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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3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기는 어지간히 놀란 것인지 내 팔을 잡은 손은 하얗게 변하고 얼굴은 미백 화장이 필요 없을 만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협 소설에서나 보는 이화접목을 이런 곳에서 쓰는 것도 조금 우습지만,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곳이 아니고 써먹을 곳이나 있겠어?’
평소 관심 있게 읽던 무협 소설의 오묘한 무리를 글 속의 추상적인 말만으로, 그것도 내공의 힘없이 순수 육체의 근력으로 발현해 냈다는 것은 놀랍다 못해 경이로운 일이지만.
나야 이런 것이 일상이니, 오히려 지금 떠오르는 것은 이런 고급의 무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쓰일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란 점이었다.
“괜찮으세요?”
“에? 네.”
그야말로 혼이 나간 표정으로 내 팔을 꼭 움켜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아침에는 까칠하게, 좀 전에는 미안한 듯 쾌활하게, 지금 이 순간에는 처량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가 오히려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표정에 신경 쓰고 있기엔 지금 내 팔뚝에 와 닿는 물컹한 느낌이 너무 생생해 나는 일단 한발 뺄 수밖에 없었다.
“에…… 저기, 이제 괜찮으시면 이만 팔을…….”
“네? 아!”
이제야 알았다는 듯 급히 몸을 빼는 그녀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묘한 느낌을 받은 나는 연신 사과를 하면서 승객들의 상태를 살피던 버스 기사 아저씨가 문을 열고 앞에 끼어들기 한 차량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면서 슬슬 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려 시선의 진원지를 향했다.
‘윽, 굉장히 부담스러운 시선 처리.’
연신 내 팔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자를 보면서 나는 당혹감과 함께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 봤다.
그리고 순식간에 결론을 도출해 냈다.
‘이런 멍청이! 방금 한 건 그냥 물리법칙을 무시한 수준의 일이잖아!’
애당초 사람이 앉은 자세로 한 팔만 뻗어 성인 여성이 튕겨져 나가는 몸을 가볍게 지탱할 뿐만 아니라, 팔을 뻗은 사람이 그 상태로 미동은커녕 팔 역시 허공에서 우뚝 정지해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상식을 벗어난 일인지 떠올린 나는 재빨리 연기에 들어갔다.
“크흠.”
주물주물.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마치 아프다는 듯 팔을 주무르는 혼신의 발연기를 펼치는 나를 보며 여자는 이제야 팔에서 시선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머, 팔 괜찮으세요? 다치신 거 아니에요?”
“네? 아,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혹시 모르니 병원에.”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뭐, 별거 아닌걸요!”
극렬히 반대하는 내 모습에 조금 의심스러운 눈길을 던지던 그녀는 아직 의혹이 섞인 말로 나를 당황케 했다.
“그래도,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제가 무게가 좀 나가서 좀…….”
“하하, 걱정 마세요! 겨우 옷발이나 잘 받으려고 운동한 게 아닌걸요! 저얼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 그나저나 슬슬 내리셔야 하지 않나요? 큰 사고로 번진 건 아니지만 밖에 상황을 보니 뒤에 오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할 거 같은데.”
지금의 대화 주제를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잔머리를 굴렸다.
결국 밖에서 한참 대치 중인 두 운전자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다른 주제를 선정한 나는 아직도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그녀 역시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럼 이렇게 된 거 사례라고 하긴 조촐하지만 다음 버스 기다리면서 근처 커피숍에라도…….”
“네?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전 여기서 집이 가까워서 금방 가거든요.”
“네? 그럼 더더욱…….”
나는 말을 내뱉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하지만 나에겐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잘 먹히는 기술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아! 그게, 요즘 한창 시험 기간이잖아요? 과제도 많은 시기고…… 할 게 많아서요!”
“그…… 러세요?”
나의 이런 극렬한 저항에 여자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나름 당당했다. 완전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럼 연락처…….”
“아, 정말 죄송합니다. 바쁜 약속이 생각이 나서 지금 빨리 가 봐야겠네요! 커피 약속은 일단 접수한 걸로 해 두고, 저희 같은 학교잖아요? 나중에 학교에서 또 볼 테니 그때 이행하기로 하죠. 그럼 이만……!”
후닥닥.
그렇게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스가 서 있던 길을 벗어나 근처 상가 건물로 몸을 숨겼다.
나를 보면서 말로 정의하기 힘든 눈빛을 내던 여자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으으. 하마터면 또 건수 칠 뻔했네. 앞으로 사람 돕는 것도 조심해야겠어. 어휴, 뭐 히어로란 게 이렇게 조심할게 많냐.”
히어로라는 직종이 가진 고질적 불합리이지만, 어떻게든 타개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것보다 마음이 아픈 건 앞으로 학교 캠퍼스도 마음대로 거닐기 힘들게 되었다는 거였다.
“으휴. 그 여자가 날 잊어버리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일단 학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여름방학은 아마도 신나게 놀겠지? 그러면 잊어버리려나.”
잘 생각해 보면 사람 기억이란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니 그건 좀 어렵단 생각이 들었다.
“헉! 그럼 이거 올해 내내 피해 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당혹감이 가득 담긴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상.
밥 먹을 때도 눈치 보고 강의실 옮겨 다닐 때도 주변을 살펴야 한다니…….
번뜩!
‘가만. 근데 어차피 평소에도 하던 거 아니었나?’
평소에도 밥 먹을 때는 눈치를 봤다.
혼자 밥을 먹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여럿이 앉는 자리로 설계된 학교 식당에서 테이블 하나를 혼자 앉아 먹는 게 부담스러웠다.
강의실 옮겨 다닐 때 역시 요즘같이 지갑 가벼운 시기에 별로 친하지도 않은 과 후배들이 밥 사달라고 조르는 사태를 막기 위해 열심히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녔다.
잘 생각해 보니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이 평소 하던 대로 해도 될 것 같았다. 다만 피해야 할 대상이 과 후배에 여자 한 명이 추가된 것뿐이니 말이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건가?’
그렇게 결론이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집에나 가 볼까?’
사실 아까 버스에서 한 말과는 다르게 자취방과 지금 내린 이곳은 거리가 꽤 있는 곳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평소에는 눈에 띌까 봐 잘 안 썼지만. 주변에 사람도 얼마 없고, 한창 뜨거운 때라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그럼!’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화르륵.
잠깐의 일렁임과 함께 타오른 불꽃은 몸을 은신하기 위해 들어왔던 상가 화장실을 환하게 밝히곤 사라졌다.
띨리리리리리!
시끄럽게 울리는 소화 경보만이 이곳에 그가 있었단 사실을 증명해 줄 뿐.
그리고 그 시각.
‘그 사람, 꼭 찾겠어.’
옆에서 같이 버스에 탔던 친구가 재잘재잘 이런저런 말을 떠들고 있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오직 한 사람과 한 장면뿐.
그녀를 단단하게 지탱하던 강철 같은 팔,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그 친절하면서도 남자다운 중저음의 음성!
오늘 아침에는 비록 불미스러운 일로 만나 그의 모습을 충분히 평가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야말로 최고의 이상형!
‘반드시!’
“그러니까, 응? 얘, 내 말 듣고 있니? 얘!”
한 여자의 뜨거운 눈길이 가진 목적을 오해한 어떤 멍청이에 의해 뜨거운 여름은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2 몸의 비밀
삐비빗.
“음, 으음…….”
벌써 아침인 건가.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니 어느새 환한 햇살이 자취방을 비추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로 엉망이던 한 달의 시작 이후 자취방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동네 편의점으로 향했다.
다행히 알바 자리는 남아 있는 상태.
생각보다 사람이 급했던 것인지 즉석에서 점주랑 면접 비슷한 걸 후다닥 하고는―당시 내용을 떠올려 보건대, 코앞에 산다는 것만으로 이미 확정은 된 것 같았다―순식간에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보니 어느새 나는 편의점 평일 알바생이 되어 있었다.
시간은 오후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시급은 5,500원!
하루에 3만 3천 원!
한 달에 약 70만 원!
하루 여섯 시간 일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많은 금액이지만 그 시간대의 판매가 사실 편의점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니 일이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아마 군대 있을 적에 보았던 저녁 식사 후 PX의 풍경 같은 느낌이겠지.’
아마 다른 점이 있다면 PX는 어두침침한 군인들이 한 무더기 몰려오는 것에 반해 대학가 근처인 이곳에는 수많은 여대생들이 존재한다는 정도?
뭐, 그게 일을 줄여 주는 것은 아니니 만큼 큰 위안은 되지 않지만 군대 있을 당시를 회상해 보면 최소한의 위로는 될 것이다.
어쨌든 어제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집에 돌아와 시간을 보니 저녁 6시.
평일이었다면 알바를 가야 하지만 어제는 토요일, 내 업무 시간에 포함이 되지 않는 날이었다.
여기서 토요일에 학교를 왜 갔냐고 한다면 학기 말이라 많은 수업들이 토요일에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어쨌든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저녁 먹고, 과제하고, 시험 공부 좀 하다 잠들고 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끄하아아암!”
우드득― 뚜득.
크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보이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예술가가 빚어 놓은 듯한 완벽하기 짝이 없는 몸매.
탄탄하게 자리 잡은 에잇 팩과 크게 벌어진 어깨는 그 강인함을 대변하듯 목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어깨선까지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야말로 온몸이 근육!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대하거나 둔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188㎝에 이르는 큰 키 때문일 것이다.
‘음. 언제나 보는 거지만 정말 징그러울 만큼 완벽하군.’
사실 지금의 몸은 꾸준히 관리를 해 온 탓도 있지만 지금 가진 능력이 각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변화한 것도 큰 몫을 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그냥 키가 크고 운동한 덕에 어깨만 잔뜩 벌어진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능력을 각성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평소 하던 운동의 절반만 해도 몸은 가장 최적화된 형태로 근육을 효율적으로 발달시켰고 운동의 효과는 언제나 최고의 형태로 나타났다.
아니, 어찌 보면 거의 숨만 쉬고 있어도 몸이 변한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몸은 극단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전까지 죽어라 노력해 가며 만든 식스 팩이 평소처럼 가볍게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자니 다음날 에잇 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스윽.
서 있던 자세에서 곧장 손을 발 앞으로 뻗어 양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단단하게 지탱한 뒤 천천히 발을 떼며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하나, 둘, 셋, 넷…….”
물구나무선 채로 그야말로 코가 닿을 듯 팔을 굽혀 가며 엄청난 속도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내 모습은 남들이 보기엔 경이로움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운동을 하고 있는 나는 전혀 힘들지 않다는 것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물구나무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도 한계인가?’
사실 내 능력 중 근육이 가진 물리력은 아직 발전의 한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어떤 말이냐 하면 아직 내 근육은 완성된 게 아니란 말이다.
초기에는 워낙 고쳐질 곳이 많은 몸이었기에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반적인 운동만으로는 몸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현상이 몸이 최종적 발전을 이룬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주차금지 구역에 주차된 차를 들어서 옮기느라 고생한 바로 다음날 근력이 급작스레 상승한 것을 느끼고 여러 실험을 통해 내 몸이 아직 최종 진화를 거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팔과 어깨에 가장 최근까지 도움이 되는 운동은 바로 이 물구나무선 채로 빠르게 팔굽혀펴기.
사실 근력을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미 어중간한 바위 정도는 근력을 키우기 힘들뿐더러 괜히 처음 이 현상을 발견했을 때처럼 차를 가지고 하다가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만큼 그런 행동은 위험했다.
뿐만 아니라 그러다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차 주인은 무슨 죄라는 말인가?
그런 탓에 다른 여러 운동법을 찾아봤지만 실제로 효과를 본 경우는 별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