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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2화)


그러곤 나를 가리키며 뭐라고 한참을 떠드는데 안 들어도 빤한 내용인지라 굳이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았다.
‘정말 일진이 사납군.’
여담이지만 아까 수업을 마치고 잠시 핸드폰을 통해 알아보니 그새 누군가 아까 지하철의 실랑이를 찍어 인터넷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기자들도 떡밥을 물었는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관련 기사도 몇 개 올라왔다.
다행히 전후 사정도 같이 알려진 탓이라 여론이 나한테 불리하게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부르르르.
왔군.
매달 몇 번 울리지도 않는 전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핸드폰 액정에 뜬 번호를 보지 않아도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어휴…….”
이젠 이 전화가 오기만 하면 한숨부터 나오는 게 일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잠시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핸드폰 액정의 통화 모션을 실행했다.
“여보…… 세요?”
“아, 네. 신태일 씨 되시죠?”
상냥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마치 아무 문제 없는, 처음 하는 사람과의 평범한 통화인양 친절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와 내용.
하지만 애당초 이 전화가 걸려 왔다는 점에서 이미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아,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혹시 지금 충분히 전화를 받으실 수 있으신가요? 조금 사적인 이야기라서요. 주변에 사람이 많으시다면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아, 이 배려심!
주변의 상황까지 살펴 원활한 통화를 원하는 질문인 것 같지만, 실상은 주변에 지금부터 전화에서 들려올 말을 들을 사람이 혹시라도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주변에 사람이 좀 있긴 하지만, 도로변이라 주변 사람들이 피해 입을 일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좋아, 심호흡 한 번 하고. 음량도 낮게…… 지금!’
“야, 이 X끼야! 지금 나랑 장난해? 오늘 새벽에는 49마리 등록해서 우리 관할 평가 점수 까먹지 않나! 이제는 인터넷에 기사를 올려?!”
핸드폰의 음량 표시가 최저음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타고 나온 소음은 정류장을 울렸지만 그래도 나의 노력 덕분인지 크게 울려 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수화기 반대쪽 인물의 인격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도 이젠 그닥 놀랍지도 않다.
원래 이쪽 업계 일은 민간인이 알면 안 되는 부분이라 지금처럼 욕을 먹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매 전화마다 이런 변화는 늘 있어 왔다.
또 지금 말하는 게 평소의 성격인 걸 알고 있으니 아마 계속 존대로 전화를 받는 상황이었다면 더욱 불안했으리라.
“너 이 일 할 생각은 있는 거야? 엉? 정말 강제로 때려 치게 해 줘?!”
‘지금 아무 힘도 없는 인간들도 못 떼어 내서 허덕이는 주제에 허세 부리기는.’
뭐, 사실 지금 전화를 건 상대가 정말 맘먹고 손을 쓴다면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실상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의 이면에 감춰진 비밀을 알고 있는 나를 관리하기 위해서 나보다 상위 등급의 업계 종사자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곧 회사 손해고 업무에 있어 피해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일의 수당이 월급 형식에서 성과급 형태로 바뀐 이유도 이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위에 말한 아무 힘도 없는 인간들도 떼어 내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나이가 들어 기량이 예전만 못한 원로 히어로들을 회사에서 관리해야만 하는 부분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이 회사에서 잘린 것도 아니니, 최소 수당을 줄 수밖에 없는데 일을 해도 큰 도움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 시키기엔 주는 돈이 아깝고, 거기에 유지비까지 들어가니 제도를 바꾸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새로 나타나는 히어로 숫자는 적은 것에 비해, 관리해야 할 대상은 해가 갈수록 늘어 가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
사실 능력자들의 수가 그렇게 절망적일 만큼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이런 박봉의 3D 직종에 들고 싶어 하겠는가?
“야, 이 XXX끼야. XX를 염해 버릴까! XX끼야! 아주 그냥 우리 쪽은 이런 X신도 있다고 광고를 해라, 광고를 해!”
“…….”
뭐, 사실 그 외에도 결정적으로 나를 자르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현역으로 일하기에 충분한 나를 부려 먹지 못함으로 인해 업무 능률이 떨어지는 것이 첫째요, 결정적으로 내가 미친 척하고 다른 세력에 뛰어들면 이 업계의 다수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팔팔한 병력이 적에게 +1, 우리에겐 -1, 결과적으로 -2의 손해를 입는 형태가 돼 버리니 절대로 나를 자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욕을 다 들어 주고 있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히어로의 절대 규칙 중 하나인 신상 정보 관리와 관련한 규칙을 어긴 참이고 이는 명백히 내 잘못이니, 반박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면 그냥 들어 주는 척하며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침 그런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버스도 도착했다.
“XXX XXX XXX……!”
삑!
‘음, 잔액이 얼마 안 남았네. 내일 학교 가면서 충전해야겠다. 그나저나 버스 안이니까 이어폰이라도 써야 하려나.’
버스 안은 생각보다 한산한 탓에 핸드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욕설이 극장마냥 서라운드로 울려 퍼졌기에 이어폰을 사용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 싶었다.
내가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을 즈음이 되자 슬슬 반대쪽에서 쏟아져 나오던 욕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줄어들고 있었다.
“XX…… 헉헉, XXX야…… 헙, 허억…….”
“죄송합니다…….”
그렇게 슬슬 목소리가 줄어 말에 공백이 생길 무렵, 나는 공백을 공략해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를 내었다.
“허억, 헉! 그래, 이만 반성하는 것 같으니, 헉헉…… 처벌과 관련해선 나중에 얘기하자. 헉헉…….”
‘예스!’
이게 다 그간 경험을 통해 발견한 나만의 황금 타이밍.
자꾸 경험 등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 경력에 의문을 갖는다면 나의 경력은 이제 2년을 넘어 3년 차요, 저 황금 타이밍을 알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숨을 다 골랐는지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어쨌든, 너한테 나중에 또 전화가 갈 거야. 그때도 계속 잘못했다고 빌고. 벌이 어떤 게 나오든 그냥 다 해. 어차피 어려운 거 아닐 테니까. 그리고 감봉은 안 되도록 기도해 주마.”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뚜뚜―
나의 처량한 목소리의 대답에 그녀는 만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삑!
‘흠. 감봉은 안 되게 해 준다고 했으니 그렇게 되겠지.’
사실 욕, 아니,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섬세하고 마음이 따뜻한 여자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예전 그녀가 한창 현역일 때 닉네임이 ‘미소의 천사’였을 만큼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에 친절하기로 유명했다고 하니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다만 약 일 년 전 어떠한 계기로 능력을 모두 잃고 사무직으로 바뀌면서 입이 거칠어지긴 했지만 그간 그녀는 입에서 나오는 욕설과 반대되게 행동으로는 언제나 도와줘 왔다.
특히나 한 지역의 모든 히어로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그녀였기에 히어로들의 개인사 대부분을 알고 있었고 그만큼 그네들의 생활 형편도 알고 있다.
아마도 그녀는 내 생활고를 알고 있기에 감봉만은 막아 주겠다는 말을 저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간 징계도 많이 막아 줬고. 매번 신경 써 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음료수라도 사 가지고 가야겠다.’
물론 그건 내가 지금 당장의 금전적 사태를 해결하고 ‘본사’에 가게 될 경우에 한하지만 말이다.
‘본사에 가 본 지도 오래되긴 했네. 하지만 굳이 찾아가고 싶지는 않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명절에 김이라도 보내지 뭐.’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는데 이어폰을 꽂은 귓가로 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 여자, 같이 탔었나?’
아까의 무리들은 다 어쨌는지 뒷좌석에 친구 한 명과 같이 탄 듯싶었는데 뒷쪽으로 감각을 집중시키니 그녀들의 행동까지 모두 머릿속에 새겨져 들어왔다.
“그러니까, 저 남자분이라고?”
“……응.”
“그럼 아무래도 니가 먼저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에엑!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야! 누가 봐도 니 잘못이잖아!”
“으응. 사실 나도 하고 싶긴 한데……. 쪽팔리잖아. 저 사람 우리 학교라고! 우리한테 뭐라고 하겠어. 벌써 누군가한테 말하고 다녔는지도 몰라!”
뭐, 대충 내용을 들어 보니 걱정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데다 의외의 것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탓에 본성은 착한 여자다 싶었다.
하지만 사과를 하는 것에는 조금 더 용기를 내도 좋을 텐데.
너무 쓰잘데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벌써 누군가한테 말하기는 했지만, 애당초 나는…….’
“저 사람 딱 봐도 복학생이잖아! 그렇게 많은 친구가 있을 리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마! 만약 말했어도 다 같은 복학생들일걸?”
“…….”
아주 정곡을 찔러 주시는군.
하긴, 정말 실제로도 친구가 없지. 학교 여자 동기들은 군대 갔다가 돈 좀 벌고 오니 학교에 존재하지 않았고, 같이 군대 간 동기들 역시 각자 먹고살기 바빠 별 교류도 없었다.
그나마 아까 저 여자에 대해 물어본 친구 몇몇이 대학교에서 알고 지내는 이들의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흔들리는 버스 기둥을 부여잡고 또각또각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요.”
“…….”
한 번은 튕겨 줘야겠지. 그리고 의외나 놀랐다는 듯한 리액션도 해야겠고.
귀에 이어폰도 꽂고 있는데 한 번에 알아들으면 모양새도 그렇고 뒤에 엄청 신경 쓰면서 기다리고 있던 거 같잖아.
그러는 사이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조금 더 커진 목소리로 부르기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요.”
“네?”
그리고 준비한 눈 동그랗게 뜨기!
마치 지금의 이 상황이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최대로 표현한 나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오늘 아침에는 죄송했어요…….”
“아, 그거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쿨 가이가 되어 마치 아침의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조금은 무뚝뚝하게, 그리고 가볍게 웃음 짓으며 그녀를 대했다.
‘음, 좋아 완벽해.’
“아뇨, 그렇게 크게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요즘 치한이나 몰카족이 그렇게 많다는데 예민하실 수도 있죠.”
“아니에요. 제가 정말 실수했어요. 아까 경찰서에서 들어 보니 오늘 중요한 수업도 있으셨던 거 같은데…….”
‘흠, 생각보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군. 의외인걸?’
생각 외로 눈앞의 여자가 섬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조금 놀랐다.
사실 아침에 그렇게 대판 싸운 입장인지라 서로가 데면데면할 만도 한데 먼저 사과할 생각을 한 것도 그렇고, 내가 경찰서에서 빨리 가야 한다고 하던 말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게, 생각보다 의외인 여자였다.
뭐, 어찌 되었든 지나간 일이니만큼 나도 크게 다그치거나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기에 역시 쿨하게 응대해 줬다.
“아니요, 수업은 뭐 나름 잘 무마했고요. 전 정말로 괜찮으니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아, 그럼 나중에라도 학교에서 보면 서로 얼굴 붉히기 없기예요. 알겠죠?”
정말 변화가 빠른 여자군.
내가 별달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니 여자의 말투도 싹 바뀌었다.
물론 죄송하단 태도가 바뀐 게 아니라 말투가 조금 더 쾌활하게 바뀐 거라 크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네, 되도록 인사도 해 드리죠.”
“아, 그럼……!”
그렇게 내 말에 그녀가 마무리 대답을 하려는 순간.
끼이이이이익―!
버스가 강렬한 마찰음을 내면서 앞으로 크게 쏠렸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있던 탓에―애당초 이 정도야 맘만 먹으면 부동자세로 1㎜도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내 앞에 있던 여자는 달랐다.
처음 내 옆으로 다가올 때까지 꼭 부여잡고 있던 바를 마음이 좀 놓인 탓인지 어설프게 잡고 있다가 정말 빠르게 앞으로 넘어져 나갔다.
‘이런, 쯧쯧.’
그 짧은 순간 거의 튕겨져 나가듯 앞으로 쏠리는 여자를 보며 나는 앉은 채로 순식간에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지탱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라도 맨 듯 튕겨져 나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내 팔뚝에 기대어 편안히 서 있었다.
사실 단순히 팔뚝으로 그녀를 받치기만 했다면 아마도 내 팔이 지닌 힘에 내장을 다쳤겠지만 그 정도의 배려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