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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25화)


애당초 저렇게 불에 타 버린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원삼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태일이 손에 일으킨 불꽃은 단순히 가스레인지의 불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가스레인지를 켰을 때 나타나는 불꽃은 확산 불꽃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연료와 산화제를 통해 완전연소를 일으켜 고열의 푸른 불꽃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푸른 불꽃의 온도는 연료와 산화재에 따라 다르며 그 중심부야말로 가장 높은 열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가스레인지의 불꽃은 그 중심부의 불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가장 밝은 부분의 불을 이용하기 마련이고 이 불은 중심부로부터 나오는 불꽃의 온도와 천지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즉, 실제 나오는 불꽃의 온도에 비해 훨씬 격이 떨어지는 불꽃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태일이 사용하고 있는 불꽃은 가스레인지의 하늘색 불을 뛰어넘어 거의 완전한 청색에 가까운 모습으로, 가스레인지로 치면 그 불꽃의 가장 중심에 있는 가장 뜨거운 부분의 불의 색이었다.
겉의 불과 다른, 속의 불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태일의 불은 발화되는 과정과 그 연료 역시 격이 달랐다.
가스레인지의 불이 과학 기술을 통해 완전 연소를 이룬다지만 그곳에 사용되는 연료와 산화제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인 이상 그 어떤 불도 ‘완전’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단 한 가지, 완전한 불꽃이 가능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태일과 같이 정신력을 불꽃의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다.
사람의 정신 에너지라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진 것 중 가장 순수하고 때를 타지 않은 최상의 연료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힘에는 인공적인 기술이 전혀 가미되지 않았으며 연료 본연의 품질을 손상시키는 그 어떤 과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완전무결한 연료를 기반으로 타오르는 불꽃은 이미 인간이 과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불꽃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으로 애당초 비교 대상이 되기 힘든 그런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불을 다루는 히어로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이 정신 에너지를 활용한 불꽃을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히어로들이 사용하는 불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불의 위력보다 훨씬 뛰어나며 정신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덕분에 그 안정성 또한 완벽에 가까운 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흔히 아는 불을 공격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적들이 방화복 하나만 입어도 불을 다루는 히어로는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정말 괴물 같은 위력이군.’
어쨌든 그렇게 두 녀석을 순식간에 불구로 만들어 버린 태일은 방금 손을 잃은 녀석을 향해 공간을 접어 들어가는 듯한 기동력을 뽐내며 단박의 녀석의 머리를 태워 버렸다.
강화된 신체 부위에 비하면 약한 게 분명하지만 결코 무르지만은 않은 성장체의 머리를 단번에 부숴 버리는 위력이라니!
장원삼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태일은 다시 한 번 거리를 무시하는 이동을 선보이더니 이내 양팔로 그를 향해 공격하려던 녀석의 코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길게 펴진 양손 수도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서걱― 서걱―!
길게 늘어나 있던 두 팔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성장체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 못한 듯, 팔뚝이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양팔을 보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장체의 미간으로 태일의 수도가 파고들었다.
파각!
화르르륵!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성장체의 머리를 꿰뚫어 버린 태일의 손에 더 이상 불꽃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일까?
장원삼의 머릿속으로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남아 있던 두 녀석 중 발 하나를 잃은 녀석이 나머지 발 하나로 몸을 지탱한 채 달려들어서는 절반 밖에 남지 않은 발목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그런 꼴을 보던 태일은 망설임 없이 녀석의 휘두르는 다리를 잡고 마찬가지로 발을 들어 녀석의 하복부를 걷어찼다.
쫘자자작!
징그러운 파육음과 함께 울려 퍼지는 성장체의 비명!
엄청난 위력 속에 다리가 뜯겨져 나간 성장체는 비명과 함께 벽에 틀어박히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의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남아 있던 마지막 성장체가 강화된 다리의 각력을 사용해 미사일이 쏘아지는 모습으로 양 무릎을 태일을 향한 채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아까도 저 공격을 공중에서 받았었지.’
장원삼의 기억 속에서 조금 전 같은 공격을 받던 태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중에서 공격을 받은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아까 그 공격을 분명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몇 번이나 굴러가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 위력이 분명 범상치 않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치 장원삼이 본 것은 환상이라고 놀리기라도 하듯 태일은 그 자리에 선채로 양손을 교차해 녀석의 양 무릎을 하나씩 쥐었다.
“키에에에엑!”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성장체의 비명 소리가 건물을 흔드는 가운데 이젠 불꽃이 없어서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는 태일의 양손이 성장체의 무릎을 점점 파고들기 시작했다.
‘으윽! 저게 인간의 악력이라고?’
강화된 신체, 그중에서도 강력하기 짝이 없는 무릎 부위를 오직 악력만으로 뭉개 버리는 인간이 과연 인간으로 불릴 수 있을까?
그리고 잠시 뒤, 보는 사람이 무릎이 시큰해 오는 고문을 펼치던 태일의 입가에서 뜻 모를 미소를 포착한 순간.
쩌저적!
할 말을 잃게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쩜 저리 잔인할 수가!’
힘만으로 허공에 띄워 놓은 성장체의 무릎을 악력으로 뭉개 놓은 것도 모자라 교차되어 있던 팔을 풀어내는 것으로 성장체를 공중에서 쪼개 버리는 무지막지한 광경에 지금 누가 악당이고 누가 히어로인지 분간이 힘들 지경이었다.
순식간에 끝나 버린 싸움.
주변에는 온통 성장체의 잔해가 흩뿌려진 가운데 태일은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장원삼은 오싹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게 C급의 전투력이라고? 아니, 저게 히어로의 싸움이라고?’
애당초 태일이 C급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건 편의점 알바 첫날의 사건과 어제의 기세 방출 사건을 통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말도 안 되는 힘은 장원삼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아니, 이런 잔혹하고도 지저분한 싸움은 본적이 없었다.
‘분명 A급, 불꽃을 다루는 능력만을 봐도 최소 A급 이상의 능력이야.’
강화된 신체를 눈 깜짝할 사이 태워 버리는 불꽃은 그가 보아 온 그 어떤 불꽃을 다루는 히어로보다도 강력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맨손으로 성장체를 찢어 내는 저 괴력. 분명 내가 아는 바로는 녀석의 능력은 불꽃을 다루는 초능력이라고 했지 결코 육체의 강함이 아니었어.’
하지만 지금 보건대 육체의 능력도 이미 A급에 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A급 신체강화능력자의 싸움에서도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판단조차 내릴 수 없었다.
‘본래 A급 능력자들의 싸움은 결코 이렇지가 않아.’
그들의 싸움은 간결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공격은 단 한 방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드물었기에 그들이 진심으로 힘을 써서 공격을 하면 일격에 승부가 나 있기 마련이고 대게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해 버리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다.
하지만 태일의 전투방식은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분명 능력치는 A급을 상회하는 게 분명한데, 그는 결코 한 방에 모든 걸 쏟아 내는 공격을 펼치지 않았다.
태일의 싸움은 몇 가지 많은 동작이 있지만 일반적인 A급의 전투와 달리 오버하여 힘을 소모하지 않아 낭비가 없었다.
아니, 뒤에 가서는 아예 힘만으로 해결을 했으니 정신 에너지의 소모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적 효율이나 깔끔함을 따진다면 일반적인 전투 방식이 더 빠르고 간결할 테지만 에너지의 효율만을 따지면 완벽한 싸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공포스러웠다.
‘저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지?’
악당인가, 히어로인가.
그의 싸움 모습은 전형적인 악당. 아니, 악귀의 모습이었다.
비록 지저분하게 싸운다는 것을 두고 악당이니 악귀라고 표현하기엔 비약이 있는 감이 있지만 최소한 장원삼이 생각하기에 태일의 전투 장면은 히어로가 싸우는 모습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태일은 분명 나이트메어의 성장체를 상대한 것이고 이것은 히어로가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히어로가 아닌가?
장원삼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자신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태일을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태일은…….
‘흐음, 성장체는 할당이 얼마나 되는 거지? 변신을 안 하고 싸우는 바람에 죽이기만 했지, 회수를 못해서 카운터에 못 넣었네.’
비록 주변에 흩어진 잔해들이 있지만 이런 걸 주워 넣는다고 할당량 카운터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벽에 처박혀 움직이지 않는 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오, 아직 온전한 녀석이 있었군.”
비록 다리 하나가 없고 배 부분이 조금 뭉개지긴 했지만 나름 형체를 갖춘 성장체였다.
“전투력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최소 카운터 세 마리 분은 할 거 같은데…….”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였지만 대충 싸워보니 일반 나이트메어보다 세 배 정도 센 거 같았다.
그렇다면 왜 세 배인가 하면.
‘일반 나이트메어들은 잡는데 1초 정도, 이 녀석들은 3초 정도 걸리니까.’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앞으로 이런 녀석들 오십 마리씩 잡으면 한 달에 일반 나이트메어들 150마리를 잡는 걸 테고 그럼 추가 성과급이…….”
그간 내가 성장체를 잡지 않은 이유는 녀석들의 전투력이 C급 이상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허접한 D급의 전투 요원인 나로서는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성장체 같은 녀석들은 되도록 피해 다니는 편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습격을 당한 탓에 조금은 현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D급도 여러 마리만 아니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니! 그럼 여태껏 C급 이상들만 이런 녀석들을 잡으면서 꿀을 빨아 왔다는 말인가?’
꿀을 빨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지극히 내 기준이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의 부조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 눈을 번뜩였지만 나 역시 모르는 게 있었다.
보통 D+급만 되도 한 달 할당량이 100마리는 넘는다는 것이었다.
“여태껏 C급 이상들에게만 이런 좋은 혜택을 줬다는 말이지?”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게 혜택일 리 없지만 내 기준에서 보자면 이렇게 손쉬운 상대를 잡고 할당을 많이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혜택이었다.
그렇게 사내 부조리에 대해 한탄을 하며 남아 있는 녀석을 회수하기 위해 걸어가던 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흩어진 잔해들로부터 흘러나온 가느다란 실들을. 그리고 그 실들이 그려 내고 있는 기묘한 마법진을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입구 앞에서 태일을 바라보고 있던 장원삼,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신 불만을 중얼거리는 태일과 질린 듯한 얼굴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원삼.
이 둘이 이상을 알아챈 것은 마법진이 활성화되며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검은 무언가가 그들을 감싸 버렸을 때의 일이었다.


<『지금 우리 동네에는』 제2권에서 계속>


※이 글 속에 나온 인명, 지명, 단체명은 허구이며 실제와는 연관이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지금 우리 동네에는 1
지은이: 진 솔
발행인: 정 필
발행처: (주) 뿔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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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978-89-6775-435-8 0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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