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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1권



세스크 1권(1화)
서장 1


나는 45년을 살아오면서 특별히 운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45세의 생일을 맞아 눈을 뜬 오늘, 나는 정말 엄청난 행운을 움켜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을 떠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왜냐고?
정말 세상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변두리 고시원의 한 평짜리 방에서 아스트라 대륙으로.


서장2


아스트라 대륙의 유일한 섬인 드래곤 랜드.
드래곤 랜드에는 고룡인 아르테미스의 레어가 있다. 골드 드래곤 아르테미스는 마법의 생물인 드래곤 중에서도 유별히 마법을 사랑하고 심취했다. 그런 그가 지금 레어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채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천 년에 걸쳐 다른 드래곤과 교류도 없이 레어에서 새로운 마법 연구에 빠져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다른 드래곤과 교류는 없었지만, 레어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욱 매달렸던 것인지도 몰랐다.
천 년 전 차원이동 마법에 심취해 매달린 것이 잘못이었다. 신의 영역이라고 일러지는 차원이동 마법은 드래곤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겨우 백 년 전에 단서를 발견하여 반지에 마법진을 인챈트해 이동시켜 보았으나 응답이 없었다. 결국, 실패로 생각하고 다시 연구를 거듭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이제 마나의 품으로 돌아갈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더 이상의 연구는 무의미하다 생각한 아르테미스는 몇 남지 않은 드래곤을 마지막으로 만나 볼 생각이었다.
레어에서 나와 다른 드래곤과 교신을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직접 레어에 찾아가 보니 모두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자신이 최후의 드래곤이 된 것이었다.
다른 드래곤들이 어찌 헤즐링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도 해 보았으나,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헤즐링을 만들었겠지 하는 안일함이 가져온 멸족일 것이다.
아르테미스는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종의 창조는 주신만의 권능이다. 이것도 주신의 뜻이라 생각하는 아르테미스였다. 하지만 아르테미스는 멸족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마법을 사랑하는 그로서는 마법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점점 퇴보하는 대륙의 마법은 드래곤의 멸족과 함께 영원히 마법의 소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아르테미스는 후손은 남기지 못했지만 마법이라도 아스트라 대륙에 남기고 싶었다.
마법을 전수받을 대상을 위해 준비를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는 관계로 지식전이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또, 대상자가 원활히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마나가 필요했다. 마나는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르테미스는 마나의 품에 돌아갈 때, 자신의 하트를 이식할 방법을 찾아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니 알맞은 존재를 찾을 시간이 없었다. 아르테미스는 지성을 가진 생명체로 한정하는, 소환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제 더는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마법진을 활성화시키고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그런 아르테미스의 눈으로 인간의 형상을 한 물체가 소환되는 것이 보였다. 아르테미스는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최소한 실패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안배에 따라 마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먼지로 사라지는 아르테미스의 눈에 안도의 웃음이 나타났다.


1. 마지막 드래곤 아르테미스(1)


사실 눈을 뜨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믿을 수 없는 행운에 혹시라도 눈을 뜨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눈을 뜰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눈을 꼭 감은 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탁한 고시원의 공기와는 다른 신선한 공기, 좁고 딱딱한 고시원의 침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
무어라고 정의하기 힘든 정우를 둘러싸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슬그머니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와우!”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사실이었다.

이곳은 아스트라 대륙의 드래곤 랜드라는 곳에 위치한 골드 드래곤 아르테미스의 레어다. 40만 년 역사의 아스트라 대륙의 최상위 지배 종족은 드래곤이다.
최강의 무력을 보유하고 지극히 이성적이며 지혜로운 드래곤이다. 그들은 모든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점이 그들의 종족을 멸종으로 이끌게 되었다.
종족보존의 욕망마저도 배제되었던 드래곤들에게 정해진 결말이었다.
아르테미스 역시 담담히 운명에 순응하였다. 죽음을 기다리며 아스트라 대륙과 드래곤과의 관계. 자신의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던 그는 점점 퇴보해 가는 대륙의 마법에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꼈다.
드래곤은 마법의 생물이며, 그 존재 이유이지 않던가!
이대로 자신마저 죽고 나면 대륙의 마법은 점차 퇴보하다 결국 사라지고 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이 사라지게 되면 아스트라 대륙에서의 드래곤의 기억은 사라져 갈 것 이고, 결국은 존재마저도 부정되어질 것이다.
40만 년 대륙의 역사와 함께해 온 드래곤이 기억의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마법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그 대상으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어느 정도의 지능을 지닌 종족이어야 했다. 아르테미스는 그러한 설정을 하고, 마법을 전수할 지식전이 마법진과 드래곤 하트 이식진을 준비했다.
아르테미스는 죽음을 앞둔 순간 소환 마법을 시전했다. 소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한 아르테미스는 마나를 전부 하트 이식 마법진으로 불어넣은 후 소멸되었다.

그렇게 소환 마법에 의해 선택되어 소환된 것이 바로 서정우였다. 그런데 왜 다른 차원에서 소환되었는지는 아르테미스도 모르고 정우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정우는 소환되었다.
아르테미스의 안배에 따라, 이식진에서 드래곤 하트를 이식받았다. 100일간에 걸쳐 마나와 지식의 주입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정우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육체는 탈태환골과 비슷한 신체의 재구성을 겪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육체를 갖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45세의 중년에서 180정도의 키에 건강한 신체를 얻었다. 거기에, 덤으로 드래곤 하트와 마법까지 얻게 된 것이다.
실로 대박 중에 대박이요, 행운의 파노라마였다. 그러나 정우는 냉정했다. 30년의 걸친 무협과 판타지 신공은,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냉정히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우선 지식과 몸에 대한 수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레어를 살펴보았다. 레어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정우가 있는 곳은 연구와 실험을 했던 실험실이었다. 실험실을 나와 6개의 문에 차례대로 들어가 보았다. 응접실, 보물 창고, 아티팩트 창고가 한쪽에 있었다.
다른 쪽은 식당과 이러저러한 물건들이 모여 있는 창고, 거대한 광장(아마 수면기의 침실이리라)과 거실, 작은 침실이 있었다. 천천히 둘러본 정우는 옷가지 몇 개를 들고 나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식당으로 가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느 정도 허기를 채우고 나자 파란만장했던 45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인생사 ‘고진감래’, ‘새옹지마’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 사연 많은 인생이었다.
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고, 부침이 있겠지만 특히 심했던 것 같다.
젊어서부터 ‘일단 저지르고 보자’라는 생각에 좌충우돌해서 사고도 많았다. 결정적으로 IMF를 예상하지 못하고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쪽박을 차게 되어 결국, 32살에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불법체류자로 강제송환 될 때까지 ‘7전 8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불법체류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았다. 보수가 적거나 위험한 일이 아니면, 일이 없었다. 거기다 성격상 남의 밑에 있지 못하는 정우였다.
맘에 들지 않으면, 뻔히 손해 날 것을 알면서도 저질러 버린다. 그러니 성공하기 힘든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많은 실패 속에 경험이 쌓여 작은 성공을 이루었다.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외국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교포와 같은 나라 사람이다.
정우 또한, 같은 한국 사람들의 시기와 견제를 받았다. 결국, 그들의 신고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강제송환을 당했다.
한국에 12년 만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다.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하게 돌아온 정우는 설 자리가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돌아갈 면목도 없었다.
변한 것이 너무 많았다. 단지 외향만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문화와 사고방식이 정우가 있을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정우는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결국, 서울 한구석의 고시원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국 적응 훈련 중이었다. 그러던 중 생일날, 이곳 아스트라 대륙에 영문도 모른 채 소환된 것이다.
지나간 세월을 떠올려 보니 후회막심하였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고 했던가. 지금은 지난 일을 후회할 때가 아니었다. 다시 찾아오지 않을 행운이 왔을 때,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감상에서 벗어나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아르테미스에 의하면, 이곳은 동 아스트라, 서 아스트라라는 두 개의 대륙이 있다. 원래는 하나의 대륙이었으나 갑자기 북극 지방이 이상 현상으로 눈과 얼음뿐인 불모지대로 변했다. 그로인해 소통이 단절되어, 동대륙과 서대륙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 후, 두 대륙 간에는 인적, 물적 교류가 어려워졌다. 대륙의 조선 기술이 원양항해에 견딜 수 있는 함선을 건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대륙은 로메오 제국, 토루코 제국과 6개의 왕국이 연합한 잉스크 왕국 연합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상호 견제 속에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서로 다른 종교 문제로 영원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에 반해 드래곤 랜드가 있는 동대륙은 바라크 왕국이라는 강력한 국가가 200년 전에 등장하였다. 바라크는 정복 전쟁을 통해 10여 개의 작은 왕국들을 흡수, 통합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동대륙의 70%를 차지했던 대제국 바라크다. 바라크 제국은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우방이었던 이종족과 내부 마찰을 일으켰다. 또한, 이민족에 대한 차별로 복속된 왕국 국민들의 불만을 샀다.
황도에서는 지나친 사치와 향락으로 인해, 중앙정부와 지방의 영주들과의 마찰이 생겼다. 결국 그 골을 메우지 못해, 북부와 동부 영주들의 의한 반란이 일었다.
20년 전에 시작된 반란은 이종족의 호응을 이끌어 내전으로 비화했다. 10년간 내전으로 제국은 피폐해 갔다.
북부와 동부 영주들은 브레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이종족들 역시, 엘프가 엘란 왕국을, 드워프와 수인족 연합이 시센 왕국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오크 대평원의 천만이 넘는 오크와 바라크 제국의 속국인 조세느 왕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