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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1화)
1 히어로의 일상



“하아…….”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겨우 한 마리 때문에, 그것도 다 잡은 거였는데, 아니, 딱 1초만 더 있었어도!
“흐아아아아! 젠자앙!”
길거리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지만 분이 풀리지 않는다.
아니, 사실 분이 풀리기보다는 소리를 지르고 보니 주택가 주변이라 찔끔했다고나 할까?
“젠장, 대체 이 회사 내규에 성과급 제도를 건의한 게 누군지 모르지만 걸리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젠장!”
물론 회사 업무 특성상 성과급 제도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지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도 그렇고,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놓친다면 누구라도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 최근 학기 말 시험이니 과제니 이래저래 많아서 여유롭게 일을 못한 것도 있지만…….’
하루에 13마리도 잡을 수 있으면서 한 달간 뭐했냐고 하면 말할 것이 보고서 세 장이 넘을 정도로 수두룩하지만 그것도 내 일, 이 일도 내 일이니, 회사에 대고 항의하고 변명해 봤자 욕만 얻어먹을 게 빤했다.
“으휴, 눈앞에서 월급을 날리다니…….”
아직 고지서가 오려면 얼마간 시간이 있긴 해도 벌써 눈앞에 그 모든 게 아른거린다.
‘일단 급한 대로 알바라도 알아봐야지.’
대외적으로 대학생의 신분인지라 학교를 꼬박꼬박 출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슬슬 학기 말이라 공부하고 준비할 것도 많아 알바를 구하는 데 있어 제약이 많지만, 그렇다고 이 젊은 나이에 신용불량자가 될 순 없으니 뭐라도 시작해야만 했다.
뭐, 이번 달 카드값 연체로 당장 등록되지는 않겠지만 3개월 이상이 기준이니 나로선 신용불량자까지 카운트가 얼마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실 사람 일이라는 게 당장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니, 한 번이라고 방심하다가 다음 달에도 연체가 되면 그냥 다 접고 주구장창 일만 하는 방법밖에 없다.
‘집 앞 편의점에서 알바를 구하고 있긴 하던데. 편의점은 일을 해도 일당으로 받는 게 아니니 조금 불리하려나? 그렇다고 일당으로 주는 곳들은 일하러 다니기 불편한데…….’
사실 불편한 건 공간적 제약보다 업무 시간이 문제긴 하지만…….
사실 맘 편하고 속편하게 일하는 건 그냥 몸으로 때우는 노가다 판이 가장 좋긴 하다.
하지만 노가다 판이라는 게 언제나 일이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날씨나 시간대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 만큼 고정적으로 수입을 내기 힘들다. 더군다나 지금 한시가 바쁘고 중요한 1학기 말이라 학교에 가야 하는 낮에 일을 하는 것은 힘들었다.
아무래도 가장 안정적인 건 시간대가 정해져 있으면서 고정적 수입이 될 수 있는 편의점 혹은 야간 업소 등이지만 보통은 월급으로 계산하는 곳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이번 달 카드값이 연체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사실 누군가에게는 의문일 수 있다.
어차피 월급으로 받는 알바를 할 거 같으면 차라리 성과급 제도에 따라 추가로 돈을 지급하는 회사 일을 하면 되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리라.
하기 싫어.
기본적으로 매달 주어진 카운트만 채우면 기본급은 충분히 나온다.
하지만 이 비양심적인 회사는 우릴 어찌나 부려 먹는지 잘하면 잘할수록 월급을 더 주는 게 아니라 일정 수부터는 마리당 5천 원, 비싸게는 만 원까지 주던 걸, 모두 천 원으로 카운트할 뿐만 아니라 그다음 달부터는 잡은 만큼 목표가 대폭 증가한다.
물론 그만큼 월급을 더 주긴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이 앞으로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만큼 목표를 함부로 늘리는 건 위험한 행위였다.
물론 회사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장비는 물론이고 인력 지원도 빵빵하게 하지만 평생 전업으로 이 일을 할 생각은 없으니 크게 관여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정년퇴임이 보장되지 않는 이런 고위험 저수당의 직업을 그 누가 하고 싶어 하겠느냔 말이다.
뭐, 회사 말을 들어 보니 간혹 정말 그런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긴 하지만, 내가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자취방에 돌아와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음, 지금 내 형편이나 조건을 볼 때 편의점이 확실히 괜찮긴 한데…….’
오는 길에 편의점 앞에 짤막한 구인 광고를 보니 확실히 내 조건에 잘 맞춰진 알바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성별 불문, 20세 이상, 저녁 6시 이후 파트 타임, 시급은 5,500원…….’
시급이 편의점 알바치고는 상당히 센 편임에도 사실 저 구인 광고가 붙은 지는 꽤 오래되었.
주택가에 대학이 있고 술집마저 밀집해 있는 데 비해 편의점의 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어서 알바생들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일이 바쁜 거야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 이따가 학교 끝나고 오면 전화해야겠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 이제 완전히 떠올라 거리를 비추고 있는 창밖의 해를 보면서 학교 갈 준비를 서둘렀다.

* * *

덜컹덜컹.

―이번 역은 XX역입니다.―

출근 시간의 지하철이란 곳은 참 묘한 곳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내부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간혹 들리는 사람의 인기척이라면 내리고 탈 때의 발자국 소리나 사람들의 압박에 억눌린 낮은 신음 소리뿐.
사실 그마저도 금방 없어지고는 한다.
그 비인간적인 현상에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손에 들린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쏟고 있다.
그게 책이든 혹은 핸드폰이든.
서로의 일상에 찌든 현대 사회의 모습.
그들 모두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나 역시 고개를 숙여 손에 들린 발표용 자료집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는 중이었다.
‘어휴, 정말 이것도 곤욕이라니까.’
학교 근처에 자취를 하는 만큼 오래 타지는 않지만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건 언제나 곤욕스러웠다.
첫째로 내 키가 큰 것이 문제였고, 둘째로는 키가 큰 만큼 덩치가 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큰 몸은 오랜 시간 공들여 온 탓에 조각 같은 몸매로 거듭나 큰 부피를 차지하지 않지만, 선천적으로 물려받은데다 노력 속에서 더욱 단련된 어깨는 가히 지하철에서 좌석 2인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지하철이든 버스든 옆에 사람이 있으면 서서 가는 버릇이 생겼지.’
어깨가 넓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 고충에 공감 못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이런 게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살 빼듯 어깨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더욱 신경이 쓰인달까.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당장 가자마자 시작하는 강의가 발표이니, 오늘만큼은 주변에서 불편한 시선을 보내도 묵묵부답 자료만 보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 앞에 앉아 가는 아가씨.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손으로 슬쩍 가리면서 자료집을 내려다보는 나를 힐끗힐끗 째려보는 시선이 정말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뭐, 시선이 안 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런 눈총을 받을 만큼의 행동을 한 적 없기에 불편한 걸 떠나서 불쾌한 감이 없지 않다.
하나 그런 걸로 실랑이하기엔 내 자리, 내 최근 상황도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1호선 관음남, 1호선 변태남, 1호선 적반하장남 등으로 주요 언론이나 포탈의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싶지 않은 탓도 있다.
‘젠장. 볼 것도 없으면서 되게 신경 쓰네.’
저럴 거면 애당초 입고 나오질 말든가.
왜 대놓고 보여 줄 것도 아니면서 입고 나와서는 사람 오해받게 만들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사람을 쳐다본다는 말인가.
각종 설문 등을 통해 보면 야한 옷을 입는 사람들의 많은 이들이 남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옷을 입는다고 한다.
아니, 그럴 거면 집에서 혼자 입고 춤이라도 추면서 만족하든가, 왜 굳이 입고 밖으로 나온다는 말인가?
본인들은 부인하겠지만 우린 이런 걸 두고 과시욕이라고 하는 것이라 말해 주고 싶다.
물론 이해하려 들지는 않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 사이에 지하철은 목적지에 도착해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가운데 나 역시 그 틈새에 끼어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몇 시지?’
사실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나와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똑같은 시간에 내리니 만큼 중간에 특별한 사고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언제나 같은 시간인 게 빤하지만 왠지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마다 시간은 보게 되지 않는가.
나만 그런 건지 몰라도…….
어쨌든 나는 군대 시절 쓰던 고장 난 전자시계 말고는 평생 동안 시계란 걸 차 본 적이 없는 몸이기에 시계 주제에 게임도 되고 인터넷도 되고 가끔 치킨도 시켜 먹을 수 있는, 현대 문물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 혹은 최첨단 전자시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봐요! 뭐하시는 거예요!”
“……네?”
“아니, 방금 핸드폰으로 제 치마 속 찍었잖아요!”
“……에? 네?”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방금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액정에 바탕 화면만 봤을 뿐인데 도촬범이라니?
그리고 자랑할 건 못 되지만 난 앞에 누가 서 있는지조차 인식 못할 만큼 내 세계에 빠져 있었다고!
“당장 핸드폰 내놔요!”
“……자요.”
“흥,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남자들은 다 똑같아. 내가 속바지 안 입고 나왔으면 어쩔 뻔했어, 흥흥!”
……속바지를 입고 있으면 괜찮다는 건가?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여자였다.
이미 주변에선 시선이 모이고 있는지라 여기서 반항해 봤자 아까 지하철에서 했던 상상 그대로의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만큼 그냥 순순히 핸드폰을 건넸다.
애당초 안에 전화번호를 포함해, 아무것도 안 들어 있으니 확인해도 문제가 될 것이 없을뿐더러 지금의 나는 당장 강의 준비가 급한 상황이었다.
지금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주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핸드폰을 뒤적이던 여자는 눈살까지 찌푸리며 구석구석 둘러봤지만 애당초 없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마치 이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이 어플, 저 어플을 실행해 보지만 그런다고 없는 게 생길 리가 없었다.
그것보다 오늘 발푠데 시간이…….
그러기를 한참. 슬슬 계단을 오르다 말고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몇몇 이들이 혀를 차며 자리를 뜨기 시작하자 벌게진 얼굴을 하고 있던 여자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갑자기 핸드폰을 나한테 다시 들이밀며 외쳤다.
“이봐요! 빨리 메모리 카드 내놔요!”
“……?”
“당신 지금 사진 찍고 메모리만 뺀 거잖아! 다 알아!”
“저 당신이 핸드폰 달라고 했을 때 바로 준 거거든요?”
“거짓말하지 마! 다 알고 있어!”
뿌득.
이 순간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은 착각일까. 순간 목구멍을 타고 그동안 참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이 X이 지금 뭔 XX리를 하는 거야! 지금 거짓말이라고 했냐? 웬 XX년이 피해 의식에 찌들어 가지고는 엄한 사람 범죄자로 몰아넣고, 뭐? 거짓말? 야, 이 XX년아 그 잘난 메모리 니가 한 번 찾아봐라! 대신 뒤져서 안 나오면 너 내 손에 뒈질 줄 알아라. 이 X같은 X년을 XX버릴라 바빠 죽겠는데 웬 XX년이 X랄이야…….”
“아니, 뭐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야, 이 XX야……!”

그리고 10분 뒤.
삐용 삐용 삐용 삐용.
결국 나는 가려던 학교에 가지 못하고 관할 파출소에서 상황 설명을 하고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썩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악수를 마지막으로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알게 된 게 그 여자 역시 우리 학교 학생이고, 몇 안 되는 학교 친구들을 통해 알아보니 나름 유명한 여자라는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탓에 학교에는 지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발표날 지각을 해서 교수님께 수업이 끝나고 빌어야만 했으며 그 탓에 예상치 못한 지출, ‘교수님 커피값’이 추가되고 말았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오늘 아침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버스를 타기로 결정한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또 그 여자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라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