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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1권(6화)
Part 3.프리스트 란슬링(2)


“이봐, 웨이터 뭐하냐. 쉬익! 숯불에 구운 사슴 고기하고 특대 치즈 스무 접시, 그리고 맥주 열 잔만 더 갖다 달란 말이다. 쉬익!”
주점에서 란슬링과 마주앉은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란슬링이 말한 조건이란 건 다름 아닌, ‘이제부터 하루의 식사는 무조건 파티장이 책임져 줄 것!’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건 좋았는데, 이 도마뱀이 무슨 먹성이 이리도 좋은지 벌써 오 인분어치를 먹어 치우고 있었다.
수중에는 조 부장이 선심으로 던져 준 돈이 달랑 백 골드뿐인데, 지금까지 이 도마뱀이 먹어 치운 것만 해도 10골드는 넘을 거 같았다.
이대로 몇 시간만 더 앉아 있으면 내 수중의 금화는 완전히 다 사라지게 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 빌어먹을 도마뱀 대가리야! 돈 주머니 바닥날 판이니까 작작 처먹어!’라고 을러대는 건 파티 결성한 지 한나절도 안 된 입장에서 차마 하기 어려웠다.
혹시 란슬링이 겁나서 그런 건 아니냐고?
흠흠……. 물론 그건 절대로 아니다…… 라고는 못하겠군.
아, 당신이 한번 보라고. 사슴을 한 마리 통째로 구운 걸 번쩍 들어서 저 길다란 혀로 척 감아서 한입에 으적 반으로 쪼개서 목구멍으로 홀라당 넘기는 저 가공할 광경을.
실제 전투력이 어느 정돈진 몰라도 먹는 모습 하나만은 중형 몬스터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개도 먹을 때 잘못 건드렸다가는 물리기 십상인데 중형 몬스터 식사하는데 딴지 걸었다가는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른다 싶어 몸 사리는 게 나만의 잘못이겠냐고.
좌우간 식사값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라 초조한 나와는 대조적으로 마음껏 식사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 란슬링은 자신의 무용담을 신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게 그래서 말이지. 정말 엄청난 그린 드래곤이었다니까. 쉬익! 그놈이 한번 브레스를 뿜을 때마다 우리 파티원들은 전부 통구이 신세가 될 뻔했다 그거야. 근데 그럴 때마다 내가 끊임없이 힐링을 해서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었지. 쉬이익! 그래서 우리 파티는 나 덕분에 공격하고 공격하고 또 공격해서 나흘간에 걸친 사투 끝에 기어이 드래곤을 잡을 수 있었다 그거지. 쉬익!”
“뭐 드래곤을 잡았다고? 란슬링 니가? 그럼 니가 드래곤 슬레이어란 말이냐?”
별로 믿음이 안 가는지라 삐딱한 어조로 묻자 란슬링은 어조를 높였다.
“아니, 우영!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냐? 못 믿겠다는 거냐. 쉬익! 거짓말이 아니란 말이다. 쉬익! 내 덕분에 우리 파티는 모두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일등 공신은 나 란슬링이었다 그 말이다. 쉬익! 응? 아니, 근데 이게 뭐냐. 쉬익! 야, 웨이터! 맥주가 떨어졌는데 뭐하는 거냐, 빨리 더 가져와라. 쉬익!”
란슬링의 허풍에 나는 어이가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술 취한 김에 사실을 다소 과장하는 건 관계없지만 자신이 드래곤을 잡은 파티의 일원이었다는 건 뻥이 너무 심하잖냐고.
드래곤이 도시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보이는 오크도 아니고 말이지.
그리고 하필이면 이런 수다장이 리자드맨 프리스트가 낀 파티에 잡히다니 그걸 어떻게 믿냐는 거다.
다른 손님들도 코웃음을 칠 거라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심상치 않은 공기에 움찔했다.
노골적으로 노려보진 못했지만 사방의 눈총이 일제히 나와 란슬링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고래고래 떠들며 폭음을 하는 모습도 꼴사나웠지만 정작 그놈의 침이 문제였다.
란슬링 이 자식이 흥에 겨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떠드는 통에 가래가 걸죽하게 들어 있는 시퍼런 침이 사방팔방으로 마구 튀고 있었으니까.
바닥에 떨어지면 그나마 다행인데 다른 손님들의 탁자와 음식 접시, 심지어 술잔 속에까지 마구 떨어지는 참사가 연출되고 있었다.
그래서 술집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은근히 째려보면서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정작 란슬링만 그걸 모르고 있었다.
하긴 번들거리는 초록색 피부에 노란 눈알의 서슬 퍼런 외모, 그리고 놀라운 무용담을 한껏 자랑하는 란슬링에게 선뜻 ‘입 닥치고 조용히 처마시든가 아니면 꺼져!’라고 말할 용감한 사람은 전혀 없었…… 아니, 있군.
란슬링의 침 때문에 주점 안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보다 못해, 드디어 한 사람이 나섰다.
“저, 손님…….”
“주인장이냐? 무슨 일인가. 쉬익!”
과감하게 란슬링 앞에 나타난 사람은 작은 키에 콧수염을 기른 술집 주인이었다.
안 나설 수가 없었겠지. 란슬링 때문에 벌써 절반이나 되는 손님이 나가 버려서 매상에 막대한 지장이 생기는 판이었으니.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한데 이제 그쯤 하시고 일어나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기분 좋게 드시는 건 좋은데 손님 때문에 다른 분들이 불쾌해서 모두 나가고 계시니 말입니다.”
“뭐라고. 쉬익! 지금 우리를 쫓아내겠다는 건가. 쉬익!”
쿠당!
란슬링은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두 눈을 부라렸다.
쩌적!
쩝! 저 두꺼운 탁자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네. 저거 나더러 변상하라면 어쩌지…….
그러나 란슬링의 무력시위에도 불구하고 왜소한 체격의 술집 주인은 태연했다.
“그냥 나가 주신다면 지금까지 드신 술값은 받지 않을뿐더러 여행하시면서 드실 사슴 고기 한마리를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오래 휴대하고 다니시면서 먹을 수 있도록 훈제를 해서 드립죠.”
“뭐, 뭐라고. 쉬익! 그러니까 훈제 사슴 고기를 한 마리씩이나 그냥 주겠다는 거냐? 쉬익! 으음……. 그것 참……. 흐음…….”
울화통을 터뜨리려던 란슬링은 훈제를 한 사슴 고기를 공짜로 준다는 말에 구미가 당기는 듯 주춤했다.
하긴 이 주점의 고기 맛은 상당히 별미였다. 다른 지역에서 흔하게 맛볼 수 있는 게 아닌 건 분명했다.
란슬링이 엉거추춤하며 주인의 요구에 응하려는 순간, 나는 한 손으로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곤란합니다. 고작 술값을 공짜로 해 주는 정도로는 우리들의 기분 좋은 술자리를 끝내는 값어치가 안 되겠는데요?”
“…….”
내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자 주인의 미간이 흉하게 찌푸려졌다.
가게에 들어오면서 눈치챘지만 주인은 보통내기가 아닌 게 분명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가 틀림없었고 뒷골목의 어두운 세계에도 한 발 걸쳐 놓은 게 분명했다.
포스가 철철 넘치는 눈빛으로 사정없이 야리는 주인장의 눈을 나는 싱긋 웃으며 맞받아쳐 주었다. 내가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자 주인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흥, 그렇게 살기 띤 눈으로 사정없이 야려봐 주면 웬만한 인간들이야 오금을 저리며 쫄아들지 모르지.
하지만 이 몸은 이 선술집이 어떤 곳인지, 이미 정보를 알고서 들어왔단 말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황 과장과 헤어질 때 그가 준 종이 쪽지에 적힌 곳이 바로 이 주점이었거든.
즉, 이 주점에 들어온 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말이지.
나는 다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주인장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술값 무료에 덧붙여서, 가벼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조용히 꺼져 드리죠.”
그 말에 주인은 다소 누그러진 표정이 되었다.
“가벼운 부탁이라고?”
“그렇소. 이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솜씨가 좋다는 미라쥬 길드의 마스터에게 안내해 주었으면 합니다. 뭐 좀 물어볼게 있어서요.”
“뭐라고!”
미라쥬 길드라는 단어에 주인장은 다시 살기를 흘리며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이 미라쥬 길드가 직접 경영하는 곳이라는 걸 알고 온 게로군.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아아, 그것까지 댁이 알 거 없잖소. 안내해 줄 건지 말건지 그것만 말하라니까.”
내가 짜증스레 쏘아붙이자 주인장은 종업원들에게 눈빛을 던졌다.
그러자 그들은 후다닥 몸을 날리며 재빨리 출입문을 모조리 봉쇄해 버렸다. 손님들은 이미 한 명도 남김없이 내보낸 뒤였다.
하는 꼴을 보니 나를 순순히 미라쥬 길드 마스터에게 안내할 의향이 없는 게 분명했다.
아니, 의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대거와 클럽을 꺼내 드는 걸 보니 한바탕 피를 보려는 게 분명했다.
“젠장! 어쩔 수 없군.”
나는 슬며시 허리에 차고 있던 메이스를 꺼내며 란슬링에게 말했다.
“이봐, 란슬링. 너 힐링 능력 대단하다는 거 확실하지? 뻥 아니지?”
“응? 으, 으응. 그건 틀림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내 힐링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특급이야. 처음 치료받는 사람들이 상당히 거부감을 표하긴 하지만.”
란슬링도 한판 뜰 상황이란 걸 눈치채고, 종업원들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근데 그 거부감 이야긴 자꾸 왜 나오는지 진짜 이해 안 가네. 치료만 끝내주게 잘되면 그만이지, 도대체 왜 거부감을 표하느냔 말이다.
어쨌거나 꽤 괜찮은 무기도 수중에 있겠다, 힐링 능력 좋은 프리스트도 있겠다, 그렇다면 더 이상 겁날 건 없다.
나는 키 작은 주인장을 한껏 얕보는 투로 내려다보며 명령조로 말했다.
“꼴을 보아하니 우리한테 개겨 보겠다는 거냐? 다시 말한다. 좋게 말할 때 너희 미라쥬 길드의 주인에게 안내해라. 중대한 용건이 있어 온 거니까 열나게 처맞고 안내하기 전에 알아서 기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주인장의 미간에는 빠직하고 핏줄이 두드러졌다. 자기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새파란 애송이인 나의 건방진 말투에 스팀 받은 게 틀림없었다.
암, 열 받으라고 한 말이니까 열 받아 줘야 당연한 거지.
응? 근데 왜 다짜고짜 상대를 열 받게 해서 싸움부터 하려 드느냐고?
뭐, 별거 아니다.
그저 저렙에서의 내 전투력과 나의 유일한 병기인 메이스의 위력이 어느 정돈지 알아보고, 프리스트 란슬링의 힐링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겸사겸사 체크해 보려는 이유에서라고 할까?
그리고 싸워도 될 일을 매사 좋은 말로 술렁술렁 진행하는 건 현실 세계에서의 살아가는 방법이지, 가상현실에서는 아니다. 암, 아니고말고.
가상현실 세계에서는 가급적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 주는 게 제맛이 아니겠냐고.
“흥, 겁대가리라고는 한 조각도 없는 걸 보니 드래곤 쓸개라도 삶아 먹은 놈인가 보군. 자신의 정체는 전혀 안 밝히면서 다짜고짜 우리 보스를 만나야겠으니 안내하라고? 빠드드드드드드드드득! 나를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얘들아, 더 볼 거 없다. 이 두 녀석을……. 아니지, 한 마리와 한 녀석을 사정없이 담가 버려라!”
“우와아!”
“죽여라!”
“찢어 버려!”
주인장의 말 한마디에 종업원 놈들은 대거와 클럽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우와아!’ 라든지 ‘죽여라!’, ‘찢어 버려!’ 같은 대부분의 영화, 만화, 그리고 재능이라곤 쥐뿔도 없는 소설가가 만드는 소설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투적인 대사를 마구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우당탕탕!
나와 란슬링은 재빨리 벽에 몸을 붙이며 사정없이 의자를 걷어찼다. 그 서슬에 달려들던 놈들은 의자에 걸려 사정없이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놈들은 그 뒤에서 대여섯 명이 쓰러진 동료의 시체…… 는 아니고, 좌우간 동료의 등을 과감히 밟고 나에게 몸을 날렸다.
눈앞에서 날카로운 대거와 맞았다간 갈비뼈 두서너 개는 나갈 것 같은 뭉툭한 클럽이 맹렬하게 춤을 추었다.
우웃! 영화 같은 데서 볼 때는 별거 아니었는데 직접 당해 보니 이거 장난 아니게 살벌한데?
나는 행여 란슬링이 도와줄까 싶어 돌아보았는데, 웬걸 자신은 전투 능력이 없는 프리스트라는 걸 그리도 과시하고 싶은 건지, 탁자 밑에 엎드려서 아예 두 손으로 고개까지 푹 파묻고 있었다.
젠장, 저 꼬라지로 잘도 드래곤 사냥을 했겠다. 전투에서 자기 동료가 싸우는 꼴도 안 보고 있는 놈이 무슨 수로 신속하고 즉각적인 힐링을 한다는 거냐고.
나는 허리의 메이스를 꺼내 들어 날쌔게 휘둘렀다.
퍼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