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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3화)
Part 2.조카따라 이케루스로(1)


삐이익――!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음향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 새벽의 여명이 스며들듯 주위가 서서히 밝아졌다.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뜬 순간, 내 앞에는 신록의 대지와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앞쪽으로는 성문이 서 있었고, 좌우는 숲, 그리고 뒤는 산길이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상현실 게임 이케루스 속으로 처음 들어온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
순간 기계음과 더불어 메시지 창이 열렸다.

가상현실 게임 이케루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정식으로 계정을 만들고 게임할 거냐?

“…….”
메시지 창에 뜨는 메시지에 나는 떨떠름한 기분이 되었다.
이거 왜 처음부터 다짜고짜 반말이래?
그러나 내가 떨떠름하거나 말거나 메시지는 계속되었다.

대답이 없는 거 보니 대충 구경이나 하고 나가려는 어중이떠중이로군. 그럼 적당히 둘러보고 가라. 난 바빠서 이만…….

“스톱!”
아니, 이거 뭐가 이래. 유저가 대답 안 한다고 제 마음대로 구경꾼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다니.
그리고 뭐가 어째! 어중이떠중이라고? 불친절할 뿐더러 아주 제멋대로잖아!
도대체 이 게임을 만든 왁슨 시스템은 무슨 생각으로 요따위 안내 메시지가 뜨게 한 건지 알 수가 없군.
하지만 인공지능 시스템에 열 받아 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
나는 치미는 울화를 애써 누르면서 대답했다.
“정식으로 계정을 만들겠다. 닉은 실제 이름인 우영으로! 성별은 남자, 종족은 인간이다. 게임의 외모는 현실의 외모를 최대한 반영하지만 유저 마음대로 꾸밀 수 없는 게 이케루스라고 들었으니까 내 실제 외모 그대로 해 주리라 믿는다. 내가 한 미모 하거든?”

알았다. 원하는 대로 계정을 생성해 주겠다. 단 생성된 당신의 외모를 보고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기 바란다. 간혹 지 생긴 꼬라지도 모르고 왜 이미지를 오크로 만들어 놓았냐고 항의하는 유저들이 제법 있어서 말이지.

빠직!
열 받은 나머지 내 미간에는 혈관이 불끈 두드러졌다.
뭐, 오크가 어쩌고 어째?
이놈의 메시지 시스템이, 유저를 열 받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조롱을 하고 앉았구만.
파팟!
짧게 눈앞이 번쩍하더니 다시 메시지 창이 떴다.

요구한 대로 계정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랜덤으로 정해진 당신의 직업은 스토커다. 하고많은 직업을 놔두고 어쩌다 이런 직업에 걸렸냐? 팔자소관이니 별수는 없겠다만, 그래도 이왕 비싼 돈 주고 하는 게임이니 잘해 보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메시지 창은 사라졌다.
아, 그거 끝까지 기분 찝찝하게 하네.
뭐? 직업이 스토컨데 어쩌다 이런 직업에 걸렸냐고?
나는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되었다.
사실 저 직업은 랜덤으로 선택된 게 아니고 조 부장이 만들어 주기로 약속한 거였다.
이틀 전에 조 부장을 만났을 때였다.
“그러니까 우영 씨께서 이케루스를 무료로 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말씀이죠?”
“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재경이를 구하려면 제가 직접 이케루스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가능하면 하루라도 빨리 게임을 시작해서 재경이를 찾아 현실로 데리고 나오고 싶습니다.”
50층에 달하는 빌딩을 홀로 사용하는 왁슨 시스템의 부장실에서 조 부장을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요구 사항을 말했다.
조 부장은 안도하는 것 같았다. 표정을 보니 내가 도대체 어떤 요구를 해 올 건지 상당히 불안했던 모양이구만.
“알겠습니다. 그럼 우영 씨께서 일 년간 이케루스를 무료로 할 수 있는 쿠폰을 드리겠습니다. 게임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장비 또한 전액 무료로 지급하고 지금 당장 부하 직원들을 시켜서 우영 씨 댁에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죠!”
“네에? 아니, 그럼…….”
내가 불만스레 말하자 조 부장은 커피를 마시려다 말고 어리둥절해했다
“아, 내가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 지금 다니는 회사의 일은 어쩌구요? 하루에 여덟 시간을 이케루스를 하게 될지 열두 시간을 하게 될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면 정상적으로 회사 일은 못하거든요? 그렇다고 잘 다니고 있는 회사에 사표 던지고 이케루스만 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러니 왁슨 시스템에서 우리 회사에 뭔가 조치를 취해 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아, 네…….”
내 말에 조 부장은 비로소 이해가 가는 듯했다.
그는 서류를 작성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한참 뒤에 밝은 얼굴로 말했다.
“사장님께 결재를 받았습니다. 우영 씨 회사에 공문을 보내서 우영 씨를 우리 왁슨 시스템이 꼭 필요로 하니 파견을 보내 달라고 했거든요. 우영 씨 회사에서 흔쾌히 승낙했으니 이제 우영 씨는 이케루스만 하시면 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왁슨 시스템에 파견 나와서 일하는 걸로 되어 있는 셈이니까요. 물론 월급은 정상적으로 회사에서 줄 거구요.”
“우리 회사에서 쉽게 승낙하던가요? 이래 뵈도 고급 인력인지라, 내가 없으면 우리 회사가 좀 갑갑해질 텐데…….”
내가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말하자 조 부장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신 보상으로 우리 왁슨에서 괜찮은 제휴 건을 우영 씨 회사에 제의했거든요. 우영 씨 회사로선 큰 이득이 되는 일이니까 흔쾌히 승낙한 거죠.”
흠……. 그렇군.
어떤 제휴 건을 제의했는지는 몰라도 내가 다니는 회사에 큰 이득이 되는 일이라니, 이 정도면 왁슨도 제법 성의를 보인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지. 아직 내가 받아내야 할 건 더 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마음 놓고 게임을 할 외부적인 환경은 마련된 셈이군요. 그럼 이번에는 내가 게임 속에서 수월하게 게임을 하게끔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높은 레벨과 많은 스탯, 경험치도 주셔야 하고……. 아, 그리고 아이템 좀 좋은 걸로 주세요. 그래야 게임 진행을 원활하게 해서 빨리 재경일 찾죠. 아니면 어느 세월에 초보 상태에서 레벨 올리고 스탯 키워요? 잉? 아니,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나는 말을 하다 말고 뻘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 부장이 엄청 난감한 표정을 지은 탓이었다.
“저, 우영 씨.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회사 측에서 특정인에게 그런 편의를 제공하다가 다른 유저에게 들키면 난리납니다. 우영 씨도 아실 거 아닙니까?”
“음…….”
그건 그랬다. 게임 회사에서 유저들로부터 뒷돈을 받은 직원들이 레벨을 일방적으로 높여 주거나 좋은 아이템을 빼돌렸다가 형사처분을 받은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났었는데, 그때마다 해당 게임 회사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해당 직원은 회사에서 파면당하고 법적 책임까지 져야 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긴 했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번 찔러본 건데 역시 불가능이로군.
“그런가요? 그럼 어쩔 순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성의를 좀 보여 주세요. 애초에 내가 잘 다니는 회사 업무를 중단하면서까지 이케루스를 해야 하는 게 다 왁슨 측 잘못 때문이 아닙니까?”
“…….”
내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조 부장을 남겨 두고 나는 왁슨 시스템을 나섰다. 이 정도로 압력을 가했으면 큰 건 아니라도 뭔가 게임 속에서의 편의를 제공해 주겠거니 기대하면서.
그리고 내가 집에 들어와서 이케루스의 계정을 만들기 위해 접속하기 한 시간 전, 조 부장한테서 전화가 온 거다.
자신이 힘 좀 써서, 재경이를 찾는데 도움이 될 만한 직업이 선택되도록 했다는 거였다.
그 밖에 다른 편의 사항이 제공되는지 물었으나 그건 역시 불가능하댄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다는 직업이 꽤 좋은가 보다 하고 들어와 계정을 만든 건데, 이놈의 안내 시스템이 하는 말은 전혀 딴판이잖아!
하고많은 직업 놔두고 하필이면 스토커라는 직업에 걸렸냐 라니…….
혹시 조 부장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상한 직업이 선택되게 만든 거 아냐?
정말 그렇다면 게임 좀 하다가 확 전직을 해 버릴 테다!

화장실에서 설사를 30분 정도 한 뒤에 휴지가 없어 뒤를 안 닦고 나온 기분으로 서 있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우영 씨죠?”
“헉!”
나는 반갑게 인사하는 상대를 보고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상당히 아스트랄한 인물이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나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인물은 여자 엘프였다. 근데, 노출이 좀 심한 엘프로구만.
풍만한 앞가슴은 반이나 드러나 있었고 짧은 치마는 옆까지 시원하게 트여 있어서 팬티만 빼고는 속살이 모조리 다 보일 지경이었다.
근데 그 엘프의 알맹이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리따운 아가씨가 아니라 네모진 얼굴에다가 턱에서 귀밑까지 더부룩한 수염이 숭숭 난 아저씨였으니 말이지.
그것도 체중이 한 80킬로는 되어 보이는 아저씨. 그리고 시원하게 노출된 우람한 다리에도 강철 같은 굵은 털이 가득하고 말이지.
아, 젠장! 코스프레치고도 이건 아주 악취미 코스프레로군.
내가 못 볼 걸 억지로 본다는 표정을 얼굴 가득 지으며 곁눈으로 바라보자 엽기 엘프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하, 놀라셨습니까? 뭔가 좀 특이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엘프로 선택을 해 봤습니다.”
“그러셨군요.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엄청 특이하긴 하네요.”
“그렇습니까? 정말로 특이한가요?”
“아, 그럼요. 엄청나게 특이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엘프한테 살인 충동을 느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
“헤헤, 농담입니다. 농담. 그건 그렇고……. 혹시 조 부장님이 보내신 분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황태성 과장이라고 합니다. 조 부장님이 바쁘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계정을 만드시는데 불편함은 없으셨는지요?”
“아, 네. 근데 안내 시스템이 상당이 독특해서 좀 놀랐습니다. 안내 메시지가 다른 회사의 게임들과는 꽤 다르더라구요.”
“네, 하하하하! 뭔가 다른 회사의 게임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황 과장은 내가 칭찬을 하는 줄 알고 좋아라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칭찬하는 게 아니라고 설명해 주기도 귀찮아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마침 잘 오셨네요. 제 직업이 스토커로 설정이 되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떤 직업인가요?”
“아, 네……. 그건…….”
황 과장은 내 질문에 갑자기 당황스러워했다.
그걸 보니 의구심이 더 깊어지는구먼.
“혹시, 이거 아주 이상한 직업이거나 영양가 없는 직업 아닙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내가 삐딱한 눈으로 살짝 째려보며 묻자 황 과장은 시선을 애써 피했다.
저 보라니까 분명히 뭔가 있어.
“근데 왜 설명을 못하고 그렇게 당황하세요?”
“네……. 사실 스토커라는 직업은 유저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은 아닙니다. 아직 별로 안 알려진 직업이라서요. 몇 가지 다른 직업들의 특징과 장점만 갖춘 직업이라고 할까요. 자세한 건 게임을 해 나가시면서 우영 씨가 아시게 될 겁니다.”
내 추궁에 황 과장은 총알처럼 마구 말을 쏟아 냈다. 그런데 여전히 내 시선은 피하고 있었다.
이거 어째 찝찝함이 가시지가 않는데…….
내가 못미더워하자 의구심을 떨쳐주려는 듯 황 과장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스토커는 특정인을 추적하는데 가장 특화된 직업이라는 겁니다. 그 말은 조카인 재경 학생을 찾는데 큰 잇점이 있다는 거죠! 그것만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안심이 되네요.”
“네……. 하하하.”
“근데 우리 재경이가 이 게임 세계의 어디쯤에 있는지 이케루스 운영진 측에서는 전혀 모르는 겁니까?”
“네, 유감스럽게도. 그리고 이케루스란 세계 자체가 워낙 방대하니까요. 이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우리 운영진들이 다 알고서 대처한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입니다.”
그렇군. 뭐 그럴 거라고 이미 짐작은 했지만서두.
사실 재경이의 위치만 알아낸다면 문제의 대부분이 풀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재경이를 데리고 현실 세계로 나오게 하면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