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5화)
사실 내용만 보자면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징계 내용도 돈과는 관련이 없었고 지금 앞에 있는 우리 본부장님은 불안한 듯, 미안한 듯, 시선까지 피하며 나에게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나는 총에 맞아도 안 죽는다.
아프긴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고, 보급형 전투복도 재질이 그렇게 떨어지는 편이 아니라 애당초 어지간해선 총으로도 구멍이 나지 않는, 생각보다 좋은 물건이다.
다만 문제는 말하는 것을 보니 그곳의 위험이 겨우 총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애당초 단순 개인 무력만으로 따지면 어지간한 한 개 군부대 급에 맞먹는 전투력을 지닌 인간들이 수두룩한 곳에서 관리하는 일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그런 인간마저도 어쩔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리라.
“……거기 가면 추가 수당은 있는 거죠?”
“응? 아, 그래! 당연하지. 기본적으로 생명 수당은 거기서 생활하는 날짜만큼 추가해 주고, 또 공적에 따라…….”
그 이후로도 그녀는 내가 받게 될 돈과 혜택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말은 더욱 내 심증에 확신을 주는 계기밖에 되지 않았다.
‘음, 위험한 일이야. 하지만……!’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역시, 힘들겠…… 응? 뭐라고 했어?”
그녀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다시 물었다.
“갈게요, 파견. 올해 말이라고 하셨죠?”
“응? 응응!”
“그럼 나중에 학교 개강할 때까지는 돌아올 수 있는 거겠죠?”
개인적으로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다.
사실 앞으로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능력이 생긴 이후로는 고민해 보지 않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선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대학 졸업만은 꼭 하고 싶다.
“당연하지! 아니, 만약 연장이 되더라도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데려올 테니까!”
그녀는 한다면 하는 여자. 이 말로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능력을 업그레이드해 놓도록 하죠.”
“그래, 잘 생각했어. 네가 원한다면 본부에서는 최대한 지원을 해 줄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고! 그리고 결정했으니 말해 줄게. 아마 파견을 가기 전에 너와 함께 임무에 투입될 다른 요원들과 함께 단체 훈련을 할 예정이야. 아마 그것도 올해 말, 출발 전에 이루어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새로운 능력자들을 만나는 건가?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앞에 있는 그녀를 포함한 몇몇의 사무직 직원들, 즉 능력이 빈약하거나 없는 이들 외에는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아무도 못 만나 봤다.
‘그건 그거대로 흥미롭긴 하군.’
“자, 그럼.”
뒤적뒤적.
“…….”
내가 새로 만나게 될 능력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가져온 가방을 잠시 뒤적거리던 그녀는 안에서 서류 봉투과 인주를 꺼내 들었다.
“자.”
“……이게 뭐죠?”
“읽어 봐.”
스윽.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서류 봉투 속에서 나온 종이들을 찬찬히 읽어 내렸다.
―업무 중 발생 손실에 관한 서약서―
1.해당 서명자가 임무 중 사망 시 해당 인원의 유품 및 재산은 1촌 내 유족 중…….
2.해당 서명자가 임무 중 불구가 되는 경우…….
3.해당 서명자의 유족이…….
“…….”
불안하기 짝이 없는 말이 가득 써 있는 종이를 심란한 마음으로 내려다보는 가운데 종이 위로 하얗고 예쁜 손이 까만 상자와 함께 올라왔다.
달칵.
“자, 찍어.”
‘기쁘지 않은 친절이군.’
친히 인주 뚜껑까지 열어 내미는 그녀를 보면서 갑자기 불안이 아닌 흥미가 솟기 시작했다.
과연 이런 문서까지 필요할 정도의 일은 무엇인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 엄청난 회사가 고전하고 있는 상대는 누구인가?
그리고…….
‘진짜 전력을 다해서 싸워 볼 수 있을까?’
꾸욱―
흰 종이 한 켠이 내 설렘에 물든 듯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3 전력투구
이선영 본부장이 돌아간 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력으로 싸운다라…….’
최소한 이 능력을 깨우친 이후로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민간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내가 전력으로 기세를 뿜어 대기만 해도 제압할 수 있을 정도였고, 굳이 기세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육체의 능력치 자체가 차원이 다른 몸이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리고 평소 업무 할당의 대상인 ‘나이트메어’라 불리는 적들은 초기라면 모를까, 지금에 와서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물론 개중 상급의 나이트메어도 존재하고, 그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많은 적들이 존재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본업이 될지 확정조차 짓지 못한 내가 그러한 강한 상대를 두고 목숨 걸고 싸울 만한 의지가 있을 리 만무했기에 여태껏 마주친 적은 없었다.
애당초, 정의감에 시작한 일이 아니다.
사실 이 일을 하면서 남들을 지킨다는 의식을 가져 본 일은 없었다.
그저 돈이 되니까, 이 일을 하면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상대한 나이트메어라는 존재들이 확실하게 나보다도 약하고, 생명체로 보기에는 부적합한 부분이 많았기에 그들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도, 죄의식도 가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지금 나의 정신 상태는 히어로라는 타이틀에는 전혀 맞지 않는 수준이었다.
마지못해 하는 일에 어찌 의지가 있겠으며 일을 하며 원하는 바가 다르니 집착할 이유 역시 없다.
그렇다면.
방금 내가 이 일을 선 듯 승낙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수집된 정보 내용이 어떻든, 난 대외적으로 말단 전투 요원에 불과한데 누가 봐도 사지로밖에 들리지 않는 곳에 파견을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반발할 수 있고 이를 거부해도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까의 대화를 돌이켜 보면 그녀 역시 큰 기대를 하고 온 것이 아닌 듯 나의 승낙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일까?
돈 때문에?
사실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돈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그런 절망적인 처지가 아니니 만큼 그러한 이유는 아니었다.
아니, 잘 생각해 보면 지금 나의 능력을 조금만 이용하면 돈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전혀 아닐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스포츠만 해도 내가 지닌 능력의 아주 일부만 사용하면 아마 최고의 자리에 서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제한이 있기야 하겠지만,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내에서는 분명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가 왜 회사에 붙어 있는지 모르겠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잘 이해가 안 된다.
하는 일은 비록 어렵지 않지만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데다 약하다곤 하나 나이트메어들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업무의 특성상 일상생활에 있어 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왜?
왜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돈도 아니다, 정의감도 아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의무 또한 아니다.
일을 할수록 나에게 있어선 손해인데?
그 순간, 이선영 본부장이 나에게 주고 간 서류 일부가 보였다.
아까도 읽어 봤지만 서류의 내용은 별다른 게 없었다.
그저 파견 임무에 참가하게 되는 내 기본적인 신상 정보와 능력치의 분류 정도?
생각보다 상세하게 분류되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에서 놀랍긴 했지만 확신을 지니지 못했을 뿐, 사실 이 정도의 정보 수집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름 : 신태일 나이 : 26 성별 : 남
등급 : D+(전투력 기준 C등급 추정)
능력 분류 : 전투(근거리, 원거리 등 포괄적 전투가 가능한 전천후 스타일, 일반형)
특이사항 : 전투와 관련한 특징으로는 특별한 기술 없이 전투하는 것이 특징, 사내에 자동 수집된 전투능력으로 평가 시 C등급이나 현장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며 업무 사항에 특별히 강력한 적을 잡은 경험이 없어 상세한 정보 수집 불가능. 신체적 특징으로는 아직 육체는 발전형의 형태로 앞으로 더 성장의 가능성이 높음. 발화 능력자.
현재 확인된 기술 : 블레이즈 너클, 중거리 텔레포트, 초감각, 제한적 비행, 육체 강화…….
“…….”
꾸깃―
D+.
높게 친다면 C등급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긴 하지만 공식적인 나의 히어로로서의 등급은 D+.
내 위로는 C±, B±, A±, S±, 그리고 더블 S, 트리플 S가 존재했다.
그 무엇을 따져도 한참 말단.
맨손으로 차를 들어 던지고, 진심으로 마음만 먹으면 건물도 철거할 수 있는 능력이 겨우 D등급.
그렇다면 나보다 상위 등급의 히어로들은 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인가?
서류의 다음 장에는 함께 파견 가게 될 인원수와 등급이 명시되어 있었다.
S급 : 1명(인솔자)
A급 : 3명
B급 : 5명
C급 : 5명
D급 : 5명
내 위로 14명이라…….
두근.
“응?”
갑작스런 두근거리는 느낌에 지그시 가슴을 누르며 다시 한 번 종이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두근두근.
“흠?”
두근두근.
한 번 빨리 뛰기 시작한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이거였던 건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저 종이에 써 있는 등급 표와 인원을 본 것만으로도 격한 움직임을 내뿜는 심장이, 그리고 나의 곤두선 직감이.
지금 내가 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 준다.
네가 이 일을 하는 이유, 그건 본능이라고.
너에게 있는 이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제한 없이 토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배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넌 너의 강함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라고.
그렇게,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와 명예인지, 아니, 그보다도 고차원적인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
내외적인 변화는 없었다.
난 그저 진로도 정하지 못한 대학생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저 특별한 목적 없이 먹고, 자고, 싸며, 살아남는 것에 급급했던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크흡!”
쿵쿵쿵!
빠르게 울려 대는 심장 탓에 몸이 이렇게 되고 처음으로 가슴이 뻐근하도록 아프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퍽! 소리가 나도록 때려도 보지만 이미 한껏 달아오른 심장은 겨우 그 정도의 충격으로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충격이 도화선이 된 것인지 더욱 극렬한 움직임을 보이며 식어 가던 내 몸에 뜨거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내 몸이긴 하지만 정말 주인 말 안 듣는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난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가슴이 뛰는 이유도, 몸이 진정하지 않는 이유도, 그리고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역시도 모두 나의 의지이니 탓하기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그것도 내 생각, 이것도 내 생각이면, 결국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옳지.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적당히 얼굴을 가릴 만한 캡 달린 모자와 가벼운 외출복 겸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그러자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한참을 두근거리던 심장은 조금 진정한 듯 조금 전보단 차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 자기 몸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라…….’
남들이 아마 지금 내 머릿속을 보면 정신분열증이 아닌가 싶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지극히 정상.
그저, 심장이 원하는 것과 내가 가지던 생각과 이성이 충돌을 일으키며 싸운 것일 뿐.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