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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7화)
충동적으로 시작한 거지만 단시간에 이렇게 높은 효과를 보고 나니 아마 강도를 낮춰 운동을 할 때마다 생각이 날것이다.
‘그냥 버틸 생각으로 최대한으로 단련하는 수밖에…….’
내 전문이 몸으로 때우는 것 아니던가. 아프긴 하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렇게 내가 지금 일어난 현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해 나가는 시간에도 옆에 앉은 여자는 정말 부담스러울 만큼 밀착하며 계속 재잘재잘 입을 열고 있었다.
‘어휴, 여자만 아니었으면…….’
아까 다리를 누르고, 건드릴 때의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이가 갈리지만 애당초 나쁜 목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었을뿐더러 지금 이 여자의 행동은 나를 당혹스럽게 할 만큼 ‘친한 척’을 했다.
‘어제 그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눈빛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긴 한데. 대체 뭐지?’
평생을 여자와 큰 인연 없이 살아온 몸인지라 지금 상대방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냥 평범하게 놓고 보면 이 여자가 나에게 호감이 있어서 들이대는 모습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어제의 그 시선을 놓고 생각해 보면 도저히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무슨 속셈일까? 혹시 정말로 나한테?’
“저기, 이제 괜찮으세요?”
“네? 아, 네. 이제 괜찮네요.”
“어휴, 다행이다. 갑자기 왜 그러신 거예요? 어제 보니까 몸도 엄청 튼튼해 보이셨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어제 자신을 받치고 있던,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손에 잡혀 있는 내 팔을 쓰윽 훑어보았다.
오싹―
‘역시! 예감이 틀리지 않았군!’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접근했는지 몰라도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게 분명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지금 내 육체에 큰 흥미가 생겨서 탐구의 목적으로 필요로 한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는 어느새 한층 더 깊은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제, 젠장! 마치 어린애가 손안에 들린 풀벌레의 구조를 관찰하는 것 같은 시선이잖아!’
그리고 그 아이의 손에 잡힌 풀벌레는…….
싸아―
끔찍한 상상을 하며 다시 한 번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어머! 닭살 돋는 것 좀 봐! 추우세요? 땀은 별로 안 흘리신 거 같은데…… 정말 괜찮으세요?”
‘그래 애당초 내 몸이야 어떻든 내 얼굴에 여자가 꼬이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사실 못생겼다는 평을 받아 본 적 없는 얼굴이지만 워낙에 강해 보이는 인상 탓에 잘생겼다는 표현보다 남자답게 생겼다는 표현을 받으며 가끔 어릴 적, 불필요한 오해도 많이 받았던 얼굴이었다.
학창 시절엔 덩치와 어우러져 정체 모를 포스를 풍기는 탓에 여자들은 애당초 내 주변에 오는 것을 꺼려했고 남자들도 대부분 어색해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내 옆에 쉽게 다가와 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목적을 두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위―게다가 그녀의 얼굴은 그 누가 봐도 미인이라 할 만했기에 더욱 그랬다―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자.’
스윽―
“저기. 이제 전 괜찮으니까. 아, 사실 다리도 그냥 쥐가 좀 심하게 났던 거라 걱정하실 필요 없고. 슬슬 다시 집으로 가 봐야겠네요.”
내가 자연스럽게 팔을 빼면서 일어날 듯 엉덩일 들자 여자가 재빨리 다시 끌어안으며 팔에 매달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 그럼 저도 같이 가요. 공원 나가는 길이야 많지만 제가 지름길을 알거든요. 아, 여기서 운동하시는 것 같던데 나보다 더 잘 알려나? 호호호!”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첫 번째 작전이 실패한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팔이 꽉 잡힌 상태.
당황한 나머지 방금 전 상황을 거절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차 싶었지만 이미 그녀는 팔을 잡다 못해 거의 내 몸에 기대듯 서서 걷고 있었다.
‘젠장, 하필 이런 곳으로 뛰어와 가지고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여기가 어딘지 난 몰랐다.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그래도 주변을 인식하고 달리다가 내가 달리는 것이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감각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무작정 내달렸다.
그러다 보니 경로는 계속해서 엉키고, 길은 험하고, 인적이 없는 곳만 찾다 보니 나 스스로도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 무아지경으로 달리기에 빠져 사람만 피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이곳.
주말 공원이지만 한창 날이 뜨거운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방심했고, 또한 식수대의 물을 본 순간 짧은 유혹이 일어 이곳에 잠시 잠깐 멈춰 서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날 줄이야…….’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그럼 다른 작전으로 떼어 볼까?’
“저기…….”
“저기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네?”
……타이밍을 놓쳤다. 정확히는 말려들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주친 순간부터 말려들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나였기에 난 당장 눈앞에 닥친 질문에 답을 도출하기 위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본명을 알려 줘도 되는 건가? 가명을…… 하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이름을 알아내는 거야 얼마든지 가능하고. 거짓말을 했다가 나중에라도 추궁하면 골치 아파질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대답 안 해 주실 거예요?”
“아, 제 이름은 신태일이에요.”
“헤에, 신태일 씨구나.”
“네.”
“…….”
“…….”
내 대답을 끝으로 우리 둘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녀가 자리에 우뚝 선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
“…….”
“저기…… 왜…….”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결국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내가 먼저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뾰루통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제 이름은 안 궁금하세요?”
“아! 그러고 보니…….”
‘여태껏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물어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했다.
적을 알면 대응은 한결 쉬워지는 법. 나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 두면 학교에서 피해 다니는 데도 도움이 될 테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흥, 몰라요! 삐쳤어요. 안 가르쳐 줄 거야.”
‘아니, 이런 젠장 맞을. 나더러 어쩌라고.’
나는 이 순간 굽히고 들어가서 그녀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아예 자리를 뜨는 게 좋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저울질했다.
“푸훗, 당황하는 모습이 귀엽네요. 뭘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해요. 제 이름 박은빛이에요. 어때요. 이쁘죠?”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당황하는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인가? 심지어 귀엽게?
불쾌해야 하는 것인지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힘들었다.
어쨌든 이어진 질문에 대답은 해야겠기에 설렁설렁 대답을 해 줬다.
“네, 정말 예쁘네요.”
“네엣?! 아무리 제가 예뻐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공공장소에서! 어머!”
‘미쳐 버리겠군.’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내가 이 자리를 피할 방법으로 전심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쪽으로 점점 마음이 기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부끄럽다는 듯이 몸을 꼬며 붉어진 얼굴을―정말 부끄러운 건지 그냥 날이 더워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손으로 감싸는 그녀를 보면서 내심 한숨을 쉰 나는 도망칠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하지만.
덥석!
‘크윽!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 때 빨리 빼고 튀었어야 했는데!’
이런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손은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와 나의 팔을 꽉 잡아 버렸다.
그리고는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하는데…….
“몇 살이에요? 와, 키 크시다. 키 몇이세요? 학교는…… 아, 같은 학교죠! 호호. 그럼 몇 학년? 군대는 다녀오셨어요? 집은 어디예요?”
순식간에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정신없이 대답을 하던 중 집을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한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젠장! 실수다! 이러다 나중에 집에 찾아오기라도 하면!’
순간, 나를 쏘아보는 시선이 느껴져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마주했다.
‘하, 젠장.’
예상했던 부분인지라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잘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 눈총을 받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아니, 본인이 물어본 것들 전부를 대답해 줬는데 왜 눈총을 주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왜 거짓말했어요?”
“네?”
‘아니, 몇 번이나 봤다고 거짓말을 해? 애당초 난 물어본 거 전부 대답해 줬다고.’
“어제요! 어제 버스에서 내린 곳이 집 근처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방금 말하신 곳은 그곳이랑은 한참 떨어진 곳인데요!”
‘그거였냐!’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에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 사이 갑자기 그녀는 슥 팔에서 손을 빼더니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
“네? 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뭐야, 마음을 읽나?’
혹시 능력자?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분위기가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그렇게 불편하신가요?”
“그, 그럴 리가요.”
그 누가 들어도 눈물이 뚝뚝 흐르는 듯한 목소리인지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평생에 길바닥에서 여자를 울리는 날이 오다니!’
지금 우리는 공원을 나온 상태라 많지는 않지만 여러 개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훨씬 큰 내 키와 옆에 있는 여인의 미모에 더욱 몰린 상황.
지금 딱 달라붙어 공원을 걸어 나온 우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연인이었기에 지금의 상황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있어 불리한 상황이었다.
‘젠장, 언론에 뜬 지 하루밖에 안 지났다고, 벌써 인터넷 스타가 될 순 없어!’
“저기, 그때는…… 너무 당황한 것도 있고 괜히 불편하실까 봐…….”
나는 재빨리 그녀를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긴 했지만 그저 구차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맘만 졸이며 속으로 발만 동동거리는 와중에 그녀가 꺼낸 말은 가뭄 속의 단비와도 같았다.
“흐윽, 그럼 이제 앞으로 거짓말 안 하실 거죠?”
“그, 그럼요! 물론이죠! 제가 또 거짓말을 하면 갭니다. 개!”
“끅, 그럼 이제 약속 다 지키시는 거죠?”
“네, 물론이죠! 제가 약속하나는 칼 아니겠습니까? 약속만 했다 하면 그냥……!”
“헤헤, 그럼 커피 먹으러 가요!”
“……네?”
뭐라굽쇼?
황당함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한차례 꺄르륵 웃어 보인 그녀는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어제요! 다시 보면 커피 같이 마시기로 약속했잖아요! 그죠?”
“아, 그, 그게…….”
“어머, 방금 약속 다 지키기로 하지 않으셨나요? 혹시 거짓말?”
“아뇨, 그게 아니라…….”
“자, 그러면 커피 먹으러 가요. 어제 약속한 것도 그렇고, 제가 놀린 것도 있으니 사 드릴게요! 빨리 가요오……. 여기 너무 덥잖아요.”
버엉―
그렇게 벙쪄 있는 나를 이끌고 근처의 커피숍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보무가 당당하여 그녀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간 한계를 벗어난 육체도, 상식을 벗어난 초능력도, 그리고 쌩쌩 돌아가던 잔머리도 그녀의 발걸음을 잠시 잠깐도 지체시키지 못했다.
그저, 이끌려 가는 것밖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 * *
철컥.
“후우, 대체 뭐가 뭔지.”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침에 채 개지도 못하고 나간 이부자리에 풀썩 엎드렸다.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방을 채우고 있었지만 내 집에 돌아왔다는 안정감에 마음이 편했다.
뒹굴―
엎드린 자세에서 몸을 굴려 천장을 바라본 나는 조금 전까지의 상황을 떠올렸다.
결국 그녀와 함께 커피숍에서 커피까지 마신 나는,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무슨 거짓말을 하고 나가는 게 오해 없이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에 대해 한참을 고민해 봤었다.
하지만 당시 거의 올 스톱 상태이던 내 정신으로 그런 기기묘묘하고 신통방통한 계책을 떠올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상황에 말려 그녀가 물어보는 질문들에 정신없이 대답만 해 댔을 뿐.
다행히 그녀의 질문은 의외로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이라 별 무리 없이 대답했지만 덕분에 나는 그녀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보던 눈이 나의 능력을 향한 호기심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향한 시선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로선 더욱 불편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