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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 -
이제경



스토킹 마스터 1권(1화)
Part 1. 식물인간이 된 조카!(1)


“뭐라고? 아니, 형. 지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재경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고?”
내 고함 소리에 형은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우…….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되냐? 그래,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이런 황당한 일이 내 아들한테 일어나다니.”
“흑흑……. 삼촌. 우리 재경이를 어쩌면 좋아요.”
옆에 앉아 있던 형수는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적시며 훌쩍였다.
“말도 안 돼! 재경이가 가상현실 게임을 하다가 보름째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
두 시간 전이었다. 회사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재경이한테 사고가 생겼으니 빨리 오라는 형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달려온 것은.
형은 무역 회사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아들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재경이가 있었다.
나한테는 조카인 재경이는 가상현실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그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형이 게임 금지령을 내리자 보름간을 단식 농성을 한 일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게임을 좋아하는 녀석이라도 그렇지. 가상현실 게임을 하다가 보름째 깨어나지 않고 있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쩝……. 게임방에서 죽은 게임 폐인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내 조카가 게임하다가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다니.
나는 찌릿 인상을 쓰며 형 옆에 앉아 있던 40대의 남자를 쏘아보았다.
“왁슨 시스템의 조우성 부장님이라고 하셨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재경 학생의 삼촌인 이우영 씨라고 하셨지요?”
조우성 부장은 굽실거리는 자세로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쩝……. 본인은 아부하려고 짓는 미소지만 내 눈엔 짜증스럽게만 보이는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네?”
“아, 그쪽 회사에서 만든 게임을 하다가 내 조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실 거냐구요! 그쪽에서 만든 게임이니 책임지고 내 조카를 깨어나게 해 주셔야 할 게 아니냐 그 말입니다!”
인상을 쓰며 을러대자 조 부장의 얼굴 가득 난감한 빛이 떠올랐다.
“아니, 저 그게요……. 저도 재경이 부모님 연락을 받고 오긴 했지만 반드시 우리 회사의 게임 때문에 재경 학생이 저렇게 된 건지는 확실하다고 볼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꼭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는…….”
“뭐가 어째!”
“여보!”
옆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던 형이 갑자기 조 부장의 멱살을 잡고 마구 조르자 놀란 형수가 만류했다.
그러나 열 받은 형은 쉽사리 조 부장의 멱살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 인간아! 내 아들이 당신네 회사의 게임을 하다가 못 깨어나고 있는데 책임이 없다는 게 말이 돼! 그런 식으로 어물쩡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아! 삼대독자를 게임 폐인도 아닌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아무런 책임감도 안 느낀다는 거냐구! 꼭 내가 고소를 해야만 하겠냐 이거야!”
“으윽! 아니, 저…… 이거 좀…… 켁켁! 그러니까 책임이 없다는…… 켁! 아니구요. 큭!”
“아, 형! 그거 놓고 이야기 해. 그런다고 재경이가 당장 깨어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요. 차분히 이야기를 해 보세요.”
나와 형수가 팔을 붙잡고 떼어 놓자 조 부장은 가까스로 형의 십자조르기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형은 대학에 다닐 때 유도 부원이여서 악력이 상당히 강하다. 그 증거로 조 부장의 목덜미에는 형의 시뻘건 손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아니, 저……. 그게 그러니까. 법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도의적인 차원에서라도 재경 학생이 게임 속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다 취해 보겠습니다.”
좀 혼이 났는지, 핼쑥한 얼굴로 목을 어루만지며 조 부장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 귀에게는 가소롭게 들릴 뿐이었다.
“흥, 법적인 문제와는 별개라고? 말은 잘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이 자리에서 당장 모면하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해 봐야 어림도 없어!”
“아니, 저, 재경이 아버님. 그러니까 어물쩡 넘어가려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건 그렇고 일단 재경이의 상태를 봤으면 좋겠는데, 지금 어디 있지?”
두 사람의 싸움이 더 계속되는 것도 막을 겸 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형수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제 방 침대에 누워 있으니 들어가 보세요. 의사 말이, 깨어나지 않는 것만 빼면 당장 위급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는 하는데…….”

스륵!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 있는 재경이가 보였다.
PC와 단말기에 연결된 헤드셋(왁슨 시스템에서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용으로 제공하는 장치였다)을 장착한 자세. 그러니까 가상현실 게임을 하던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쩝……. 불쌍한 내 조카. 한창 뛰어놀 나이에 이런 엄청난 불상사를 당하다니.
하긴, 게임하다가 식물인간이 되었으니 이것도 뛰어노는 중에 사고를 당한 거라고 할 수 있으려나?
어쨌건 착잡한 심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재경이를 보고 있으려니, 우리 두 숙질이 함께했던 옛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펼쳐졌다.
우리 두 사람은 다른 삼촌이나 조카들과는 좀 다른, 예사롭지 않은 관계였단 말이지.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조카 재경과 나와의 정겨웠던(?) 과거를 돌이켰다.

* * *

“에이 짱나네.”
추리닝 차림의 우영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영의 형수가 시킨 일 때문이었다. 네 살 난 조카 재경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 데리고 오라고 했던 것이다.
“에잉! 모처럼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말이야. 네 살이나 먹었으면 지가 알아서 어련히 잘 오려고. 요즘 꼬맹이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특히 재경이 이놈의 자식은 영리하다 못해 사악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놈이구만.”
끼―익!
그때 유치원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더니 유치원 꼬마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렸다.
이윽고 버스에서 내린 재경은 마중 나온 삼촌 우영을 마뜩찮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 뭐야! 삼촌이잖아? 엄마는 안 오고 삼촌이 뭐하러 마중 나왔어?”
존재 가치가 지극히 하찮은 인간이 마중 나와서 비위가 상한다는 투의 말에 우영은 발끈해서 조카에게 쏘아붙였다.
“뭐? 임마! 뭐하러 마중 나왔냐고? 삼촌이 마중 나와서 불만이냐? 주무시다가 수고스럽게 몸소 나와 주셨는데 짜식이 한다는 소리가! 잔말 말고 빨랑 돌아가자. 돌아가서 못 잔 잠을 마저 자야 한단 말이다. 흐아암∼ 졸려라.”
우영은 재경의 손을 잡고 하품을 하면서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우영이 머리를 벅벅 긁자 우수수 떨어지는 비듬을 혐오스런 눈으로 쳐다보던 초딩, 아니 유딩 재경은 갑자기 삼촌을 잡은 손을 힘차게 끌어당기며 말했다.
“삼촌! 잠깐! 저기 슈퍼에 가서 맛있는 까까 사 줘! 그저께 내가 봐 둔 맛있는 까까가 있단 말이야!”
“뭐, 뭣? 임마, 내가 돈이 어딨어서 까까를 사 달래냐? 이 자식이 아주 웃기고 자빠졌네. 그딴 소린 니 엄마, 아빠한테나 해야 할 거 아니냐! 그리고 내가 왜 피 같은 내 돈으로 니 까까를 사 줘야 하는데? 니 눈엔 이 삼촌이 봉으로 보이냐? 엉뚱한 소리 말고 빨랑 집에나 가자!”
“그럼 안 사 주겠다는 거야? 후회하기 전에 사 주는 게 좋을 텐데?”
“얼씨구. 지금 너 조카 주제에 감히 삼촌인 날 협박하는 거냐? 까불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숙제나 해, 임마! 엉덩이에 불 나도록 볼기 두들겨 맞기 전에!”
우영이 코웃음을 치고 단호히 거부 의사를 표하자 재경은 두 눈을 부라리며 째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다리를 질질 끌더니 우영의 손을 잡은 채로 몸을 빼는 시늉을 하며 땅바닥을 마구 뒹굴었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면서.
“살려 줘요! 유괴범이야! 이상한 아저씨가 날 유괴하려고 해요! 앙앙! 나 좀 구해 줘! 웬 변태 같은 아저씨가 날 납치하려고 해요! 엉엉! 난 삼대독자예요! 제발 구해 줘욧!”
“헉! 아니 이 짜슥이!”
우영은 갑작스런 돌발 사태에 기겁을 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참으로 난감하게도 재경이의 손을 놓을 수도 잡아당길 수도 없었다.
재경이가 필사적으로 손을 잡아 빼는 시늉을 하면서도 우영의 손을 꽉 잡은 채 땅을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처절하게(?) 울부짖기까지 하면서 말이지.
그 연기는 가증스럽게도 아카데미 상 후보로 갖다 놔도 좋을 만큼 일품이었다.
사태가 그쯤 되자 어째 단정치 못한 행색의 우영을 수상한 눈으로 보던 주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야, 유괴범이야?”
“생긴 거 보니까 백수 같은데……. 아무리 할 게 없어도 그렇지 애를 유괴하려고 해?”
“가만 보니 허여멀겋게 생긴 놈이 아주 질이 나쁘군 그래.”
행인들은 우영을 손가락질하면서 험악하게 눈을 부라렸다.
급기야는 근처에 있던 교통 경찰까지 권총집에 손을 얹은 채 다가오는 게 아닌가? 우영을 100% 유괴범으로 단정 짓고 저러는 게 분명한데, 어쩌면 정말로 총을 꺼내서 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총이 아니라 가스총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제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우영은 사방을 향해 머리를 굽신거려 가면서 있는 해명 없는 해명을 다 해야 했다.
그리고 주머니의 돈을 탈탈 털어 조카 재경에게 과자 한 꾸러미를 안긴 다음에야 유괴범의 누명에서 벗어나 집으로 올 수 있었다.

* * *

쯧, 생각해 보면 그 뒤로 내가 재경이 돼지 저금통을 3년간 내리 몰래 털어서 술 사 먹은 사건하며, 녀석이 보복으로 내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대량으로 심어 놓아 넉 달치 해 놓은 내 업무 문서가 모두 날아간 사건. 그리고 내가 그에 대한 응징으로 볼기짝을 피나게 두들겨 패 주니까 그놈이 한 달 넘게 내 구두 속에 지가 기르던 고양이 똥을 채워 놓는 짓을 해서 결국 내가 백기를 들고 사과한 것 등등 제법 화기애애(?)했던 여러 사건이 있었군.
그렇게 아름답고 정겨웠던 (도대체 어디가!) 숙질간의 여러 일들을 회상하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잉?”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좀 이상한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언뜻 볼 때는 몰랐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침대에 누워 있는 재경이의 얼굴은 혈색이 좋았고 숨도 쌔근거리면서 고르게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만 봐선 환자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딱 하나 팔에 링거가 꽂혀 있는 것만 빼면 말이지.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어느샌가 방에 들어온 형수가 입을 열었다.
“링거는 영양 공급을 위해서 의사와 상의하고 꽂았어요. 지금 이 상태론 정상적인 식사가 불가능해서…….”
“아니, 그게요, 링거보다도…….”
무심결에 대답하던 나는 말을 흐렸다.
링거도 링거이지만 그보다는 누워 있는 재경이의 입이 사악하게 웃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렸던 거다.
아, 거참 요상하네.
저 웃음은 저놈 자식이 누군가를 신나게 엿 먹이고 있을 때 짓는 미소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저렇게 웃지 않는단 말이지.
“저, 형수.”
“네, 삼촌. 왜요?”
“재경이가 저러고 있는 게 보름째라고 했죠?”
“아, 그러니까 미칠 노릇 아녜요. 이러고서 못 일어나고 있으니. 아무리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흑!”
형수가 다시 훌쩍이려 하자 난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근데 침대에서 보름 내내 재경이가 저런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까?”
“네?”
“아, 그러니까 이놈 자식이 보름 동안 계속 저렇게 실실 쪼개고 있더냐구요.”
내가 약간 짜증을 내며 말하자 형수는 조금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녜요. 어떤 때는 화를 내다가 어떤 때는 심각해지다가, 웃기도 하고 변화무쌍했어요. 저렇게 웃고 있는 건 오늘 아침부터 그런 것 같네요.”
“그래요? 표정이 변화무쌍했다구요?”
“네. 평소에 짓던 표정들이긴 한데…….”
“그래도 평소보다는 좀 기복이 심한 표정 같다는 거죠?”
“네, 바로 그거예요. 삼촌이 잘도 아시네요?”
형수는 용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제야 재경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갔다.
내 생각이 맞다면…….
“형수.”
“네, 삼촌?”
“지금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 처리하다 나온 거라서 들어가 봐야 되거든요. 내일 모레 이 시간에 다시 올게요. 그때 형하고 저 조 부장이란 사람하고 의사들 좀 있으라고 할 수 있나요?”
“네……. 그건 어렵지 않지만 왜…….”
형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씨익 미소 지었다.
“지금 재경이가 어떤 상탠지 알 것 같아서요. 어쩌면 재경이를 회복시킬 방법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삼촌, 그게 정말이에요?”
“아니, 저…… 너무 기대하진 마시구요. 백 프로 장담은 못하는 거니깐요. 자, 그럼 전 회사에 들어가 볼게요. 내일모레 다시 오겠습니다!”
기뻐하는 형수한테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형의 집을 나섰다.
내가 이제 겨우 스물네 살이지만 다니고 있는 IT계통의 회사에서 제법 중책을 맡고 있어서 자리 비우기가 쉽지 않아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