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6화)


다만.
“다음번에도 심장이 이길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
철컹.
여름이 한껏 다가온 정오의 열기가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왔지만 아랑곳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타타닷.
오늘 하루는 이 이기적인 심장이 놀라 멈추는 순간까지 달릴 생각이었다.

* * *

모니터의 파란 불빛만이 공간을 밝혀 주는 밀실 안.
두 명의 사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그가 수락을 했다고?”
“네.”
“호오, 걸린 시간을 보니 생각보다 빨리 설득한 모양이야. 이거 이선영 본부장 능력이 생각 이상이구만그래.”
“보고를 듣고 잠시 생각을 하긴 했지만 금방 수락했다고 합니다.”
모니터에 비춰지는 검은 실루엣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중인 남자는 공손한 자세로 그와 대화하고 있었다.
“흠, 그 녀석 평소 생각하는 수준이 상당히 까다로운 녀석이라 이리저리 많은 생각을 해 봤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수락했다는 것은…… 분명 본인한테 충분히 이득이 되고,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서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별생각 없이 승낙한 걸지도 모릅니다.”
남자의 반론에 모니터 속 사내는 크게 역정을 냈다.
“모르는 소리! 그건 네가 그녀석의 능력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 녀석이 가진 진짜 능력을! 비록 지금 평가 내용에는 간신히 C등급으로 보고는 있지만 아마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간 큰코다칠 거야. 게다가 겉으로 드러난 능력만 해도 녀석은…….”
“예?”
“아니, 아니다. 어쨌든 계획은 성사되었으니 이제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갑자기 말을 끊더니 화제를 돌리는 상사의 모습에 보고하던 남자는 잠시 의문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와 상사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이만하지.”
“네.”
삐삑.
남자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상사는 순식간에 모니터에서 자취를 감추고 실내는 깜깜한 암흑천지로 변했다.
하지만 남자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저벅저벅 방을 걸어 이내 옅은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문 앞에 섰다.
‘신태일이라……. 여러 가지 능력이 다양하게 분포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평소 저런 모습을 볼 수 없던 분이 흥분하실 정도라면, 감시역을 붙여 두는 게 좋겠지.’
잠시 문 손잡이를 잡고 서 있던 남자는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띠―
“여보세요?”
“아, 난데.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헉헉―”
그야말로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입에서 가쁜 숨소리가 나는 게.
그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 능력을 가진 나에게 그저 힘들다, 라는 느낌을 주는 운동들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이토록 폐가 밖으로 튀어 나올 듯 산소를 빨아들이는 상황은 그야말로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주 잠깐 자리에 멈춰 선 것뿐인데 그 순간을 기점으로 숨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현상이었지만 나는 오랜만에 맛보는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아쉬움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후우, 물병이라도 하나 챙겨 올 걸 그랬나?”
뭐, 숨이 차지는 않지만 지금 날씨는 한여름의 날씨로, 아까 지나쳐 오면서 보게 된 온도계는 30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지금 목이 마른 건 숨이 차서라기보다는 더운 날씨에 시원한 물을 찾게 되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더울 것도 없는데 말이야.’
누누이 말하는 것이지만 나의 지금 육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모든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다.
날씨가 더우면 몸은 자동으로 온도를 낮추고 날이 추우면 몸은 스스로 체열을 높인다.
물론 이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버티기 힘들지만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더 잘 버틸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온몸이 근육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식을 한참 벗어난 몸인 탓에 기초 대사량이 적어 며칠을 굶어도 정신적으로는 몰라도 육체적으로는 한동안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고로 지금 내 상태는 물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고 지금 당장 사막에 던져 놔도 물 없이 몇 날 며칠도 버틸 수 있는 상태였지만 지금 물을 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본능.
나는 눈앞에 보이는 공용 식수대를 보면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공원이라곤 하지만 길 한복판에 배치된 채로 공원이 생겼을 적부터 먼지를 비롯한 이물질 등과 사투했을 것을 생각하면 선뜻 입이 가질 않는다.
누군가는 유난히 깔끔 떤다고, 집에선 수돗물 마시면서 공원 식수대에 물은 왜 못 마시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집에서 나 혼자 쓰는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과 지역 주민이 모두 함께 쓰는 식수대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시의 수돗물은 아리수라고!’
뭐 누군가는 아리수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기는 하지만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 들어 보니 물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니까 걱정 없이 마시는 거다.
“읏!”
내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난 것처럼 저려 오기 시작했다.
발바닥부터 다리를 감싸고 올라오는 말 못할 통증에 차마 서서 버티지 못하고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근처 벤치에 앉자 바로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움찔! 움찔!
다리에 경련이 오면서 덜덜덜 떨린다.
양손은 고통을 잡아채듯 앉은 자세에서 벤치에 깊은 손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크흣! 크으윽!”
잔 경련이 계속되는 가운데 저 멀리 보이던 여자가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와 내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저, 저기. 괜찮으세요?”
“크, 크흣! 끄으으으…….”
“저기. 안 괜찮으신 거 같은데, 119라도 불러 드릴까요?”
“크흑!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러실 필요……. 크흑!”
“자, 잠시만요!”
띠띠띠!
나의 말은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듣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금방 전화를 꺼내 든 여자는 정말로 119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전화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전에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앗! 무슨 짓이에요!”
“저,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으으윽!”
“빨리 이리 줘요! 누가 봐도 안 괜찮은데!”
“아, 아니라니까요! 커헉!”
나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으려는 여자와 그걸 사수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녀가 손으로 내 허벅지를 누르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그야말로 극한의 고통 속에 넋을 놓고 말았다.
“꺄악! 다리가 아프신 거였어요? 으아. 어떡하지?”
“제, 제발. 일단 손 좀 치우시고……!”
“아! 죄송해요!”
“크흑!”
화들짝 놀란 손이 바로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사실 통증은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가 기존과 큰 차이는 없었다.
“으으, 진짜 어떡하지?”
“그, 그냥 가셔도…….”
“아, 그래! 파스! 파스라도 뿌려 드릴까요?”
“아니, 아닙니다! 제발!”
“으음. 그러면 어떡하지?”
‘가던 길 가라고!’
이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도움을 주겠다는데 면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괜찮은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그, 이제 정말 괜찮으니까…….”
“정말요? 어디…….”
쿠욱!
“크아악!”
“아니잖아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런 젠장! 그걸 왜 찔러 봐!’
내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자 여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날 지켜보더니 이내 묘한 얼굴이 되었다.
“저, 저기……. 저희 학교 다니시는, 그분 맞죠?”
“크으. 무슨…….”
고통 속에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질문에는 꼬박꼬박 말이 나왔다.
“어제 아침에 지하철이랑, 버스에서 뵙던 분, 아니신가요?”
“……!”
그녀의 말에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고 고통 속에 가려졌던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신이시여! 대체 이게 무슨 시련이란 말입니까? 이게 무슨 악몽이란 말입니까!’
오늘따라 유독 자주 찾게 되는 신에게 원망을 해 보지만 애당초 답을 기대할 순 없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신 입장에서도 기가 막힐 거다.
평소엔 찾지도 않더니 개종한 것도 아니고 성직자 계열 능력자도 아니면서 오늘따라 갑자기 자기를 부르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난데없이 원망하고 하니 말이다.
용케도 그런 실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 와중에도 내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앞에 서 있던 여자는 연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와아! 정말 우린 인연인가 봐요! 어떻게 이런 곳에서 또 보는 거죠? 어제 버스에서 내리신 곳이랑 여기는 엄청 멀리 떨어진 곳인데! 이게 정말 신의 안배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있나요?”
원래 이 여자 이런 타입이었나? 말 많고 호들갑스러운?
그나저나 정말 신의 안배라면 내일은 본사에 찾아가 성직자 계열 능력자들한테 굿이라도 한판 벌여 달라고 해야겠다. 아니, 하다못해 저주 해제 마법이라도!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수다는 계속되었고 내가 아픈 건 이미 잊은 것인지 내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음에도 아랑곳 않고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연신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렇게 한 십 분가량 지났을까?
‘으음. 슬슬 고통이 줄어드는군.’
다리에 왔던 경련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고통도 확연하게 괜찮아졌다.
아니, 고통이 줄어든다고 느낀 순간, 이미 통증은 씻은 듯 사라지고 약간의 얼얼함만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신체의 진화라니, 내가 그동안 내 몸의 진화 속도에 안주하고 있던 건 확실하군.’
사실 지금 내가 겪은 고통은 바로 육체가 진화하면서 오는 근육통의 일종이었다.
지금 형태로 근육이 변하기 위해서 겪어야 할 모든 근육통을 방금 전 짧은 시간에 모두 모아 놓은 것과 같다고나 할까?
사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각성 직후 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 덕에 초기에 급속도로 변하던 때를 제외하곤 운동량을 조절해 왔던 나인지라 이러한 근육통을 겪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잠깐이긴 하지만, 겨우 달리기만으로 체력을 한계치까지 쓴 탓에 이토록 급격한 변화가 온 것이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단순히 몸을 한계치까지 써서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한 것은 아니다.
그간 나의 운동량은 언제나 조절되어 왔고 몸은 절대로 그 이상 변화하지 않았다.
내가 능력 각성 초기, 엄청난 속도로 몸이 변해 왔던 것에 비하면 정말 조족지혈일 만큼 조금씩밖에는 성장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 역시 비상식적으로 빠르긴 했지만, 분명 내 몸은 그런 정도의 육체적 진화에 만성이 되어 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느린 진화에 나의 육체는 물려 버린 것이 확실했다.
초기의 진화들 이후 일 년이 넘도록 내 몸은 이러한 운동량을 기다려 왔을 것이다.
그러던 중 드디어 체력을 한계까지 소모한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몸은 지금 이 순간 휴식으로 인해 운동의 효과가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모든 효과를 몸에 흡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짧은 그 잠깐의 휴식, 아니, 휴식이라고 하기도 뭣한 잠시 잠깐의 주춤거림 사이에 육체가 진화를 시작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평소 운동을 하면 그날 저녁 잠자리에서나 혹은 푹 쉬고 있는 순간에 천천히 나타나던 것과는 달리 말이다.
물론 이런 것은 어떤 식으로도 입증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내 몸이니만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직감 외에도 이러한 것을 이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다리를 통해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각력에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 이었음에도 집을 나설 때와 지금은 그야말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다리로 저기 보이는 나무를 걷어차면 나무가 뿌리째 뽑혀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그런 만화의 한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후우, 짧은 순간 엄청난 발전이긴 하지만. 되도록 이런 고통은 별로 겪고 싶지 않은데…….’
처음 집을 나설 때 생각했던 내용과는 동떨어진 생각이긴 했지만 정말로 아팠기에 드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약한 생각을 계속 가지고 갈 수는 없었다.
앞으로 반년 후면 정말로 목숨이 위험한 일에 투입될지도 모르는, 아니, 투입이 확정되었는 데도 불구하고 지금 잠시 아픈 것에 굴복했다간 새해의 일출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애당초 운동을 할 생각으로 집을 나온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