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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임페리얼 가드 1권 (1화)
프롤로그
데네브 하사는 자신의 머스킷을 꼭 쥔 채 고개를 숙였다.
그 말고 다른 지원자들도 데네브와 같은 행동을 하거나 일부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물러날까?’
자신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그가 얼른 지원을 포기하고 본대로 복귀하라고 절망스럽게 소리치고 있었지만, 살아남는다면 얻어지는 보상의 유혹이 그를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레기움 제국군은 반란군의 마지막 거점인 팔라티아 섬, 발레타 성채를 향한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포 122문의 기함, ‘알렉산더 1세’호의 포격 덕분에 발레타 성채의 성벽 일부가 무너져 병사들이 충분히 진입하도고 남을 정도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성채를 진입하기 위한 결사대를 모집했는데, 데네브는 거기에 지원한 것이었다.
몰락 귀족 출신에 하사인 그는 돈이 없는 이유로 장교로 임관하지 못한 것에 불만이 많았고, 만약 결사대에 지원해 살아남는다면 그는 즉시 장교로 진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란군은 분명 그 입구를 철저하게 방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애물을 설치해 놓았을 테고, 전쟁사를 통틀어서 결사대는 열에 아홉은 죽어 버리는, ‘덧없는 희망’이라는 별명을 가진 보직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라. 여차하면 내 뒤에 있으라고. 하하!”
기사단에서 지원한 한 준위―평기사는 준위라는 계급을 가지고 있었다―가 강철 장갑으로 자신의 흉갑을 두드리며 호탕하게 말하려 노력했지만, 가슴속 깊이 깔린 긴장감을 옅볼 수 있어 데네브는 전혀 그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는 화약 무기가 발전하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중장갑을 걸친 기사들을 혐오하는 그의 편견이 더욱 한몫한 것이겠지만.
“소위, 한 대 피우겠나?”
대령 견장을 단 장교가 말을 타고 다가오더니 그레니엄 소위에게 시가를 권했다.
그레니엄 소위는 결사대를 인솔할 장교로, 이제 갓 입대한 16살의 귀족 집안의 서자였다.
그는 어깨가 좁은 나머지 너무 커 보이는 푸른색 제복 때문에 더욱더 왜소해 보였다.
“아닙니다, 대령님. 전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긴장 때문에 얼굴이 창백해진 그가 힘없이 손을 내젓자 대령은 연민 어린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데네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알겠네. 하사, 깃발을 맡아 주게.”
“예?”
데네브는 저도 모르게 말대답을 하고 말았다.
깃발병은 깃발을 들고 아군의 진격을 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적병의 포획 대상 1호라서 죽기 딱 좋은 보직이었다.
데네브는 깃발병 임무를 맡고 한 달 이상 전투에 살아남은 병사를 본 적이 없어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 또한 운 좋게 반란군의 대대 깃발을 포획해서 19살의 어린 나이에 이등병에서 하사가 된 게 아닌가.
“알겠습니다.”
대령의 얼굴이 굳어져 입을 열기 전에 그는 얼른 대답하고는 깃발을 받았다.
“머스킷은 보급관에게 반납하게.”
“네.”
데네브는 이제 자신의 운명을 신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다되었군.”
대령이 태엽식 회중시계를 꺼내 들어 보며 말했다.
“소위, 무운을 빈다.”
“감사합니다, 대령님.”
그레니엄 소위가 샤브르―굽은 도―를 뽑아 칼등을 어깨에 걸치며 소리쳤다.
“결사대, 일어서!”
그리고 그의 구령과 동시에 병사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가!”
아직 해안가인 탓에 데네브가 가진 깃발이 바닷바람에 나부끼자 데네브는 절망에 빠졌다.
아군뿐 아니라 적군에게도 그 모습은 너무나도 확연히 눈에 띌 것이기에.
결사대가 점점 성채로 접근하자 성벽의 성가퀴에서 총소리와 함께 흑색화약의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억!”
그 순간, 데네브의 오른쪽에서 도끼를 만지작거리던 전투공병이 짧은 비병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속보 전진!”
깜짝 놀란 그레니엄 소위의 말에 병사들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총안에서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날아온 구형 포탄이 데네브의 왼쪽에 있던 한 불쌍한 병사를 날려 버렸다.
구형 포탄은 그러고도 여전히 힘이 남아 그 뒤에 있던 7명의 병사를 쓰러뜨리고 8번째 병사의 발목을 잘라 내며 땅에 박혔다.
그렇게 열 명 남짓의 동료를 잃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무너진 성벽의 돌무더기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돌격! 앞으로!”
쏟아지는 총탄 사이로 그레니엄 소위가 앞서 달려가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호언장담하던 기사가 그 뒤를 따랐으며, 기사의 뒤에는 깃발을 든 데네브가 있었다.
한데 그 순간, 데네브는 눈앞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커다란 망치에 맞은 것처럼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무너진 성벽의 돌무더기 아래에 화약이 가득 담긴 지뢰가 너무 일찍 폭발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데네브는 얼얼한 정신을 추슬러 얼른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뢰가 일찍 터진 덕분에 데네브와 기사는 그 거대한 폭발 속에서도 거의 상처가 없을 정도였지만, 그레이엄 소위는 폭발에 고스란히 휩쓸려 데네브의 눈에 보이는 것은 타 버린 고깃조각들뿐이었다.
그나마 가장 크게 남은 신체 부위가 칼을 들고 있던 팔이었다.
“계속 앞으로!”
자동적으로 상급자가 된 준위가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황제 폐하 만세! 레기움 제국 만세!”
그의 용기에 힘입어 데네브 또한 깃발을 들고 달려 나갔다.
결사대 또한 사기를 잃지 않은 채 돌무더기를 뛰어넘어 성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대포 진지에서 산탄을 장전한 24파운드짜리 대포 3문이었다.
“아!”
데네브는 안타까움에 탄식을 내질렀다.
그의 눈에 반란군 포병이 불이 붙은 화승을 대포의 뇌관에 넣어 화약을 점화하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준위가 데네브의 앞을 가로막는 것과 동시에 3문의 대포에서 진홍색 불꽃과 함께 검은 산탄이 퍼져 나왔다.
Chapter 1 (1)
“정말 수고했네, 데네브 소위.”
윌러비 대령이 악수를 청하며 데네브의 오른손에 검정색 소매장을 쥐어 주었다.
그 소매장은 결사대에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쥐어 주는 증표로, 무공훈장에 버금가는 증표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사대에서 살아남은 자는 오직 데네브 혼자뿐이었기에 그 의미는 더욱 대단했다. 물론 결사대에 참가한 결과 왼팔에 산탄 조각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 마법사들 덕분에 그는 완치는 물론이거니와 진급과 상금, 휴가, 소매장이라는 명예를 얻어 냈다.
또한 그의 용기는 제국신문에 기재되어 세간의 화두가 될 것이다.
“자, 여기 상금을 받게.”
윌러비 대령이 그의 왼손에 작은 주머니를 쥐어 주었는데,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물론 왜 이 돈을 나라에서 주는지 알겠지?”
윌러비 대령의 말에 데네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돈은 놀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제복과 계급을 나타내는 견장, 그리고 칼과 장화를 사라고 주는 돈이었다.
“내가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이 돈으론 제대로 된 새 군복을 살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조금 찜찜하긴 해도 경매장에 가서 죽은 장교의 유품을 사는 것이 좋을 거야. 경매장 놈들이 가진 재단사들은 교묘하게 바느질을 잘해서 총알에 뚫리거나 칼에 베인 자국도 티나지 않게 꿰매지.”
숨겨진 진실이라도 말해 주는 양 윌러비 대령이 고개를 숙여 작게 속삭였다.
“잘 알겠습니다.”
“또한 자네는 다른 부대로 배치될 거야. 기존에 있던 부대의 장교로 배치되면 자네의 전우들이 지휘권을 무시할 수도 있거든.”
“네.”
“좋아. 그러면 휴가를 잘 보내게, 데네브 소위. 자네는 황제 폐하의 근위 제1연대 2대대 3중대에 배치될 것이네. 정확히 한 달 뒤인 6월 24일까지 황궁 동쪽 입구의 근위대 연병장에 가면 되네. 거기 가서 배치로 명을 받았다고 하면 될 거다.”
윌러비 대령이 말과 함께 명령서를 데네브에게 건네주었다.
“근위대 말씀이십니까?”
데네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것도 척탄 근위대이지. 1연대는 전부 척탄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네 키가 187센티이니 근위대로는 적격이야. 게다가 황제 폐하께서는 자네처럼 용감한 사람을 많이 좋아하니까.”
근위대면 이제 전장에 나가서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황실에서 주최하는 연회에도 참석할 기회도 있을 것이다.
그건 분명했다.
때문에 근위대로 전출되는 것은 매우 보기 드믄 것이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황제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나에게 감사하지 말고 황제 폐하께 감사하게.”
윌러비 대령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