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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동네에는 1권 (24화)
그 위력이 상당한지라 몸이 조금 밀리기는 했지만 나의 악력 덕택에 녀석은 나에게 날아오던 모습, 즉, 허공에 무릎을 꿇은 모습 그대로 공중에 못 박혀 있었다.
“이게 아까 나를 굴렸던 거란 말이지?”
꽈아악!
이젠 불꽃조차 없는 양손이었지만 처음 잡고 있을 때의 배에 이르는 악력은 녀석을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허공에서 몸을 꺼떡거리며 발악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사악하게 웃고는 교차된 양손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자 이번엔 잡고 있던 양 무릎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교차되었다.
그리고…….
푸각!
그 모양 그대로 양손에 무릎을 하나씩 잡은 채 좌우로 당기는 것으로 녀석의 최후를 장식했다.
“흐음, 이게 말로만 듣던 좀 더 센 괴수들이란 말이지?”
그야말로 스너프 비디오의 한 장면으로 밖에는 안 보이는 무지막지한 싸움을 벌인 소감 치고는 간결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싸워 본 새로운 존재에 대해 조금 들떠 있는 상태였다.
“조금 구르긴 했지만 그거야 너무 방심하고 있던 것도 있고, 이만하면 동시에 열댓 마리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방금 나이트메어의 성장체를 찢어 낸 양손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손맛은 별로 안 좋지만. 이만한 녀석들이라면 초과해서 잔뜩 잡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많이 잡을수록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터.
그렇게 내가 조금 전 짤막한 전투와 이 녀석들을 통해 벌 수 있는 돈에 대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사이, 밖에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대체 내가 뭘 본 거지?’
장원삼은 지금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부터가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대체 뭐가 일어난 거야?’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차분히 약 한 시간에 걸친 미행의 내용을 떠올려 봤다.
편의점을 출발하고 삼십 분, 장원삼은 삼십 분의 미행 끝에 태일이 일정 구간을 벗어나지 않은 채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태일이 본인의 미행을 알아채고 있음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미행을 하지 않은 게 실수였으리라.
태일은 정확한 실력을 알 수 없는 능력자, 어떤 또 다른 초능력이 있을지 모르는 상대였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하지만 당시 장원삼은 태일의 그러한 섬세한 능력의 활용이 굉장하기는 하지만 그가 지닌 능력은 애당초 전투와는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이고 싸우는 것과 미행을 파악하는 것은 아예 다른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탓에 태일의 미행 파악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녀석을 너무 얕봤어.’
그런 판단이 선 순간 그는 능력을 최대로 발휘했고 이것을 통해 태일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태일은 그가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자마자 자리에 멈춰 섰고 그 상태로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다음에야 기존과는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당초 장원삼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모습.
‘당시 녀석이 길게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방향을 바꿔 움직인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아마도 갑자기 사라진 자신의 기척에 당황했다가 가 버린 것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길을 보건대 ‘그 일’을 하기 위해 가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우선 장원삼은 본인이 지닌 능력의 특성과 1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자신의 실력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태일은 자신을 감지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했다.
그렇게 더 이상 자신을 찾지 못하게 된 태일은 당연히 그가 자리를 떴으리라고 생각했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녀석이 가는 방향은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 아니니까.’
그렇게 골목골목을 누비는 태일을 따라가길 삼십 분여, 태일은 이내 공사가 중단된 듯 보이는 건축 현장에 들어갔고 장원삼 역시 그를 따라 들어가려다 공사 현장이 보기보다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입구가 제한되어 있는 곳임을 파악하고 잠시 들어가는 것을 지체하게 되었다.
‘녀석이 이런 외진 곳을 찾는 이유가 뭘까?’
처음 떠올린 건 접선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첩자로 활동을 한다면 보고를 위해 특수한 장비를 이용하거나 혹은 관련 인물을 만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 이런 인적이 없는 외진 곳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만큼 이것에 대해 많은 신뢰가 갔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만약 녀석이 나를 유인한 것이라면?’
태일은 장원삼이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 순간 분명 장원삼의 기척을 놓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까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걸음을 옮겨 당도한 것이 이곳.
태일이 장원삼이 미행을 포기했다고 판단하지 않고 기척을 완전히 지운 채 따라오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이곳으로 온 것은 장원삼, 그를 몰아넣기 위한 수작일 것이다.
‘하지만 내 기척을 놓친 건 분명하잖아?’
그는 태일이 유인했을 가능성에 대해 잠시 고심을 해 봤지만 분명 태일은 그의 기척을 놓쳤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따라 들어간다고 한들 녀석이 장원삼을 찾아낼 확률은 극히 낮았다.
‘그래, 녀석이 안으로 날 유인한다고 한들 탈출이 어려워질지언정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지금처럼 숨어서 간다면 아마 못 찾을 확률이 더 높을 테지.’
그리고 그가 그렇게 결심한 순간 ‘그 일’이 발생했다.
퍼억― 퍼억―
“키에에엑!”
정체불명의 타격음, 그리고 마찬가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
장원삼은 곧장 태일이 간 방향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건물에 들어가는 입구에 당도하자마자 그는 안력을 돋워 전체적인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입구를 등지고 선 태일은 나이트메어의 성장체 네 마리에게 둘러싸여 린치를 당하는 중이었다.
반격을 시도할 틈도 없이 밀리고 있는 중이었다.
‘미친, 신체의 한 부위가 온전한 형태를 이룬 나이트메어 녀석들이 네 마리나?’
나이트메어는 인간의 꿈을 먹이로 삼아 성장하며, 진화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을 하면 희미하던 형체에 뚜렷이 신체 부위가 한 부위씩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히어로들은 이런 녀석들을 성장체라고 불렀다.
대게는 히어로들의 조기 퇴치로 인해 이런 녀석들이 잘 생겨나지 않지만 간혹 나타나는 녀석들은 굉장히 문제였다.
우선 녀석들의 뚜렷하게 변한 신체 부위는 각각의 신체 부위 특성에 맞는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니는데 강력한 힘, 혹은 한계를 뛰어넘는 유연성 따위가 나타나며 신체강화계 히어로들 수준의 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녀석들의 힘은 곧장 히어로의 등급으로 표현하면 C급으로 표현되는데 비록 지능 면에서는 높게 쳐 줄 수 없지만 성장체가 된 녀석들은 나이트메어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전투에 있어서 똑똑해지며 강화된 신체들은 그들은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것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선천능력자처럼 숙달된 활용을 보이게 된다.
그러한 녀석들의 종합 전투력은 C급.
물론 결국에는 나이트메어를 기반으로 한 녀석들인 탓에 동일한 C급의 히어로라면 1:1로 처리가 가능하지만 그건 1:1의 싸움일 경우의 이야기였다.
‘지금처럼 1:4가 아니란 말이지.’
게다가 저 녀석들은 분명 협공을 하고 있었다.
한 지역에, 아니, 한 장소에서 성장체가 동시에 네 마리가 등장한 것도 놀라운데 그런 녀석들이 합공을 하고 있다?
전례도 없을뿐더러 그가 아는 성장체와 관련한 상식에서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한 녀석이 빈틈을 만들고 다른 녀석이 빈틈을 노리고,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된 회피 동작을 파고들어 다시 한 번 공격을 가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 협공을 통해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녀석들이 성장체가 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며 갓 성장체가 된 녀석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주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공방전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태일은 밀리고 있었다.
‘도와줘야 하는 건가?’
지금이야 첩자로 의심받고 있는 태일이지만 공식적으로는 회사에 소속된 히어로.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서 도움을 줘야 하는지에 관해 고민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이 첩자라면 이대로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아까운 젊은 히어로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원삼은 선뜻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사실 문제는 태일이 첩자냐 아니냐 보다도 지금 그가 난입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성장체의 전투력은 C급―심지어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일반적인 C급의 수준은 넘어선 게 분명했다―하지만 장원삼의 전투력을 굳이 따지자면 D+급 정도나 될까 싶은 정도.
자신의 능력을 이용한 암격을 시도한다면야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만 암격이란 것은 공격자의 존재를 모를 때나 유용한 것.
하나를 처리한 후 남은 세 마리는 당연하게도 장원삼을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 순간부터는 2:3의 불리한 싸움을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면 대결을 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전투력은 D급밖에 되지 않는 장원삼으로서는 녀석들에게 손쉬운 먹잇감밖에는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싸우고 있는 태일보다도 먼저 죽을지도 몰랐다.
‘대체 어떡하지?’
태일을 돕자니 첩자일 확률과 목숨이 위태로웠고 그렇다고 돕지 않자니 아직은 태일이 첩자란 것이 진짜 확정이 아니라 혐의에 불과하다는 점과 히어로로서 지닌 정의감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그렇게 장원삼의 머릿속에서 치열한 자아의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는 사이 태일의 주변에 일렁이던 불꽃이 주먹으로 모여드는 게 보였다.
‘그래, 녀석도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잖아? 녀석이 첩자일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다는 건 히어로로서 할 짓이 아니야!’
장원삼, 그는 B+급의 능력자로 그 능력을 인정을 받고도 공식적으로 히어로의 이름을 받지 못한 반쪽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이 히어로 회사에 소속될 수 있던 히어로로서의 마음가짐을 지닌 남자였다.
그리고 이런 착한 마음을 지닌 히어로들의 전형적인 특성인 나중에 뒤통수 맞더라도 일단 구하고 보자는 심리가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었다.
‘그래 사나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사람 구하다 죽어서 왔다고 하면 염라대왕도 정상참작 해 줄거야!’
평소에 그의 업무 특성상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로서는 기왕 죽는 거 좋은 일 한 번 하다가 죽자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여담을 더하자면 그는 예전에 종교니 신 따위를 믿지 않았지만 히어로가 되고 나서 주술을 사용하는 히어로나 무당을 하다가 히어로가 된 이들이 지옥의 괴물들이나 신들의 힘을 빌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지옥을 믿게 된 케이스였다.
그렇게 길던 고민 속에서, 실제로 지나간 시간은 불과 몇 초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 끝에 태일을 돕기로 마음먹고 발걸음을 떼는 것과 동시에 안에서부터 태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쉴 틈을 안 주는구만!”
짧은 순간, 태일의 양손에 모여 있던 불꽃은 크게 발화하며 그를 노리고 쏘아져 오던 손과 발을 낚아챘고 그의 손에 잡힌 손, 발은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와 재로 변해 버렸다.
“헐?”
장원삼은 그 광경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다시 눈을 비비고 봤지만 바닥에 굴러다니는 불타는 손발과 불구가 되어 거리를 벌리는 성장체들의 모습은 분명 현실이었다.
‘성장체의 강화된 신체를 불로 태워서 잘라 냈다고?’
말했다시피 성장체들의 강화된 신체는 C급의 신체강화계 능력자들의 신체 조건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단련되고 강화된 C급 신체강화계 히어로들의 신체 내구성은 수톤 트럭이 80㎞의 속도로 달려들어 부딪힌다 해도 충격이나 고통으로 쇼크사 할지언정 신체에는 흠집도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보검 따위는 날도 들어가지 않으며 불에 대한 저항력은 토치를 들고 와 십 분가량 달궈야 뜨겁다고 호들갑 떠는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몸 뚱아리를 맨손으로, 그것도 불만으로 뜯어낸다? 저렇게 순식간에?
대체 불의 온도가 몇 도나 되고 악력이 얼마나 되어야 가능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청염…… 인가?’
지금 장원삼이 보고 있는 태일의 양손에 나타난 불꽃의 색은 일반적인 노랗거나 주황빛을 띤 일반 불꽃이 아닌 흔히 가스레인지를 통해 많이 보게 되는 고열의 푸른 불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저만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말했다 시피 토치를 들고 와 십 분을 달궈야만 뜨거움을 느끼는 몸뚱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