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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5화)
Part 3.프리스트 란슬링(1)
휘이잉!
“음, 손에 잡히는 느낌과 휘두르는 느낌 모두 다 좋군. 근데 직접 한번 사용해 봤음 더 좋겠는데.”
난 메이스를 씽씽 소리나게 휘두르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성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메이스를 실제로 사용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 때문이었다.
새로 얻은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아 보고 싶은 어린애의 심정…… 과는 좀 다른 거지만. 좌우간에 이제부터 내 분신이나 다름없이 활약해 줄 메이스의 손맛을 한번 보고 싶은 충동이라고 할까, 뭐 그런 거였다.
들판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내 눈에 뭔가 작은 생물체가 포착되었다.
“훗, 너 잘 걸렸다. 끼요옷!”
퍼퍽! 찌익!
마치 드래곤이라도 상대하는 것처럼 난 그 작은 물체한테 회심의 메이스 일격을 날렸고 그 물체는 비명을 지르며 짜부라졌다.
“근데 이게 뭐지?”
난 슬그머니 내 메이스의 희생물이 된 그 물체를 집어 올렸다.
- 레드 랫 -
서식지 : 들판
레벨 : 1
생명력 : 5
들판에 서식하는 붉은색의 생쥐. 보통 생쥐보다 두 배쯤 더 크고 보통 보통의 검은색 생쥐 1만 마리당 1마리 꼴로 존재한다. 1백 마리쯤 때려잡으면 레벨이 1 오를 가능성이 있다. 간혹 극소수 마법사들이 레드 랫을 희귀한 마법 포션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한다는 소문도 있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쩝……. 설명 창의 내용으로는 보통 생쥐에 비해 매우 희귀하다는 것만 빼곤 별로 쓸모없는 생물이로구만. 어쩌다가 내 눈에 띄여 한 방에 즉사했는지는 몰라도 레벨 1을 올리려고 이놈 1백 마리를 찾으려다 늙어 죽는 게 훨씬 더 빠르겠군.
그렇다고 이놈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난 때려잡은 레드 랫을 레더 아머에 달린 가죽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아무짝에 쓸모없다고는 해도 희귀하다면 뭔가 쓰임새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이케루스에서 내 손으로 처음 잡은 생물이라는 걸 기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오…….”
이케루스를 처음 시작하는 이용자들의 출발 지역인 비기닝 시티의 성문을 통과한 내 입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거리의 모습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앙증맞고 아기자기한 때문이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주황빛 벽돌이 곱게 깔린 넓은 광장의 중앙에는 아름다운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6명의 영웅 대리석이 설치된 분수대는 하늘 높이 물을 뿜어 대고 있었는데, 햇살이 물보라에 부딪혀서 여러 개의 작은 무지개가 분수대 위로 멋지게 그려지고 있었다.
분수대 주변과 중앙 광장의 곳곳에는 오가는 사람들과 좌판을 늘어놓고 장사하는 사람들로 활기차게 북적이고 있었다.
“자, 골라 봐. 골라 봐. 평생 가도 한 번 볼까 말까한 아이템이니까 골라 보라고!”
“레벨 랭킹 50위 안의 사람들이 애용하는 명품 갑옷을 단돈 5백 골드에 드려요. 단돈 5백 골드. 자, 이런 기회가 두 번 있는 게 아닙니다. 횡재나 다름없으니 어서 사 가세요!”
“빈대떡 사세요. 빈대떡! 세 개를 사시면 찹살떡 하나를 보너스로 그냥 드립니다. 한 개만 드셔도 체력이 순식간에 회복되는 빈대떡을 세 개 사시면 마나의 절반을 채워 주는 찹쌀떡 한 개를 보너스로 드립니다!”
“마법사의 로브를 팝니다. 그 유명한 대마법사 라파엘의 로브입니다.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거니까 후딱 사시는 게 돈 버는 겁니다. 팔린 다음에 후회 말고 어서 사세요. 아, 이 사람아. 안 살 거면 만지지 좀 마. 로브에 손때 묻잖아!”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장사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과 흥정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물건 파는 것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나는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답게 눈에 보이는 것마다 멋지고 근사했다.
카아∼ 좋다. 동화 속의 세계가 따로 없구만. 어째서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이유를 알 것 같네. 그리고 재경이 녀석이 왜 이 게임에서 현실로 안 나오는지도 알 것 같…….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음, 그러고 보니 난 이 게임에 열중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고 재경이를 찾으러 온 거지.
근데 재경이 이놈을 어디서 찾지? 운영진이 재경이의 행적에 대한 어떤 단서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황 과장한테 들었으니 그쪽에는 정보를 기대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나 혼자 힘으로 재경이를 찾아내야 한다는 건데.
막막한 심정이 된 나는 한숨을 쉬면서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별수 없지. 레벨을 올리고 동료를 모아 파티를 결성해서 모험을 해 나가는 수밖에. 힘과 세력이 생기면 재경이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지금 당장은 저레벨의 초보 유저지만 여기서 강자가 되면 재경이를 찾기는 더 쉬워질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나는 다시 아름다운 거리의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엉?”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앙증맞은 거리의 풍경과 통행인들 사이에서 뭔가 위화감을 조성하는 캐릭터를 발견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을 불러일으킨 인물은 자신을 보고 놀라는 시선을 눈치챈 듯, 슬며시 내게로 다가왔다.
“이봐, 당신! 왜 기분 나쁜 눈으로 사람을 꼬나보는 거지! 쉬익! 나한테 무슨 용무라도 있는 거요? 쉬익!”
사람? 사람이라고?
제길, 도마뱀 형상을 한 리자드맨이 사람을 자칭하다니 황당하네.
말끝에 혀 날름거리는 ‘쉬익’ 소리 때문에 두 배는 더 황당한 것 같구만.
그 이질적인 존재는 바로 리자드맨이었다.
사실 이질적인 존재라면 늑대나 사자의 머리를 한 수인족들도 길거리에서 간간이 눈에 띄기는 했다. 그러나 시퍼런 초록색의 피부를 태양빛 아래 번들대며 긴 혀를 날름거리는 그 모습이야말로, 단연 압도적으로 거부감을 안겨주었다.
에이,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보긴 했지만 실제로 면상을 마주하니 이거 장난 아니네. 저 시퍼렇고 두터워 보이는 가죽 껍질은 둘째 쳐도 노랗게 번들거리는 눈알하며…….
특히 압권은 역시 혀로구만. 두 가닥으로 갈라져서, 말을 내뱉을 때마다 초록색의 타액을 반경 4미터 내에 마구 뿌려 대면서 춤을 추는 모습이 말이지.
그리고 성분이 도대체 뭔지는 몰라도 그 침이 떨어진 곳에서는 치지직 하고 타는 소리가 났다.
이건 뭐 에일리언도 아니고…….
뭐 어쨌거나 도마뱀일망정 갑옷 걸치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며 말까지 할 줄 아는데 시비 걸 것까진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척 보니 유저는 아니고 NPC인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사실은 당신 생긴 게 하도 토 쏠려서 그랬소. 하고많은 종족 중에서 리자드맨을 선택해서 게임을 하다니 취향도 희한하시군. 전적으로 당신이 캐릭터를 잘못 선택한 탓이니 이해하쇼!’라고 말해서 넘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해는커녕 당장 칼부림이 벌어질 게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난 일단 눈을 내리깔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인데요. 내가 살던 곳이 워낙 촌구석이라 리자드맨을 본 일이 전혀 없어서요. 너무 신기한 나머지 잠깐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러자 리자드맨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혀를 좌우로 휘저으며 말했다.
“그렇군. 쉭, 쉬익! 나는 란슬링이라고 하며 직업은 프리스트요. 쉬익!”
“아, 프리스트시군요. 저는 우영이라고 하며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엔 처음입니다.”
란슬링은 내 말에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뜻밖의 제의를 해 왔다.
“그렇소? 사실은 나도 이곳엔 초행이라서 그러는데……. 함께 여행하면 어떻겠소? 파티를 만들자 그 말이요, 쉬익! 우리 둘이 가진 능력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쉭, 쉬익!”
란슬링이 말을 던지자 설명 창이 떴다.
- 프리스트 란슬링의 파티 요청 -
리자드맨 프리스트 란슬링이 당신에게 파티를 맺을 것을 요청해왔다. 받아들일 경우, 부상을 입었을 때와 몸이 피로할 때에 무료로 힐링을 받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단 당신의 대인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이 미치는 페널티가 있을지 모르니 잘 생각해 보고 선택하라.
“으음…….”
파티를 결성할 경우 프리스트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싸우다 부상을 입었는데 힐링을 받을 수 없는 파티는 전력이 반감되는 거나 같으니까.
근데 설명 창의 말마따나 이렇게 외모가 심각한 캐릭터를 데리고 다니면 내 이미지의 손상이 만만찮을 테니 그게 걱정이로군.
저 염산이나 다름없는 침을 찍찍 마구 뱉어 대지만 않아도 좀 낫겠는데…….
“프리스트라면 힐링도 잘하실 테니 같은 파티를 하면 여러모로 도움받을 일이 많겠군요. 근데 간혹 힐링은 시원찮고 싸움에 더 강점이 있는 전투 프리스트도 있던데, 그건 아니겠죠?”
“무, 물론이요, 쉬익! 나의 강점은 어디까지나 힐링이요. 그것만은 자부할 수 있소. 간혹 치료받는 사람들이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쉬익!”
으응? 이건 또 뭔 소리래?
공짜로 상처를 낫게 해 주는데 치료받는 사람들이 거부감을 표시한다니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가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겸손해서 해 보는 소리겠지 하고 넘어갔다.
“좋습니다. 파티를 이루고 함께 여행하기로 하죠.”
“잘 생각했소! 내 힐링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지, 쉬익!”
내가 승낙하자 란슬링은 흐뭇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치며 즐거워했고 나는 떨떠름하게 웃어 주었다.
별로 폼 나는 동료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의 내 처지는 한시라도 빨리 유능한 인물들을 끌어모아 파티를 만들어서 움직여야 할 입장이니까.
하지만 그 전에 이 도마뱀한테 주지시켜야 할 일이 있다.
“아, 그리고……. 그 전에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는데 말이지. 만약 싫으면 그냥 가도 좋고.”
“그, 그게 뭔데? 쉬익!”
내가 경직된 태도를 지으며 반말을 꺼내자 란슬링은 당황스러워했다.
“우선 첫 번째! 이 파티의 파티장은 어디까지나 나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둘째, 그 침은 매우 비위생적일뿐더러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상 행위가 될 수 있으니 장소와 때를 가려서 뱉을 것! 이 두 가지만 명심하고 지켜 주면 돼. 싫어? 싫으면 파티 맺은 거 무효로 하고 그냥 가도 되고. 내가 무슨 권리로 억지로 파티원이 되는 걸 강요할 수 있겠어?”
“…….”
이 두 가지만은 내 목이 달아나도 양보 못한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란슬링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다, 쉬익!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쉬익! 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다. 그 조건만 지켜 주면 당신이 파티장이라는 걸 언제나 명심하고 침도 조심해서 뱉도록 하겠다. 쉬익!”
“그래? 그 조건이 뭔데? 한번 말해 봐. 어디 들어나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