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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2화)
Part 1. 식물인간이 된 조카!(2)


약속한 날,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형의 집으로 갔다.
내가 부탁했던 대로 형과 조 부장, 그리고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먼저 의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경이가 건강에 별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하셨는데 그럼 뇌파 상태는 어떻죠?”
내 말에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과 진단서 등을 몇 장 꺼내서 훑어보았다.
“네, 그게 보통의 초등학생들이 밖에서 뛰어놀 때와 별 차이 없습니다. 좀 특이한 점이라면 아주 신나게 놀 때의 뇌파 상태와 매우 비슷하다는 거랄까요?”
“뛰어노는 상태라구요?”
형은 의아한 표정이었으나 좌우간 재경이의 뇌파가 문제가 없다는 말인지라 다소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이번엔 조 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 부장님, 재경이한테서 왁슨 시스템의 가상현실 게임 이케루스를 할 때 쓰는 헤드셋을 일부러 벗기지 않으셨다고 했죠?”
“예? 아, 그렇습니다. 행여나 벗겼다가 재경 학생의 몸에 뭔가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아주머님이 그러셔서…….”
“아, 그거야 당연한 거 아녜요! 게임하다가 머릿속에 뭔 일이 생겼는데 그거 뗐다가 더 탈나면 왁슨에서 책임지실 거예요?”
“네, 그럼요. 제가 뭐 거기에 대해서 불평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암요.”
형수가 눈을 부라리면서 뭐 잘못된 거 있냐는 투로 말하자 조 부장은 굽신거리면서 비굴한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한심해 보였지만 저럴 수밖에 없는 조 부장의 입장도 알 것 같긴 했다. 가상현실 게임 이케루스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인기 게임이고 최대의 이익을 낳고 있으니까. 우리 재경이의 일로 게임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왁슨으로서는 치명타가 되니 우리 형이나 형수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을 피해야 하는 건 당연하겠지.
“조 부장님. 혹시 다른 초등학생들이 이케루스를 하고 있을 때 찍은 뇌파 사진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한 서너 명 정도의 뇌파 사진을 말이죠.”
“네? 아니, 그건 뭐하러…….”
조 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내 의도가 짐작이 되었던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본사에 전화해서 구해 오라고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쇼!”
조 부장이 본사에 전화를 한 지 두 시간 뒤, 왁슨의 직원 두 명이 몇 장의 사진을 가지고 왔고 나는 그 사진들과 재경이의 뇌파 사진을 비교해 보았다.
형과 조 부장, 그리고 의사와 형수도 관심 깊게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똑같잖아?”
형이 놀란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아냐, 형. 백 프로 똑같지는 않아. 하지만 매우 비슷한 건 분명해. 어떻습니까, 의사 선생님?”
내 질문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소견으로는 재경 학생과 이 뇌파 사진을 찍은 학생들이 모두 동일한 상태인 것으로 보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의사가 자신 있게 단언하자 내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형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저,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동일한 상태라뇨?”
“재경이 어머님, 우리 이케루스 게임을 하는 다른 학생들처럼 재경 학생도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식물인간이 된 게 아니고 말입니다.”
조 부장은 조금 전과는 달리 비굴 모드에서 벗어나 어깨까지 으쓱하며 말했다.
나도 일단 그 말에 동의했다.
“조 부장님 말씀대로예요, 형수. 재경이는 식물인간이 된 게 아니고 여전히 가상현실 게임 이케루스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보름 전부터 지금까지 현실로 올 생각은 전혀 안 하고서 말이죠. 얼굴 표정을 봐도 변화무쌍한 게 게임 속에서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짓는 게 확실해요.”
“헉!”
내 말에 형은 기가 막히다는 듯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이놈의 자식이 게임에 환장해 가지고 보름 동안을 일부러 깨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내 이놈의 자식을!”
울화통을 터뜨리며 재경이의 방으로 가려는 형을 나는 만류했다.
재경이가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았지만 그걸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지.
형은 씩씩거리면서 의사에게 물었다.
“그냥 저 헤드셋을 재경이한테서 벗겨 버리면 저놈의 자식이 깨어나지 않을까요?”
“글쎄요……. 게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강제로 접속 상태가 끊어지고 깨어나게 되어 있는 거잖습니까? 근데 그게 작동되지 않게 되어 버린 건데 과연 헤드셋을 제거한다고 깨어날지……. 어쩌면 지금보다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의사 선생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형의 질문에 의사는 고개를 갸웃했고 조 부장도 다시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만약 헤드셋을 뗐는데도 의식이 안 돌아온다면? 그때는 정말로 대책이 없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때야말로 재경이가 완전히 식물인간의 상태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지.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태에서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나는 슬며시 입을 열어 내 생각을 모두에게 말했다.
그러자 형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 우영이 니가 게임 속에 들어가 재경이를 데리고 나오겠다고?”
“삼촌이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이에요?”
“네. 내가 이케루스 속으로 들어가서 게임을 하고 있는 재경이를 찾아 설득을 해서 현실로 데리고 나오는 거죠. 지가 게임이 좋아서 저 안에서 안 나오는 거니까 자발적으로 나오게 해야잖아요. 강제로 헤드셋을 벗겨 버려서 게임 접속을 끊는 것은 위험성이 있어 안 되니까.”
내 설명에 제일 먼저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의사였다.
“나쁘지 않군요. 그게 제일 자연스러운 방법 같긴 합니다. 환자의 자발적인 의사로 현실로 돌아와 준다면 그 이상 좋은 방법이 없긴 하죠. 뇌에 무리가 갈 일은 전혀 없으니까요.”
의사의 말에 형과 형수는 얼떨떨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가상현실 게임을 잘 모르는지라 이게 좋은 해결책인지도 감이 안 잡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의사가 좋은 방법이라니까 동의를 하는 눈치였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조 부장뿐이다!
나는 슬쩍 위압적인 눈길을 조 부장에게 던졌다.
“조 부장님. 지금 이 불상사는 전적으로 이케루스란 게임의 문제점에서 생긴 사태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 그게 꼭 그렇다고는…….”
“뭐예요? 스물네 시간이 초과하면 강제로 접속이 끊어지는 장치가 전혀 작동이 안 되었는데도 말입니까! 근데도 왁슨 측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하실 겁니까!”
“그, 그건…….”
내가 언성을 높이자 조 부장은 진땀을 흘렸다.
현재의 대한민국에는 가상현실 게임 열풍이 거세게 불어닥쳐 게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쏟아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새로운 법이 생겼다. 모든 가상현실 게임은 24시간을 초과해서 게임을 하면 강제로 접속이 끊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데 재경이는 무려 보름간 접속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조 부장을 째려보면서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인정 못하시겠다면 할 수 없네요. 언론사에 전화해서 가상현실 게임 이케루스의 결함과 왁슨 시스템의 무성의에 대해서 제보할 수밖에요.”
휘익! 덥썩!
“허억! 그건 안 됩니다!”
“윽! 아니, 왜 이래요!”
난 기겁을 했다. 지하철 역에서 투신자살하려는 사람을 덮치듯 조 부장이 몸을 날려 날 덮친 것이다.
“그것만은 참아 주십쇼! 재경 학생을 구하기 위해 우리 왁슨이 협조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것만은요!”
“아, 이것 참. 마음 약해지려고 하네. 좋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재경이를 구하기 위해 제가 하려고 하는 일에 적극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재경 학생을 현실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돕죠. 약속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