 두 눈은 쉴 새 없이 무엇인가를 찾아 헤맸다.
‘도대체 어디냐.’
구양운의 마음은 조급했다.
시간이 지나면 생문이 닫혀서 다시 사문으로 바뀐다. 그리고 생문은 다른 곳에 열릴 것이다.
언제까지 이 안을 맴돌고 있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굳게 먹은 마음과 달리 구양운의 손발은 이미 동상이라도 걸린 건지 아무런 느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피로해진 몸은 자꾸만 시야를 흐리게 했다.
그때였다.
서성거리던 구양운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주먹만 한 바위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는 형상이었다. 자연적인 느낌이 강한 이곳에 유일하게 사람의 손을 거친 물건이었다.
“그만 사라져라!”
구양운의 낮은 외침과 함께 주변을 가득 메우던 공간들이 거짓말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구양운이 손으로 돌멩이가 포개진 탑을 무너뜨린 것이다.
순식간에 구양운의 눈앞에는 새로운 공간이 등장했다.
구양운의 예상대로였다. 밧줄은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발과 함께 묶여 있었다.
크지 않은 공간을 뭔가에 홀린 것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다시 이곳에 들어섰다.
십 년 전 마주했던 거대한 철문이 다시 구양운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지만 구양운은 이 안에 들어선 적이 없었다.
당시 여기까지 도착한 구양운은 이 안에 구유수라마검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에서 발걸음을 되돌렸다.
과거를 회상하는 구양운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구양운, 구유수라마검은 이대로 내버려 두고 너만이라도 돌아가라.’
아마 태어나서 그렇게 놀란 순간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무슨 소립니까? 대주.’
암영대의 가장 큰 목적은 천마총에서 구유수라마검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동료를 잃으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구유수라마검을 가지고 간다면 네놈을 죽일 거란 소리다. 하지만 우리는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교단생의 독백은 이어졌고 구양운의 머릿속은 점점 공황 상태가 되어 갔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암영대 대원들을 최대한 많이 살려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저는, 지금 대주님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명석한 놈이 갑자기 왜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냐? 교주가 한낱 우리와 구유수라마검의 비밀을 공유할 것 같으냐?’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구양운의 어깨를 교단생이 강하게 움켜쥐었다.
‘살아남아라, 구양운.’
지금도 교단생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구양운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구양우은 그때 마교를 향했던 자신의 분노가 떠올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주님, 이번엔 제가 살아남기 위해 왔습니다. 검보는 결코 마교로 가지 않을 겁니다.’
끼이이익.
녹이 잔뜩 슨 문이 열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안에 들어선 구양운은 구유수라마검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구양운의 눈 안에 들어온 것은 동굴의 벽을 타고 오기 전에 보았던 필체와 동일한 글이었다.
영원히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나 혹시라도 후세에 이곳까지 들어선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 자결하라.
거기까지 읽어 내려간 구양운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짓게 되었다.
하지만 도대체 이런 곳을 왜 만들었는지 이놈의 의도가 궁금했기 때문에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이곳은 바로 천마(天魔)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천하제일인이라는 명칭과 마교라는 권력을 얻은 천마가 말년에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반혼(返魂). 바로 불사의 삶이다.
그리고 천하를 뒤져 그는 결국에 한 가지 금기된 술법을 찾아내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몸에 자신의 영혼을 담는 술(術)을.
그것을 안 나는 죽은 천마의 무덤이 누군가의 손에도 닿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절세무공 구유수라마검이 이곳에 있다는 헛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무엇인지, 아니라는 나의 말을 믿어 주는 이는 없었다.
후인 또한 천하제일의 검공을 탐하고자 이곳에 들어섰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라.
이곳까지 들어온 어리석은 자여.
너로 인해 생사의 경계가 무너지고 천하가 피로 물들 것이다.
거기까지 읽어 내려간 구양운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천하제일의 검공 구유수라마검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구양운의 머리가 뒤죽박죽으로 엉켜들어갔다.
그때였다.
어느샌가 구양운의 주변에는 검은색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연기는 삽시간에 구양운의 호흡기와 피부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온몸의 혈관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이 팽창되는 것이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극심한 고통에 구양운의 몸은 더 이상 버텨 내지 못했다.
“으아아아!”
구양운의 외마디 비명만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참마도』 제2권에서 계속>
참마도 1
지은이: 이 작
발행인: 정 필
발행처: (주) 뿔미디어
주소: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소향로 17번길(두성프라자) 303호
Tel: 032) 651-6513
Fax: 032) 651-6094
isbn:978-89-6359-589-4 04810
홈페이지: bbulmedia.com
e-mail: bbulmedia@daum.net
※ 이 책은 (주)뿔미디어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엄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