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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4화)
Part 2.조카따라 이케루스로(2)
이케루스 운영진에게서 재경이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불가능한 이상, 이제부터 내가 직접 모험을 해 나가면서 알아낼 수밖에 없겠지.
길고 힘든 여정이 되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가급적 게임을 즐기면서 재경이를 찾아내도록 하지 뭐. 이 세상에서 즐기면서 하는 놈한테 불가능한 건 없는 법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자 한결 기분이 편해졌다.
나는 황 과장에게 인사를 던졌다.
“어쨌거나 이것저것 알려 주려고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 보세요. 저는 이제부터 슬슬 게임을 시작해 볼 작정이니까요.”
“네……. 먼저 모험 시작하시기 전에 인벤토리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인벤토리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제 막 계정을 생성했으니 텅 비어 있지가…… 않았다.
“아니…….”
갑옷 하나와 무기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다지 좋아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리고 약간의 돈도. 있었다!
뜻밖의 일이었던지라 의아스럽구만.
“조 부장님께서 이런 건 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어찌 된 거죠?”
“하하, 네. 원칙대로 하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지만 조카분께 생긴 불상사에 대해 우리 왁슨이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뜻에서 준비한 겁니다.”
“음…….”
은근히 조 부장을 압박한 게 먹히긴 한 셈이군.
어쨌거나 갑옷을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레더 아머였다. 하급 몬스터의 가죽을 벗겨서 왁스 칠을 한 걸로 보이는 물건이었다.
이 정도면 보통의 유저가 초보 상태에서 돈이 좀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마련하는 물건이 아닐까 짐작이 되었다.
이 정도 레더 아머면 어설픈 화살이나 칼질을 당했을 때 치명상은 면하게 해 주겠지만 마법 무기에 정통으로 맞았을 때는 거의 도움이 안 되겠구만.
별로 좋은 물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레더 아머가 들판에 돌멩이처럼 여기저기 마구 널려 있어서 개나 소나 다 입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전혀 없는 것보단 당연히 백배 낫다!
슬쩍 레더 아머를 클릭하자 설명 창이 떠올랐다.
-레더 아머 -
분류 : 갑옷
등급 : 노멀
방어력 : 5/20
내구력 : 20/30
옵션 : 없음
가격 : 1골드
최고의 갑옷은 절대로 아니지만 초보 유저에게는 나름대로 쓸 만하다. 특히 가격 대비 실용성을 따지면 훌륭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단 마법이 인첸트된 무기에 걸렸다간 십중팔구 이 갑옷으로 방어가 불가능할 테니 갑옷 믿고 함부로 설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설명 창의 내용 역시 내 짐작과 틀리지 않았다.
아니, 근데 이 게임은 설명 창도 역시 반말에다가 은근히 건방지구만.
좌우간에 레더 아머를 찬찬히 훑어보는 내 눈치를 살피던 황 과장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 가죽 갑옷은 사실 별거 아닙니다만, 무기는 좀 좋은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매직 아이템입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케루스의 아이템들은 6개의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일 아래가 노멀 아이템이고 그 위가 매직 아이템, 그보다 더 좋은 게 레어 아이템이고 그 위가 유니크 아이템,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게 전설 아이템이고, 최고로 좋은 게 신급 아이템이었다.
나는 인벤토리의 메이스를 들어 보았다.
꽤 날렵하게 생긴 병기였다.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메이스는 싸늘한 냉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호오……. 매직 아이템이라고 황 과장이 말해서 그런가?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직접 손에 쥐니 뭔가 느낌이 오는 물건인데?
“사실 매직 아이템을 우영 씨에게 드리는데 대해서 운영진들 간에도 반대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조 부장님과 제가 다른 직원들을 설득했습니다.”
생색을 내는 황 과장의 말이었다. 그래 봐야 신급이나 전설급이 아니고 매직 아이템인데 뭘 그리 생색을 내느냐고 하려다가 관뒀다.
매직 아이템이라고 해도 초보가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었고, 또 임의로 특정인에게 부여하는 건 운영진들로서도 적지 않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인 건 분명했으니까.
“조 부장님께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지만 우리 왁슨 측에서 이런 물건들을 드렸다는 말씀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는 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되니까요. 아시겠죠?”
“물론이죠. 그랬다가는 조 부장님, 황 과장님뿐만 아니라 저도 게임하는 게 불편해질 수가 있으니 그런 염려는 붙들어 매 놓으셔도 됩니다.”
나는 다짐하듯 말하면서 슬쩍 메이스를 클릭해 보았다. 이 무기의 정확한 성능이 궁금해진 때문이었다.
설명 창이 떴다.
- 스토커의 메이스 -
분류 : 무기
등급 : ???
공격력 : 30
내구력 : 50/50
옵션 : ???????
가격 : 30골드
충고 : 어쩌면 특별한 마법이 인첸트되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름.
응! 뭐 이래?
이름이 스토커의 메이스라고?
근데 등급과 옵션에 물음표가 찍혀 있는 걸로 봐서는 속성 파악이 확실히 되지 않은 아이템이란 소린데…….
그리고 특별한 마법이 인첸트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황 과장님, 이 메이스……. 구체적으로 어떤 마법 속성이 있는 건지 아세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저 매직 아이템 여러 개 있는 것 중에서 하나를 집어서 가져온 거라서요. 그걸 고른 이유는 이름이 스토커의 메이스길래 이왕이면 우영 씨 직업에 보탬이 될 것 같아섭니다.”
쩝…….
그러니까 특별히 좋은 걸 주면 곤란하니까, 매직 아이템 중에서 가급적 튀지 않는 평범해 보이면서 내 직업하고 관련 있어 보이는 걸 나에게 던져 주었다는 거로군.
하긴 공짜로 주는 건데, 다른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손에 넣으려고 하는 희귀 아이템을 줄 수는 없는 일이겠지. 정말로 그랬다가 만약 소문이라도 나면 엄청나게 난감해질 테니까. 이케루스 운영진이 뒷돈을 엄청나게 받아먹고 초레어 아이템을 이우영이라는 유저에게 빼돌렸다더라 하고 말이지.
어쨌거나 모험을 해 나가면서 이 메이스의 정확한 속성을 파악해 보아야겠다. 지금 당장은 좀 어렵지만 말이지.
그리고 그 다음은…….
돈! 돈이었다!
오, 이 반짝 반짝 빛나는 금화!
모두 해서 얼마냐. 하나, 둘, 셋……. 모두 다 해서 1백 골드인가?
그다지 만족할 만한 액수는 아니로군. 이왕 선심 쓰는 김에 한 몇천 골드 주지 않고.
내가 좋아하다가 실망한 기색이자 황 과장은 위로하듯 말했다.
“사실 돈을 드리는 것도 외부에 알려지면 큰 문제가 되는 건 아이템 지급과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더 드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만 준비했습니다.”
그렇겠지. 뭐 어쨌거나 내가 이해를 해야지.
다니던 회사 일을 안 하면서도 월급 꼬박꼬박 받고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판이니까. 조 부장을 더 닦달하는 것도 좀 심한 것 같긴 하니까.
어쨌거나 가죽 갑옷에 무기 하나, 그리고 1백 골드의 돈. 이 정도면 게임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춘 셈이었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지.
가상현실 게임의 시작치고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시키려 애쓰면서, 나는 생성된 내 외모를 근처의 시냇물에 비춰 보았다.
“음…….”
분명히 현실의 내 외모와 거의 일치했다.
“확실히 안내 시스템이 말한 대로군.”
나는 이번에는 캐릭터 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 : 우영
직업 : 스토커
레벨 : 1
명성 : 0 지식 : 0
힘 : 20 체력 : 15
민첩 : 10 행운 : 5
지혜 : 25 매력 : 80
HP : 60 MP : 28
초보답게 매우 검소한 수치로군.
아니, 근데 매력은 수치가 제법 높잖아, 어찌 된 거지?
내가 의아해하자 황 과장이 설명을 해 주었다.
“매력은 유저의 외모를 근거로 해서 스탯 점수가 주어집니다. 일단 기본 점수가 높게 주어진 건 우영 님께서 그만큼 매력적인 분이라는 말이 되겠죠. 하긴 제가 봐도 꽤 미남이시네요. 부럽습니다.”
“후후후, 그렇군요. 근데 황 과장님의 매력 스탯은 얼마나 되는지요?”
“…….”
내 질문에 황 과장은 민망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슬쩍 째려보았다.
거참,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한 건가?
이런 경우엔 확실히 잘생긴 게 죄가 되는구먼.
“우리 이케루스에서 외모를 현실의 것과 일치하도록 만든 건,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여자들이나 꼬시고 다니면서 영양가 없는 연애질을 하는 걸 막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그게 게임 속에서의 연애질로만 끝나면 모르겠지만 현실 세계에서까지 이어져서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니까요. 또 꼭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해도 외모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게 해 놓으면 개나 소나 모두 초절정 미소년 미소녀로 자신을 바꿀 텐데 그것도 좀 끔찍한 일 아니겠습니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미남 미녀라면 그런 세상이 재미가 있을 리가 없지.
“어쨌거나 저 매력 스탯은 게임을 해 나가시다가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일을 자꾸 하시면 자연히 수치가 떨어지게 되고 반대의 일을 하면 올라갑니다. 뭐 당연한 거지만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이 정도면 우영 씨께서 게임을 하실 준비는 다 끝난 셈이고, 제가 설명 드릴 것도 다 해 드린 것 같군요. 그럼 저는 업무 때문에 이만 헤어져야겠네요.”
“네, 황 과장님.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어쨌거나 즐겁게 게임하시고 조카분의 행적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시거든 우리 운영진에게도 알려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네, 명심하죠. 하지만 일단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이 이케루스라는 게임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대충이라도 파악해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재경이에 대한 행적을 추적하겠습니다.”
“네, 좋은 성과 있으시길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요.”
“그게 뭔데요?”
황 과장이 준 건 무슨 가게 이름이 적힌 쪽지였다.
“혹시 거기 가시면 어떤 정보라도 들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좀 위험한 곳이긴 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거래하는 곳이라는 소문이 있어서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아무런 단서도 줄 수 없는 것처럼 말하더니 그래도 준비해 온 게 있었구만. 조금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무를 완전히 끝낸 황 과장은 등을 돌려 순식간에 뒤쪽의 산길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나는 놀라서 심장이 멈출 뻔했다.
“……!”
쫄랑쫄랑 달음질치며 멀어지는 황 과장의 짧은 미니스커트 아래로 언뜻언뜻 보이는 저 분홍색은…….
에이, 찝찝해.
서른 넘은 털북숭이 아저씨가 엘프로 변신한 꼴을 보는 것만 해도 뒤집어질 판이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연분홍빛 팬티까지 보여 주는 모습이라니.
트라우마도 엄청난 트라우마로군.
나는 시야에서 황 과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부르르 치를 떤 다음에야 걸음을 옮겨 성문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