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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4화)


대게 무거운 물건들은 고가의 물품이거나 주인이 있는 경우가 많았고, 헬스장을 찾았을 땐 내가 드는 무게가 어지간한 트레이너들도 맘먹고 힘을 써야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옆에 트레이너는 얼굴에 핏줄을 팍! 세우고 겨우 들어 올리는 것을 난 아령처럼 사용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런 끝에 최종적으로 찾아 최근까지 해 온 운동이 바로 이것.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였다.
이미 근육 덩어리로서 극단적으로 진화한 몸은 그 무게만도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상태, 이 운동이 좋은 점은 단순히 근력만을 늘리는 게 아니라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균형 감각 역시 단련시켜 준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무엇보다 돈이 안 든다. 또 민폐 끼칠 일도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대체 이 이상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 거지?’
“이백십, 이백십일, 이백십이…….”
연신 입으로는 숫자를 세는 가운데 머릿속으로 이것보다 나은 운동을 꾸준히 생각해 봤지만 특별히 묘안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한 팔로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간 다른 운동을 하면서 느낀 건데 내 발전, 진화 속도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해서 한 팔로 하는 것 역시 임시방편밖에는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몸에 추 같은 것을 매달까?
생각해 보니 당장에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고 생각되긴 한다.
다만 당장에 밥 먹고살 걱정을 하는 주제에 그런 사치품을 살 돈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아마 그것 역시 어중간한 무게로는 순식간에 적응해 버리고 말 것이다.
‘추를 다는 건 고려를 해 봐야겠다.’
그렇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물구나무 팔굽혀펴기, 한 팔로 물구나무선 채 팔굽혀펴기, 양다리를 문 위에 걸쳐 놓고 윗몸일으키기 등을 하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흘러 운동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밥부터 먹자.”
잘 잡히지 않는 뱃가죽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생각해 보니 어차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굳이 중요한 것도 아닌 걸로 심력을 소모하며 아침도 거르고 운동부터 했다는 생각에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음. 계란 프라이라도 할까.”
최근 수입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은 계란 한 알도 아껴야 할 상황.
그렇지만 이제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구했겠다.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니 사치를 좀 부려 보기로 했다.
치이이익!
“흐흐흥, 흐흠흠.”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또르륵 몸을 우그러뜨리는 계란의 모습에 절로 흥이나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때.
띵동! 띵동!
평소에 들을 일이 없어 있는 줄도 몰랐던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나는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가?’
그야말로 대체, 누가, 이 상쾌한 주말 아침부터 남자 혼자 사는 시금털털한 자취방에 찾아올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방문 판매인가 싶었지만 이 주변 사는 학생들 사정이야 빤하니 그럴 리 없고, 일요일 아침이니 기독교 신자들은 전부 교회에 갔을 테니 전도하러 온 아주머니들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 짧은 인맥과 좁은 발 면적을 기준으로 아마 회사나 학교일 테지만 학교에서 나를 찾아올 일이 없으니 그것 역시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설마, 회사?”
정말 그 일만은 아니길 바랐지만 내 몸은, 아니, 내 감각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현관문 너머로 느껴지는 거대한 포식자의 기운을……!
띵동! 띵동! 띵동! 띵동!
한결 거칠어진 초인종 소리가 고막을 때리자 나는 혹시나 조용히 있으면 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숨까지 죽이며 기다려 봤다.
쾅쾅쾅!
“……너 음식 탄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으악! 내 계란!”
문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불을 끄고 숟가락으로 계란 프라이를 구조하고자 했지만 이미 오랜 시간 방치 탓인지 밑바닥은 숯을 방불케 했다.
“으으. 이럴 수가!”
까맣게 변한 아침 식사를 보며 절망하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문이 큰 소리로 울렸다.
쾅쾅쾅쾅!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문 열어!”
흔히 드라마 속 주인공 집에 무언가를 받으러 온 덩치 좋은 남자들과 같은 말을 하고는 있는 사람을 난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만요! 금방 나가요!”
이미 까맣게 변한 녀석을 재빨리 그릇에 옮겨 담고 반쯤 헐벗은 몸을 대충 옷으로 가리며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철컥!
“들어오세요. 본부장님.”
“야! 뭘 이렇게 늦게 열어! 정말 혼나 볼래? 엉?”
문의 잠금이 풀림과 동시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이선영.
나의 직속상관이자 이 지역 모든 히어로들에 관련한 대소사를 맡고 있는 지원 본부의 본부장이다.
아, 그리고…….
“야, 덥다. 에어컨 좀 틀어 봐.”
“에어컨 없는데요?”
“뭐? 에어컨도 없어? 이런 구질구질한 집구석 같으니! 으휴.”
“그럼 선풍기라도?”
“됐어! XX야!”
바로 어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주셨던 바로 그 친절한 ‘미소의 천사’님 되시겠다.
“어휴, 더워!”
펄럭펄럭!
아침임에도 날이 더운 탓에 비교적 짧은 소매, 깊게 파인 옷을 입은 채로 앞섶을 펄럭거리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선풍기를 가져와 틀었다.
찰칵.
위이이이잉!
“야, 강풍으로 틀어.”
‘필요 없다더니…….’
하지만 난 그런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조용히 선풍기의 강풍 버튼을 눌러 줬다.
한결 시원해진 바람에 만족한 것인지 조금 땀에 젖은 모습으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닉네임이 왜 미소의 천사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뭐, 예쁜 건 맞는데, 성격이 저래서야 시집은 가려나.’
“야, 마실 건 없냐?”
마치 제집 안방에서 누나가 동생한테 심부름시키는 듯한 모습.
실제로도 두 살 차이의 누나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라 나 역시 모두 응해 줬다.
“수돗물은 있는데요.”
“뭐? 정수기는?”
있을 리가.
“어휴! 이놈의 집구석! 대체 있는 게 뭐야? 이제 보니까 TV도 없네?”
“아, 그런 건 인터넷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으이구! 됐다. 우이 씨, 동물농장 봐야 하는데…….”
끝에 말은 잘 안 들리게 구시렁거리듯 말했지만 어차피 이 조막만 한 집에 소리가 어디 밖으로 흘러 나가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반경 50m내에서 들리는 소리는 벽을 두고도 들을 수 있는 내 앞에서 작게 말한다고 안 들릴 리가 없었다.
‘끙, 가지가지 하는군.’
나는 평소에도 켜 놓는 컴퓨터의 설정을 조작해 TV모드로 바꿔 놓고 동물농장을 틀어 주었다.
“응? 안 그래도 되는데? 어머! 저 강아지 좀 봐!”
‘그래, 안 그래도 될 테지만, 안 보여 주면 나중에 전화 받을 때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어쩌면 지금 당장에 어떤 일이 생길지도.
어쨌든 그렇게 그녀의 시선을 잡아 둔 나는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기…….”
“꺅! 저 강아지 짱 귀여워!”
“여기는…….”
“흐아아아, 녹는다, 녹아!”
“어쩐 일로……?”
“으으. 강아지 한 마리 키울까? 아, 근데 우리 아파트는 애완동물 금진데…… 아, 뭐라고?”
“아뇨. 식사하셨나 해서요.”
그리고 강경 진압에 막혀 옆길로 순회했다.
“아침? 아직 안 먹었어. 우리 집에서 여기까지 오느라고 여섯 시 반에 출발했단 말이야. 세 시간이나 걸렸어.”
“아, 그러세요? 그럼 아예 같이…….”
“됐어! 겨우 대학생 자취방에 밥이나 얻어먹으러 온 줄 알아? 나 염치 있는 여자야.”
“……?”
“뭐야, 그 표정은?”
아, 나도 모르게 본심이 얼굴에 나타났나 보다.
그 말에 재빨리 표정을 지운 나는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가서 물었다.
“그럼 여기는…….”
“자! 오늘 아침밥! 오는 길에 문을 연 곳이 햄버거 가게 밖에 없어서 이것만 사 왔어.”
오오! 지저스!
이분이 천사가 아니라면 이 세상 누가 천사란 말입니까?
나는 그녀가 들고 온 종이 가방 속에서 튀어나온 햄버거 세트를 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월급만 바라보고 저번 달 중순부터 생활고에 시달리던 나에게 있어 햄버거는 몇 주 만에 먹는 엄청난 사치품이었다.
하마터면 그녀, 정확히는 햄버거 세트를 향해 절을 할 뻔한 나는 포장을 뜯고 먹기 좋게 세팅을 했다.
그렇게 식탁 위에 오른 햄버거 한 개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순간 나는 넋이 나갈 뻔했지만 먹어도 먹어도 솟구치는 깊은 허기가 나의 정신을 다잡아 주었다.
우걱우걱.
“야야, 천천히 먹어. 체할라.”
그녀의 자상한 말에 하마터면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런 따뜻한 걱정 어린 말을 얼마 만에 들어 본단 말인가.
“먹고 나면 ‘할 게’ 많은데 체해서 골골거리면 내가 못되게 구는 거 같잖아.”
“쿨럭, 쿨럭!”
“엥? 갑자기 왜 그래?”
그녀의 이어진 말에 역시 눈물이 날 뻔…… 이라기보다는 찔끔 났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녀의 말에 급격히 먹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덕분에 햄버거를 음미하는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그냥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가왔다.
부스럭 부스럭.
다 먹은 햄버거 포장지 등을 분리해 정리하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는 내가 대충 정리를 끝내자 내 앞에 마주 앉아 말을 시작했다.
“자, 그럼 다 먹은 거지?”
끄덕끄덕.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끄덕끄덕.
“씁, 말로 대답 안 할래?”
“하겠습니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입이 잘 안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어차피 이렇게 돼 버린 이상 착실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음, 뭐 예상은 했겠지만 징계 내용이 나왔어.”
“그, 그런!”
그리 엄청난 사건도, 본업과 관련된 사건도 아니지만 얼굴부터 이름까지 모든 것이 기밀이어야만 하는 업종의 특성상, 언론을 통해 얼굴이 공개됐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볼 때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에 징계 진행이 빠를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하루 만에 내용이 나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용은…… 사실 나도 이런 건 예상 못한 건데…….”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음. 우선 한 가지 말해 두자면, 감봉은 피했어. 일단 돈과 관련한 징계는 아니야. 내가 강력하게 어필했거든. 네가 무엇보다 필요한 인재고, 네 능력이 어떻고,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열심히 설명했거든.”
우선 감봉과 같은 돈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그녀가 어필했다는 내용에서 조금 더 안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라는 건…….’
반성문은 아닐까? 혹시 진술서?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며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네 징계 내용은 파견이야.”
“……?”
내가 딴생각을 하는 사이 기습적으로 징계 내용을 밝힌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표정을 살피다가 내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자 다시 한 번 말해 줬다.
“네 징계 내용은 파견. 조금 멀리 우리가 관리하는 구역 중에 문제가 생긴 곳이 있는데. 내가 네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하도 상세하게 보고를 해서 그런가? 널 파견 보내겠다고 하더라고.”
“…….”
“그, 그 내용을 보니까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래. 뭐 총 같은 걸 좀 맞거나 그럴 수 있긴 하지만 애당초 너 같은 육체파는 총을 맞아도 금방 회복하고. 또 보통 전투복 입으면 총이 관통은 못하잖아? 그치? 총도 살살 맞으면 안 죽는다고 하던데…… 별로 안 위험해! 걱정하지 마!”
그래, 총도 살살 맞으면 안 죽는구나. 그렇구나.
‘아니, 젠장! 애당초 전제가 잘못된 거잖아! 총을 맞으면 어떡해! 애당초 총 맞을 확률이 존재하는 게 문제 아니야? 나는 아직 최말단 전투 요원이라고! 아직 단 한 번도 매달 목표치인 50을 넘긴 적이 없고 혹시라도 어려운 임무 시킬까 봐 센 기술은 별로 쓴 적도 없단 말이야!’
여기서 내가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다면 내가 회사에서 지급받은 전투복을 착용하고 전투를 치르면 내 신체 정보나 기술의 능력 등이 자동으로 분석, 저장되기 때문에 눈에 안 띄게 쓴다고 해서 회사가 모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 그리고 이건 당장 가는 게 아니라 올해 말에 가는 거야! 아마 니가 이번에 3학년을 마치면 가게 될 거야. 아무래도 그런 곳에 가는 거니까 능력을 최대한, 그러니까 몸을 천천히 풀어 놓고, 그렇게 가야 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몸을 최대한 만들어서 한계치까지 능력을 단련해 놔라? 죽기 싫으면?”
“그, 그렇지.”
후우.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